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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지만 충만한, 나의 전원생활 -벌린 클링켄보그. Verlyn Klinkenborg (1952 ~ )- 「아이오와의 농부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뉴욕 타임즈> 논설위원(1997~2013)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예일대학교와 포모나칼리지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며, 뉴욕 북부의 작은 농장에서 지내고 있다. 이 책은 그가 1997년부터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담은 <시골생활>에 실린 글 중 173편을 엄선해 엮은 책이다.」
<<첫 번째 해>>
[5/29]
며칠 전 아침이었다. 헛간 바닥에 느슨하게 쌓여 있던 건초 더미에서 건초 한 뭉치를 들어 올렸는데, 거기서 여우가 한 마리 뛰쳐나왔다. 여우는 헛간 뒤편으로 달려가더니 뒤돌아서 나를 보았다. 그러더니 미심쩍어 하면서 몇 발자국 더 내딛다가 문 밑으로 황급히 빠져나갔다. 바깥에는 차가운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영락없이 죄를 지은 기분이 되었다.
[10/31]
며칠 전 나도 모르게 발길이 또 헛간으로 향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의식도 못하는 사이에 하루에도 열두 번은 헛간으로 가는 날이 많기 때문에 이 말은 어딘가 새삼스럽게 들린다. 내 마음은 내가 작업대 위에 놓고 온 줄자에 가 있거나, 헛간 한 구석에 쟁여 놓은 통나무 더미에 가 있거나, 내가 지나올 때 눈길을 주던 말들에게 가 있다. 가끔은 헛간에 도착했는데 왜 왔는지 기억이 안 날 때도 있다.
<<두 번째 해>> 지난 몇 주 동안 나는 고드름이 얼마나 날카로워질 수 있을까 궁금해 했다. 이른 오후가 되어 물방울을 뚝뚝 흘리며 점점 짙어지고 있는 작업실 창밖의 고드름을 보면, 나는 고드름이 한 방울의 물만큼 얇아질 수 있을 거라는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아침이 되어 떠오르는 해가 차가운 연보라 빛 커튼을 걷어 내면 고드름은 비늘만큼이나 날카로워 보인다.
고대 파충류의 척추처럼 굵은 줄기를 따라 이랑져 있지만, 바람이 불면 파르르 떨린다. 우리 집 서쪽 면의 고드름은 처마에 생긴 아이스 댐에서 시작해 얼어붙은 테라스까지 내려온다.
지난 주 어느 날은 아침 6시 기온이 영하 12도였다.
사람들이 옛날 겨울에는 말이야 하고 말할 때면, 마치 그 시절에는 눈썰매 종소리에 맞추어 눈이 내리거나 수은주가 내려갔을 것만 같다. 바람 부는 밝은 날, 공기 중에는 햇밫을 머금어 투명해지다시피 한 눈 입자들이 가득하다. 너무 빨리 일어나 현기증이 일 때 눈앞에 보이는 별 같기도 하다.
[3/8]
마침내 기고만장한 눈의 기세에서 풀려났다. 언덕과 초원의 지면이 푹 낮아지기 시작했다. 따뜻한 비가 한 차례 내리고 나면 나무 밑에는 저마다 둥그런 구멍이 생기고, 구름이 걷히면 나무 몸통이 흡수한 오후의 열기로 구멍은 점점 더 커진다. 지난주, 남향 언덕과 도랑을 따라 드디어 맨땅이 모습을 드러냈다.
[3/18]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뱀이 허물을 벗듯 나도 내 피부를 통째로 벗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낡은 외피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공기 속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12/6]
어느 날 새벽 2시 30분경, 달은 자작나무 숲 뒤에서 서쪽으로 한참 기울어 있었고, 적당히 내린 눈이 달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개들이 벌써 아침 먹을 시간인 줄 알고 초원을 뒤어다닐 동안, 나는 뿌연 달빛에 가려진 별들을 올려다보았다.
<<세 번째 해>>
[7/12]
해마다 텃밭은 내년에는 일이 더 쉬워질 것이라고 나에게 약속한다. 올림판도 이미 다 만들어 놓아서 씨앗이든 모종이든 심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매년 텃밭일은 늘 이전의 해보다 더 힘들었다. 이번 해는 올림판을 새로 만들어 올렸고, 특히나 건초 덮어 놓는 이랑을 넓고도 깊게 내느라 여태껏 작업중 가장 힘들었으니, 한 번 더 속는 셈치고 믿어 볼까 한다. 내년에는 좀 더 쉬울 거라고. 어찌 되었든 이보다 더 힘들게 일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일에는 텃밭 자체가 그런 것처럼, 나름의 구조가 있다. 어떤 날은 그저 느긋하게 토마토 텃밭에 들러 손가락으로 토마토 새순을 똑 딸 때 나는 늦여름의 향기를 맡으면 된다. 하지만 어떤 날은 동이 터서 해질녘까지 트랙터에서 내려오지도 못하거나 밭에서 허리 한 번 펴지 못할 때도 있다. 사실 대부분은 쇠스랑을 두 손에 쥐고 하루 종일을 보내는 경우가 가장 많다. 지난 해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쳤던 노지를 쇠스랑이 찾아내 준다. 이처럼 간단한 연장이- 쇠갈퀴 네 개에 나무 막대 하나- 그렇게 나를 고생 시킬 수 있다니, 심지어 운전 실력마저 향상시켜 준다니 믿을 수 가 없다. 하지만 정말 그렇다. 나는 몇 주 전 갈퀴의 리듬을 발견했고, 지금 이 녀석은 나를 당최 놓아 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8/6]
며칠 전 나는 텃밭에 갔다가 울타리 안쪽에서 우드척 한 마리를 보았다. 녀석은 내게 등을 보이고 뒷다리로 서서는 명아주를 뜯어먹고 있었다. 이것은 마치 강도가 집안에 들어와서 카펫을 빨아 주고 있는 상황과 비슷했다. 나는 우드척이 이파리가 풍성한 털별꽃아재비로 대상을 바꿔 주기를 바라면서 1~2분 정도 녀석을 지켜보았다. 털별꽃아재비도 끈질긴 풀이었다. 하지만 그때 녀석이 등을 돌렸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금방이라도 덤벼들 태세의 고양이처럼 굳어 버리는 게 아니라, 잠깐 멍하니 있다가 네 발을 짚고는 뒤뚱거리며 텃밭 뒤편으로 사라졌다. 나는 울타리에 난 구멍을 찾아내 메웠다.
[11/25]
며칠 전 서부로 가는 익숙한 고속도로에서 불연 듯 내가 평생 지나다닌 익숙한 고속도로들을 전부 떠올려 보았다. 일종의 은유 아니면 내 인생에서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를 가늠해 보기 위한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다른 데도 아니고 아스팔트 위에서 구하는 대답이라니-, 순전히 재미로 말이다. 도식적 상상력이 있었다면 길들을 전부 커다란 스크랩북에 나란히 그려 보거나, 접이식 지도에서 오려 내 풀로 붙여 하나의 불연속적인 여정으로 만들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서부를 여러 번 왕래하다 보면 신비로운 느낌은 사라지고 실제 풍경만 남는다. 가문 해에는 거대한 밀밭이 숫제 검게 타들어 간다.
