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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6 잡기雜記 80. 왜곡의 역사
3.
불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아비담마(abhidhamma)’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떠한 수행자들은 거대한 ‘아비담마의 교리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아비담마’라는 용어는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결정된 것일까?
일반 명사로, 일반적인 의미의 단어로, 맛지마 니까야에 ‘아비담마’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
우리는 그 아비담마를 ‘담마(法)에 관한’의 일반적인 의미로 번역하고 있지만
어떠한 수행자들은 ‘아비담마의 교리 체계’가 맛지마 니까야에 근거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01000MN69 골리야니Goliyāni (바르지 못한 수행자) 숫따의 2.16절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일본 光明寺 분류 코드 173-81)
존자들이여, 숲속의 수행자는 담마(法)에 관한 장소와 계율에 관한 장소에서 지어야 할 속박이 있습니다.
Āraññikenāvuso, bhikkhunā abhidhamme abhivinaye yogo karaṇīyo.
}
00010MN103 낀띠Kinti (유익함과 애련) 숫따의 3절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일본 光明寺 분류 코드 35-3)
수행자들이여, 화합하고 인사를 나누고 논쟁하지 않고 학습하는 그 그대들에게 담마(法)에 관한 다른 말이 있는 두 수행자가 있습니다.
Tesañca vo, bhikkhave, samaggānaṁ sammodamānānaṁ avivadamānānaṁ sikkhataṁ siyaṁsu dve bhikkhū abhidhamme nānāvādā.
}
01000MN32 마하고싱가Mahāgosiṅga (바람직한 수행자의 모습) 숫따의 3.5절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일본 光明寺 분류 코드 337-6)
“사리뿟따 존자여, 여기에서 두 수행자가 담마(法)에 관한 말을 하고, 그들은 서로 질문을 하고, 서로에게 질문된 물음에 대하여 설명하고, 담마가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그들의 말이 발전합니다.
“Idhāvuso sāriputta, dve bhikkhū abhidhammakathaṁ kathenti, te aññamaññaṁ pañhaṁ pucchanti, aññamaññassa pañhaṁ puṭṭhā vissajjenti, no ca saṁsādenti, dhammī ca nesaṁ kathā pavattinī hoti.
}
(MN29에도 등장하지만, 우리는 아직 이 경전을 번역하지 않은 상태이다.)
이와 같이 맛지마 니까야에
일반 명사로 ‘아비담마(abhidhamma)’가 등장하고
후대의 수행자들은 ‘아비담마(abhidhamma)’라는 이름으로 거대한 수학책을 만들었다.
4.
불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아뢰야식(ālaya)’이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떠한 수행자들은 거대한 ‘유식학(唯識學) 교리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아뢰야식’이라는 용어는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결정된 것일까?
일반 명사로, 일반적인 의미의 단어로, 맛지마 니까야에 ‘아뢰야식’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
우리는 그 아뢰야식을 ‘애착’의 일반적인 의미로 번역하고 있지만
어떠한 수행자들은 ‘유식학의 교리 체계’가 맛지마 니까야에 근거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11011MN26 빠사라시Pāsarāsi (깨달음의 성취와 전법의 시작) 숫따의 5절과
10011MN85 보디라자꾸마라Bodhirājakumāra (깨달음, 기간과 조건) 숫따의 7절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그렇지만 이 사람들은 애착(아뢰아)에 쾌적해 하고, 애착에 즐거워하고, 애착에 흔쾌해 한다.
Ālayarāmā kho panāyaṁ pajā ālayaratā ālayasammuditā.
}
11000MN28 마하핫티빠도빠마Mahāhatthipadopama (사성제와 지수화풍) 숫따의 4.1절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일본 光明寺 분류 코드 306-14)
이들 다섯의 얻어진 모임(五取蘊)의 장소에서 욕구와 애착(아뢰아)과 맹목적 추종과 고집, 그것이 괴로움의 쌓여짐입니다.
Yo imesu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chando ālayo anunayo ajjhosānaṁ so dukkhasamudayo.
