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간의 중국 도시기행 1] 청두(成都) 첫날 오전: 무후사
▲ 무후사 가장 깊숙한 곳에 모셔져 있는 제갈량상. 무후사는 제갈량의 시호를 따서 지어졌다. ▲ '삼국성지'로 불리는 무후사의 입구. 현판은 유비의 묘를 뜻하는 한소열묘라고 적혀져 있다.
쓰촨(四川)은 우리에게 <삼국지연의>의 주인공 유비, 관우, 장비, 제갈량이 활약한 무대로 잘 알려졌다. 청두(成都)는 유비가 세운 촉한(蜀漢)의 수도이자 쓰촨성의 성도(省都)다. 청두는 기원전 7~8세기 촉나라가 흥기하면서 중국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 ▲ 유비전 대문에 걸려 있는 '명랑천고' 현판. '명'자는 눈목 변의 밝을 명으로 쓰여 있다. ▲ 악비가 쓴 전출사표. 후출사표와 더불어 고금에 길이 남는 명문으로 꼽힌다.
재미있는 것은 세상에 한소열묘보다는 무후사로 더 알려진 현실이다. 사실 제갈량의 묘는 제갈량이 죽은 산시(陝西)성 한중(漢中)시 멘(勉)현 딩준산(定軍山)에 있다. '명'자를 자세히 보면 눈목 변의 밝을 명으로 쓰여 있다. 날일 변의 명은 자연의 밝음이지만 눈목 변의 명은 인지의 밝음으로 유비의 인덕이 더욱 빛났음을 의미한다.
문 안쪽 바로 옆 벽면에는 출사표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제갈량이 위나라 정벌에 나서면서 후주(後主) 유선에 바친 출사표는 고금의 명문으로 통한다. 후대 수많은 문인들이 출사표를 되새겨 남겼지만, 무후사의 출사표는 남송의 장군 악비(岳飛)가 쓴 친필이다. 악비가 쓴 출사표는 처음에는 해서체로 단정하게 써나가다가 뒤로 가면 행서체로 바뀐다. 악비는 북방 유목민족에게 시달림을 당했던 남송의 현실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했기에, 비분강개한 마음으로 출사표를 써나갔다. ▲ 유비전 전각에는 중앙에는 유비상이, 왼쪽에는 유심상이 안치되어 있다. 유선상은 후대인들이 계속 파괴해 버려 지금은 아예 없애버렸다. ▲ 긴 귀와 수염에 후덕한 풍모가 느껴지는 유비상.
유비전(昭烈殿) 전각 안에는 황제의 면류관을 쓰고 황금색 곤룡포를 입은 유비 상이 안치되어 있다. 오늘날 현존하는 무후사 내 모든 인물상은 청나라 때 찰흙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다른 인물상이 그러하듯 유비 상은 긴 귀와 수염을 강조하고 후덕한 얼굴 표정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 후리부리 한 두 눈과 검은 얼굴 피부가 특징인 장비상.
▲ 유비전 오른편 회랑에는 조자룡을 좌장으로 한 14명의 촉한 무신상이 전시되어 있다. 유비상이 있는 대청의 양 옆 방에는 관우와 장비의 상이 배치되어 있다. 유비, 관우, 장비는 도원에 모여 같은 장소, 같은 날에 죽을 것을 결의했다. 비록 삼형제는 한시에 죽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무후사 유비전 아래 모여 대업 성취를 위해 분투하는 듯하다. 관우와 장비 상 바로 앞에는 그들의 아들과 손자 상도 안치되어 있다.
유비전 대청과 이어진 좌우 긴 회랑에는 문신무장랑 28좌상도 있다. 문신상에는 염통을 위시하여 14명의 촉한 문신들이, 무장상에는 조자룡을 좌장으로 14명의 촉한 무신들이 줄지어 앉아있다. 각 좌상은 관직에 맞는 복장, 인물과 어울리는 얼굴 표정 등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실로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촉한의 기라성 같은 영웅호걸들을 모두 만날 수 있는 장소인 셈이다. 무후사가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7세기 청나라 강희제 때이다. 명나라 말기 농민봉기로 폐허가 된 무후사를 강희제가 직접 명령하여 대대적으로 중건, 확장했다. 중건 후 무후사는 크게 유비전과 제갈량전으로 나누어졌는데, 이를 통해 군신 합장사당의 특색을 갖추게 됐다. 무후사의 명성과 달리 유비전에 앞에 배치된 것은 무후사가 뒤늦게 이전되어 제갈량전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본래 유비의 묘였던 장소였기에 유비전은 제갈량전보다 호화롭고 위엄이 넘친다. 유비전의 전체적인 배치도 임금인 유비를 중심으로 관우, 장비와 녹을 받는 신하들이 도열해 있어 중요한 의식을 집전하는 듯하다. ▲ 무후사 대문의 현판은 쓰촨 출신 역사학자이자 문인인 궈모뤄가 썼다. ▲ 제갈량전에는 중앙에 제갈량이 있고, 오른쪽에 아들, 왼쪽에 손자를 거느리고 있다.
