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진 안개
류윤
구체적 진술이 되지 못하고 모호한
모호함으로 하여 몽환적으로 더 아름다운,
눈썹 짙은 방어진 솔숲을 목도리처럼 두른
일산진 해안을 철썩이는 파도와
서서히 벗겨지는 안개 속에
발목이 드러나는 기기묘묘한 암봉들을 수하에 거느린...
시간도 깍아내는 가혹한 파도와
신의 손길로 빚어낸오묘한울산 대왕암
여기 천년이 밀물로 왓다가
천년이 흔적없이 쓸려갔을 것이다
짙은 안개는뱃고동 소리를 방목하고
뱃고동소릴 주워먹고자란 외로운 섬
슬도 해안길의 소라 고동들은 귀가 자랄 것이다
호잇 호잇 잠수복을 입은 해녀들의 숨비소리
살아가는 일이 늘 안개 속 같아도 방어진 등대를 찾으면
점차 벗겨지는 안개의 살을 만지며 한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안개속처럼 막막햇던 앞으로 살아낼 길이
갈래를 잡아 구체화 될 것이다
안개에 젖은 옷을 비틀어 짜면
묵은 슬픔이 뚝뚝 떨어질 것이다
슬픔은 말려야 곰팡이가 슬지 않는다
이마를 가르는 일직선의 수평선에 널어
짯짯이 잘 말려야 한다
모호함의 미학에서 구체성의 윤리로 — 류윤 「방어진 안개」 평론
류윤의 「방어진 안개」는 ‘안개’라는 자연 현상을 매개로, 인식의 불확실성과 존재의 막막함을 시적 사유로 확장해 나가는 작품이다. 이 시는 울산 방어진 일대의 구체적 지형—일산진 해안, 대왕암, 슬도—을 배경으로 삼으면서도, 그것을 단순한 풍경의 재현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인간 내면의 상태와 겹쳐 읽히도록 조직한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모호함과 구체성 사이의 긴장을 통해 삶의 방향성을 탐색하는 서정적 여정을 보여준다.
시의 첫 구절 “구체적 진술이 되지 못하고 모호한 / 모호함으로 하여 몽환적으로 더 아름다운”은 이 작품의 시적 태도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여기서 ‘모호함’은 결핍이 아니라 미적 가치로 전환된다. 안개는 사물을 가리면서 동시에 새로운 감각을 열어주는 매개로 작용하며, 시는 이 모호함 속에서 오히려 세계를 더 깊이 인식하려는 역설적 시선을 취한다. 이는 명확성과 투명성을 중시하는 일상적 인식 방식에 대한 일종의 반성으로 읽힐 수 있다.
이어지는 구절들은 방어진의 해안 풍경을 다층적으로 펼쳐 보인다. “눈썹 짙은 방어진 솔숲”, “목도리처럼 두른 일산진 해안”, “기기묘묘한 암봉들” 등은 자연을 의인화하거나 신체적 이미지로 전환함으로써, 풍경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살아 있는 존재로 재구성한다. 특히 ‘목도리’라는 표현은 해안을 감싸는 따뜻함과 동시에, 안개와 어우러진 포근한 질감을 환기한다.
“시간도 깎아내는 가혹한 파도”와 “신의 손길로 빚어낸 울산 대왕암”이라는 구절은 자연의 이중적 속성을 드러낸다. 한편으로 자연은 모든 것을 마모시키는 파괴의 힘을 지니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신성한 창조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천년이 밀물로 왔다가 / 천년이 흔적 없이 쓸려갔을 것이다”라는 시간 인식은 이러한 자연의 순환 속에서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덧없는지를 암시한다. 이 시점에서 풍경은 이미 시간의 층위를 품은 존재론적 공간으로 확장된다.
중반부에서 시는 청각적 이미지로 전환된다. “짙은 안개는 뱃고동 소리를 방목하고”라는 표현은 안개를 단순한 시각적 현상이 아니라, 소리를 풀어놓는 공간으로 재해석한다. 이어 “뱃고동 소릴 주워먹고 자란 외로운 섬”이라는 구절은 슬도를 의인화하며, 고립된 존재의 성장 서사를 암시한다. 특히 “소라 고동들은 귀가 자랄 것이다”라는 표현은 감각의 확장을 통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호잇 호잇 잠수복을 입은 해녀들의 숨비소리”는 인간의 노동과 생존의 리듬을 시 속에 끌어들이며, 자연과 인간이 교차하는 지점을 형성한다. 이때 숨비소리는 단순한 호흡의 소리가 아니라, 삶을 지속하기 위한 필사적 리듬으로 읽힌다.
시의 후반부에서 비로소 안개는 내면의 은유로 전환된다. “살아가는 일이 늘 안개 속 같아도”라는 구절은 앞서 제시된 자연의 모호함이 인간 존재의 불확실성과 겹쳐짐을 명확히 한다. 그러나 시는 여기서 절망에 머무르지 않는다. “방어진 등대를 찾으면 / 점차 벗겨지는 안개의 살을 만지며”라는 표현은 방향을 제시하는 빛—등대—을 통해 모호함이 धीरे히 해소되는 과정을 형상화한다. 등대는 단순한 항해의 도구를 넘어, 삶의 방향성과 의미를 상징하는 존재로 기능한다.
마지막 연은 이 시의 정서적 결론이자 윤리적 제안이다. “안개에 젖은 옷을 비틀어 짜면 / 묵은 슬픔이 뚝뚝 떨어질 것이다”라는 구절은 감정을 물리적 행위로 환원시킴으로써, 슬픔을 외화하고 정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어 “슬픔은 말려야 곰팡이가 슬지 않는다”는 진술은 고통을 방치할 때 발생하는 부패를 경고하며, 감정의 관리와 치유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마를 가르는 일직선의 수평선에 널어 / 짯짯이 잘 말려야 한다”는 결말은 자연의 공간—수평선—을 치유의 장소로 설정하며, 시를 조용한 희망의 감각 속에 마무리한다.
이 작품의 미학적 성취는 감각의 다층적 활용과 이미지의 연쇄적 확장에 있다. 시각, 청각, 촉각이 교차하며, 안개라는 단일한 소재가 풍경, 시간, 감정, 존재론으로까지 확장된다. 다만 일부 구절에서 언어의 밀도가 고르지 못하거나, 이미지 간의 연결이 다소 느슨하게 느껴지는 지점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는 모호함을 결핍이 아닌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으며, 그 속에서 구체적인 삶의 방향을 모색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결국 「방어진 안개」는 말한다. 삶이 안개처럼 अस्पष्ट할지라도, 그 안개를 통과하며 우리는 비로소 길을 만들어간다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쌓인 슬픔조차도, 제대로 말리고 바라볼 때 삶의 일부로 수용될 수 있다고. 이 시는 모호함을 견디는 법, 그리고 그 속에서 의미를 길어 올리는 법을 조용히 가르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