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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0.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대의원 워크숍
장소: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랑2
1. 나의 돌봄 경험 나누기 / 내가 해 봤던 또는 하고 있는 돌봄은?
사실 저희 팀에서는 1번에서 깊이있게 개인적인 질병사, 돌봄경험들을 나누었습니다.
그 안에는 돌봄에 대한 각각의 깨달음의 순간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었고,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 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서기의 개인적인 한계로 인해 개인사와 깨달음의 지점을 분리하여 전달하는데 실패하
여.. 몇날 밤을 고민하다가 상세한 기록 대신 짧게 전달합니다.
저희 팀에서는 각자의 돌봄경험 안에서 나를 재발견한 계기, 돌봄이 가지고 있는 폭력성을 발견한 지점,
가족들의 무책임함, 결국 돌봄의 영역에는 여성만 남게 됨, 아무리 젊어도 돌봄이 필요한 순간은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상시 대비가 필요하다는 점, 정확히 돌봄이 필요한 그 순간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나는 것, 119를 부르기 위해서는 부를 수 있는 판단을 할 수 있는 자부터 그 모든 과정을
곁에 있으며 매 순간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자가 있어야 한다는 점, 아플 때를 위해 차가 있어야 한다는 것, 결국 돌봄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 등등...
참 많은 이야기들을 잘 다루어야할 개인사들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나눠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아래부터는 기록 그대로를 옮겨둡니다.
2. 돌봄 마중물 이야기를 들으면서 든 생각, 느낌, 고민.
- 첫 번째 사례의 경우, 중요하게 고민해봐야 하는 전제 상황이 알 수 없어서 불편한 감이 있었음. 기혼자가 부모와 같이 살면서 남성은 밖에서 돈을 벌고, 자신은 기꺼이 부모의 돌봄을 맡아 하면서 자기 자신을 온전히 죽이지 않고 최선을 다해 자기발전도 하는 경우로 여겨짐. 들으면서 궁금했던 것은 시부모님에게 돌봄이 필요한 상황임이 되었을 때, 전적으로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주부상태여서 맡게 된 것인지 아니면 이전의 다른 관계 선상에서 도맡게 된 것인지 그 전제적 상황이 중요하다고 생각함. 그래서 본인의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했음. 돌봄이 의무는 아닌데 어쩔 수 없이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된 것인가가 중요한 지점인데 사례에서는 힘든 상황들 속에서 어떻게 극복했는지만 보여지는 나레이션이어서 불편한 지점이 있었음.
특별이 저 분이어서 이 나레이션이 불편하단게 아님. 저런 방식으로 진행되어 오는 나레이션이 불편하다는 것. 잘못 되었다는게 아님. 인간의 내면은 훨씬 복잡했을텐대 그 나레이션이 순치된 것 같음. 저 분이 고생을 안 한 것도 아니고 와중에 자신의 경험, 시간들을 정리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분명 중요하다고 생각함. 근데 그 전에 근본적으로 한 쪽은 돈을 벌고 한 쪽은 그 시간을 어떻게든 잘 보내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선택을 하게하는 현실 자체가 불편한 것. 가부장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개인의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 상황이 불편함.
두번째 이야기는, 페미니즘 친구 네트워크로 돌봄이 이루진 과정이 짧아서 아쉬웠음. 가까이 있다고 해서 잘 돌보는 것 아니고, 늘 본다고 사람을 잘 아는 것도 아님. 저 사람을 어떻게 돌봐야 한다고 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훨씬 잘 돌봄. 가족의 돌봄에 비해 구체적으로 친구들로부터 받은 돌봄의 차이를 좀 더 적나라하게 비교하여 보는 것도 좋을 수 있겠다고 생각함. 실제 어떻게 비교가 되는지, 옆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환상을 사회적으로 깨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함. 페미니스트이다 아니다가 중요한게 아니라, 사회가 가족들을 일차적인 보호자로 여기는 것이 중요한 것.
즉, 보호할 수 없는 보호자 시스템을 계속 가족으로 만들어 놓는, 진짜 내가 더 믿는 사람에게는 아무 권리도 주지 않는 이런 것이 깨지지 않는다면, 아픈 상황에서 그런 것들까지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될 것 같아서 극명하게 보여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음.