}
00011MN98 와셋타Vāseṭṭha (바라문의 조건) 숫따의 4.4절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일본 光明寺 분류 코드 459-7)
그 사람에게 애착(아뢰야)이 존재하게 되지 않고, 알음(知)의 장소에서 의혹 없음을;
Yassālayā na vijjanti, aññāya akathaṅkathiṁ;
}
이와 같이 맛지마 니까야에
일반 명사로 ‘아뢰야식(ālaya)’이 등장하고
후대의 수행자들은 ‘아뢰야식(ālaya)’이라는 이름으로 거대한 수학책을 만들었다.
5.
불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위빠사나(vipassana)’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떠한 수행자들은 거대한 ‘위빠사나 수행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위빠사나’라는 용어는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결정된 것일까?
일반 명사로, 일반적인 의미의 단어로, 맛지마 니까야에 ‘위빠사나’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
우리는 그 위빠사나를 ‘봄 나옴’의 일반적인 의미로 번역하고 있지만
어떠한 수행자들은 ‘위빠사나 수행 체계’가 맛지마 니까야에 근거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사문 고따마의 가르침으로 나아가는 순차적인 가르침인
팔해탈과 구차제정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집중(samatha,三昧)’과 ‘위빠사나(vipassana)’를 이해해야 한다.
집중(三昧)과 봄 나옴(위빠사나)의 두 가지 담마(法)에 대하여
01111MN73 마하왓차Mahāvaccha (선함과 육신통) 숫따의 5.1절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왓차여, 그대는 그 더 뛰어난 두 가지 담마(法)를 수행하십시오 -
집중(三昧)과 봄 나옴(위빠사나).
왓차여, 이것들이 그대가 수행해야 할 더 뛰어난 두 가지 담마(法) 입니다 -
집중(三昧)과 봄 나옴(위빠사나) -
여러 영역의 이해로 이끌 것입니다.
}
그런데 맛지마 니까야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집중(samatha,三昧)’과 관련된 설명은 많아 보이지만
‘위빠사나(vipassana)’에 대한 설명은 단 한 줄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같이 맛지마 니까야에
일반 명사로 ‘위빠사나(vipassana)’가 등장하고
후대의 수행자들은 ‘위빠사나(vipassana)’라는 이름으로 거대한 수학책을 만들었다.
6.
맛지마 니까야에 단 한 줄의 설명도 없어 보이는 그 위빠사나는 무슨 의미일까?
사마타와 위빠사나는 반드시 한 쌍으로만 성립한다.
비유하여 어떠한 사람이 사무실을 찾아가려고 한다.
그 사무실을 찾아가는 방법이 사마타이고, 그 사무실에서 나오는 방법이 위빠사나이다.
그렇다면 사무실을 찾아가는 길을 알려 주는 다른 사람이 그 어떠한 사람에게
사마타도 가르치고, 위빠사나도 가르칠까?, 아니면
(굳이) 사마타는 가르치지 않고, 위빠사나만 가르칠까? 아니면
사마타만 가르치고, (굳이) 위빠사나는 가르치지 않을까?
비유하여 어떠한 사람이 금고를 열려고 한다.
그 금고를 여는 방법이 사마타이고, 그 금고를 닫는 방법이 위빠사나이다.
그렇다면 금고를 여는 방법을 알려 주는 다른 사람이 그 어떠한 사람에게
사마타도 가르치고, 위빠사나도 가르칠까?, 아니면
(굳이) 사마타는 가르치지 않고, 위빠사나만 가르칠까? 아니면
사마타만 가르치고, (굳이) 위빠사나는 가르치지 않을까?
사문 고따마의 가르침은 불태움(禪) 수행이 아주 중요하고
그 불태움 수행에 들어가는 방법을 사마타라 하고
그 불태움 수행에서 나오는 방법을 위빠사나라 한다.
중요한 사실은 아라한으로 나아가기 전까지 매 단계마다
집중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관찰해야 하는 담마(法)들이 있다.
비유하여 첫 번째 불태움(初禪)에서는 논리, 사색, 즐거움, 호기심, 집중이라는 담마(法)를 관찰해야 한다.