<< 네 번째 해>>
[1/13]
이런 길에 있게 될 거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절대 없다. 하지만 이런 길에 들어서면 어느 순간 문득 자신이 그런 길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몇주전 미국을 횡단해 가는 길에 그런 기을 만났다. 텍사스 러벅에서 뉴멕시코 클로버스로 뻗은 84번 고속도로였다.
[6/15]
며칠 전 삼림텐트나방 애벌레가 작업실의 컴퓨터 케이블 선을 타고 오르는 것. 애벌레를 보고 같이 있던 사람 한 병은 놀라서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는 놀랐다기보다 이상하리만치 혐오스러움을 느꼈다. 올 여름은 삼림텐트나방 애벌레들 천지다. 나무 울타리 가로대에 있는가하면, 오리 물통 속에 익사해 있을 때도 있다. 문 걸쇠나 양동이 손잡이 등 손이 닿는 곳마다 애벌레가 꼭 있다. 탄탄하게 꼰 실처럼 얇고 3센티미터도 채 안되게 작은 놈도 있고, 연필만큼 통통한 것이 6센티미터는 족히 될 법한 놈도 있다. 자연의 솜씨라는 면에서만 생각한다면 그 벌레는 꽤 아름답기도 하다. 아이 보리색 점이 일렬로 찍힌 등에 옆구리에는 파란색 아이 새도를 바른 듯 은은하게 색깔이 입혀져 있다.
우리 집 가금류가 애벌레들을 다 잡아먹으면 좋겠다. 가끔 새들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그런 때가 있다.
[8/8]
나는 시골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지금은 시간이 제공하는 다양한 시간들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 변화의 한복판에서 나만 정지해 있는 점같이 느껴진다.
<<다섯 번째 해>>
[8/2]-전문-
사각형과 원뿔형의 철조망 지지대에 토마토를 길러 본 적dl 있다. 첫 해는 토마토 줄기가 자꾸 땅으로 내려오고 싶어 하는 것 같기에 그렇게 매달려 있도록 그냥 놔두었다. 지난 몇 년간은 그냥 일자로 된 2미터 정도의 말뚝을 이용해 키우고 있다. 토마토 묘목이 얼어 죽지 않게 해 주는 붉은색 플라스틱 뿌리 덮개나 비닐 물주머니 등을 이용하는 현대적인 토마토 작법은 대부분 다 무시했다. 심지어 묘목을 직접 기를 생각도 하지 않는다. 대개는 친구 하나가 집에서 직접 기른 묘목을 나에게 준다. 그러면 묘목을 메모리얼 데이 즈음해서 땅에 심고 기다린다.
나는 가지치기만큼은 인정사정없다. 흡지-가지와 줄기 사이의 접합 부분에서 솟아나는 독립된 개체-를 가차 없이 잘라 내고, 외따로 너무 커질 것 같은 가지도 사정없이 잘라 낸다. 지난주에 보니 토마토 나무 몇 줄기가 말뚝보다 더 높게 자라났기에, 나는 “풀로 지낼 시간은 끝났어. 이제 열매를 맺을 때야”라고 선포하듯이 더 자라려는 꼭대기 부분을 똑 땄다. 손을 씻으니 물이 초록색이다. 나만의 기술 또 하나는 토마토 나무를 묶어 주는 것인데, 몇 년 전에 아주 유용한 매듭 법을 알아 냈다. 줄기 둘레에 느슨하고 엉성하게 외벌매듭(한 번만 맺는 매듭)을 두르고 그 옆 말뚝에 옭매듭(같은 지름의 로프 두 가닥을 함께 단단히 묶는데 사용하는 매듭)을 매면 전체 모양이 8자가 된다. 우리 집에서 끝도 없이 샘솟는 화물용 노끈을 내료로 사용하고 길이는 팔뚝 길이로 자른다.
복잡한 세상 속의 기술에 비하면, 이런 비법이야 아주 간단하다. 그래도 흡지가 생기지는 않았는지 줄기를 일일이 살펴보면서 토마토 나무를 내가 정말로 보살피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면 얼마나 뿌듯한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줄기들을 말뚝에 묶어 주다 보면 한 해 이맘때쯤 식물을 망가뜨리는 거센 빗발이나 갑작스러운 돌풍을 몰고 오는 폭풍이 떠오르지만, 그럴 때마다 토마토 나무를 튼튼하게 붙들어 매 놓았다는 사실에 든든해진다. 나는 머릿속 한 구석에서 수확 철을 계산 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넝쿨에는 벌써 농익은 토마토가 달렸다. 그러나 이르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사실 나는 호박 정도만 예외고, 다른 어떤 채소 보다 토마토를 기르는 걸 선호하는 편이다. 폭우가 오면 땅속에서 병원균이 올라와 땅 근처의 낮은 이파리들을 썩게 만들기도 하지만, 토마토 줄기는 늘 손쓸 겨를도 없이 쭉쭉 뻗어 올라간다. 본분인 열매 맺기는 나 몰라라 하고 말이다.
[11/10]
어제 바람이 박주가리 꼬투리 속에 들어 있던 씨앗을 모두 다 비웠다. 샛노랬던 미역취 꽃은 칙칙한 갈색이 되었다. 끈질긴 떡갈나무와 너도밤나무 몇 그루, 사시사철 한결 같은 어여쁜 층층나무 한 그루만 빼면 나무들은 잎을 전부 떨어뜨렸다. 무성하던 여름에 비하니 11월의 벌거벗은 나무들이 더욱 고독해 보이고, 숲은 더 오밀조밀해 보인다. 10월의 기억은 11월 중순의 관점에서는 차라리 야단스럽다. 길가 옻나무들은 지난달 가을 빛 속에서 화려하게 불타올랐다가 소멸된 모양이 혹시 스윈번이라도 읽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이제 드라마는 끝났다. 마치 한 해가 밋밋한 청교도적 진실을 맞닥뜨렸고, 오히려 그게 더 낫다고 맏아들이는 듯하다.
<<여섯 번째 해>>
며칠 전 밤 샌가브리엘 산자락에 천둥이 쳤다. 어스름이 막 내릴 무렵이었는데,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목요일 밤이면 으레 들리는 묵직한 쓰레기차 소리인 줄 알았다.
[3/12]
공원에서 보이는 스카이라인은 시멘트 타일로 된 지붕들이다. 그 뒤로 아몬드 나무들이 서 있다. 여기서는 안 보이지만 그래도 알 수 있다. 거기에 아몬드 나무가 없고, 집들만 첩첩이 있다면 느낌은 전혀 다를 것이다.
석양빛을 받으며 아버지와 나는 마을 서쪽으로 차를 몰고 간다.
집들이 끝나는 지점에서 과수원이 시작된다. 아몬드 나무가 이제 막 만개해 꽃잎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쿠퍼매 한 마리가 높은 가지에서 날아올라 낮게 땅위를 활주하며 과수원 안으로 들어간다.
