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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과 나눈 우정(신과의 대화)」 — 닐 도날드 윌쉬 지음 --
「신을 알고 믿고 사랑하고 껴안아라」
너희가 생각할 때, 너희는 창조하고 있다. 모든 생각은 창조(創造)이다. 그래서 너희가 어떤 문제를 놓고 생각하는 것은 해결책을 창조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해결책을 창조할 수도 있지만, 이미 창조된 해결책을 그냥 자각할 수도 있다.
너희 중 일부는 아주 느린 창조방식을 쓰고 있다. 너희는 생각하는 것으로 창조하려 한다. 생각은 가장 느린 창조방식이다. 창조하기 위해서는 너희 정신이 자료를 가져야 하지만 너희 존재(Being)에게는 자료란 것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
이것은 자료란 것이 환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환상에서 창조하려 하지 말고, 있는 것에서 창조하고자 하라. 정신상태가 아니라 존재상태에서 창조히라.
필요한 것은 생각에서 벗어나서 네 생각을 뒤로 하고 순수한 있음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너는 진실로 위대한 창조자들, 진실로 위대한 문제 해결사들이 자신에게 문제가 던져졌을 때, "흠...... 잠시 그 문제를 갖고 있게 해줘요....." 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는가?
천재가 되려면 정신이 나가야 한다! 천재란 답을 창조하는 사람이 아니라 항상 거기에 있던 답을 찾아내는 사람이다. 천재는 해결책을 창조하지 않고 해결책을 찾아낸다. 사실 그것은 발견이 아니라 되찾기이다.
천재는 뭔가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잃었던 그것을 그냥 되찾았다. 그것은 "한 때 잃었지만, 이제 다시 찾아졌다" 천재는 너희 모두가 잊었던 것을 기억해 낸 사람이다. 너희 대다수가 잊은 것 중 하나가 모든 것, 모든 해결책, 모든 답, 모든 체험, 모든 이해가 지금이라는 영원한 순간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사실 너희가 창조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필요한 것은 너희가 원하는 전부와 너희가 추구하는 전부가 이미 창조되어 있음을 깨닫는 것뿐이다. 이것이 너희 대다수가 잊었던 것이다. 내가 너희를 일깨우기 위해 사람들을 보내, "너희는 청하기도 전에 대답받았다" 고 말하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이 그렇지 않다면 나는 너희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리라. 그런데도 너희는 그것들을 놓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들과 관련된 깨달음의 상태로 옮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너희가 "자각하며 생각할(think aware)" 수는 없다. 너희는 단지 "자각하고 있을(be aware)" 수만 있다.
자각은 존재상태이다. 그러니 살아가면서 너희에게 난처하거나 당혹스런 일이 생기더리도 너희는 그것에 신경쓰지(mind) 마라. 너희에게 문제가 있거나 너희가 부정성과 부정적인 힘과 부정적인 감정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도 절대 그것에 신경쓰지 마라.
너희가 그것에 "신경쓰는" 것은 그것에 굴복하는 것이다. 너희는 그것에 신경쓰기 때문에 그것에 지배되고 있다. 정신에서 벗어나라. 잊지 마라. 너희는 인간 존재(human being)이지, 인간 정신(himan minding)이 아니다. 그러니 되어있음(beingness) 속으로 옮아가라.
네가 느끼는 것이 네가 되어있는 것이다. 내가 너더러 느낌은 영혼의 언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지금이라는 순간들마다 네가 뭔가가 되어 있다고 말하는 중이다. 그리고 네가 무엇이 되어 있는지 정확하게 말해주는 것이 네가 느끼고 있는 것이다.
네 느낌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네가 그 순간에 무엇이 되어 있는지 네게 정확하게 말해준다. 그러니 너는 자신이 되어 있는 상태만 바꾸면 자신이 느끼는 상태를 바꿀 수 있다. 너는 다른 식으로 "있기"를 선택할 수 있다.
네가 느끼는 방식은 네가 되어있는 방식에 대한 반응이다. 그리고 너희는 그것을 조절할 수 있다. "되어 있음" 은 너희가 자신을 놓는 상태이지 반응이 아니다. "느낌" 은 반응이지만, "있음(being)" 은 반응이 아니다.
