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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송규 종법사(1900~1962, 재임 1943~1962)
정산 종법사, 익산총부 종법실(조실) 앞에서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의 수제자로 원불교를 교단을 이끌었던 정산 송규 종사는 1900년 8월 28일(음력 8월 4일)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구성마을에서 송벽조와 이운외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선동(仙童)이라 불렸으며 10세를 전후해 큰 서원이 확립됐다.
정산종사는 13세에 결혼 후 본격적인 구도를 시작했다. 스승을 찾아 전라도로 와서 많은 곳을 찾아다니며 구도하던 중 원기3년(1918) 봄에 전라북도 정읍시 북면 화해리 김해운의 집에서 소태산 대종사를 만나 제자가 됐다. 정산종사는 전라남도 영광으로 가서 소태산 대종사의 교단 창립에 적극 노력했다. 또 소태산 대종사가 전라북도 부안 변산에서 원불교의 교리와 제도를 제정할 때 보필하다가 익산총부와 영산성지에서 후진양성에 주력했다.
정산종사는 원기28년(1943) 소태산 대종사가 열반하자 종통을 이어 후계 종법사가 돼 일제 말기의 탄압과 8.15 광복 후의 혼란, 한국전쟁의 수난 등을 극복하면서 교재정비·기관확립·정교동심·달본명근의 사대경륜으로 소태산 대종사의 유업을 계승·발전시켰다. 정산종사는 원기47년(1962) ‘한 울안 한 이치에 한 집안 한 권속이 한 일터 한 일꾼으로 일원세계 건설하자’라는 게송을 전하고, 63세로 열반했다. 법위는 대각여래위로 추존됐다.
원불교신문 hcc@wo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