MN111은 사리뿟따의 수행 과정을 요약하여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 불태움(初禪)의 사마타, 관찰, 위빠사나에 대하여
MN111 아누빠다Anupada (구차제정 수행기) 숫따의 3절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일본 光明寺 분류 코드 94-1)
수행자들이여, 여기에서 사리뿟따는 욕망(欲)의 멀리함과 불선법의 멀리함으로, 논리 나옴에 머물고, 사색 나옴에 머물고, 멀리함에서 생긴 관심과 즐거움이 있는 첫 번째 불태움(初禪)을 성취하여 살아갑니다.
첫 번째 불태움(初禪)의 담마(法)인 논리 나옴, 사색 나옴, 관심, 즐거움, 마음이 하나로 나아감에 대하여 접촉(觸), 느낌(受), 알음 머뭄(相), 마음 동작, 마음, 욕구, 결심, 노력(精進), 머뭄, 평온, 맘(意) 동작 -
이러한 자취를 따라가는 담마(法)들이 결정되었습니다.
이러한 담마(法)들이 다가와서 일어났고, 다가와서 모였고, 다가와서 사라졌습니다.
그는 이와 같이 (알뿐, 생각의) 생김(生)이 씻깁니다 -
‘이와 같이 나에게 담마(法)들이 없었다가 생겼고, 있었다가 사라졌다.’
그는 그 담마(法)에 다가가지 않고, 떠나지 않고, 의지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음에서 나오고, 속박에서 나오고, 자유로워진 마음 동작으로 살아갑니다.
그는 ‘더 높은 벗어남이 있다.’라고 (알뿐, 생각의) 생김(生)이 씻깁니다.
더 많이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
이 문장에는 위빠사나의 설명이 없어 보이지만, 너무도 당연히 있고
사마타와 위빠사나는 반드시 한 쌍으로만 성립한다.
사마타를 설명했다는 의미는 이미 위빠사나도 설명된 것이다.
7.
비유하여 사문 고따마는 국어를 가르쳤고
아비담마와 유식학과 위빠사나 수행체계는 수학책이다.
비유하여 사문 고따마는 ‘괴로움의 다함’을 가르쳤고
아비담마와 유식학과 위빠사나 수행체계는 괴로움의 다함으로 이끌지 못한다.
(2024년 7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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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아비담마와 유식학과 위빠사나 수행체계에 대하여
그것들이 사문 고따마의 담마(法)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을 뿐
그것들이 사악하다거나 바르다거나
(사문 고따마의 담마보다) 부족하다거나 뛰어나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ㅡㅡㅡ
책1 불교 상식 13. 예류의 경지
아주 난해한, 그렇지만 또한 아주 간단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1.
사문 고따마의 가르침에서, 아라한으로 나아가는 순차적인 과정이 있고
그 순차적인 과정은 서로 다른 다양한 용어로 설명된다.
첫째, 계정혜(戒定慧)라고도, 계율, 집중(三昧), 지혜(無知)라고도 설명되고
둘째, 팔해탈과 구차제정이라고도 설명되고
셋째, 예류, 일래, 화생/불환, 아라한이라고도 설명된다.
불환과 아라한에 대하여 첫째와 둘째와 셋째는 그 위치가 맛지마 니까야에서 명확히 정의되어 있다.
맛지마 니까야에서 예류는, 순차적인 과정의 위치가 지정되어 있지 않고
예류의 경지를 성취한 효과만 기록되어 있다.
11010MN22 알라갓두빠마Alagaddūpama (항상하지 않음) 숫따의 7절과
01000MN34 쭐라고빨라까Cūḷagopālaka (알음 씻김(般若)) 숫따의 3절과
01100MN118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 (날숨 들숨 머뭄) 숫따의 4.1절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수행자들이여, 이 수행자 승가에는 사악하지 않은 담마(法)인, 깨달음(覺)의 의지처로 결정된, 세 가지 속박(三結)이 멸진된, 예류의 수행자들이 머뭄합니다 -
수행자들이여, 이 수행자 승가에는 또한 이런 수행자들이 머뭄합니다.