네 느낌은 네가 되어 있는 상태에 대한 네 반응이지만, 네 있음은 뭔가에 대한 반응이 아니다. 그것은 선택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자각하지 못한다. 대다수 사람들이 자신이 자기 현실을 창조하고 있다는 것을 잊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잊었다고 해서 그것이 너희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그냥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너희가 모른다는 뜻일 뿐이다.
"아버지시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제 너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안다. 그것이 이 대화 전체의 목적이었다. 나는 너를 깨우기 위해 여기에 왔다. 이제 너는 일어났다. 너는 자각하고 있다. 자각은 있음의 상태이다. 너는 자각하고 "있다."
이런 자각의 상태로부터 너는 어떤 다른 되어 있음도 선택할 수 있다. 너는 현명하거나 멋지게 있기를 선택할 수 있다. 너는 인정 많고 이해심 많게 있기를 선택할 수 있다. 너는 참을성 많고 관대하게 있기를 선택할 수 있다.
그냥 그렇게 있어라. 행복하게 "하려고" 애쓰지 마라. 그냥 행복하게 "있기를" 선택하라. 그러면 네가 하는 모든 일이 거기서 샘솟으리니. 모든 것이 그렇게 있는 것에서 생겨난다. 말하자면 네가 되어 있는 그것이 네가 하고 있는 그것을 낳아준다. 언제나 이 점을 잊지 마라.
어떤 순간이든 행복하게 있기를 선택하는 사람은 너다. 슬프게 있거나, 화나 있거나, 느긋하게 있거나, 관대하게 있거나, 자각하고 있기를 선택하는 것도 너다. 네 외부의 어떤 것이 아니라, 네가 선택하고 있다. 게다가 너는 그것들을 완전히 임의로 선택하고 있다.
자, 여기에 엄청난 비밀이 있다. 너는 어떤 일이 일어나서 네가 되어 있는 상태를 선택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너는 단순히 네 체험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창조할 수 있다.
사실 너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게 하고 있고, 순간 순간마다 그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잠자면서 걷는 사람처럼 너희가 의식하지 못하면서 그렇게 할 수는 있다. 만일 그렇다면 이제 너희가 깨어날 때가 왔다.
그런데 너희는 생각하는 동안에는 완전히 자각할 수 없다. 생각은 또 하나의 꿈꾸는 상태다. 너희가 생각하고 있는 대상 자체가 환상(幻像)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환상 속에 살고 있고, 자신을 거기에 놓아 왔기에 그 환상에 뭔가 생각을 주어야 했다.
하지만 잊지 마라. 생각이 현실을 창조한다. 그러니 네가 싫어하는 현실을 창조했다면 그것을 재고(再考)하지 마라! 그러니 잠깐 잠깐씩 생각을 완전히 멈추는 것이 좋을 것이다. 더 고귀한 현실과 만나고, 환상에서 빠져나오려 한다면 말이다.
우선 고요히 있으라. 그런데 고요히 있으라는 내 말에 주목하라. 나는 고요히 생각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잠시 고요히 있고 나면 너는 생각이 적어도 약간은 느려지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생각은 가라앉기 시작한다. 이제 자신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 생각하기 시작하라.
네 생각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생각하기 시작하라. 네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생각하라. 이것이 깨달음으로 가는 첫 단계이다. 그건 실제로 네 정신을 날려버리고 있다. 너는 그것을 놓아버리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네가 이런 무심한 상태에 있는 것을 보면 당연히 "너 정신이 나갔니?" 라고 묻겠지만 너는 "맞아, 굉장하지 않아?" 라고 대답해도 좋다. 입력 감각의 분석기인 네 정신이 들어오는 그 모든 자료를 분석하길 그만 두었기 때문이다.
너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대신 너는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생각하고 있다. 너는 자신의 생각을 집중하기 시작하고 있으니, 얼마 안가면 아무것에도 생각을 집중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우선 특정한 뭔가에 집중하라. 너희가 아무 생각에도 집중하지 않으려면 먼저 뭔가에 집중해야 한다. 여기서 문제의 일부는 정신은 거의 항상 너무 많은 것들에 집중된다는 데에 있다. 정신은 백 가지도 넘는 근거들에서 나오는 입력 자료들을 쉬지 않고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정신은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 자료들을 분석하면서 너 자신에 관한 정보들과 너와 네 주위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관한 정보를 네게 보내고 있다. 네가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않고 싶다면 너는 먼저 한꺼번에 모든 것에가 아니라 특별히 어떤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그것들을 단순한 것으로 만들어라.
