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원>
서은국, 21세기북스, 2021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강렬한 고통과 기쁨은 모두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이별, 짝사랑....
인간을 시름시름 앓게 하는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하지만 인간이 느끼는 가장 강렬한 기쁨 또한 사람을 통해 온다.
사랑이 싹틀 때, 오랜 이별 뒤의 만남, 칭찬과 인정...
그래서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인간이 치르는 가장 성대한 의식들은
사람과의 만남(결혼, 탄생) 혹은 이별(장례)을 위함인 것이다. 82
시카고 대학의 카시오포Cacioppo 교수팀의 오랜 연구에 의하면
현대인의 가장 총체적인 사망 요인은 사고나 암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84
미국 다트머트 대학의 마이클 가자니가Michael Gazzaniga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뇌과학자로 꼽힌다.
최근 그는 자신의 책에서 큰 질문 하나를 던졌다.
인간의 뇌는 도대체 무엇을 하기 위해 설계되었을까?
일생평의 연구를 토대로 그가 내린 결론은 '인간관계를 잘하기 위해서'다. 85
뇌 영상 사진을 보면 신체적.사회적 고통은 동일한 뇌 부위에서 발생한다. (Eisenberger, Lieberman, & Wiilams, 2003)
손이 잘리든, 애인이 떠나든 뇌는 똑같은 곳에서 비상경보를 발동한다.
둘 다 생존을 위협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 고통의 역할은 위협으로부터의 보호다.
뇌의 입장에서는 그 위협이 신체적인지 사회적인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뇌는 비슷한 방식으로 두 종류의 '고통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이다.
혼자가 되는 것이 생존에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연구다. 89~90
행복은 사회적 동물에게 필요했던 생존 장치라는 것이다.
스칸디나비아 행복의 원동력은 넘치는 자유, 타인에 대한 신뢰,
그리고 다양한 재능과 관심에 대한 존중이다.
그들 사회는 돈이나 지위 같은 삶의 외형보다
자신에게 중요한 일상의 즐거움과 의미에 더 관심을 두고 사는 곳이다.
(...) 빈곤을 벗어난 사회에서 돈은 더 이상 행복의 키워드가 아니라는 점이다.
객관적으로 얼마나 가졌느냐보다 이미 가진 것을 얼마나 좋아하느냐가
행복과 더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 눈에는 내면의 성격보다는 바깥세상의 것들이 훨씬 잘 보인다.
가령 차에서 내리는 사람의 성격은 보이지 않아도,
그가 어떤 차에서 내렸는지는 알 수 있다.
그래서 그가 행복해 보이면 고급 차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앞에서 언급했듯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행복하다면, 원인은 그의 차가 아니라 그의 성격일 확률이 훨씬 높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다녀도 웃을 사람이다.
다시 말하지만 행복이 원인 중 사람들이 가장 과대평가하는 것이
돈과 같은 외적 조건이다.
한국의 경우, 행복한 사람들은 하루의 약 72%의 시간을 다른 사람과 함께 보내지만,
불행한 사람들은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48%)보다
혼자 있는 시간(52%)이 조금 더 많다.
첫째, 성격. 행복한 사람들은 월등히 더 외향적이고 정서적 안정성이 높았다.
둘째, 대인관계. 행복지수 상위 그룹의 사회적 관계의 빈도와 만족감이 월등히 높았다.
사실 두 가지 특징의 공통분모는 '사회성'이다.
그래서 이 논문의 저자들은 행복을 보장하는 충분조건은 없었지만, 없어서는 안 될 필요조건이 사회적 관계라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 버지니아 대학 연구팀에 의하면,
친구와 함께 있을 때 언덕의 경사가 좀 더 완만해 보인다고 한다 (Schall, Harber, Stefanucci. & Proffitt, 2008).
친구가 손 잡아주면 신체적 고통도 더 오래 견딜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Coan, Schaefer, & Davidson, 2006).149
또 다른 고전적인 심리학 연구에서는 대학원생들의 컴퓨터 화면에 지도교수의 사진이 잠깐 스쳐 지나도록 했다.
그 뒤 자신의 연구 아이디어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것이 얼마나 훌륭한지 스스로 평가하라고 했다.
교수의 사진을 본 대학원생들은 사진을 보지 않은 동료들보다자기 아이디어를 더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누군가 위에서 자신을 평가한다는 시선이 느껴지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더 긴장하고 위축하게 된다.
이를 통찰한 알베르 카뮈는 이런 말을 남겼다.
"행복해지려면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마라." 169
우리나라 정도의 경제 수준이 되면,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물질주의적 태도 자체가 행복을 저해한다는 것이 많은 연구의 결론이다.
극단적으로 사랑과 돈. 당신 인생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매우 간단하지만, 이 질문은 행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가르는 중요한 기표가 된다.
본인의 경제 수준과 상관없이, 사랑보다 돈을 중요하게 생각할수록 그의 행복도는 낮다.
반대로 사랑에 더 많은 가치를 두는 사람일수록 행복하다.
혹시 돈이 없어서 불행하고, 또 가난하기 때문에 돈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가능하지만, 이 현상의 본질적 설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이 아프리카보다 돈을 더 중시한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 돈에 대한 생각을 할수록 사람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다고 한다.
최고의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에 2006년 실린 논문에 의하면
돈은 사람에게 '자기충만감self-sufficiency'이라는 우쭐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Vohs, Mead, & Goode, 2006)
돈이 있으면 "너희가 없어도 난 혼자 살 수 있어" 같은 느낌.
과도한 타인 의식의 또 한 가지 문제점은 사람과의 관계를 즐겁지 않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것은 행복을 저해하는 원인이 된다.
사람이 행복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했지만, 여기서 중요한 전제 조건은
그 만남들이 나에게 즐거움과 편안함을 줄 때다.
실제로 다른 국가와 비교해보면 한국은 타인에 대한 신뢰도 수준이 낮다.
도움이 필요할 때 의지할 만한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덴마크나 미국인들은 96~97%가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한국인은 78%에 그친다.
남들로부터 신뢰와 존중을 받는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미국이나 덴마크인들의 90%가 그렇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은 56%, 일본은 66%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결핍이 나타나는 부분은 더 이상 '경제적인 부'의 측면이 아니다.
행복과 직결된 '사회적인 부'다.양적으로는 인간관계가 과할 정도로 차고 넘친다.
저녁마다 각종 모임, 회의, 약속이 있지만즐거움을 나누기 위한 만남이 아니라
대부분 어떤 필요나 목적 때문에 만나는 자리다.에너지를 얻기보다 빼앗기고 돌아오는 만남들이다. 177
만남의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뜻이다.자유감의 중요성이 또다시 등장한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만나는 사람들보다만나고 싶어서 만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이 철옹성 같던 매슬로우의 이론도 최근 위아래가 뒤바뀌고 있다. (Kenrick, Griskevicius, Neuberg, & Schaller, 2010).
(...) 금강산 구경을 하기 위해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 욕구(식욕, 성욕)을 채우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금강산 유람(자아성취)을 한다는 것이 최근 진화심리학적 설명이다. 혁명적이다.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학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