}
기본적으로 예류의 경지는 세 가지 속박(三結)에서 벗어난 경지이고
그 세 가지 속박에 대하여
01000MN2 삽바사와Sabbāsava (일체의 흘러듬(번뇌)) 숫따의 3.2.3절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는 이치에 맞게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맘(意) 동작하고, 이치에 맞게 ‘이것이 괴로움의 쌓여짐이다.’라고 맘 동작하고, 이치에 맞게 ‘이것이 괴로움의 무너짐이다.’라고 맘 동작하고, 이치에 맞게 ‘이것이 괴로움의 무너짐으로 인도하는 방법이다.’라고 맘 동작합니다.
그는 이와 같이 이치에 맞게 맘(意) 동작하기 때문에 세 가지 속박(三結)을 버립니다 -
몸 머뭄(有身)의 견해(有身見), 의혹, 계율 숭배의 집착.
수행자들이여, 이것들이 보면서 버려져야 할 흘러듬(번뇌)이라고 말해집니다.
}
예류의 경지는, 아주 명백하게
이미 계정혜의 계율을 성취한 후에 그 계율에 구속되지 않고 초월한 단계로 나아간 상태이다.
다섯의 얻어진 모임(五取蘊)과 동의어인 몸 머뭄(有身)의 견해(有身見)를
다섯의 모임(五蘊)과 동일한 의미의 ‘나’로 이해하고 있다면, 그 수행자는
세 가지 속박에서 벗어나서 예류의 경지로 나아갈 수 없다.
2.
디가 니까야의 DN2 ~ DN5는 모두
대화 상대자와 대화의 장소, 이유만 다를 뿐, 모두 계정혜를 반복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마지막의 DN5는 “목차의 형식으로” 예류를 정의하고 있다.
11111DN5 꾸따단따Kūṭadanta (예류과의 체험) 숫따의 9절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일본 광명사 분류 코드 355-5)
또한 비유하여 검은색이 제거된 청정한 옷이 바르게 염색됩니다;
이와 같이 그 자리에서 바라문 꾸따단따에게 집착에서 나오고 더러움에서 벗어난 담마(法)의 눈이 생겼습니다 -
“어떤 모든 쌓여짐의 담마(法), 그것은 무너짐의 담마이다.”
}
현대 불교 수행자들이 ‘진리’라고 이해하고 있는 담마(法)에 대하여
어떠한 모든 담마(法)의 속박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예류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
‘진리’를 찾고자 하는 수행자는 사문 고따마의 가르침에서 결코 그 ‘진리’를 얻을 수 없다.
사문 고따마의 가르침은 12 연기의 원함(愛)과 얻음(取)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
비유하여 담마(法)의 종류에는 범천, 신, 악마, 전생, 내생, 삼천대천세계, 32상, 세계 등이 포함된다.
맛지마 니까야 또한 동일한 문장으로 담마(法)를 무너뜨리라고 기록하고 있다.
01100MN56 우빨리Upāli (니간타 신도의 전향) 숫따의 5절과
11000MN74 디가나카Dīghanakha (쌓여짐의 담마(法)는 무너짐의 담마이다) 숫따의 7절과
00011MN91 브라흐마유Brahmāyu (32가지 특징) 숫따의 4.3절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어떤 모든 쌓여짐의 담마(法), 그것은 무너짐의 담마이다.”
}
3.
그렇다면 담마(法)를 사문 고따마는 어떻게 정의했을까?
11000MN148 차차까Chachaka (육육법) 숫따의 2절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섯 가지 알음 나옴 몸(六識身)이 경험으로 알아져야 한다‘ -
이렇게 그것이 말해집니다. 어떤 것을 조건으로 그것이 말해질까요?
눈과 루빠(빛,色)를 조건으로 눈의 알음 나옴(識)이 일어나고,
귀와 소리를 조건으로 귀의 알음 나옴(識)이 일어나고,
코와 냄새를 조건으로 코의 알음 나옴(識)이 일어나고,
혀와 맛을 조건으로 혀의 알음 나옴(識)이 일어나고,
몸과 닿음을 조건으로 몸의 알음 나옴(識)이 일어나고,
맘(意)과 담마(法)를 조건으로 맘의 알음 나옴(識)이 일어납니다.
