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빛을 꿈꾸다
김 상 립
지금 세상은 챗봇(Chatter Robot)의 발 빠른 진군으로 어수선하다. 2022년 말에 탄생한 챗GPT가 미국에서는 벌써 의사시험이나 로스쿨, MBA 시험 등에도 쉽게 붙었다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업이나 관공서에서 이미 챗봇을 도입하여 실용화를 시도하고 있단다.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AI업계에서 퇴직한 후배를 만났다. 차 한잔하며 이런저런 얘기 끝에 그가 불쑥 내놓은 말이, “문학하신다니 앞으로 챗봇에 신경 좀 써셔야 할겁니다.”한다.“나는 수필분야인데?”하며 그를 바라보았다.“챗봇은 지금도 시나 소설을 잘 쓰고 있습니다. 아마 공모행사에 참여하면 우수한 성적을 낼 성 싶은데요.””수필은 좀 다를 건 데…”하자,“누가 수필에 대해 물었더니‘수필은 개인적인 경험과 정서를 바탕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독자의 심금을 울릴 재주가 없는 처지로서는 쉽지가 않겠다’라고 대답하더랍니다.”한다. 그럼, 그렇겠지 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하지만 챗봇이‘나는 재미있는 글은 잘 쓰니 여러 자료들을 믹스하면 수필에도 도전해볼 수는 있겠다’고 고쳐 말했답디다.”하며 씩 웃는다. 나는 씁쓸한 기분으로 자리를 떴다.
요 며칠 유달리 딥페이크에 대한 얘기가 많다. 딥페이크(deepfake)란 인공지능을 활용한 이미지 합성기술이다. 이 기술을 이용하여 가짜로 사람을 만들어 특정인의 역할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게다. 만일 이런 게 설치고 다니면 머지않아 가짜 수필가들도 수두룩하게 출현하여 우리를 위협할 수도 있을 터이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신문에 [1940. 남 평] 이란 이름으로 글이 한편 실렸다 하자. 더욱이 그 실린 내용이 내 생각이나 주장과는 전혀 맞지도 안은 엉뚱한 글이라면, 나는‘내 글이 아니고 저건 가짜라’고 밝혀야 할 터인데, 어떻게 하면 좋은가? 실로 난감지사이다.
지금도 프리렌스 작가들은 기본 형식도 없이 자유롭게 제 마음대로 독자들이 좋아하는 내용을 집중적으로 꾸며낸다는데, 인기가 상당하단다. 또 만화가들도 간단한 그림을 그려 넣고 글을 쓰고, 정치나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도 뻑 하면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열고 있다. 과연 이런 책을 읽은 독자들이 이건 수필이 아니고 자서전이나 잡문이다 라고 애써 구분 지워줄까? 이런 판이니 수필이 미래 사회에서 살아 남으려면, 글을 쓰는 방법이나 형식에 힘을 쏟기보다는, 오히려 아무도 쓰지 못할 아름답고 감동적인 자기만의 얘기를 문학적 표현을 통해 작품화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성싶다. 말하자면 가짜와 진짜를 구분할 수 있는 근거를 스스로의 작품 속에서 정직과 진실의 힘으로 만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 시간이 가면 AI는 더욱 발전해 나갈 것이고 사람이 일하고 있는 여러 분야에 거침없는 공격을 가해올 것이다. 생각해보라! 배우도 가짜고, 가수도 가짜고, 선생도 가짜면 어찌해야 하는가?
내 소견은 누가 뭐래도 챗봇의 진군을 요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람이 진짜 사람같이 살려고 노력하는 길이라 보고 있다. 당장이라도 챗봇과 같은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기업은 진실되게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고 방향을 다시 잡아야 할 것이다. 아무리 돈 때문에 기업을 경영한다지만 막상 돈을 벌게 해줄 소비자를 곤혹하게 만든다면, 그 돈 벌이 수단이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그러니 사람이 먼저라는 기초 위에서 모든 기술이 발전되어야 마땅하다는 윤리의식은 굳게 지켜져야 마땅하다고 믿는다. 문학적 측면만 보더라도 해당 회사는 사람과 AI가 쓴 작품을 구분할 수 있는 검증 시스템을 동시에 개발해야 당연하지 않겠는가?
