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충기의 세계배낭여행기 149>
유구한 역사와 문화의 나라 중국
장강삼협(長江三峽) 크루즈여행 4
<3> 산샤(三峽) 댐과 의창(宜昌)
장강 크루즈여행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이 산샤(三峽) 댐이다. 이 산샤댐으로 인하여 장강(長江/揚子江)은 무수한 계곡과 마을이 물 밑으로 가라앉았고, 엄청나게 많은 호수도 생겨났다. 따라서 수만 톤급 큰 크루즈선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에서 제일 크다고 중국인들이 자랑하는 산샤(三峽) 댐은 1994년에 착공하여 2002년에 완공되었다고 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댐이다. 이 댐의 수력발전량이 22.500메가와트로 세계 1위라고 한다. 그러나 2008년 진도 8의 강진(强震)으로 사망자 7만, 부상자 37만, 행방불명자 2만 명을 기록하였던 쓰촨성(四川省)의 대지진은 이 삼협댐에 가두어 놓은 물의 압력으로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니 인간의 욕심이 초래한 재앙이었다고 할 것이다.
쓰촨성 만주(万州)에서 시작되었던 장강삼협 2박 3일의 크루즈 여행은 후베이성(湖北省) 의창(宜昌)의 산샤댐(三峽坝)에 이르러 비로소 끝을 맺게 되는 것이다. 이곳에서 댐 관광 전용버스로 갈아타고 댐의 관광길에 나섰는데 여기서도 안전을 위하여 철저한 소지품 검사를 한다.
산샤(三峽) 댐 / 댐 기념공원
댐 완공 기념공원과 전시관, 댐의 위와 아래 등 몇 군데에 차를 세우고 10여 분씩 관광시간을 준다.
댐 관광을 끝으로 곧바로 버스로 갈아타고 의창(宜昌)으로 향했는데 3시간 정도 걸린다. 의창에서 장가계로 가는 열차표를 받았는데 3등 칸으로 저녁 11시 57분 출발이다. 분명히 계약할 때는 침대차라고 했는데 이곳 가이드가 장난질을 친 모양이다. 항의를 해서 침대차로 바꾸어 볼까 하다가 그 악명 높은 중국의 3등 열차를 경험하여 볼 작정으로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중국어를 못해 따질 형편도 못되었지만.....
출발까지 3~4시간 여유가 있어 지도에 있는 옥천사(玉泉寺)를 다녀올 작정으로 사람들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손짓 발짓으로 물었더니 가는 데만 택시비가 250元(5만 원) 정도 되고 열차시간 전에 돌아오기도 어렵다고 하여 포기하고 시장구경을 나섰다.
시장통은 구질구질하고 지저분하기 그지없었지만 중국인들 삶의 현장을 체험해 볼 겸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시장구석 가판대 옆의 좁은 나무의자에 앉아 쇠고기와 야채를 다져넣은 빵 두 개에 5元(천원), 콩을 직접 갈아주는 두유 한 컵에 2元(400원)을 주고 사서 저녁으로 먹었는데 괜찮은 편이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거리 가판대 음식점의 간판에 한국야채를 쓴다고 써 놓았다.(韓國生菜) 그런데 저 한국(韓國)이 우리나라를 칭하는 것이 맞나???
한 달 동안 중국을 여행하며 느낀 점 중 하나는 중국인들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이란 생각이 든다.
아무데서나 가래침 돋우어 뱉고, 웃통 벗어던지고, 먹고 마시고, 거침없이 떠들어대고, 길거리 아무데서나 카드하고 마작하고... 심지어 식당에서 내가 식사를 하고 있는데 내 쪽으로 여자아이의 다리를 벌려 안고 소변을 보게 한다. 또 가는 곳마다 바글거리는 중국인들을 보며 이 엄청난 인구가 무진장한 지하자원과 더불어 어쩌면 중국발전의 원동력이 되겠구나 하는 경외감도 든다.
4. 역사의 도시 난징(南京)
양쯔강(揚子江) 하구에 위치한 장쑤성(江苏省) 난징(南京)은 춘추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왕도(王都)였던 이래 수많은 나라들이 도읍으로 삼았던 역사 깊은 도시로, 남경(南京)이라는 말 자체가 남쪽의 수도(首都)라는 뜻이겠다. 이곳여행은 훗날 친구(대학후배) 2명과 함께한 배낭여행인데 연이어 기록해 본다.
난징(南京) 기차역 / 명대(明代)에 쌓은 성곽 유적
명대(明代)에 쌓은 성곽도 남아있고 명(明)나라의 고궁(古宮), 쑨원(孫文)의 무덤인 중산릉(中山陵), 명나라 홍무제(洪武帝/주원장)의 효릉(孝陵), 링구사(靈谷寺) 등 볼거리도 많다.
온화한 날씨 탓인가 도시 전체가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는 느낌이며 가로수도 수령(樹齡)이 오래된 고목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것도 이채롭다. 해산물이 주재료인 광동요리(廣東料理/중국 남부지방)는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다. 중국이 자랑하는 난징박물원(南京博物院)은 선사시대 유물도 많이 전시되어 있고 백제 유물과 유사한 유물도 많이 전시되어 그 연관성이 주목 된단다. 중국은 우리와 달리 박물관(博物館)이라 하지 않고 끝에 원(院)을 붙이는 것이 특이하다. 난징 박물원에는 국보급 유물은 물론 선사시대 이래로 농경문화(農耕文化) 유물들과 서화(書畵), 도자기(陶瓷器), 공예(工藝) 예술품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난징 박물원 유물 / 재미있는 화장실 모습 / 거리의 남생이 장수
중국은 국토가 워낙 넓고 소수민족(56개 소수민족)이 많이 살고 있어서 그런지 지역마다 복색(服色)도 다르고 생활수준이나 가치관도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도시권과 시골지역의 생활수준 격차가 너무 큰 탓도 차이의 원인이 되겠지만 곳곳에서 중국인 특유의 공통적인 생활문화를 엿볼 수 있어서 재미있다.
청두(成都) 무후사 앞에서 본 살아있는 남생이 장수, 이름 모를 열매로 장식품(열쇠고리 모양)을 만들어 파는 사람, 절에 가면 엄청나게 굵고 많은 향을 바쳐서 경내는 그 향이 타는 연기로 항상 자욱한데 무슨 소원을 비는지 수없이 절을 해 대는 중국인들, 화장실에 변기를 나란히 두 개 설치한 것은 함께 변을 보며 담소를 나누라는 것인지.....
내가 먼저 ‘여행 에피소드’ 에서 쓴 것처럼 기차 안에서 술을 마시고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었는데도 중국인들은 인상 한 번 찡그리지 않고 함께 웃는다. 우리나라 경우라면 곧바로 경찰을 부르던지 조용히 하라고 큰소리가 오고갔을 것이다. 나는 촌스러워서 그런지 이런 중국 문화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우리나라는 언제부터인가 인심이 각박해졌고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참지를 못한다. 경제적 여유가 생긴 때문일까? 유럽이나 미주 쪽을 여행하면서도 항상 느꼈던 것은 그 사람들은 처음 보는 여행객에게도 따뜻한 미소와 목례(目禮)를 보내며 항상 상대방을 배려하는 태도를 보인다. 우리도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그리고 자신을 낮추는 관용의 미덕을 익히는 것이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