깜박이는 촛불을 가지고 시작할 수도 있다. 초를 바라보고, 불꽃을 바라보고, 네가 그것에 대해 뭘 알아채는지 깨달아라. 촛불 속 깊이 응시하라. 불꽃과 함께 있어라.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마라. 그냥 그것과 함께 있어라. 잠시 후면 눈을 감고 싶어질 것이다.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시야가 흐려질 것이다.
가급적 이름 붙이기를 피하라. 너는 그것을 분석하면서, 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싶어한다. 하지만 뭔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네가 그것과 그냥 함께 있는 걸 막는다. 그러니 이렇게 할 때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마라. 그냥 그 체험과 함께 있으라.
눈을 감고 싶다고 느껴지면, 그냥 눈을 감아라.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마라. 그냥 눈꺼풀이 저절로 감기도록 내버려두라. 네가 굳이 눈을 뜨고 있으려고 싸우지 않는 한, 눈꺼풀은 자연히 감기기 마련이다. 너는 지금 네 입력 감각들을 제한하고 있다.
이제 네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라. 네 호흡에 집중하라. 특히 들이마시는 숨에 귀를 기울여라. 너 자신에게 귀 기울이는 것은 네가 다른 것들에 귀 기울이는 것을 막아준다. 위대한 발상은 이럴 때 나온다. 네가 자신의 들숨에 귀 기울일 때, 너는 자신의 영감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그리고 조용히 있어라. 이것에 대해 생각하기를 그만 둬라. 이제 네 내면 시각(inner vision)에 집중하라. 일단 네가 영감을 얻고 나면 영감은 네게 위대한 "내면 시야(in-sight, 통찰력)"를 가져다 줄 것이다. 이 내면 시야를 눈 바로 위 이마 한가운데의 자리에 집중시켜라.
네 주의를 거기에 놓아라. 거기를 그윽히 바라보라. 뭔가 보기를 기대하면서 보지 말고 무(無, nothing), 없음(no-thing)을 바라보라. 어둠과 함께 있어라. 어떤 것도 보려고 애쓰지 마라. 긴장을 풀고 비어 있음의 평온에 만족하라.
비어있는 것은 좋은 것이다. 창조가 들어올 수 있는 자리는 진공(眞空) 뿐이다. 그런 다음 그 비어 있음을 즐겨라.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고, 더 이상 아무것도 원하지 마라.
네 마음이 계속해서 생각들로 채워지면 그냥 그것들을 살펴보고 그래도 상관없는 것으로 만들어라. 생각들이 튀어나오면 그냥 뒤로 물러나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구나, 라고 관찰하라.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그냥 알아차려라.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마라. 그냥 뒤로 물러서서 그것을 알아차려라. 그것을 판단하지도 말고, 그것 때문에 낙담하지도 마라.
자신이 무(無)의 상태에 있지 않음을 계속 불평해서는 거기에 이를 수 없다. 어떤 생각, 그 순간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별 의미없는 잡념이 찾아오면 그냥 그것을 알차채라. 그것을 알아채고 그것을 축복하고 그것을 체험의 일부로 만들어라.
그것에 머무르지 마라. 그것은 그냥 지나가는 행렬일 뿐이다. 그냥 지나가게 하라. 네가 그것을 가지고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아채라. 이렇게 하는 속에서 너는 위대한 평화를 발견할 것이다. 얼마나 편안한가.
자신이 지금 이 순간 되어 있는 바로 그것을 빼고는 원하거나 하거나 되어야 할 어떤 것도 없다. 계속 하라. 그렇게 있어라. 하지만 계속 바라보고 있어라. 걱정하지도 기대하지도 말고 그냥 온화한 시선으로... 봐야할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어떤 것이라도 기꺼이 보려 하면서...
그런데 너희가 처음으로 이렇게 할 때나, 어니면 열 번째나 백 번째, 아니면 천 번째로 이렇게 할 때, 깜박이는 푸른 불꽃이나 춤추는 빛 같은 것을 보게 되는 수가 있다. 그것은 처음에는 섬광처럼 스쳐가겠지만, 이윽고 네 시야에 뚜렷이 자리잡을 것이다.