‘여섯 가지 알음 나옴 몸(六識身)이 경험으로 알아져야 한다’ -
이렇게 그 말해진 이것은 그것을 조건으로 말해집니다.
이것이 셋째의 여섯입니다.
}
이것이 담마(法)의 유일한 정의이고, 완벽한 정의이다.
(
우리는 지금 아주 난해한 이야기를 부연 설명없이 이어가고 있으며
맛지마 니까야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눈 밝은 사람들을 위하여 참고용 기록을 남기고 있을 뿐이다.
)
담마(法)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행적으로 맘(意)을 이해해야 하고
2600여년전 장기 ‘뇌’의 기능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그 당시의 수행자들은
뇌의 기억과 사유 기능을 몸(身), 맘(意), 마음(心)으로 분산하여 설명했다.
(이때의 몸은 물질 몸이 아니고, 감각기능을 수행하는 몸이다.)
4.
“어떤 모든 쌓여짐의 담마(法), 그것은 무너짐의 담마이다.”라는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2연기 나마-루빠(名色)를 이해해야 한다.
현대 불교 수행자들이 ‘이름, 언어’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나마-루빠(名色)의 나마(名)의 정의에 대하여
10000MN9 삼마딧티Sammādiṭṭhi (바른 견해의 연기법) 숫따의 3.9절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존자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나마-루빠(名色)에 대하여 (알뿐, 생각의) 생김(生)이 씻기고, 나마-루빠의 쌓여짐에 대하여 (알뿐, 생각의) 생김이 씻기고, 나마-루빠의 무너짐에 대하여 (알뿐, 생각의) 생김이 씻기고, 나마-루빠의 무너짐으로 인도하는 방법에 대하여 (알뿐, 생각의) 생김이 씻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
존자들이여, 이것만으로도 성스러운 제자는 바른 견해(正見)가 있고, 바르게 나아간 견해가 있고, 담마(法)에 대하여 절대적인 신뢰를 구비하고, 이 바른 담마를 지니게 됩니다.
존자들이여, 그렇다면 어떤 것이 나마-루빠(名色)이고, 어떤 것이 나마-루빠의 쌓여짐이고, 어떤 것이 나마-루빠의 무너짐이고, 어떤 것이 나마-루빠의 무너짐으로 인도하는 방법일까요?
느낌(受), 알음 머뭄(相), 마음 동작, 접촉(觸), 맘(意) 동작이 있습니다 -
존자들이여, 이것을 나마(名)라 말합니다;
}
나마(名)에 포함되는 것들에는
다섯의 모임(五蘊)의 느낌(受), 알음 머뭄(相)과 이어지는 모든 마음 동작도 포함되지만
맘(意) 동작도 포함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맘(意), 나마(名) 등의 이해가 전제되지 않고
담마(法)라는 용어는 이해될 수 없으며
담마(法)라는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어떤 모든 쌓여짐의 담마(法), 그것은 무너짐의 담마이다.”라는 문장을 이해할 수 없고
이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면 예류의 경지로 나아갈 수 없다.
5.
맘(意), 나마-루빠(名色), 담마(法)라는 모든 용어를 통합하여
하나의 문장으로 예류의 경지가 정의되어 있다 – 우리는 그와 같이 추정하고 있다.
우리가 추정하는 예류의 정의에 대하여
여덟 가지 해탈 나옴(八解脫)의 첫 번째 해탈에 대하여
10000DN15 마하니다나Mahānidāna (연기법) 숫따의 7절과
11011MN77 마하사꿀루다이Mahāsakuludāyi (사문 고따마를 존중하는 이유) 숫따의 4.2절과
11000MN137 살라야따나위방가Saḷāyatanavibhaṅga (육처의 분별) 숫따의 7절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루빠(色)가 루빠(色)들을 본다, 이것이 첫째 해탈 나옴입니다.
}
이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온과 12연기의 열일곱 글자와
구차제정을 이론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2024년 9월 5일)
---
디가 니까야와 맛지마 니까야는 이와 같이 예류의 경지를 정의하고 있다.
불행한 사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최소한 2300년전부터
예류의 경지로 나아간 수행자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2600여년 동안 누적된 어떠한 모든 주석서는 수행자에게 ‘독’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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