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가 거란의 군사에게 격파되자 그 나라 세자인 대광현(大光顯) 등이, 우리나라가 의(義)로써 흥기하였으므로 그 나머지 수만 호를 거느리고 밤낮으로 길을 재촉하여 달려왔습니다. 태조께서는 이들을 더욱 가엾게 여기시어, 영접과 대우가 매우 두터웠고, 성과 이름을 하사하시기까지에 이르렀으며, 또한 그들을 종실의 적(籍)에 붙여서 자기 조상들에 대한 제사[禋祀]를 받들도록 하셨습니다. 그들 중 문무(文武) 참좌(叅佐) 이하에게도, 또한 모두 벼슬과 품계를 넉넉하게 더하셨습니다. 이처럼 멸망한 나라를 보존해 주고 끊어진 제사를 이어가게 해 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시니, 능히 먼 곳에 있는 사람까지 와서 복속하게 만든 것입니다.
ㅡ 최승로, 오조치적평(五朝治績評)[2]
대광현 폐하, 신 발해국 세자 대광현 알현이옵니다.
왕건 오, 어서오라. 짐은 이미 그대가 지난해에
국경을 넘었다는 소식을 들었노라. 잘 와 주었도다.
오늘 이렇게 많은 신료들과 백성들을 거느리고 짐을 찾아오니
어찌 반가운 일이 아니랴.
대광현 망극하옵니다, 폐하.
왕건 발해국과 고려는 그 조상이 같고 뿌리가 같으며 한 형제이니라.
저 극악무도한 거란의 야율아보기가
형제의 나라를 무너뜨린 일을 짐은 늘 가슴 아파 했었노라.
허나 이제 안심하라.
어찌 짐이 보살펴 주지 않으랴. 경들은 들으오.
신료들 예, 폐하.
왕건 발해국은 우리와 같은 고려의 뿌리였소이다.
우리는 지날 날을 잊지 말고 삼한을 통일하는 대로
잃어버린 발해의 영토를 되찾아야 할 것이오.
이 점을 분명히 하도록 하오.
신료들 예, 폐하.
해설: 발해국의 세자 대광현.
해설: 발해는 고구려의 후예, 대조영이 세운 국가이다.
해설: 발해는 230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로서
해동성국이라 불리었던 대국이었으나,
후에 들어 귀족간의 싸움이 치열해졌고
국가의 기강이 문란해지면서 거란에 의해
서기 925년 불과 보름만에 순식간에 무너졌다.
해설: 이때에 세자 대광현이 무리 수만 명을 이끌고 찾아오니
발해국이 망한지 무려 십년 만의 일이었다.
해설: 왕건은 이때 대광현에게 자신과 같은 왕씨 성을
하사하고 황실 족보에 등록하게 하였으며
그와 그를 따라온 관료들에게도 벼슬과 토지와
저택을 차등 있게 주었다.
이때의 인구는 곧 국력이었다. 대광현이 이끌고 온 수만 명의 무리는
당시의 고려에 그만큼 나라 힘을 더하는
큰 계기가 되었다.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의 태조 왕건은 멸망한 국가들을 멸문하지않고
너그럽게 포용하면서 신라도 완벽하지 하지못한 진정한 민족 통일을 완수해냄
태(太)씨는 발해 고왕 대조영(大祚榮)을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태(太)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9,063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112위이다.
본관은 협계(陜溪), 영순(永順), 남원등 14본이 있다. 인구의 대부분이 함경북도에 밀집되어 있다.
태영호 의원도 발해 유민 후손임
조상들이 나라 멸망하고 유민이 되어 고려에 망명했듯이
태영호도 희망없는 북한에서 대한민국으로 망명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