그날 종일 내 마음속에는 질문 하나가 떠나지 않았다. 그날 하루는 완벽하게 고요해 보였지만, 배경에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강렬한 변화가 있었다. 그렇게 지속적이고도 급격한 변화 한가운데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또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이런 것은 앞날을 생각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는 아마도 전부 연결되어 있는 흐름의 일부이리라. 원시의 초원은 과수원에 자리를 내주고, 과수원은 집들에 자리를 내준다. 집들은 무엇에 자리를 내줄지 생각을 멈출 수 없다.
[5/18]
해발 1600미터, 윈드리버 산맥 끝자락에 있는 와이오밍의 한 작은 마을에서 글을 쓰고 있다. 드디어 언덕 근처의 눈이 녹았고, 개울 바닥과 목초지와 풀밭은 뜻밖에도 초록이다. 이제 더는 미루나무에서 나온 흰 털 뭉치가 굴러다니지 않지만, 라일락은 아직 한창이다.
남무 캘리포니아에서 출발해 다시 미국을 황단하며 집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식물의 향기가 얼마나 다양한지 이번에 여행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어디를 가든 곳곳에서 세이지, 제스민, 오렌지꽃, 로즈메리 향이 불쑥불쑥 밀려왔고, 향기는 반 블록만 가도 희미해지거나 다른 향으로 덮히거나, 아니면 그냥 간단히 대기의 냄새에 압도되곤 했다. 길에 오른 첫날 늦은 오후 즈음, 우리는 유타 주 시더시티에 거의 다 와 있었다. 운전을 교체하려고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와 몇 발자국 걸었을 때, 미풍 속에서 아직 다 자리지 않은 풀들의 향기가 느껴졌고, 순간 그 광대한 풍경이 모두 풀냄새로 뒤덮혔다.
[5/25]
타이어가 우는 소리를 내고 가끔은 신음 소리를 낸다. 어떤 때는 차가 멈출 때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휘파람 소리를 낸다. 아주 가끔 아스팔트는 매끄럽고 곧지만, 대부분의 주간 고속도로는 생각지도 못한 것들의 연속이다. 좁은 고가에서 날카로운 쿵 소리가 나는가 하면, 도로 일부가 몇 킬로미터씩이나 재활용 고무로 포장된 네브라스카 서부에서는 타이어가 한참 동안 윌터 미터 의 마음속으로 들어간 것 같은 특수효과 소리를 낸다.
[7/2]-전문-
헛간은 절대로 깨끗해질 수 없을 것이다. 바닥은 더럽고, 다락에서 떨어진 건초 오라기들이 늘 떠다닌다. 제비들이 전등갓 위에 집을 짓고, 얼룩 다람쥐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며, 어떤 녀석인가는 당당하게 말 물통 근처 벽에 구멍을 파놓았다. 내가 아무리 치워도 어느 구석은 늘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 나는 진짜 베기 농부는 못되지만, 뭐든 쌓아 두려는 농부의 본능, 그러니까 지금 버리려고 하는 것이 앞으로 꼭 필요하게 될 거라는 강한 믿음만은 고수하고 있다. 지금 나는 어느 녀석의 발톱에 채여 구멍이 휑하니 뚫린 고무 여물통을 버리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는 중이다. 내가 이것을 어디에 쓰게 될지는 좀처럼 알 수 없지만, 그건 중요 하지 않다. 앞으로 쓸모가 있을지를 알아내는 게 문제가 아니다. 나중에 돌이켜보았을 때 후회하지 않을 것인가가 문제다.
지금 나는 이 온갖 잡동사니들을 둔 것이 후회스럽고, 그래서 헛간을 청소하고 있다. 사실 내가 지금까지 몇 년 동안 끌어안고 버티어 온 물건들이 갑자기 꼴도 보기 싫어졌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 하루 종일을 투덜댔다. 처음부터 쭉 마음에 안 들었던 낡은 작업대를 전부 해체해 버렸다. 이전 w이;ㄴ이 두고 간 고릿적 자동 급수기와, 중간 부분이 휘어진 2미터가 넘는 옥외 소화전, 구멍이 숭숭 뚫린 방수포는 갖다 버렸다. 내 인성의 한계, 어쩌면 인생의 ㅎ보고 있는 것 같다. 고장난 물건을 고쳐 쓰는 기쁨을 매우 사랑하지만, 쓸모 있는 것을 만들려면 때로는 파괴도 필요한 법이다. 나는 건초 헛간에서 용접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가끔씩은 손을 멈추고 헛간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제비드,f을 구경하고, 이제야 한자리에 모인 공구들을 바라보며 뿌듯하게 여기기도 했다. 마치 오늘 이 물건의 자리를 한 주 후에도 일일이 기억해 낼 수 있다는 듯이. 작업대 서랍 속에서 말라비틀어진 어린 생쥐도 한참을 구경했다. 이 헛간에서 10년을 살았던, 이제는 반쯤 분해되어 가고 있는 책 ㅅ아자가 더는 설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마침내 받아들였다. 자크 데리다의<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노스틸 프라이의 <위대한 암호>, 심지어 오래된 하이데거의<존재와 시간>까지, 나는 낡은 노끈 뭉치로 책들을 묶어 차곡차곡 트렉터에 쌓아올렸다. 태워야 할까, 분리수거 쓰레기통으로 보낼까? 답은 어렵지 않았다. 책들은 쓰레기통 바닥으로 펄럭거리며 떨어져 내렸다. 나중에 이 선택을 후회하게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9/28]
지난주 수요일에는 짧게 워싱턴 D.C를 다녀왔다. 동이 틀 때 고속열차를 타고 내려갔다가 해가 질 때 돌아왔다. 아셀라 비즈니스 칸에 타고 있었기 때문인지 주위에서 온통 업무를 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젊은 여자들의 목소리가 대리석 denl의 하이힐 소리처럼 높게 울려 퍼졌고, 휴대전화로 본부장과 전화하응 젊은 임원은 연신 가짜 웃음을 웃어 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보름달이 차오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지평선에 무언가 둥근 것이 낮게 걸려 있나 싶은 정도였다. 어쩌면 낡은 벽돌위에 누가 그려 놓은, 아주 오래되어 흐려지고 때가 탄 달 그림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철로 위로 흐르는 볼티모어 풍경을 바라보았다. 이 빠진 낡은 집들이 체념한 듯 사생활을 어둠 속으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얼마 뒤 강가를 지났는데, 물 위에 달이 뜨기엔 너무 후덥지근한 밤이었지만 이제 막 빛을 내기 시작하는 달이 거기 있었다.
