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0일 甲申일
비견 절지, 편관 록지.
오호 통재라... 공망날, 전자렌지가 졸하셨다.
어제까지도 아무 기척 없었는데 오늘 아침 업무를 중단하고 사망하셨다.
(샘한테 빌려온 가전인데... 죄송합니다.ㅠㅠ)
에어프라이어라는 신상이 들어오면서 뒷전이라 느꼈는지,
마음 표현이 신통찮아 본인의 존재감을 스스로 접어버린 건지...
사람이나 물건이나 존재감을 부여해주는 건 정말 중요하다.
인맥관리의 법칙, 사회생활의 핵심인데 이걸 부엌에서도 실천해야했다니...
늘 옆에 있어서 당연했던 것들이 어느 날 말없이 사라지거나 멈춰 버릴 때
그제야 그의 존재를 알아챈다.
그리고 '니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다른 사람도 아닌 나한테..?'
당연한 것이 잘 돌아가 주지 않을 때 배신감도 느낀다.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인데 거기 어이없이 감정까지 섞어버린다.
늘 그랬던 것 같다. 엄마에게 형제에게 직장에서도...
아닌척해도 내가 해준 게 더 많아 받는 게 당연하다고, 그 정돈 해야지라고
내심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습이 발동해 일방통행 관계인 가전에게도 감정을 싣는다.
사람에겐 안하던 대화도 시도해본다. 사과도 해본다. 그래도 말이 없다.
이제부턴 걱정이다.
우짜지.. 우유며 빵이며 녹이고 데우기는 1-2분이면 끝나는 전자렌지가 최곤데...
아무리 전자파가 해롭니 어쩌니해도 msg의 검증 안된 썰보다
현실의 이로움이 더 커서 늘 필수 가전 1순위는 전자렌지였다.
불편함을 떠나 수족 같던 가전의 졸하심이 못내 속상하다.
가면 간다고 기척이나 해줄 것이지...
존재할 때 더 사랑해줄걸. 고맙다고 말해줄 걸...
사람을 보내고 늘 가슴치게 되는 그 못해준 말이 이 아이에게도 다르지 않았다.
그저 아쉽고 미안하다.
저녁 8시.
먼 가옥의 개가 컹컹 짖고, 벼 쑥쑥 자라는 무논에선 개구리가 떼창으로 화답을 하고
마실 나온 할매 둘이 간이정류장에 맨발로 앉아 두런대고, 영해고교는 야자 타임 종료 벨을 울리고...
비를 머금은 습한 밤 공기 속 마을은 괭이도 사라져 사위 적막한데,
이 밤에도 영해 복숭아는 토실토실 잘도 익어갈 것이다.
첫댓글 수족 같던 전자렌지의 급작스런 사망에 많이 당황 스러우시겠네요~
전자렌지 퓨즈가 나가서 그럴 수 있으니 한번 점검 해 보세요
그건 교체하기도 쉽고 돈도 얼마 안해요~
부디 다시 소생 해서 열일 할 수 있길 빕니다~
전자렌지 뒷편을 열어 보시면 육안으로 보일 거예요
연장도 없으실테니 선생님께 부탁 드려 보세요~
역쉬 김가이버. 뭐든 해볼게요. 감사감사!
전자렌지 상문조객 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나요. . .
올해 상문조객 든 거 어찌 아셨지?ㅎㅎ 여럿 보냅니다. 곧 졸하실것 같은 게신게신 냉장고까지.. 줄 섰네요. ㅎㅎ
"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고 " 옛말 틀린것이 하나도 없네요~~
이소녀
협박용처럼 늘 " 있을때 잘해 " 라고 외치고 다닌걸 후회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그러고 살라는 계시를 주시네요~~감사합니다.
도반들이여 연정이가 있을때 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