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미군이 1950년 10월 3일 촬영한 55보급창 전경. 바다 건너 편이 영도이다. 북항 자성대부두가 건설되기 전의 모습이다. 이 사진은 부산시와 부산발전연구원이 2012년 1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을 통해 입수한 400여 장의 사진 가운데 하나다. 부산발전연구원 제공 |
- 1980년대부터 보급창 이전 운동
- 선거 때면 나오는 단골공약 불구
- "타 기지와 성격달라 통폐합 불가
- 옮길 땅 · 부두 확보돼야만 논의"
- 국방부·미군 거부로 번번이 무산
- 부산시민공원 탄생시킨 것처럼
- 지역사회 관심과 공감대 모아야
55보급창과 하야리아 캠프. 부산의 굴곡진 근대사를 간직한 애환의 장소다. 하야리아 땅은 일제강점기 일본군 병참경비대·포로수용소로 사용됐다. 일본이 패망하자 주한미군 부산사령부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하야리아와 약 4㎞ 떨어진 55보급창도 해방 전까지 일본의 석탄 저장소였다. 역시 해방과 함께 미군이 접수했다. 2000년대 두 미군기지의 운명은 갈렸다. 하야리아 캠프는 2002년 한미 연합토지관리계획(LPP) 개정에 따라 폐쇄가 결정됐다. 부산시는 국방부로부터 이 땅을 사 지난해 부산시민공원을 개장했다. 반면 55보급창은 여전히 이방인의 공간이다.
■'우리 땅 찾기 운동' 절반의 성공
부산 시민단체 회원과 대학생들이 2006년 8월 부산 동구 55보급창 앞에서 미군기지 폐쇄 결의대회를 갖는 장면. 국제신문 DB
1980년대 진보단체가 주도했던 미군기지 반환 운동은 1990년대 전환기를 맞는다. 1993년 5월 '하야리아 부대 이전 촉구 결의안'이 부산진구의회를 통과했다. 부산 동구청도 1994년 12월 "낙후된 범일5동의 개발이 55보급창 탓에 지지부진하다. 55보급창 이전을 주한미군에 요청해달라"는 내용의 건의서를 부산시에 전달했다.
1995년 3월 출범한 '우리땅 되찾기 시민대책위원회'는 ▷하야리아 땅 53만여 ㎡ ▷55보급창과 주한미군 항만관리사령부 부두(북항 8부두) ▷부산 중구 대청동 미국문화원(현재 부산근대역사관)의 반환을 촉구했다. 당시 신한국당 정재문(부산진) 의원은 김영삼 대통령에게 하야리아 미군기지 반환을 요청해 '정부 차원에서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시민사회운동도 진화를 거듭했다. 미국문화원(1996년 폐쇄)의 관리권이 부산시로 이관된 1999년 4월 '우리 땅 하야리아 되찾기 시민대책위'와 '아메리칸센터 반환을 위한 시민대책위'가 '미국 점유 부산 땅 되찾기 범시민추진위원회'로 통합됐다. 그해 12월 5일에는 당시 하야리아 부대에 근무하는 미군 장교들의 숙소인 유솜(USOM·현 부산국립국악원) 부지가 반환됐다.
한미 당국은 마침내 2002년 LPP를 변경해 하야리아 부대를 비롯한 34개 주한미군기지를 17개로 통폐합하는 데 합의했다. 2004년에는 '하야리아 부대 2005년 조기 반환'이 확정됐다. 지난해 6월 하야리아 땅은 부산시민공원으로 재탄생했다. 부산그린트러스트 이성근 사무처장은 "부산시민공원이 탄생한 원동력은 시민의 관심과 참여였다. 1997년에는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2000여 명이 모여 하야리아 부대 담벼락을 인간띠로 둘러싸기도 했다. '우리는 시민공원을 원합니다'라고 적힌 스티커도 집집마다 부착됐다"고 회상했다.