옛날에는 달의 궤도를 중심으로 불변하는 천구와 늘 변하는 달이 갈라진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모든 게 허물어지고 개발되는 도시를 배경으로 달은 차라리 비현실적으로 한결같아 보였다. 잔잔한 파도가 자꾸만 땅을 버리는 것처럼 보이는 해변에서도 달은 꾸준히 자기 자리를 지켰다. 하늘을 지나는 길도, 뜨고 지는 시간도, 모양도 매번 변하는 달의 변덕이라는 은유를 정말로 이해하려면, 밤하늘의 한결갘ㅌ음을 느낄 수 있는 훨씬 더 어두운 세상에 살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변덕의 대명사는 지구라는 행성이 아닐까 싶다.
달을 보다 보면 자꾸 비유들이 떠오른다. 아주 오래전 나는 저 먼 북부 캘리포니아에서 떠오르던 보름달을 보고 “사디리를 오르는 뚱뚱한 남자”라고 묘사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영락없는 표현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의 달은 어디를 올라가는 뚱뚱한 남자가 아니었다. 매달리다라는 말이 달의 모양을 주관하는 힘에 부당하기는 하겠지만, 이번에 달은 수평선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기차는 내내 덜컹거리며 나아갔고, 바깥세상이 뒤로 물러나는 동안 각종 업무가 이루어지던 내가 앉은 칸은 어느새 고요해졌다.
[12/11]
이제 겨우 늦은 오후인데 바깥에서는 빛이 빠르게 사그라지고 있다. 6시 즈음이면 한밤중 같아지고 한밤중이 되면 일시적으로 크레바스에 빠진 듯 깜깜해질 것이다. 이틀전 폭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천장으로 진눈깨비가 떨어지다 이내 고요해졌다. 다음날 아침 농장은 얼음으로 뒤덮였다. 이후로는 바람도 거의 불지 않는다. 어쩌면 갑자기 사방이 딱딱하게 굳어서 내가 속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안 여우가 그러듯이 온 세상도 얼어붙었는지 모른다.
<<일곱 번째 해>>
[1/3]
늦은 오후가 되면 눈이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데, 이 아름다움이 얼마나 은은한지, 또 바로 머리 위 별들이 새끼를 치는 것 같은 밤이 되면 추위가 얼마나 혹독한지를 동시에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7/2]
지난 며칠째 밤마다 목초지 한쪽 편에 서서 반딧불을 바라보고 있다. 반딧불 무리는 풀밭에서 날아올라 깜빡거리면서 점점 더 높이 오르고, 무리 중 한 마리가 지평선 너머 동쪽으로 쏜살같이 날아간다.
[09/13]
북부 한대수림인 이곳은 불과 몇 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다. 러시아와 접경인 제한 구역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rth이다. 북부 한데수림인 이곳은 이맘때면 새들이 거의 다 날아가고 없기 때문에 초현실적이다 싶은 침묵이 머문다.
여기 온 첫날 나는 러시아로 흘러 들어가는, 유속이 느리고 넓은 오울랑카 강의 다리 한가운데 서 있었다. 해가 막 떨어진 청명한 밤이었고, 나는 고요를 들으러 밖으로 나온 참이었다. 나무를 흔드는 바람도 미풍도 없었다. 발아래 강은 조용했고. 30여 분 서 있는 동안 나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10/7]
고요하지만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날, 텃밭의 키 큰 식물들은 앞뒤로 휘청거린다. 꽃대가 진자처럼 흔들리는데도 오색 방울새 한 마리는 ㄲ초자루에 앉아 씨앗을 먹고 있다.
곧 구름이 갈라지고 그 사이러 햇살이 쏱아진다. 말 등에서 김이 솟아오른다. 단풍잎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하고, 하나둘 잎이 점점 늘어나면서 곧 목초지 가장자리에 수북하게 쌓일 것이다.
대부분 자연은 내가 허드렛일을 할 때도, 우편함으로 걸어갈 때도, 글을 쓰다가 눈을 뜰 때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나는 자연에서 위안을 기대하지 않고, 나의 바람을 투영해 신처럼 떠받들지도 않는다. 자연은 그저 태생적으로 놀랄 일이 없다는 듯 숭고한 무관심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나는 가끔 자연에 놀랄 때가 있는데, 사실 그때 내 눈에 들어 ㄴ오는 것은 인간 세상의 변덕이다.
[11/03]
하늘이 17세기 도화지 빛을 띠고 있다거나, 세상이 색깔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다. 떡갈나무는 여간해서는 제 잎들을 내주려 하지 않았다. 날씨가 서쪽 어딘가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듯 했다. 새들이 나뭇가지에서 화르르 날아올랐다가 거의 곧바로 다시 자리를 잡았다.
머잖아 바람이 불어오고 비가 내리기 시작할 것이다.
[11/29]
새해는 일종의 시간상의 비유, 새 출발이라는 상상 속 지점이다. 마침내 1월이 와도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하는 시간 속으로 선뜻 여행을 떠나지 못한다. 우리는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에 몹시 단단하게 매여 있어서, 새해 속에 들어 있는 변화라는 가능성도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저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도약, 상상력의 재구성이라고 본다.
[12/30]
겨울에 왜가리들은 하늘을 보고 서 있는데, 그 모습이 조밀한 층적운 같기도 하고, 나뭇가지 맨 꼭대기에 걸려 엉겨 있는 짙은 색 연기 같기도 하다.
지난달 눈보라가 불어 닥치면서 나무들이 많이 부러졌다. 습지에 있는 나무들도 많이 부러졌다. 그런데 내가 확인해 보니 나무 윗부분에 튼 왜가리 둥지들은 하나도 망가지지 않았다. 또 강풍에 땅으로 떨어진 둥지도 하나 없다. 나는 왜가리들이 둥지를 만들 때 내릴 갖가지 결정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일단은그레이트블루헤론(미국산 왜가리의 일종)이 먹이를 잡아먹어야 해서 물이 있어야 한다. 어느 정도 높이가 되는 나무도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곧 나무가 나이도 얼추 있고 가지의 구조도 어늦어도까지 촘촘해야 한다는 뜻이다. 과연 이런 특징들이 강풍과 눈보라도 견디게 해주었을까? 아니면 왜가리들이 다른 나무보다 유독 좋아하는 키 크고 촘촘한 나무들이 따로 있는 것일까? 하긴 똑똑한 왜가리라면 자작나무에 둥지를 짓지는 않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왜가리들이 나무를 고르는 문제에서 진화해 왔으리라고 생각한다. 수 백만년 동안 의식도 못하는 사이에 무덤덤하게 적응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감정을 배제한 채 왜가리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왜가리들이 왜 그런 나무를 선택했는지 앞뒤 맥락을 부여할 수 있다. 하지만 진화는 일종의 역사와 같아서 현재를 그럴듯하게 설명해주긴 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은 그대로 남아 있다.
우리는 평면화 된 방식으로 풍경을 보면서, 그 안에 들어 있는 풍성한 해석들을 놓치고 만다. 나는 왜가리 서식지를 올려다보았고 여전히 질문이 남았다. 왜가리들은 함께 살면서 무엇을 배울까?
