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수필문학상 심사평
21년 부산수필문학상과 작품상
권대근
대신대학원대학교 문학언어치료학 교수
서태수는 1991년 <시조문학>을 통해 등단, 시조시인으로 출발하여, 2005년 <문학도시>에 수필이 신인상을 수상함으로써 수필가가 되었다. 부산수필가들의 문학단체인 부산수필문학협회 회장도 역임한 바 있고 현재는 고문을 맡고 있다. 등단 이후 기존 수필가들을 긴장시키는, 주목받을 좋은 수필을 많이 쓰고 있다. 수필집 <부모는 대장장이>를 2008년도에 펴냈고, 2017년 펴낸『조선낫에 벼린 수필』은 세종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부산수필문학상 수상작 <늦가을 기수역>은 결말부, “이제 기수역의 소용돌이 속으로 침잠할 숙명의 시간. 늦가을이 저물고 겨울로 접어들면 생명력이 더욱 질겨진 물길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들 살점으로 새긴 물길은 난바다에서도 생명성 끈끈하게 유전하는 삼투조절능력을 지니게 될까. 환태를 할 수 있을까. 허물벗기를 할 수 있을까. 아니면 털갈이라도 할 수 있을까./ 늦가을 기수역은 현재에 몸 담그고 미래를 설계하는 입체적 시공간이다. 맥맥히 일고 잦는 물이랑 갈피마다 상징으로 아로새긴 금석문이 일렁이는 강은 우리의 등피다. 동그란 물방울로 살[矢]같은 물줄기를 만들어 일일신 탄탄해지는 우리의 삶이었다. 숱한 발자취 새겨진 강가 무성한 갈대숲에는, 바람 실은 파도의 물방울들 딱따글 뭉쳐 구슬발을 엮을 수 있겠지. 그 구슬발 속에 우리 빚은 문학도 영롱한 빛을 발하며 알알이 어우러져 있겠지./ 탄탄한 물길 속 팽팽한 생명력이 새로운 물머리로 뭉쳐지는 늦가을 기수역. 뿌연 재티를 날리며 붉은 하루해가 낙동강 서녘으로 기울고 있다.”라는 주제의식의 의미화에 힘입어 이 수필은 문학적 형상화에 성공한 작품이다.
이 수필은 자신의 수필론, “계절의 아름다운 채색을 담아 아무리 우아하게 굽이지더라도 물줄기는 한 가닥 삶의 일상일 뿐이다. 또한 아무리 특별한 경험이 물줄기에 얹혔더라도 그 토막은 일상의 한 조각일 뿐 수필은 아니다. 흐르는 그대로의 물길 토막은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해도 신변잡기에 불과하다. 순행의 물줄기가 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역동인생이 강물이라면 수필은 물결이다. 강물은 순리로 흐르고 물결은 윤슬로 반짝인다. 순리로 흐르는 물줄기에는 역동의 힘이 가미되어야 물결이 일어난다. 이 역동의 힘이 미학적 변주의 원동력이다. 이 변주는 작게는 반짝이는 잔물결에서부터 영롱한 물방울을 거쳐 찬란한 물보라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게 형성된다. 動의 변주를 일으켜야 한다. 이 변주가 미적 감각을 발아發芽시키는 수필 창작의 씨앗”을 구체화한 작품으로 봐도 좋겠다.
“시간을 묵히고 공간을 누비며 인류 발자취의 도도한 흐름으로 굽이지는 강. 그 강물에는 다양한 물줄기들이 섞여 뒹굴면서 파란만장한 삶을 엮어낸다. 역사의 강물은 수평을 지향하고, 인생의 물줄기는 행복을 추구하고, 수필의 물결은 아름다움을 창조한다. 휘도는 물굽이로 물살을 조절하면서 잔잔한 물거울로 비추다가, 때로는 살여울로 몰아치는 변주를 가미하면 비로소 윤슬로 반짝이는 수필의 물결이 인다. 이 물결에다 문예적 요소를 가미하면 드디어 수필이 탄생된다.”에 부합하는 작품이 바로 <늦가을 기수역>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작업은 물머리에서부터 꼬리까지 관절 하나하나를 긴장감 있게 장악하는 긴밀 구성, 반짝이는 윤슬 한 잎 한 잎에 어울리는 살아 있는 표현, 물굽이의 완급에 상응하는 호흡의 장단, 물결의 진폭에 걸맞은 어조를 싣는 일이다.”라는 수필론은 “동그란 물방울로 살[矢]같은 물줄기를 만들어 일일신 탄탄해지는 우리의 삶이었다.”라는 이 작품 속 문학적 진실을 절묘하게 뒷받침해준다고 하겠다.
