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공자: <돌아오기: 구럼비 펜스친날 14주기> https://cafe.daum.net/peacekj/Ucf9/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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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2일 동영상 1 https://cafe.daum.net/peacekj/GeUn/1159
2025년 9월 2일 동영상 2 https://cafe.daum.net/peacekj/GeUn/1160
2025년 9월 2일 동영상 3 https://cafe.daum.net/peacekj/GeUn/1161
2025년 9월 2일은 강정 투쟁 6684일째 였다.
구럼비 육로 봉쇄 14주기에 부쳐
2011년 9월 2일 새벽, 완전무장 경찰 1000여명이 중덕 삼거리에 투입돼 36명이 연행됐고, 3명이 구속되었다. 구럼비에서 잠자던 사람들은 벼락처럼 끌려나왔고 경찰의 비호 아래 구럼비로 가는 길에 펜스가 세워졌다. 국책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일방적으로 해군기지를 짓겠다며 공동체를 파괴하고, 경찰 공권력 투입을 통해 매일 같이 지나다니던 육로를 막으며 본격적인 국가폭력이 시작된 날이기도 하다.
우리는 매년 2012년 3월 7일 해군기지 공사가 시작된 구럼비 발파일과 2011년 9월 2일을 기억한다. 직접 경험한 이들과 직접 경험하지 못했지만 끊이지 않은 기억의 증언에 귀 기울인 이들은 이 마을에서 국가에 의해 자행된 폭력을 알고 있다. 그리고 무수한 저항이 일어났던 공간과 사람들을 기억한다. 그 공간들이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음에도 여전히 현장에서 일상의 투쟁을 지켜내는 사람들 속에 현재 강정 투쟁은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기억하며 살아낸다. 강정의 투쟁은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절박함으로 시작해 제주가 군사기지 없는 평화의 섬이 되기를 바라는 운동으로 확장되었다. 더 나아가 동아시아 섬들의 연대를 비롯하여 군사기지를 경계로 살아가며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
매일 아침 7시 백배, 오전 11시 생명평화미사, 낮 12시 인간띠잇기 문화제. 지금도 이어지는 일상의 투쟁과 다양한 활동들로 강정마을 여전히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우리는 제주해군기지가 폐쇄되고, 철조망 안 시멘트 아래 갇힌 구럼비를 되찾을 때까지 그 연결된 힘으로 매일 매일의 기억 투쟁을 이어갈 것이다.
2025년 9월 2일
강정친구들
(아래 사진: 성게)
(아래 사진 및 영상 전달: 버들)
“미사를 드리러 왔는데 괴산에서 사목을 하고 있어서
일주일 있다가 돌아가려고 했어요.
구럼비를 둘러싸고 경찰들이 우리를 체크를 하고 있었어요.
왜 양쪽에서 우리를 왜 망원경으로 보고 구럼비에 있는 사람들을 체크하나.
곧 행정대집행이 일어날거라고. 경찰들이 언제 행정대집행을 할지는 우리 상태를 보고 진행할거라고.
일주일 있다 가려고 했는데 행정대집행이 일어나지 않아 매일매일 가는 날짜가 늦어지죠.
제가 괴산에서 하는 일도 있고 제가 돌아가야겠다고 하고 8월 초에 일단 돌아갔다.
8월 30일 즈음 되니 행정대집행이 일어난다고 문정현 신부님이 빨리 오라고, 이번엔 진짜라고.
8월 30일에 제가 오고
천주교 신부님들이 각 교구마다 돌아가면서 지금 미사드리고 있는 맞은편 정문쪽이 우리 담당이고
평통사는 지금 크루즈 터미널 쪽이었고 전여농은 다른 곳을 지키고 곳곳에 지키는 장소가 정해졌다.
8월 31일부터 각 교구마다 지키기로 해서 31일은 서울 교구 나승구 신부님하고 이강서 신부님이 자고 9월 1일은 예수회에서 저를 포함해서 4명이 자기로 했어요. 9월 1일 저녁이 되니 김미량, 홍기룡, 고유기씨가 수배가 됐다고 해서 예전 마을회관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경찰들이 못 잡아가게 해야 하는데 천주교 신부들이 필요하다고 해서 9월 1일에 나승구, 이강서 신부님은 이 분들과 함께 있었고 저를 포함한 예수회는 4명이 구럼비에서 잠을 잤다.
밤 12시 되니 그날 밤은 유독히 이상하더라. 잠을 자는둥 마는 둥 하면서. 새벽에 뒤척였는데, 새벽까지 잠을 못 잤죠.
강정초등학교 선생님이 한 분 오셔서 빨리 일어나라고 지금 경찰들이 월드컵 경기장에서부터 몰려오고 있다고.
우리는 문정현 신부님과 문규현 신부님한테 빨리 오라고 해서 뛰어오고,
경찰들이 우리 천막에 못 들어오도록, 종교행사를 하면 집행을 못하죠.
이동식 테이블과 십자가 놓고, 카톨릭 기자도 오고, 8명 정도 미사를 시작하고, 묵주기도 하고, 그날 미사도 묵주기도도 많이 했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점심이 됐는데, 경찰들이 뺑 둘러싸서 점심도 반입이 안된다고.
여균동 감독이 주먹밥을 가져와서 7-8명 주먹밥 넘겨주고 갔다. 먹고 2시쯤 강우일 주교님이 왔는데 경찰들이 문을 열어줬다.” (2025.09.02. 김성환 신부님 2011년 9월 2일 그날 돌아보기)
(혜영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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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인혜)
(아래는 공소회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