■진척없는 공약에 피로감만 쌓여
그러나 55보급창과 8부두는 LPP 개정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동구청이 2010년 7월과 8월 주한미군을 찾아 "55보급창 이전이 어렵다면 일부라도 축구장과 족구장을 만들어 시민에게 개방하자"고 제안했으나 미군 측의 거부로 무산됐다. 김해몽 부산시민센터장은 "하야리아 부지를 공원화하는 과정에서 환경오염과 반환 비용 분담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졌다. 또 부산시민공원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대한 논의가 길어지면서 시민사회의 역량이 55보급창 이전까지 확산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55보급창은 정치권의 화두이기도 했다. 여야는 선거철마다 '55보급창에 돔구장을 짓거나 공원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정의화(부산 중·동구) 국회의장도 19대 총선에서 "부산항 북항이 세계적 미항이 되려면 55보급창이 이전해야 한다. 2017년까지 국·시비 2000억 원을 확보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0대 총선이 1년도 남지 않은 지금까지 외교부·국방부·주한미군과의 협의조차 진행되지 않고 있다. 정 의장 측은 "주한미군주둔군지위협정(SOFA·소파) 개정은 물론 이전 후보지 물색과 이전경비 마련까지 복잡하게 얽혀 공약 이행률이 낮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부산시장 선거에서도 55보급창은 뜨거운 쟁점이었다. 당시 새누리당 서병수 후보는 "55보급창을 지혜롭게 활용해야 한다. 북항재개발 사업과 연계해 원도심을 재생하겠다"고 말했다. 그해 동구청장 선거에서도 새누리당 박삼석 후보와 새정치민주연합 성재도 후보가 '제2의 부산시민공원을 55보급창 자리에 유치하겠다'는 공약을 나란히 앞세웠으나 아직 성과가 없다.
55보급창 이전의 걸림돌은 대체부지 확보. 55보급창은 기능상 다른 미군기지와 통폐합하기 어렵다. 부대의 위치도 항구와 가까워야 한다. 따라서 대체부지와 대체부두가 확보돼야 본격적인 이전 논의를 할 수 있다는 게 국방부와 주한미군의 입장이다.
경성대 강동진(도시공학과) 교수는 "55보급창은 북항 재개발과 부산항대교 건설로 군사적 기능을 상실하고 있는 만큼 원도심 재생 차원에서도 이전을 준비해야 한다. 지역사회의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 "원도심 발전 걸림돌 보급창 이전 서둘러야" 시의회도 목소리 높인다
지역 정치권도 55보급창 이전에 대해 본격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부산시의회 경제문화위원회 김종한(동구 2·사진) 의원은 지난 7월 열린 제246회 임시회 5분발언에서 "원도심 개발을 가로막는 금싸라기 땅이 방치돼 있다"며 민·관·정이 참여하는 '55보급창 부지 반환 추진위원회' 구성을 촉구했다. 김 의원은 "55보급창의 공원화를 담은 2030년 부산시 도시기본계획의 시효가 15년 남았다. SOFA 개정과 대체부지 확보 등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시간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부산진·동·남구의 경계지점인 55보급창이 원도심 발전의 '애물단지'로 전락한 만큼 북항 1·2단계 재개발이 끝나는 2030년까지 이전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이 김 의원의 주장이다. 김 의원은 "55보급창에 명품공원을 조성해야 고밀도 개발이 진행 중인 북항도 숨통이 트인다. 군사적 측면에서도 보안이 잘되는 도심 외곽으로 55보급창을 이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산시의회 복지환경위원장인 박재본(남구3) 의원도 지난 1일 개회한 제247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부산항의 미래, 해양산업클러스터로 준비하자'라는 주제의 5분 발언을 통해 북항 일대에 대한 종합적인 개발계획을 부산시가 수립하라고 요구했다. 박 의원은 "표류하던 '북항 해양경제특별구역법'이 '해양산업클러스터법'이라는 이름으로 연내 국회통과를 앞두고 있다"면서 "55보급창과 옛 부산외대 부지를 포함해 중·동·남·영도구 등 북항 일대에 대한 그랜드 비전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55보급창 이전 운동의 역사 | 1945년 이전 | 일제가 북항 매립해 석탄저장소로 사용 | 1950년 | 주한미군이 55보급창으로 사용 | 1980년대 | 진보단체 중심우리땅 되찾기 운동 | 1993년 | 부산진구의회 '하야리아 부대 이전 촉구 결의안' 채택 | 1994년 | 부산 동구청 '55보급창 이전' 부산시와 주한미군에 요청 | 1995년 | 우리땅 되찾기 시민대책위원회 출범 하야리아·55보급창 반환 요구 | 2002년 | 한미 연합토지관리계획 개정으로 하야리아 반환 결정. 55보급창은 제외 | 2004년 | 부산시 '55보급창 이전부지 활용 기본방침(공원화)' 확정 | 2010년 | ·부산 동구청 "55보급창 일부 체육시 설로 개방하라" 건의 ·국방부·주한미군 "현실적 불가" 회신 | 2012년 |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정의화 후보가 55보급창 이전 공약 | 2014년 | ·새누리당 유기준 의원, 국회에서 북항 재개발에 따른 안보상 문제점 지적 ·부산시·국방부 '부산항을 이용한 전시 병력·군수물자 수송 문제점' 협의 ·부산시장 선거에서 서병수 후보가 "55보급창과 북항 재개발 연계" 공약 | 자료 : 부산시 부산발전연구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