<<여덟번째 해>>
[1/15]
수은주가 바닥을 칠 때면 겨울은 계절이 아니라 공간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저기 언덕 너머는 19세기, 강 건너는 18세기에 머물러 있다. 왜 겨울은 여름과 달리 훨씬 더 과거와 이어지는 느낌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기온이 영하 18도 언저리일 때 느낌이 이렇다. “날씨 말고”는 중요한 게 아무것도 없다.
[2/2]
곧게 뻗은 발자국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호기심이라는 중력이 잇어서 번번이 동물들을 곧은 길에서 벗어나도록 옆으로 잡아당기기라도 하는지 발자국은 언제나 구부러져 있다. 하지만 그럴 때면 나는 “길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인간의 자만심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눈 위의 발자국을 보건대 그들에게는 반드시 직선으로 가야만 한다는 법칙 같은 게 없다. 꽁꽁 언 강가에 난 여우의 발자국이 왜 구불구불한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인간의 발자국이 없는 이곳은 여전히 동물 발자국의 세상이다. 동물의 발자국은 동물의 생각이 남긴 흔적, 인간의 방식이 아닌 방식으로 일이 벌어진 흔적이다. 나는 들판 위 서로 교차되는 발자국 두 개를 보며 이 두 동물이 상의를 하기 위해 만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어쩔 수 없이 떠올렸다. 하지만 두 발자국 모두 같은 동물이 왔다 갔다 하면서 남긴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앞서간 녀석의 냄새를 맡으려 멈추어 섰던 것인지도.
마침내 나도 침침한 빛에 점점 익숙해져, 어느덧 다음번 폭풍을, 고즈넉한 겨울의 다음 장을 바라고 있다. 하지만 남향의 경사면은 빨리 녹고 있고, 스컹크들은 분명 새끼 낳을 채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곧 스컹크 수놈들이 길로 나올 테고, 2월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리라.
[2/25]
“낙타처럼 걸어야 한다”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썼으니, 나는 아랫입술을 축 늘어뜨리고 혹이 난 것처럼 등을 구부려 본다. 물론 이렇게 하라는 뜻은 아니었을 게다. 그의 말은 생각에 잠겨 걸어 보라는 뜻이다.
소로의 기준에서 내 걷기는 영 틀렸다. 그렇지만 그는 성인군자가 아닌가. 소로의 말은 어떤 것에 관해서든 맞는 경우가 많다. 그가 성인군자 같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올바름을 스스로 기뻐하기 때문이다. 그를 살리는 것은 그의 책 속에 넘쳐나는 자기모순의 정신이다. 소로가 말한 대로 걷는다면 나는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서 아마 타원형으로 걷게 될 것이다. 매일 열심히 네 시간 동안 습지로 산책을 나간 그를 나는 결코 따라할 수 없다. “빚을 다 갚았고 유서를 써 놓았으며 볼일을 모두 마쳤다면... 이제 산책을 나갈 준비가 된 것 이다” 라고 그는 썼다. 뭐라 해도 아무튼 나는 산책을 잘 나가고 있다.
소로는 자신이 추구했던 자기충족적인 삶 속의 자기만족을 제외 하고는 그 어떤 자김나족에도 극도로 엄격했다. 그에게 우리는 전부, 그의 오리엔탈리즘에 다소 당혹스러워하고, 그처럼 엄격하고 현실적인 숲 사람이 그처럼 철학적인 사색가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어리둥절해 하는 도회지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숲을 믿는다. 초원을, 옥수수가 자라는 밤을 믿는다.” 이것은 일종의 에쿠메니즘이다. 적어도 대체로 옥수수가 낮에 자란다고 믿는 도회지 사람들이 보기에는. 소로의 말에 등 떠밀려 내가 언덕으로 나갔고 그의 재촉에 고지대를 올랐는데도, 소로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회개를 한다. “진정으로 좋은 책이란... 서부의 프레리에서 발견되는 들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이 막 기억났기 때문이다. 이 긴 겨울 산책을 마치고 돌아가면 나는 낙타 같은 갈증을 채우고, 소파에 드러누워서 들꽃 한 송이를 읽으려 한다. 소로가 2월의 낮잠에 관해서는 뭐라고 말을 할지 자못 궁금하다.
[3/17]
<전문> 몇 주 전 눈이 가장 많이 쌓였을 때 저녁 허드렛일을 다 마치고 목초지 중간 부근의 언덕에 올랐다. 그때쯤이면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주변에 뭐가 있는지는 별로 관심 두지 않고 그저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긴다. 허드렛일의 좋은 점 하나는 낮이 길어지거나 짧아지면서 시간이 달라져도 날마다 같은 빛 속에서 그 일들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든 혹은 어떤 기분이나 생각에 잠겨 있었든, 햇살이 쏟아지면 나도 모르게 밖으로 나가 허드렛일을 한다. 나에게는 중간 단락에 해당하는 일이다. 동물들 역시 그럴 거라고 상상하는데, 우리는 그저 한데 모여 같이 일을 해 나가가기 때문이다.
무릎까지 쌓인 눈을 헤치고 언덕을 내려오다가 돌연 멈추었다. 눈 속에 새의 날개가 펼쳐진 자국이 있었다. 눈이 워낙 단단하게 쌓여서 새 깃털처럼 가벼운 것의 흔적이 남을 수는 없었지만, 새의 날갯짓이 자국을 남겼다. 각도와 크기로 볼 때 참매로 짐작되었다. 목초지 건너편으로 눈을 들자 다람쥐 발자국이 이어져 있었는데 이 날개 자국에서 끝이 났다. 저항한 흔적은 없었고, 그저 갑작스럽게 사라져 버렸다. 언덕으로 올라갈 때는 이런 흔적들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갔던 모양이다.
한 주 뒤 눈이 다 녹는 동안, 나는 어떻게 물어야 할지 알 수 없는, 덧없음에 관한 질문을 생각하게 되었다. 눈 속의 그 날개 자국은 분명한 사실, 두 동물이 아주 세게 부딪힌 흔적이었다. 한 놈은 거기서 죽었고, 다른 녀석은 살아남았다. 하지만 눈이 녹고 나니 그 날개의 흔적은 이제 내 마음속에만 남았다. 내가 허드렛일을 하면서 줄곧 하던 생각들의 안개에 잠겨서 언덕을 내려왔다면 강렬한 날개의 흔적을 결코 보지 못했을 것이고, 그것은 내 안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으리라.
나는 내 주변 자연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대부분 관찰하지도 기록하지도 못한다. 눈 오는 겨울이 가끔 숨은 사건들을 기록하고 드러내 주는 등본이 되지만 그런 기록조차 드물다. 그렇지 않으면 필멸이라는 동물의 운명을 알려 주는 공문은 전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누가 자라나고 누가 죽는지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저 자라나고 죽어간다는 사실만 있다.
날개 흔적으로 나는 자연의 가차 없는 규율을 잠시 나마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 그것은 완벽에 가까운 덧없음의 표본, 삶 자체의 상징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눈이 녹으면서 다람쥐 발자국도, 둥근 날개의 흔적도, 언덕까지 올라갔다 온 내 발자국도, 말들이 뒹굴어 반들반들해졌던 자국도 모두 지워졌다. 그것은 내 기억 속에만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어느 날 스르르 녹아 사라질 것이다.
