안녕하세요, 24학년도 단국대 정시 최초합격하게 된 이한서입니다. 저는 23년 6월부터 10월까지 산문반이었으나 10월 중에 시창작반으로 옮기게 됐어요. 바꾸게 된 이유는 밑에 찬찬히 써보도록 할게요.
저는 문창과 입시를 시작하기 전부터 글을 정말 좋아했어요. 또래 친구들에 비해 책을 많이 읽기도 했지만 아주 내성적이었던 초등학생 때부터 학창 시절 내내 늘 무언가를 끄적이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아요.
제게 글쓰기란 치유의 습관이었습니다. 감정이나 상황을 정리해서 쓰고 나면 안 좋았던 기분이 한결 나아졌고, 제 마음을 돌볼 수 있었어요. 표출의 수단이기도 했고요. 끈기나 성실함이 유독 부족한 제가 기복 없이 꾸준히 해온 유일한 일도 글쓰기였습니다. 하지만 글을 이 정도로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기도 했고, 취미 정도로 여겼기 때문에 전공할 생각은 못했었던 것 같아요. 진로 선택에 있어서 방황하고 있던 중, 문예창작과를 준비해보는 것은 어떠냐는 엄마의 제안으로 고도에 오게 되었습니다.
제게 고도는 제가 글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과 글을 쓰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제 마음을 깨닫고, 그걸 행동으로 옮기며 만나게 된 감사한 존재예요. 첫 수업을 들었을 때, 새로운 환경에 혼란스러우면서도 너무 즐거웠어요. 이거다! 드디어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라는 생각이 딱 들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 제가 혼자 멋대로 써왔던 글과는 많이 달랐지만 글을 제대로 배운다는 것 자체가 기뻤고 그 과정이 재밌었어요.
글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또 어떻게 보면 아무나 쓸 수 없는 것 같아요. 고도를 다니면서 그냥 생각나는대로 적는다고 글이 아니구나, 미술이나 음악처럼 배움이 필요한 학문이구나를 느꼈어요. 지후쌤이 해주셨던 얘기가 생각나네요. 이야기를 지어내려고 하지 말고 장면 속에서 발견해라. 글은 지어내는, 만들어내는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고도를 다니면서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처럼 무언가를 깨닫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또 이런 얘기도 해주셨어요. 불행을 전시하지 마라,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사는 사람에게도 일상이 있다. 어쩌면 당연한 그 말이 참 인상 깊었어요. 글을 쓰고 배우다보니 삶을 배우게 되기도,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잘 다니다가 10월쯤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적이 있었어요. 그만둘까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습니다. 마음이 흔들리던 때에 원장님과 상담을 했고 그때 해주셨던 말씀 덕분에 권태로워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집중력이 약한 제게 더 맞을 것 같다며 시반으로 옮기는 것을 제안해주셔서 옮기게 되었습니다. 시반으로 옮기고 나서 고도에 처음 왔을 때처럼 또 한 번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 제가 혼자 쓰던 글도 소설보다는 시에 가까운 형식이기도 했고, 서사가 아닌 이미지 묘사의 글인 시의 매력을 느꼈거든요. 옮기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열심히 다녔습니다.
시반으로 옮긴 뒤 준비작도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어요. 고도를 다닌 학생들은 알겠지만, 비교적 잘 썼고 가능성이 있는 작품엔 세모나 동그라미를 붙여주시는데 그걸 받을 때마다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어요. 드디어 뭔가를 해낸 기분이었달까요. 내신이나 수능 성적으로는 대학에 가긴 할 수 있을까 싶었던 제가 원서를 넣고, 실기 시험을 보러 갈 수 있는 것 자체가 감사했어요. 고도 덕분에 긴 방황의 시간을 끝맺고 글쓰기에 전념, 정착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후배님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몇 가지 적어보자면, 우선 내신 조금이라도 챙기고 수능도 조금씩 준비하셨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좋은 준비작이 있더라도 성적에 따라 지원할 수 있는 대학이 달라지니까요. 저도 내신이나 수능 성적을 더 챙겼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수시의 경우에 고등학교 출석도 반영되고 생각보다 중요하더라고요! 고3 되면서 학교를 빠지는 친구들이 많은데 출석도 신경쓰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고민이나 힘든 점이 있을 땐 선생님과 상담하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저도 권태로웠을 때 원장님을 뵙지 않고 충동적으로 그만뒀다면 단국대는 당연하고 대학을 아예 못 갔겠죠?
저는 문득문득 떠오르는 문장이나 소재를 핸드폰 메모장에 써놓고 그걸 바탕으로 쓴 적이 많았어요. 예를 들어 공동묘지에 갔을 때 그 풍경을 자세히 기록해둔다던가, 병원에 입원하고 몇 가지 검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의 감정, 검사에 사용한 기계와 도구들, 검사실 분위기 같은 걸 적어놨어요. 그런 소재들이 과제를 할 때 도움이 됐고 준비작이 됐습니다. 제 준비작은 하나도 빠짐없이 제 이야기, 특히 기억 속에 선명히 남은 경험들이에요. 아무리 지어내려고 해도 결국은 제 이야기로 쓰는 게 제일 잘 써지더라고요. 지후쌤 말씀처럼 지어내려고 하지 말고 장면 속에서, 기억과 경험 속에서 발견하려고 해보세요. 훨씬 디테일이 있고 전달하고자 하는 감각이 잘 느껴지는 글을 쓸 수 있을 거예요.
제 단국대 합격작은 저의 실제 트라우마를 담은 시예요. 이 작품이 고도에서도 가장 좋은 피드백을 들었고 결국 제 합격작이 됐어요. 아픈 기억을 외면하며 지내다가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꺼내어 곱씹는 과정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적인 결과로 승화시켰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이런 게 트라우마 극복 아닐까요? 본인의 트라우마, 아프고 슬픈 기억으로 글쓰기를 겁내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감사 인사를 하고 글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동안 저를 지도해주신 원장선생님, 지후선생님, 영은선생님 너무 감사합니다. 고도는 제 진정한 첫 번째 배움의 터였어요. 한 번 다시 찾아뵐게요! 낯가리는 바람에 친해진 친구는 딱히 없지만 이번에 같이 입시했던 친구들 다 너무 고생했어! 후배님들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첫댓글 한서야 너무 축하해 힘들지만 좋은 시간 잘 보냈어!
네 감사합니다!!!ㅠㅠ
한서는 항상 과제를 너무 잘 써 오는 친구라서 합격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합격하게 되어서 다행이에요! 트라우마를 돌이켜 글을 쓰는 건 자신을 좀먹는 일이 될 수도 회복하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한서에게 시 쓰기가 치유의 발판이 되었으면 합니다 합격 축하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