- 5분의 발표 제안이 있었음. 더 자세한 내용은 보도된 내용에 나와있음.
- 듣다보니, 완전 공감 됨. 언급된 지점들이 비교되어 더 잘 드러났으면 싶음. 가족에 대한 환상을 깨주고, 돌봄에 대한 단위가 개인이 가족인게 참 불편한 상황들을 많이 불러일으키고 서로 너무 다른 개인들을 모두 불편하게 함. 그 환상을 계속 깨주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고 점에 공감함. 그리고 모든 사례의 뒷배경에 대해서 다 알지 못 한 상황일 수 있어서, 우리는 많은 사례들을 더 다양한 관점으로 볼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함. 더 다양한 관점의 더 많은 사례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함. 그럼 우리는 그것을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대비시켜 볼 것인지 준비를 해야 하고, 또 부각시키면서 각 사례별로 어떤 지점들을 갈무리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함.
- 얼마전 민들레의료사협의 나준식 원장님을 모시고 ‘돌봄의 철학’이라는 강의를 했었음. 일반적인 돌봄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 조카 돌봄도 다른 사람에 대한 원망이었지 그 대상에 대한 원망은 아니었음. 서로 돌봄이 굉장히 중요한데. 돌봄은 기본적인 관계망에 기초하는 것이라서, 서로돌봄이 굉장히 중요한데. 그래서 첫 사례에서 저 상황에서 돌봄이 나의 책임감만으로 선택되었을까라는 됫 배경과 내면의 이야기가 궁금. 사람의 동기는 되게 다양한데 저런 선택을 하게 된 내면의 이야기가 궁금함.
- 어쩔 수 없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았나 싶음. 많은 며느리들이 그렇듯이 그냥 당연히 며느리가 시부모를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음. 왜냐면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전에 시아버지도 돌보셨는데 마침 시어머님의 치매 증상도 맞물리게 되면서, 옆에서 얼마나 힘드세요라고 안부를 묻기에도 힘드셔서. 제가 생각하기에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하지 않았더라면, 완전히 무너져 버리지 않았을까 싶어서 하신게 아닌가라고 생각이 듦. 존엄하게 자기를 생각하면서 돌봄하면서 살려고 하지 않았을까라고 하는.
-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저는 그런 것은 없다고 생각함. 질문이 돌봄이 당연하다라고 하는 그 전제가 가능할까라는 것임. 돌봄의 폭력이 당연하게 강요되는 경우가 많음. 그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함. 왜 우리는 그것을 의사가 하지 않는가. 의료사협에서 1차 의료나 이런 이야기를 하는게 왜 그것을 가족에게만 맡기는가, 돌봄을 공적으로 사회적으로 책임을 지자고 이야기를 하듯이 저런 상황이었을 때, 저 시부모님과의 관계나 애정이 크게 작용할 듯 한데 그게 아니라면, 땡전 한 푼 없고 해도 난 안 하게 될 것 같음. 그래서 상대와 상호관계가 중요할 것 같음.
- 복합적인 것 같음.
- 만약에 내가 시부모가 있고 돌봄을 하고 싶지 않지만.. 돌봄비용이 너무 커서 당장 어떻게 도무지 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승질을 내면서 돈도 벌고 돌봄도 하고 있지 않을까 싶음. 스스로의 돌봄비용도 걱정이 되는 판국에 당장 돌봄이 필요한 상황에서 그 비용이 내 월급보다 훨씬 많이 나온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람은 누구나 다 나이 들고 아플 수 있는데 그것을 준비하는 방법은 참 개인적인 전략임. 좋은 돌봄을 받기 위해 지금부터 총알을 모으는 것과 이번 생에는 총알을 모으는게 그른 것 같으니, 아예 좋은 돌봄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전략이 있음.
- 살림의 요양병원이 그래서 너무 간절함.
- 오진으로 인한 기존 의료시스템에 대한 분노를 어떻게 삼켰는가.
- 아직 못 삼킴.
- 나도 오히려 큰 병원에서 의료사고가 더 많았음. 유명 병원 의사가 어떤 약을 넣었을 때 더 부풀어 오르고 고통스러웠는데 당당하게 어짜피 우리가 해주는 것은 확률의 조치라고 말함. (일동 대분노) 그땐 어려서 저렇게 말을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에 대한 감도 없었음.