[3/24]
캘리포니아 포인트러에스 스테이션에서 언덕으로 올라와 모퉁이를 한 번 돌면 있는 이 집에 마지막으로 살았을 때, 저 아래 갯벌에서는 홀스타인 종 소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갯벌에는 다시 물이 들어와 있고 소들은 없으며 내 눈앞에는 하루 종일 찰랑거리는 수면이 펼쳐져 있다.
글쓰기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늘 말하기를, 우리는 그렇잖아도 시간표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사건을 시간 순으로 늘어 \놓는 일은 피하라고 가르친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를 또 다시 되새길 필요는 없다. 갯벌은 육지에 둘러싸인 시간 감각을 흐려 놓는다. 하루가 끝나가지만, 물은 변함없이 밀려오거나 혹은 빠져나갈 것이다. 완벽한 순환이라는 조수의 성질은 내가 생각하는 시간의 흐름에 역행한다.
시간이 조수와 같다면 우리는 우리가 현재라 부르는 미세한 균형점이 꾸준하게 앞으로 향해가는 동안 하루에 두 번씩 미래로 빨려 들어갔다가 과거로 밀려 나올 것이다.
왜가리와 물수리와 물떼새들은 분명 이 모든 것을 직관적으로 이해한다. 수면에서 잔물결을 박차고 올라 만 너머로 날아가는 물새들도 그렇다.
[4/02]-전문-
며칠 전 아침 점점 초록빛을 띠어 가는 농장으로 긴 곡선을 그리며 내려앉는 찌르레기 한 마리를 보았다. 남서쪽에서 미풍이 불고 있었고, 바람을 타고 유영하듯 매끄러운 모습이었다. 순간 찌르레기는 내가 평소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공기역학적인 생물로 보였다. 날개를 활짝 펴고 미동도 없이 나는 그 모습을 보니 나는 그제야 찌르레기의 진면목을 본 둣 했다. 내가 평소에 보던, 날개를 접고 모이통 앞에서 아옹다옹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그렇게 떨어져 내리듯 급강하하는 새를 볼 때면 언제나 경이롭다. 날개가 있어서 바람을 탈 수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캐나다기러기 한 쌍이 머리 위로 날아갈 때도 같은 생각이 든다. 날개를 퍼덕이다 라는 표현은, 수영하는 펭귄을 묘사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것만큼이나 캐나다 기러기들이 나는 모습을 묘사하기에도 적절하지 않다. 캐나다 기러기의 날개는 아주 약간만 틀 뿐 가볍게 떨리는 정도이며, 가까이서 보면 날개의 꼿꼿함과 달리 몸통이 아래위로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순간이면 나는 목초지에서 서서 자는 말들을 볼 때 내 다리를 의식하게 되는 것과 비슷한 심정으로 내 팔과 어께를 거북스럽게 작가해 본다. 인간의 몸에 얼마나 휴식이 부족한지 통탄하는 심정으로 붉은 꼬리매도 상승 기류를 타고 수평선을 가로질러 갈 때면 휴식을 취하는 것이 분명하다. 기러기들의 비행에도 쉼은 충분하다. 그러지 않다면 어떻게 그렇게 꾸준히 또 멀리 날아갈 수 있겠는가? 날개를 활짝 BUS 샐르 볼 때면 나는 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기 위한 역설적인 방법으로, 공연히 내 팔을 펼치고 땅만큼이나 단단하게 나를 받쳐 주는 공기를 두 팔 아래로 느껴 보는 상상을 한다. 양옆을 살피며 내 머리 위로 지나가는 콘도르를 볼 때면, 녀석이 먹잇감을 사냥하는 동안에는 교묘하게 비행의 기술을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나더러 보라는 듯이. 1년 전 칠레의 피요르드에서도 같은 광경을 보았다. 우리는 배를 타고 가다가 몇 십 마리의 검은 눈썹알바트로스 떼를 지나쳤는데, 그들 모두, 고요하게 물 위에 뜬 채로, 파도에서 고개를 들어 제 우아함을 의식하지 못하는 운동선수의 숭고한 무의식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조수 위에 하나도 힘을 들이지 않고 둥둥 떠서는 인간은 어떤 성질을 타고나는지 궁금하다는 듯.
[4/16]
나무에 잎이 있다면 바람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보여 줄 텐데. 대신 있는 것은 꼿꼿한 꽃들, 이제 막 오고 있는 봄의 통증을 앓는 봉오리들뿐이다. 잔가지 ㄲ트에 저마다 빨간 매듭이 달려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오후에는 갓길에서 사슴 한 무리를 지나졌는데, 꼭 썩어 가는 나무에 새겨진 부조 같았다. 빛의 장난이었다. 훨씬 더 형체가 분명한 사슴 한 마리가 농장을 구획 짓는 산등성이를 따라 걸으며 지평선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녀석은 잠시 멈추더니 아래에 있는 우리 농장을, 그리고 여기 떨어지는 빛을 한 번 내려다보았다. 어쩌면 한여름에나 그럴법하게 조용한 강물의 소리에 귀 기울인 것인지도 모른다. 강물 소리가 지난 몇 달 동안 창문을 흔들어 대다 이제 자리를 비운 바람의 소리를 대신하고 있다.
<<아홉 번 째 해>>
[09/02]
어느 날은 바스락거리며 가을이 오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다음 날은 들리지 않는다. 어느 저녁은 시원한 밤하늘 속으로 여름이 슬그머니 빠져나가고, 다음날 아치다시 돌아와 있다. 하지만 계절을 관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흐름이 있다. 새소리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곤충들의 백파이프 같은 노랫소리가 메운다.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할 때 목초지를 내다보면, 날아다니는 곤충들이 꼭 반짝거리는 은하수 같다. 이 농장에 곤충이 실제로 몇 마리나 있는지 안다면- 그것을 감각적으로 느낀다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진다.
잠자리가 소나무 가지 끝에 앉아 있었다. 잠자리는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정지 자세로 매달려 있었다. 그러더니 가볍게 날아올라 각다귀를 잡아먹고는, 정확하게 바람을 타면서 다시 나뭇가지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 농장 목초지에서도 곤충 떼를 관통해 지나가는 잠자리들을 보았다. 이럴 때마다 법번히 알게 되는 점은 내가 진짜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말하자면 눈에 안 보이는 것이다. 잠자리들이 체현 하고 있는 선사시대 깊이의 시간이라든지, 생 자체의 중압감, 생명 모두를 묶어 주는 관계망 같은 것 말이다. 나는 삶의 우연한 사건이 지곳적인 목적이 되는 그런 순간을 목도하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여기는 작은 농장이고, 인간인 이상 나는 인간의 시야라는 한계에 계속 부딪힌다.