당선작은 개인적 체험이라는 의미를 보편적 가치라는 의미화로 매듭지음으로써 문학의 두 요소인 구체성과 보편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고 있어 감동을 준다. 낙동강 물길의 운명을 거부하지 않는 자연의 순수, 순리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거기에 의미를 두는 작가의 철학적이고 지혜로운 시각이 공감을 가져와서 좋은 작품이라 하겠다. 작가는 삶의 깨달음을 통해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사는 것이 참다운 삶이라는 것을 ‘물줄기’라는 제재를 통해 잘 보여주었다. 인생에서 노력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듯이 강물도 문학도 그렇다. 자연스러운 체험과 그 깨달음이 주는 내용들로 구성된 멋진 글이어서 이 수필은 좋은 수필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작품상 수상자 최순덕은 2003년 <문예시대> 수필로 등단하여, 부산펜문학작품상, 해양문학상 우수상, 풀꽃수필문학상, 부산수필문학작품상, 부산가톨릭문학상 대상을 수상하여 이미 문재를 인정받고 있는 작가다. 그녀의 작품세계는 일상에서 접하는 사물과 현상에 대하여 본질적으로 다가가며, 삶의 경험을 녹여 접목하고 어렵지 않으면서 누구라도 쉽게 읽어내려 갈 수 있는 글이고자 노력하며, 그 속에 사색의 흔적과 철학의 무늬를 넣어 본격수필을 지향하고 있다.
한국문학의 전통 속에서 인연은 흔히 삶 속에 운명을 끌어들이는 힘으로 작용한다. 우리는 대체로 운명이란 선험적으로 주어지고, 그 힘에 의해 생의 인연이 이끌린다는 믿음을 갖고 산다. 하지만 최순덕은 운명의 힘에 의해 인연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삶의 지혜를 발휘하여 다스려야 할 대상으로 본다. 최순덕은 이런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작가다. 그녀의 수필적 테마의 한 축은 동반으로 가는 인연 열차에서 들을 수 있는 소담한 가족들과의 갈등 극복기이며, 사랑과 화해의 축전이기 때문이다.
사랑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의미있고 소중한 것이 부부의 인연이 만들어내는 사연이다. 특히 부부의 연으로 이어진 관계 속의 그 절절한 사랑은 무엇에 비교할 수 없다. 최순덕 수필은 주로 인간을 둘러싼 끈끈한 삶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형상화시키는 것을 특색으로 한다. 부부의 인연을 축으로 하는 최순덕 수필의 한 특성은 수상작 <결혼반지>라는 수필에서, 그녀는 삶의 영역에서 갖는 사랑과 행복, 만남과 인연의 가치를 ‘반지’이라는 제재로 형상화하여 수필미학이라는 고도로까지 잘 나아가고 있다. ‘결혼반지’를 ‘신비의 약’으로 전이시켜 언어를 순질이화하는 능력도 돋보이는 점이다.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주제의식을 구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남편의 보이지 않는 배려의 사랑을‘남편의 마음이 보석 같았다’라는 문장을 끌어와 남편의 인간미를 물씬 풍겨나게 하는 시각적 이미지의‘형상미학’을 보여준다. 남편이 자신의 반지보다도 외숙모님의 반지와 목걸이를 먼저 해주자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나서 보석에 대한 갈증이 깊어졌다고 고백하는 데서 작가의 솔직한 일면도 감동을 배가한다.
작가의 말대로 ‘결혼식 때 예물을 제대로 못해 준 남편은 마음에 걸리는지 수시로 반지나 보석을 하나씩 해주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그 삼색반지다. 새끼손가락에 하나씩 끼워보면서 아직도 어려웠던 시절이었던 그때에 처음으로 만든 카드를 사용했다는 기억과 함께 약속을 지키려고 애썼던 남편의 마음에 감동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라고 보이지 않게 도와준 남편의 사랑도 잊지 않겠다는 작가의 통큰 마음이 결혼반지도 없이 결혼식을 올린 평자를 울린다. 작가는 살아가면서 있었던 남편의 특수한 상황의 이해와 그에 따른 고뇌의 단면을 성찰을 통해 빛나는 사랑의 가치로 그려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바로 그 긴급한 상황이 자신이나 자식의 일도 아닌 조카의 대학등록금이었지만. 외삼촌의 고마움을 잊는다면 인간이 아닐 터이다.’라는 문장은 '반지’ 이야기에서 불쑥 튀어나온 작가의 ‘조카’에 대한 경고다. ‘반지’에 쌓인 한을 이 이상 어찌 표현하겠는가. 이런 저회성은 수필양식이 가진 멋이고 매력이다.
깊은 철학적 사유와 타자옹호 사상 그리고 진실된 사람-되기 정신 속에 삶의 참된 의미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결혼반지>를 통해 최순덕은 우리에게 전해주어 믿음직스럽다. 자신에게 주어진 제도적 기호체계를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그것에 순응하지 않는다는 데서 그녀의 참됨을 알 수 있었다. 최순덕은 수필의 문학적 물음이 나를 넘어 사회로 향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아는 분이다. 수필의 멋과 맛을 제시한 그녀의 본격수필세계는 다른 수필가들에게 좋은 가르침이 될 것으로 믿는다.
심사위원장 권대근/문학박사, 명예철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문학언어치료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