그것과 함께 머물러라. 그것으로 옮겨가라. 자신이 그것과 합쳐지는 것을 느끼면 그냥 그렇게 되게 놔둬라.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어떤 것도 네게 말 걸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너다. 그것이 네 영혼의 중심이다. 그것은 너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고 너를 거쳐가는 것이며 너인 것이다.
네 영혼에게 안녕 하고 인사해라. 이제 막 너는 네 영혼을 찾아냈다. 마침내! 이제 막 너는 그것을 체험했다. 그것과 합쳐지면, 네가 그것과 하나되면, 너는 소위 말하는 열반의 기쁨, 장엄하게 충만된 열반의 기쁨을 알게 될 것이다. 너는 네 영혼의 본질이 네 본질임을 발견할 것이고, 나와 하나가 될 것이다.
아마도 아주 잠깐, 겨우 10억분의 1초 동안이겠지만, 하지만 이것으로도 충분하리니, 이제 네게는 다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을 것이고, 어떤 것도 예전 같지 않을 것이며, 너희 물질계의 어떤 것도 그것과 맞먹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때 너는 자신이 외부의 누구도 또 무엇도 필요로 하지 않음을 발견할 것이다.
나는 너희가 자기 외부의 누구도 또 무엇도 사랑하지 않게 되리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너희가 외부의 누구도 또 무엇도 필요로 하지 않게 되리라고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랑과 필요는 같은 것이 아니다.
내가 묘사했던 '하나됨' 의 내면 체험을 네가 실제로 갖게 된다면, 그 결과는 네가 두려워하는 것과는 정반대일 것이다. 누구와도 함께 있기를 원하지 않기는 커녕, 너는 누구와도 함께 있기를 원할 것이다. 이제 너희는 더 이상 상대방에게서 뭔가를 얻기 위해 행위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너희는 남들에게 무엇이라도 주고 싶어 하기를 열망할 것이다. 왜냐하면 너는 온 마음으로 너희가 내면에서 발견한 그 체험, 그 하나됨의 체험을 그들과 함께 나누기를 바랄 것이기에, 너희는 이 하나됨의 체험이 너희 존재의 진실임을 알게 될 것이고, 자신의 체험으로 이 진실을 나누고 모두와 그 체험을 함께하길 구할 것이다.
너희가 "위험해" 질 때가 이 때이니, 너희는 모두와 사랑에 빠질 것이다. 너희와 나의 우정이 끼여드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신과의 우정은 너희더러 "처방전을 알게" 해 준다. 필요와 기대와 질투를 없애는 처방전 만이 아니라, 삶 전체의 처방전인 유구한 지혜를, 또 나와의 우정은 너희더러 이 지혜를 실행하게 해줄 것이다.
다시 말해 그것을 실제로 만들어 주고, 현실로 만들어 주며, 너희 삶이 그것에 따라 살 수 있개 해줄 것이다. 아는 것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는 것과 다르다. 말하자면 지혜를 갖는 것은 지식을 갖는 것과 같지 않다. 지혜는 응용된 지식이다.
나는 내가 너희에게 준 그 모든 지식들을 너희가 어떻게 응용할 수 있을지 보여줄 것이다. 사실 나는 너희에게 항상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친구가 되면 너희는 내 말을 더 부담 없이 받아들일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이야기 하는 것은 신과의 참된 우정이다. 나는 너희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단계를 따라 너희를 데려가는 중이다. 처음의 세 단계는, ① 신을 알고, ② 신을 믿고, ③ 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4단계인 ④ '신을 껴안아라' 를 살펴보고 있다.
신을 껴안아라. 신에게 가까워져라. 그런데 이제 너는 알고 있다. 이제 너는 아주 좋은 한 가지 방법을 안다. 날마다 얼마 간의 금싸라기 시간 동안, 침묵과 함께 있고, 자신과 함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너희가 가장 은혜롭게 시작할 수 있는 지점이 여기이다. 너희가 자신 -'참된 자신'- 과 함께 있을 때, 너희는 나와 함께 있는 것이다. 너희는 너희 자신과 하나이고, 너희 자신은 나와 하나이기에....
여기에 오시는 모든 분들이 자신의 영혼과 하나가 되고, 신과 하나가 되시며, 늘 건강하시고 또 행복하시며, 신의 축복과 함께 성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