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이래 가장 쎈 4대 절망
1. 2차대전 중...공중전을 하던 파일럿이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엔진이 불타고 어깨에 관통상으로 신음하게 되었다.
피가 철철 흐르는 어깨를 부여잡고 희미해져가는 눈을 치뜨며 착륙할 곳을 찾던 그는
하늘의 별빛을 도시의 불빛으로 착각하여 하늘로 하늘로 향했다더라.
2. 50년 6월 한국....36년의 피튀는 식민통치에서 겨우 벗어난지 불과 4년만에
이번에는 같은 민족끼리 죽이고 죽는, 그러나 아~무것도 얻은게 없는 허망한 전쟁을 3년 씩이나 했다.
3. 70년대 어느 시골 노인..... 판토마가 맹호부대에 근무하던 73년 가평인근 농로에
5살 삐쩍 마른 소녀가 이끄는 막대기 끝에 매달려 80대 노인이 비척이며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앞을 못보는 노인이 비탈길을 오르는 목적이 무언가 했더니
잡초가 무성하고 비료맛도 못 본 황량한 콩밭을 매기 위해서였다.
제대로 된 밭이 아니고 소나무 사이에 엉성하게 심어진 콩대가 몇대인지 셀 정도.
노인은 땅에 엎드려 기어가면서 앞의 식물을 하나씩 쓰다듬어
용케도 콩은 놔두고 잡초는 캐어내고 있었다.
사연인 즉
공사장서 일하던 아들이 죽자 젊은 며느리는 집을 나갔고 충격에 할멈은 세상을 떠났고
달랑 8순 할애비와 5살 여자애!!
너무 가여워 판토마가 주머니를 뒤져봤으나 현역 하사가 뭐가 있겠는가?
간식으로 가져가며 먹다 남은 건빵 반봉지에 피우다 남은 화랑담배 몇가치 그리고 라이터.
건빵을 손녀딸에게 건네주고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들이 마시며 나를 올려다보던 그 할아버지의 눈을 기억한다.
겨우 낮밤이나 가릴만큼 감겨진 두눈에 아주 진한 눈물이 비침을. ...... 절망이 드리웟음을.
4. 2026년 현재 70대......오래 사는것이 결코 축복만은 아닌것이. 노후 자금(생활비, 의료비)이 없다.
자식도 많지 않지만 정기적으로 생활비를 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물가는 계속 오르지만 수입은 늘지 않고, 날이 갈수록 의료비는 크게 늘어 나는데 대책이 없다.
조금 아픈 것은 이를 악물고 견딘다지만 많이 아프면?????..... 답이 없다.
가. 625전란으로 헐벗고 굶주린 어린날을 보냈다. 모두 그렇기에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 . 전후 베이비 붐으로 많은 형제들과 살아야 해서 더욱 가난했다.
다. 비록 효도를 다하지는 못해도 정성스레 힘 닿는대로 부모님을 모시며 생활비도 드리며 살았다.
라. 젊은날엔 한정된 수입이지만 자녀 교육과 양육에 최대로 지불했고,
분가 할 땐 집을 사주든 전셋돈을 주든 아낌없이 주었다.
마. 이사하면서 아내는 아예 자식명의로 등기를 냈다. 최악의 경우 주택 담보대출이라도 받으려 했는데
젊은 날에 호기롭게 아내 명의로 집을 등기 해준것이 화근이다. 반대 했지만 집주인 맘이다.
결국, 아들 소유의 집에 언쳐 사는 꼴이다.
*요건 매우 중요한 사항임*
바. 동년배 '어떤이들'은 매달 들어오는 임대료 수입이 몇천만원이어서 외제차 타고 다니고,
겨울엔 아예 따뜻한 나라에가서 몇개월씩 골프치며 호텔 숙식을 한다.
나도 그럴 뻔 했다.
7~8십년대에 서울 아파트 몇번 사고 팔면 아파트가 1채씩 늘어나던 호(?)시절
일찌기 눈을 뜬 아내가 간곡히 원했슴에도 나는 단호히 막았다.
"당신같은 사람들 때문에 서민들이 아파트를 못 사게 값이 오른다구!!"
60년대 없는 이들이 할 수 없이 거주했던, 경품까지 붙여 팔던 아파트가 '어떤이들'에 의해 턱없이 비싸지고
그 혜택으로 노후가 부유 뻑적 한데
'어떤이들'에 합류 할 뻔 했던 판토마는 무슨 개뼉다구 같은 신조(마누라 생각)덕에 암담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이건 유머가 아녀 슬픔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