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해방 이후의 문화사를 다루면서 청년들이 무엇을 읽고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살펴 보았다.
크게 네 장으로 구성된다.
첫째, 한국전쟁을 거치며 국가가 무엇이고 국민이 무엇인지 생각했던 '전후세대'의 청년
둘째, 1960년대 4.19혁명과 5.16쿠데타를 경험한 한글세대 '대학생'
세째, 해방 이후의 삶 속에서 차별과 배제를 겪어낸 '여성들'
네째, 가난한 삶 속에서 소외를 경험했던 노동하는 '소년들'
각 장 마다 그 시대를 상징했던 인물들이 나온다.
첫째, 전후 세대. 이성복의 시 <1959년>속 인물 '독고 준'과 최인훈의 <광장>속 인물 '명준'
둘째,한글세대 대학생. 김승옥의 소설 <환상수첩>소 인물'정우'
세째, 여성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 작가 '전혜린'
네째, 소년들. '전태일'
각 장의 주인공들은 책을 읽었다. 책을 읽는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저자는 말한다.
" 책을 읽는 것은 '나'와 '타인'의 삶을 들여다 보는 일이다. '타인'을 통해 '나'를 만나는 일인 동시에 '타인'을 경유해서 내가 속한 세계를 만나는 일이다. 그러므로 책 읽기는 나와 다른 나, 타인 너머의 타인,그 있음직한 세계의 상상이다"
독고 준과 명준은 각각 북과 남에서 살았다. 북의 독고 준은 월남한 가족이 있었고, 남의 명준에게는 월북한 아버지가 있었다. 국가는 그들을 의심하고 감시했고 배제했다. 명준에게 국가가 질문한다. 남한과 북한 둘 중 어디를 선택할 것인가? 명준은 답한다. "어느 국가도 선택하지 않는 편이 낫겠습니다."
정우는 소설을 좋아하는 문학청년이며 대학생이다. 4.19를 지나 5.16혁명(!)이 일어 났다. 세상은 청년들에게 '그 입 다물라, 무관심 하라, 가만히 있어라' 정우는 환청에 시달렸다.시대의 문제를 내면화 한 것이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 가지. 그러나 반응은 각 자 달랐다. 누구는 관계를 끊고 냉혈한 현실주의자가 되었고 누구는 그 현실에 분노했다. 누구는 알도 모를 현실의 구석에 침잠했다. 정우는 자살을 했고, 유서를 일기로 남겼다.
전혜린은 서울법대를 차석으로 입학한 수재였다. 2년 후 그 녀는 모든 것을 털어 버리고 독일 뮌헨으로 유학을 갔다. 그리고 번역가가 되었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 가운데>,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 <안네의 일기>등을 번역하였다. 번역은 '서로 다른 문화적 역사적 맥락들을 드러내는 것임과 동시에 그 차이를 지워내는 일을 하는 것'이다. 혜린은 원어와 번역어 사이의 간극을 어떻하든 좁히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 간극의 존재성을 무시하고 지 편한대로 갖다 부쳤다. 혜린은 절망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너를 좋아해.너를 단념하는 것 보다도 죽음을 택하겠어...내가 원소로 환원하지 않도록 도와줘.."
태일은 고학으로 상급학교에 진학하려 했다. 그러나 노동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실의에 차 있을 때 '근로기준법'을 알게 되었다. 아 공부만이 아니라 우리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이 있을 수 있구나. 태일이는 바보회를 만들어 설문지를 돌리고 진정서를 제출했다. 결과는 해고. 노가다판을 전전하며 그는 소설을 썼고 책을 읽었다. 태일은 젊은 베르테르를 좋아했다.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그리고 위로도 받았겠지. 베르테르는 태일이에게 친구였다. 태일은 자신이 기획한 소설의 끝 문장을 이렇게 남겼다. "사랑하는 친우여,받아 읽어주게나. 친우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중략)...이 순간 이후의 서계에서 또 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데 도울 수만 있다면,이를 수만 있다면."
이 네 명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첫째, 국가가 무엇인가?
둘째, 인간은 어떠해야 하는가?
세째, 여성은 어떻게 다른 언어를 품고 있는가?
네째, 인간은 누구인가?
저자는 말한다.
" 이 청춘들이 멈춘 그 지점에서 새로운 길이 시작되었다. 독고준이 몰래 읽고 버벗이 읽으며 내면의 망명국가로 잠수하는 순간, 정우가 가만히 있어라, 라는 말을 끝내 어긴 채 구구절절 사여을 한 권의 일기로 남긴 순간, 그리고 혜린이 번역되지 않는 언어를 붙들고 번역 했으나 그 언어가 이 현실에 없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마지막으로 태일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광장에 자기 목소리가 들리게 하는 것이라고 깨닫는 순간, 그 순간들이 모여 바로 대한만궁의 역사가 되었다"
그들은 reader였다. 우리의 역사는 그들이 상상한 만큼의 역사가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leader였다.
나는 책을 읽는 다는 것이 거인의 무등에 올라타는 기분이라 생각한다. 책 한 권이 나오기 까지 수백일 밤을 지새우고 문장을 다듬었을 터. 만약 그렇지 않으면 독자의 감동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기에. 내 진작 혜린과 태일은 몰랐겠는가! 박숙자의 고군분투에 재해석되는 그들을 보며 내 무지를 탓하고 지혜의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다. 아 정녕 그런 혜린이고 태일이었던가. 거실 책장에 부랴 부랴 그들의 책을 뒤집어 본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인간은 도대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나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어렵고 힘든 세상이라 하던가? 우리 시대의 고통의 본질은 무엇인가? 온 몸으로 이 가시를 안고 가는 이는 누구인가? 죽어야 하는가. 죽어서 세상이 산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책을 읽어야겠다. 세상을 더 읽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