우리 수필계에서는 AI가 쓴 글과 수필작가들의 글이 다르게 보일 수 있는 방법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한 가지 예로, 진짜 수필에서는 사람의 따뜻한 정감과 진정성이 자연스레 흘러나와야 차가운 AI의 작품과 구분할 방법을 찾을 것 같다. 그러자면 수필을 잘 쓰는 일도 중요하지만 쓰는 사람이 먼저 인격을 갖추는 게 순서일성싶다. 사람 됨됨이가 잘 갖추어지지 않으면 어딘가 글이 깊지 못하고 허술하다. 만일 글 속에 거짓말과 허풍이 삽입되고, 양심에 걸려 글이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건 가짜로 판명 날 것이다. 제 바탕이 엉터린데 뭐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꾸며봐도, 어딘가에서 불신의 그림자가 얼비치어 믿지 못하게 만들지 않겠는가? 장차 급변해 나갈 수필환경을 고려한다면 책을 만드는 사람이나 수강생을 모아 강의를 하는 사람들은 수필기술보다는 수필인의 인격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교육프로그램을 짤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무리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차고 넘쳐도, 인성이 틀려 먹었으면 궁극적으로는 좋은 수필가를 배출하지 못할 것 아닌가?
이런 판국에 나는 엉뚱하게도 아름다운 수필세계를 그리고 있다. 수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한데 모여 이상향을 구축해나가는 세상이다. 그 곳은 작가들 간의 불필요한 경쟁이나 작품의 우열만을 가리는 저질스런 논쟁도 없고, 서로의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다름만 존재할 뿐이다. 그리하여 함께 끌어주고 밀어주어 각자가 세운 목표에 도달하도록 만들어주는 사랑의 힘이 가득한 곳이 될 것이다. 지금 닥쳤거나 장차 더 자주 닥쳐올지도 모를 전쟁이라든지 질병, 경제적 위기, 국가간의 충돌, 도덕의 몰락 기후변화 등 여러 문제들에도 수필의 정신이, 수필의 노래가, 수필의 믿음이 빛이되어 널리 퍼져나가 이런 위험을 줄이는 일에 일조하고, 더 나아가 인류에게 의미 있는 위로를 주게 되기를 나는 진심으로 꿈꾸고 있다. 수필세계는 나의 이상향이자 내가 살아 온 모든 것이 묻힐 곳이기도 하기 때문에 더욱 절실하다. (2024. 3)
첫댓글 남평선생님,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요즘 저는 제가 쓰는 수필의 '가치'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답이 나오지 않아 답답합니다.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요. 사람의 삶이 곧 수필 아닙니까? 누가 사람의 삶을 저울로 달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는님의 저울
눈금만이 결정할 일이니 복잡한 생각 접고
열심히 살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심심풀이로 쳇폿한테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입력하고 그걸로 수필 그것도 유려한 문장으로 써달라고 하니 일초만에 답이 나왔어요.
다시 쳇폿한테 좀더 낭만적으로 원고지 다섯장내외로 써달라고 했더니 또 일초만에 답이 나왔습니다. 사진을 올려놓고 그 사진에 어울리는 시 한편도 부탁했더니 시도 뚝딱 지어냈어요. 앞으로 얼마나 더 이상한 게 나올지 ...
남평 자문위원님,
작가로서의 그 열정을 늘 존경합니다.
그래서인지 장조카 두 아들이 모두
컴퓨터공학과 AI를 전공한다고 서울로 진학했습니다.^^
오랜만에 남평선생님의 글을 모시니
반가움에 앞서 눈물이 나려 합니다.
건강은 좀 어떠신지요?
저는 인공지능에 대해 '불가근 불가원'의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설사 AI가 인간의 흉내를 내거나 인간의 능력을 앞선다 해도
'인간'일수는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는 인간은 인간만의 고유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침범할 수 없는 '고유의 가치'요.
모쪼록 건강 챙기셔서
저희 곁에 오래오래 계셔 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