무후사는 유비전 바로 뒤에 있다. 화려하고 위엄 있는 유비전과 달리 무후사는 상대적으로 고아하고 수수하다. 기백이 넘치는 무후사의 현판은 20세기 중국의 대표적인 역사학자이자 문인인 궈모뤄(郭沫若)가 썼다. 궈는 쓰촨 출신으로 청소년기를 청두에서 보내 틈만 나면 무후사를 찾았다고 한다. ▲ 무후사는 육열식 배열구조로 된 청나라식 전통 정원이다. 무후사에는 쉴 곳이 도처에 있어 편안히 감상할 수 있다. ▲ 1997년 무후사로 자리를 옮긴 삼의묘에는 언제나 향냄새가 진동한다.
무후사는 남북을 가로 질러 대문과 이(二)문, 전각, 유비전, 제갈량전 등 육열식 배열구조로 되어 있다. 이는 양조사합의 건축구조로 청나라 때 유행했었다. 전각은 갈산식 지붕에 처마에 종고(鐘鼓)를 달고 좌우 회랑에 진귀한 금수(禽獸)가 석조로 장식되어 있다. ▲ 삼의묘에서 한소열묘로 가는 붉은 벽담 길. 청두를 소개하는 TV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명소다. ▲ 능원으로 들어가는 전돌 안에 있는 비석은 청나라 강희제가 친히 쓴 비문이다.
삼의묘를 나와 걸음을 유비의 묘로 옮겼다. 도중 지나는 붉은 벽담 사이의 길은 무후사의 숨은 진주다. 수백 년 된 대나무 숲 사이에 닦여진 길은 1980년대 초반에 건설됐다. ▲ 삼국문물박물관에는 쓰촨 뿐만 아니라 중국 각지에서 출토된 삼국시대 희귀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 중국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설창용. 오직 쓰촨에서만 볼 수 있는 한나라 유물이다.
유비릉 앞에는 삼국문물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안에는 청두뿐만 아니라 중국 각지에서 출토된 한나라 시대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 여행Tip 1 ▲ 홍등을 걸어놓고 여행객을 유혹하는 진리의 식당과 카페. 밤에는 홍등에 불을 켜서 낭만스런 운치를 연출한다. ▲ 민족거리에는 티베트 관련 기념품과 라마불교 제기를 파는 상점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 여행Tip 2
무후사에서 진한 역사의 향기를 맛보고 나오면, 또 다른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여행객의 발목을 잡는다. 무후사 바로 옆에는 진리(錦里)는 옛 청두의 전통 저잣거리를 복원한 장소다. 진리는 2004년에 문을 열었는데, 입구에는 붉은 색 도포를 입은 점쟁이가 찾는 이를 맞는다. 대문을 들어서면 식당, 찻집, 상점, 술집, 객잔, 노천무대 등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노천가게에는 쓰촨과 청두에서만 볼 수 있는 먹거리와 기념품이 판매되고 있다. 먹거리 음식점 중 산다파오(三大?)라 불리는 떡집은 진리에서 시작되어 전국 각지에 분점을 늘려가고 있다. 진리의 상점 중 그림자 인형극에 쓰이는 인형과 천극(川劇) 관련 캐릭터 상품을 파는 가게는 놓쳐서는 안 될 장소다. 밤에는 가게 입구마다 걸어놓은 홍등에 불이 들어와 낭만 넘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무후사 맞은편에는 민족거리(民族街)가 있다. 이곳이 민족거리로 불리게 된 것은 티베트(西藏)자치구정부의 쓰촨사무소와 쓰촨성 내 티베트자치주나 자치현정부 청두사무소가 몰려 있기 때문이다. 민족거리는 중국에서 세 번째로 큰 소수민족대학인 시난(西南)민족대학 후문과 접해 있어 티베트인, 강(羌)족, 이(彛)족 등이 몰려 살고 있다. 2006년 7월 칭짱(靑藏)철도가 개통되기 전까지만 해도 청두는 티베트로 들어가는 주요 관문이었다. 민족거리에는 라싸로 들어가려는 티베트인으로 언제나 붐볐다. 촨장(川藏)공로로 출발하는 사람들은 무사평원을 비는 라마불교 제기를 사러 민족거리로 왔다. 하지만 칭짱철도의 개통은 민족거리의 상권을 몰락시켰다. 특히 작년 3월에 일어난 티베트 독립시위 이후 중국정부의 감시와 통제가 장기간 계속되면서 몇 안 되던 티베트식 식당들마저 문을 닫았다. 민족거리의 쇠락이 몰락하는 티베트의 현실을 보여 주는 듯 해 마음이 짠해진다. * 덧붙이는 말: 1) 중국 내 꼭 가볼만한 도시나 지역 18곳을 선정하여 소개합니다. 선정된 곳은 한국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거나 한국인이 쉽게 가볼 수 없는 중국 내륙지역을 중심으로 했습니다. 2) 한 도시에 머무는 시간을 3일로 한정해서 그 도시의 역사, 문화, 풍속 등을 살펴보고, 현지인의 인간적 향취를 느낄 수 있는 장소만을 꼽았습니다. 단순한 여행기가 아닌 약간은 무거운 도시 비평기이자, 한 도시의 인문지리, 역사문화, 사회풍습 등을 담은 기행문입니다. 3) 필자는 1996년부터 중국에 거주하면서 경영법률 컨설턴트로 일하며, 지난 8년간 르포 라이터와 취재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 쓰촨성', EBS '세계테마기행: 윈난성', 경인OBS '사진 한 장 속의 세계: 중국·인도' 등을 기획, 취재했습니다. |
출처: 몽상가의 重慶森林 원문보기 글쓴이: 夢想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