오늘 아침에는 떡갈잎수국 이파리에 앉아 있는 거미를 발견했는데, 이파리 중심선이 거미 배의 중심선과 완벽하게 일직선을 이루고 있었다. 거미와 이파리가 서로 닮아 있는 모습, 둘이 이루는 대칭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거미의 의도를 확인하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거기서 뭐 하니?”라고 묻고 싶었다. 아니 “넌 누구니?”라는 질문이 더 나았겠지.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바라보고,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내가 보는 것에서 많은 것을 이끌어내는 게 전부였다.
[11/05]
이맘때가 되면 나는 우리 농장의 나무들이 앞으로 여섯 달 동안 맨몸일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럴 때마다 번번이 놀랍다. 나는 겨울잠에 들어간 숲에 둘러싸여 있다.
다시 빗방울이 떨어지고 기온이 4도 안팎을 맴돌아도 마음속으로는 벌써 1월을 생각하고 있다.
<<열 번째 해>>
[3/12]
사물들의 지속성에 자꾸자꾸 놀란다. 나는 파란색 격자무늬 양모 외투를 입고 허드렛일을 하러 밖으로 나간다. 나도 물려받았기 때문에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알 수 없는 그 외투는 날마다 나를 기다리며 옷걸이에 걸려 있다.
[4/21]
지난주네 겨우내 벌이 죽어 버린 벌통을 열어 보았다. 지난 3년 동안 나는 벌들이 혹독한 계절을 조금이나마 쉽게 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꿀을 채취하지 않고 벌들 먹으라고 남겨 두었었다. 지난 겨울처럼 추운 겨울에는 벌들이 체온을 유지하려고 너무 단단하게 웅쳐 있다가, 불과 몇 센티미터 거리에 있는 꿀까지 움직이지 못하기도 한다.
벌을 새로 들일 준비를 하면서 벌통을 분해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벌통을 열어보니, 어떻게 보면 사라진 왕국의 시민들이 내게 남긴 유품 같은 꿀이 족히 45킬로그램은 들어 있었다. 양봉업지나는 대부분 가을에 꿀을 채집한다. 봄에 꿀을 채집하자니 무척 이상했다. 설탕분말을 살포하는 것 같기도 하고(봄에 벌집의 진드기를 제거하기 위해 ㅅ러탕분말을 이용한다) 아무튼 뭔가 잘못된 듯한 기분이었다.
벌들이 남겨 놓고 간 꿀이 가득한 벌집, 한칸 한칸 세심하게 꿀이 밀봉된 그 광경에는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검소하면서도 동시에 사치스러운 무언가가 있다. 양봉업자는 대체로 벌집이 막힌 직후 벌을 채집하지만, 이 꿀은 미역취가 아직 만개했던 니잔 9월에 밀봉된 것이었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고 기온이 떨어지고 벌들이 죽는 동안 숙성되고 색이 짙어지면서 겨울을 난 꿀이었다.
[5/20]
지난 13년 동안 말들은 길 건너편 이웃집 말들이 풀을 뜯고 있는 이웃집 목초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습관이 있었다. 맞은편에서 이웃집 말들도 이쪽을 응시했었다. 동족관계, 종족본능, 종 인식, 그리움 , 아니 이 습관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6/30]
지난주에는 거의 완벽하다고 할 뻔했던 날이 하루 있었다. ‘할 뻔했던 날’이라고 말하는 것은 진정으로 완벽한 날이 이미 내 삶에서 왔다 갔다고 말하기가 싫기 때문이다. 완벽한 날은 언젠가를 위해 남겨 두고 싶다. 하지만 완벽한 날이 온다면 지난주의 그날과 아마 비슷할 것이다. 서쪽에서 산들바람이 불어와 날은 깨끗하고 빛은 투명했고, 우리 농장에는 티끌 하나 떨어지지 않았다.
새벽에 거미줄을 연신 걷어 내며 걸어가다 보면 헛간에 다다를 즈음엔 흡사 명주실 한 뭉치라도 짠 기분이 된다.
이곳의 ㅅ람이 뒤죽박죽 제멋대로인 만큼 나는 그 속에서 위안을 얻는다.
나는 그늘에 앉아, 햇살 속에서 멀리까지 오가며 꿀을 뽑고, 껓가루를 묻히고, 목적의식을 가지고 뭉쳐 다니는 벌들을 바라보았다. 그날은 그런 날이었다.
[9/9]
지난봄 눈이 녹을 때 시작했던 작업 대부분을 이제 다시 눈이 내리기 전에 ㄲ트내야 한다는 사실을, 아니면 그것들이 사실 헛간 청소처럼 절대로 완료될 수 없는 작업이라는 점을 깨닫고 있다. 그런 일들의 목록을 줄줄이 읊어 괜히 우울해지지는 말자. 분명한 사실은 내가 마당 둘레의 새 울타리에 필요한 기둥을 박거나, 내념 봄을 위해 텃밭을 준비하는 대신, 빈둥거리면서 소형 요트를 판매하는 인터넷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10/07]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데, 그저 양지 바른 데 앉아 히코리에서 열매 떨어지는 소리나 듣고 싶다.
[11/10]
이따금씩 헛간 불 끄는 일을 잊는데, 어떤 때는 건초 다락, 작업대 위, 마굿간의 불 끄는 것도 잊는다. 보통은 농장 활동 반경이 줄어들었을 때인 자러 가기 직전에 생각이 난다. 깜빡 잊고 켜 놓은 불 때문에 헛간이 실제보다 더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이불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걸어갔다가 다시 돌아와야만 하는 거리니까 말이다. 날씨가 바뀌어도 변함이 없다. 한 해 어느 때든 달라지지 않는다.
나는 거의 모든 농장이 밤새도록 마당에 환하게 불을 켜 놓는 동네에서 자랐다. 왜 그렇게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늘 그 불빛을 싫어했다. 불빛이 닿으면 모든 것이 가난해 보였다. 농장은 어둠 속에서 훨씬 그럴싸해 보였는데, 그만 말도 안 되게 이른 시간에 낙농장에 불이 들어오는 것이다. 창틀 거미줄 때문에 뿌옇게 보이는 빛, 저지 소의 젖 색깔만큼이나 하얀 빛이, 동이 틀 기미도 보이지 않던 그 시간, 소들의 조용한 지식에 나는 늘 감탄했다. 소들은 늘 같은 시각, 늘 같은 순서로 스스로 우유를 짰는데, 마치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 늦잠을 자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 농장에는 암소가 없고, 마당에 불을 밤새 켜 놓지도 않ㄴ느다. 나는 보통은 켜 놓은 헛간 불을 끈 다음에 트랙터 버킷에 걸터앉아서 바깥의 어둠에 눈이 적응하기를 기다린다. 도시 사람들은 늘 여기가 깜깜하다고 하지만, 눈이 어둠에 적응하기까지 조금만 기다려 보면 사실 그렇게 깜깜하지도 않다.
밤에 헛간까지 갔다 오는 것은 늘 좋은데, 내가 그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매번 잊는다. 나는 마지못해 외투를 집어 들고, 퉁탕거리며 작업용 장화에 발을 집어넣고, 투덜투덜 혼잣말을 하며 헛간 쪽으로 터덜터덜 걸어간다. 하지만 곧 어둠 속에 앉아서 이 즐거움을 다시 기억해 내고, 불빛이 뿜어져 나오는 집으로 말들의 소리를 들으며 돌아간다.