- 저도 똑 같은 엑스레이를 보면서, 무영만 혹이 있다고 하는 걸 보면서, 대부분의 의사들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싫어하고나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생각했음. 그리고 그들만의 어떤 룰-잘못된 룰-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음.
- 정말 의료소송에서 의사와 병원을 이긴 환자가 있는가. 심지어 그런 환자들을 대상으로 블랙리스트가 있다고도 들었음.
- 병원들의 조치가 다 소용이 없어서 결국 다짐에 왔음. 그래서 스스로의 몸에 대해서 알고 자기를 돌보는 능력을 키울 수 있게 되었음.
3. 안심이 되고, 돌보는 사람도 지치지 않는 돌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일동 돈!)
- 돈이든 같이 돌봄을 나눌 관계망이든 .. 둘 중에 하나가 안정적이어야 확실히 좀 수월하지 않을까 싶음. 우리는 확실한 인적자원이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그것을 위해 우리는 돌봄센터를 만드는 것 아닐까 싶음.
- 나눌 수밖에 없죠. 혼자서 다 감내하고 하기에는 카톡으로 안부 물어주는 것 외에 가끔씩 방문해주는 것 외에 뭔가를 더 이야기할 수가 없음. 힘들다고 너무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렇고.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은 같이 돌봄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있으면 좀 더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 아니요.. 나와 공감해 주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위로이지 해결은 아님. 아무하고도 나눌 수 없음. 처지와 입장이 다르다. 본인이 감당해야할 것이 있는 것. 자꾸만 그것을 관계를 통해서 위로 받고 방식으로 대책을 마련하지 말고, 구조적으로 해결하려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모여야 함. 그것은 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 사적이 인간관계가 없는 사람들은 그것도 필요하지만.. 3100명의 조합원들은 서로 위로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집중해서 찾아가면 좋을 것 같음. 최근에 50+ 더함+협동조합에서 들었는데 ‘케어기버들의 사협’을 만들었음. 보통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자기를 돌보지는 못 해서 그 돌봄을 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이들을 위한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든 것. 돌봄은 자기 시간 외에도 정신적 존엄을 주는 것이라서 지치지 않게 최소한 시간이라도 줄여주는게 사회적으로 해줘야 하는 것. 키즈까페처럼 혼자 하지 않고 숨 쉴 수 도록, 부담을 줄여주는 어떤 시스템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는 더 필요함.
- 양쪽 다 모두 중요함. 개인적으로 화를 잘 안내는 성격이라서 길거리에서 싸우는 연인들을 보면 그렇게 이해가 안 됐음. 그런데 정말 문화충격을 받은 일화가 있음(그리고 그 후로 성격이 변함;). 서로 부딪히고 안 맞는 지점이 있으면 서로 다른 배경과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어느 지점에서 이해가 달랐는지 들여다보고 그래서 어떤 지점에서 오해했는지 살펴보고 점진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되는거라고 생각했음. 왜 감정이 부딪혀야 하는지 자체를 이해하지 못 했음. 이런 처리방식을 보고 상대방이 너무 기분 나쁘다고 했음. 까닭은 그 순간 감정이 앞설 때 그 감정 자체에 대한 위로나 토닥임으로 존중이 필요한데, 그 감정에 대한 적절한 대면없이 해결책을 찾으려고 한다는 것이었음. 그래서 순간에는 감정을 위한 것이 필요하고, 사회적인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함. 아까 돌봄자들을 위한 사협의 이야기가 궁금했던 것이 그들을 위한 전문적인 정신/심리 지원이 필요하고, 아니면 우리는 협동조합이니까 그 사람들을 위한 다른 지원을 할 수 있는 또 다른 협동조합으로 새끼를 치거나; 할 수 있을 것 같음.
- 이 돌봄은 진짜 너무 중요한 문제여서 모두의 인식이 깨는게 굉장히 필요함. 어느 프랑스 지역에 가니 노인들이 다 시골에서 혼자 살더라. 어떻게 혼자 사시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는데 거기서는 그게 당연한 문화가 되어 있었음. 시설화가 아니라 지역에서 살면서 늙어가는게 가능하도록. 그냥 지역에서 살게 하는게 배은망덕한게 아니라는 인식의 깨침이 있어야 함.
