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60대 퇴직자를 위한 삶의 방향, 그 부단한 노력의 성취물>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우리 주위에는 고만고만한 분들이 퇴직 후에, 자신이 추구하고자 마음먹었던 삶의 목표를 실행하지 못하고 또 다른 생활전선에 뛰어들고 있는 분들을 종종 보게 된다. 물론 새로운 사회생활을 비판하거나 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그들 대부분이 퇴직 전 4~50대에는 만날 때마다 주야장천 60대 이후에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며 떠들었던 삶의 방향과는 너무나 다른 결정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통해 제2의 열정을 불태우고 싶다고 거품을 물고 내뱉던 그들의 지난 말들이 생각난다. 그런데 “왜 그들은 오직 나만을 위해 살 수 있는 인생 최초의 ‘진짜 자유’의 시간을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또 지난 시절과 같은 일을 되풀이 할까?” 우리 인생은 60세 전까지 회사와 가족을 위해 타인의 기준과 의무감으로 살아왔다면, 정년퇴직부터는 나 자신을 재정의하는 ‘정체성 창조’의 단계로 나아가겠다고 그렇게 외치던 분들이었다. 근데 그들의 외침은 텅 빈 하늘 속, 공허한 파장으로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해도, 알을 깨고 날아오른 아프락사스처럼 스스로 깨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야 한다.
내 가까운 지인 한 분은 집안 대대로 농사짓던 고향으로 돌아가 옛집에서 농부의 생활을 시작했고, 또 한 분은 친척의 소개로 지역 공단의 공장 관리인으로 일하고 계신다. 그리고 또 한 분은 남해안 관광 섬에서 숙박업을 하고 있다. 모두 다 번듯한 직장인으로 배움도 많았던 분들이었다. 퇴직 전에는 무언가 사회에 보탬이 되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면서, 때로는 문화예술인(문학인)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퇴직을 하더니, 보상 차원에서 외국 여행을 장기간 갔다 오고 난 후, 몇 개월이 지난 후에는 외롭고 지루한 생활에 조급함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다시 생활전선에 뛰어들고 말았다.
이분들의 지난 약 20여년 간의 생활과 내뱉은 생각들을 돌이켜 곰곰이 분석해 보니 몇 가지 문제점이 드러났다. 먼저 자신에 대한 객관화와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흥미로움을 지속할 수 있는 것, 어떠한 비판과 비아냥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갈망을 추구할 수 있는 것, 이러한 목표를 잡아 그 방향을 나의 유일한 나침반으로 삼고, 뒤돌아보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 이에 그 방향을 설정했다면, 이제는 거창한 계획 대신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 하고, 자기 내면의 내적 동기가 명확해야만 흔들리지 않고 우직하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아무런 구체적인 준비도 없이 괜한 공상(空想)만 내세워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장담하건대 현대 사회에선 어떠한 성취도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일은 없다. 명심하라. “낙숫물이 바위에 구멍을 만드는 것은 물방울의 중력 때문이 아니라, 그 부단함 때문이다”
사실 한창 젊은 시절부터 짜투리 시간을 활용해 관심 분야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거나, 취미 생활을 꾸준히 하면서 정년 이후에도 이어갈 수 있는 준비를 미리 해놓아야 한다. 또한 명함 없이 새롭게 시작해야 할 일에 대한 몸과 마음의 태도도 미리 다짐을 해 놓아야 한다. 게다가 주변의 시선과 기대에 맞춰 살다가, 남들의 비아냥에 맞서 스스로 우뚝 홀로서기라는 자기만의 고독한 실존적 위기에 대응하지 못한 점도 큰 실패의 요인이 된다. 또한 ‘왕년에, 아름다운 시절’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도 있다.
게다가 새로운 분야에서 자신이 만족할 만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또 다른 오랜 시간 동안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묵직한 신념도 갖추어야 한다. 이에 지루함을 견딜 건강한 육체와 적당한 재력, 관심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 등은 반드시 갖춰야 할 필요조건이다. 지루함을 견딘다는 것은 단순한 끈기가 아니라, 내가 지금 하는 일에 의미가 있음을 믿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사람은 자신이 의지로 선택할 때 살아 있음을 느낀다. 보통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년 퇴직 전까지는 타인이 만들어 놓은 사회 시스템에 적응하여 주체적으로 살기 힘들다. 그러나 60대부터는 자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와 더불어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할 나이다. 나이가 들어 가장 후회하는 것은 대단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이 아니라, '하고 싶었던 일을 끝내 미루고 살았던 것'이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으니 평소 꿈꾸던 작은 일들을 시도해 봐야 한다. 게 중에 매일 몸을 움직이는 규칙적인 신체 활동(운동, 산책)을 루틴으로 삼아야 함을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한 가지 충고할 말이 있다. 지금 문화예술 분야에서 한 획을 긋고 계신 분들은 한평생 남들의 온갖 조롱을 마주하면서, 배가 고파 초근목피로 견뎌온 사람들임을 명심해라. 번듯한 직장에서 60평생 호의호식하며(상대적 관점) 퇴직한 사람들이 어느 날 “내가 왕년에 누군지 아냐?”며 무임승차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나는 김중식 시인의 <이탈한 자가 문득, 한 획을 긋고 사라지는 별똥별>을 좋아한다. 이 시는 마치 나의 이야기를 말하는 듯하여 그렇다. 사회 시스템이 만든 길들여진 편안한 길을 주저 없이 버리고, 남들이 걸어가는 번듯한 길에서 이탈하여 내가 가고픈 고난의 길을 자처해서 20년이나 달려 왔다.
나 역시 지금까지 치열하게 산다고 하는 몸부림이, 김중식 시인의 말처럼 결국은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도는 꼴이 아니더냐. 젊은 시절에는 이탈의 자유를 꿈만 꿨지, 일상의 궤도에서 벗어나는 것을 무척 두려워했었다. 그런고로 “혹여 우리와 다르게 살고 있는 친구를 오해하고 비아냥거리며 살아오지 않았나?” 반성해야 하며,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상처받는 것을 무서워하고 뒤로 숨어버리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어찌 한갓 인간 주제에 타인의 생각과 삶을 다 이해하고 살 수 있으랴. 그저 한 획을 긋고 사라지는 별똥별을 부럽게 바라볼 뿐. "인생은 자신의 몫을 찾아가는 여정" 오늘 밤도 깊어간다.^^
<이탈한 자가 문득, 한 획을 긋고 사라지는 별똥별> 김중식 시인.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잘 지내시죠^^ 늘 강건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