[11/23]-전문-
비가 오네 라고 생각하다가, 비를 내리게 하는 그것이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일반적으로 이것은 단순한 언어학적 질문이다. 하지만 11월의 어느 추운 날, 굴뚝에서 연기가 위로 솟아오르지 못하고 가라앉을 때 이는 철학적인 질문이 된다. 구름이 비를 내린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 이상하다. 하늘이 저렇게 무겁게 잿빛으로 내려앉아 있는데 구름을 운운한다는 것은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목초지에서는 말들이 반지르르한 털을 자랑하며 저마다 뒷다리 한쪽을 접고 서 있다. 우울한 앵글로색슨족 서정시의 첫 문장처럼 들리지만, 나는 비를 내리게 하는 것은 비라고 결론지었다.
나무들이 점점 겨울에 걸맞게 옷을 벗고 있다. 여름의 풍성하던 잎은 이제 상상 속에나 있다. 나무들이 보여 주는 초록은 가지의 이끼가 전부다. 어느 때보다 색이 짙어진 독미나리에 빗방울이 흐릿한 직선으로 둔충하게 떨어진다. 목초지 저 맨 끝에 있는 사탕단풍나무는 비 소식은 조금도 전하지 않는다. 지금 납작 엎드려 한바탕 휘몰아치기를 기다리고 있는 바람을 말해 줄 뿐이다. 지금은 집들이 모두 숲 밖으로 나와 마치 친구라도 된 양 길 쪽으로 좀 더 가까이 붙는 때다.
오늘 같은 날이면 닭들이 머릿속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는다. 육추사에 적외선 등이 켜져 있고, 일할 시간이 되면 나는 태어난 지 한 달 된 병아리들을 창문 너머로 한참 들여다 볼 것이다. 그러다 마실 물과 모이로 녀석들을 방해하러 들어갈 것이다. 병아리들은 한 마리씩 서서 날개와 다리를 쭉 뻗고는 -닭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하게 발레 같은 동작이다-, 다시 무거운 몸으로 돌아간다. 녀석들은 언제나 열평형을 추구해서, 기온이 떨어지면 서로 꼭 둘러붙어 적외선 등에 더 가까이 몰려 있다가, 기온이 오르면 뿔뿔이 멀리로 흩어진다.
집안에서는 나도 똑같이 장작 난로 바로 앞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다. 불은 남김없이 뜨겁게 타오르지만, 오늘은 역류가 발생할 수 있는 날이다. 밖으로 빠져나간 연기가 귀에 들릴 정도로 쉭 소리를 내며 부엌으로 들어온다. 역류된 연기는 위로 올라가다가 떡갈나무와 단풍나무 탄내, 베이컨 굽는 냄새하고도 비슷한 몹시도 반가운 가을 냄새를 남기고 흩어진다. 비가 내리고, 글쟁이가 글을 쓰고, 닭들이 알을 품고, 말들이 고요한 숨을 내쉬며 서 있다.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해 잘 지내고 있다.
[Review]
일상의 소소한 경험을 글로 표현하기위해서는 느낌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연에 숨겨진 비밀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이 있어야하며, 그 속에서 공통적인 의문에 답하는 철학적 지식이 있어야한다. 이 책은 저자가 뉴욕타임스 논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기고한 글<시골 생활>에 실린 글 중 173편을 엄선해 엮은 책이다. 11년간의 농촌 생활을 날짜별로 구분해서 일기 형태로 기록한 에세이 모음이다. 저자는 1953년생으로 현재 예일대학교와 포모나칼리지에서 문예 창작을 가르치며, 뉴욕 북부의 작은 농장에서 지내고 있다.
지난날 농촌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자연과 교감하는 작가의 섬세한 통찰력에 감동을 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지난날 미처 생각하지 못한 기억을 작가의 표현을 통해서 더 생생하게 떠올리고, 지금 시골 생활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생활 속에서 더 큰 기쁨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런 부류의 책은 작은 에세이를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도 유익하다. 사물에 대한 풍부한 글감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내용을 전개하는 구성을 눈여겨본다면 누구나 아! 이렇게 쓴다면 나도 글을 쓸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기게 하는 책이다.
“헛간 바닥에 느슨하게 쌓여 있던 건초 더미에서 건초 한 뭉치를 들어 올렸는데, 거기서 여우가 한 마리 뛰쳐나왔다. 여우는 헛간 뒤편으로 달려가더니 뒤돌아서 나를 보았다. 그러더니 미심쩍어 하면서 몇 발자국 더 내딛다가 문 밑으로 황급히 빠져나갔다. 바깥에는 차가운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영락없이 죄를 지은 기분이 되었다.”-본문-
도시에 살면서 농촌에 대한 향수는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에드워드 윌슨’은 <우리는 아직도 야생을 산다>는 책에서 그것은 인간의 유전자 속에는 도시보다 농촌 환경에 대한 정보가 더 많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야생은 생물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낸 박제된 사물엔 그것이 금은보화로 싸여있다고 해도 생명은 없다. 온종일 먹는 일에만 열중하던 돼지가 나른한 햇빛 속에서 배를 드러내고 휴식을 취하는 모습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돼지에 대한 편견을 바꾸게 한다. 감자나 고구마 줄기에 딸려 나와 몸부림치는 지렁이에서 우리는 흙 속이 어두움에 갇힌 세계가 아니라 그곳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나는 지난 몇 해 동안 집 근처에 작은 텃밭을 얻어 농사 아닌 농사를 짓고 있다. 아침 시간에 잠깐 밭을 돌아보며 채소가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목적이지만 때로는 진종일 밭에서 땀을 흘리며 보낼 때도 있다. 그런 시간은 빨리 지나가기를 원하는 시간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도심의 텃밭은 흙이 심하게 오염되어 있어서 손으로 만지기조차 거름 직하다. 텃밭이 농약이 없는 청정채소와 과일을 먹을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런 작물은 특수한 시설을 갖춘 곳에서 가능한 것이지 도심의 텃밭에서는 얻기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모두 농약을 사용하고 순진하게 유기농 채소를 기른다고 고집하면 거의 건질 농사가 없다. 그럼에도 텃밭을 가꾸는 즐거움은 집안 거실의 화초와는 다른 야생의 체험이 있다. 얼마 전 새벽 밭에 나갔다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배추포기 사이에서 주먹만 한 떡개구리 한 마리가 튀어나와 황급히 도랑 쪽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농약으로 농촌에서도 사라져 버린 개구리가 도심의 텃밭에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그나마 내 텃밭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 작은 기쁨으로 남았다.
책은 한번 읽고 서고의 한자리에 버려질 때까지 남아있기도 하지만 이런 책은 책상머리에 두고 자주 꺼내 읽고 싶은 책이다. 어쩌면 ‘헨리 데이빗 소로’의 글 같기도 하고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집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있는 책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