- 무슨 치매율이 높지만 집을 나와 배회하면 경찰서에 신고하는게 아니라 산책 중이라고 말해준다는 일본의 어느 섬처럼 도시에서도 내가 믿을 수 있는 커뮤니티에 정주할 수 있는게 중요한 것 같음.
- 그래서 그것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까 맥락을 보면, 밉든 곱든 좋으나 싫으나 가까운 사람들과 인사하고 지내는 것이 엄청 중요하다고 생각함. 사람들은 관계가 있을 때, 무슨 일이 있으면 나설 수 있음. 살면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고, 어느 구름이 비 몰고올지 모르는 것처럼 이웃과 인사하고 다니면서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다니는 것이 필요함. 서로 안 좋아해도 됨! 그러면 119라도 불러 줌.
- 개인적인 과업 같은 것인데.. 언젠가 꼭 연구해 보고 싶은 것이 있음. 사람들이 커뮤니티 안에서 잘 살고 싶은데, 내가 커뮤니티에는 속하고 싶은데 남의 숟가락 개수까지는 굳이 알고 싶지 않음. 어떻게 보면 그런 사회로부터 벗어나려 해왔음. 어떻게 하면 우리는 서로 친말한 거리감을 가진 커뮤니티 조성할 수 있을까. 그 적절한 기준점을 무엇으로 잡아야 할까. 그것을 파악하고 셋팅을 하는 것도 중요할 수 있음. 저 같은 경우 은평에 너무 오고 싶지만, 그 적당한 거리감이 서대문구임. 구체적인 기준은 목욕탕을 맘 편히 다닐 수 있는 것임. 사우나 안에서 인사 안 하고, 나 혼자 오롯이 나 자체로 있다가 즐기고 나갈 수 있음 좋겠음. 어떻게 커뮤니티를 만들 때 그 친밀한 거리감을 셋팅할 수 있을 것인가가 궁금함. 그 뭔가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 인사만!
- 독박돌봄이 왜 일어날까. 돈이 없고 일단. 너무 비용이 높기 때문에 가족한테 의존하게끔 만들어져 왔고, 만약 못 하면 죄책감을 주는 사회 구조인 것. 게다가 시부모님 모시면 그렇다고 내 부모님 모실 수 있는가. 이런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던게 어떻게 우리는 다른 돌봄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많이 시작해야 함. 시부모님을 모시고 하는 것을 가부장제 사회에서 칭찬받을 일이고 옛날 같았으면 열녀비라고 세웠을 일임. 그런데 이것이 옳고 그른가를 따지기 앞서서 이미 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 그렇다면 그것을 너무 비난만 할 수 없음.
- 100% 자연스러운 선택을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음..
- 그리고 이 돌봄을 나눈다고 다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부가 다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님. 지금 논의한다고 내년에 갑자기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고, 시행착오도 있을 것이고 어쨌든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한 출발이라고 생각함.
- 이런 이야기도 하고 불편한 이야기도 하고 해야함.
- 이런 돌봄 이야기를 폭발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함. 기후위기 이런 것보다 우리에게 더 급한 것은 돌봄위기임. 사람들이 24시간 같이 있었던 경험이 없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너무 힘들어 하고 있음. 모두에게 돌봄이 폭발적으로 위기임. 정책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고민하고 있지 않음.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들을 더 많이 사회화시켜야 함. 돌봄은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더 신경써야 함.
-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님을 돌보기 위해 딸이 넷이지만, 친구가 직장을 그만두고 오롯이 돌봄에 집중해야 했음. 모든 활동을 다 멈춰야 했음. 누군가는 진짜 해야 하는 것. 아니라면 비용이라는 것. 그게 대부분 여성이라는 것. (일동 대공감)
- 시타가 말했던, ‘돌봄의 성역할’과 돌봄의 영역 안에 딸, 며느리, 엄마 말고 너무 없음. 그 안에 남성들이 들어와야 한다고 했던 것이 너무 공감이 갔음. 엄마를 돌봐야 했을 때, 아들과 아빠 둘 다 진짜 손톱만큼도 개입하지 않았음.
- 그렇다니까!
- 그 상황이 됐을 때, 못하면 넌 좋은 여성이 되지 못 해라는 압박.
- 그 놈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