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루와에서의 안거 (73)
깨달음을 이루신 후 45년 , 그해 웨살리에 심한 기근이 찾아와 많은 비구들이 한꺼번에 걸식하기가 어려웠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웨살리 인근으로 흩어져 각자 머물 곳을 찾으라. 뜻이 맞는 가까운 사람들끼리 어울려 이 어려운 우기를 견뎌라. 나는 벨루와(Beluva)마을에서 안거할 것이다.”
비구들을 떠나보내고 아난다와 함께 벨루와에 계시는 동안 부처님은 심한 병을 앓으셨다. 부처님은 홀로 조용히 지내며 고통을 정진의 힘으로 견디셨다. 그러던 어느 날 기력을 회복하신 부처님께서 거처에서 나와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고통스러워하시는 부처님을 곁에서 눈물로 지키던 아난다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세존의 병환을 지켜보며 저는 앞이 캄캄했습니다. 두려움과 슬픔에 몸둘 바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승가에 대한 지시가 없으신 걸 보고 조금은 마음을 놓았습니다. 교단의 앞날에 대한 말씀 없이 부처님께서 떠나실 리 없기 때문입니다.”
“아난다, 승가가 여래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느냐? 여래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고 이미 모든 것을 말했다. 여래만 아는 법을 손에 꼭 움켜잡고 너희에게 가르치지 않은 그런 것은 없다. 여래 혼자만 가지고 갈 법이란 없다. 또한 여래만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아난다는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세존께서는 법의 주인이며, 승가의 주인이십니다. 저희 제자들은 그저 세존의 명을 따를 뿐입니다.”
부처님께서 목소리를 높이셨다.
“아난다, 내가 비구들을 이끈다거나 내가 승가를 좌지우지한다고 생각지 말라. 승가의 어떤 문제에 대해 내가 명령을 내린다고 생각하지 말라.”
“세존께서 계시지 않는 승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를 가엾이 여겨 부디 이땅에 오래 오래 머물러 주소서.”
늙은 시자의 눈물을 측은히 바라보던 부처님게서 말씀하셨다.
“아난다, 내 정진의 힘으로 고통을 기겨내고는 있지만... 아난다, 내 나이 여든이다. 이제 내 삶도 거의 끝나가고 있구나. 여기저기 부서진 낡은 수레를 자죽끈으로 동여매 억지로 사용하듯, 여기저기 금이 간 상다리를 가죽끈으로 동여매 억지로 지탱하듯, 아난다 내 몸도 그와 같구나.”
아난다가 눈물을 닦고 합장하였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계시지 않으면 저희는 누구를 믿고 무엇에 의지해야 합니까?”
“아난다, 너 자신을 등불로 삼고 너 자신에게 의지하라. 너 자신 밖의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고 오직 너 자신에게 전념하라. 법을 등불로 삼고, 법에 의지하라. 법을 떠나 다른 것에 매달리지 말라.”
“자신과 법을 등불로 삼고 의지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아난다, 불굴의 의지로 게으름 없이 자기 몸(身)을 깊이 관찰하고 정신을 집중한다면, 그런 수행자는 육신에 대한 갈망에서 벗어날 것이다.
느낌(受)과 마음(心)과 법(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자기를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기를 의지하고 법을 의지한다는 것이다. 아난다, 현재도 마찬가지고, 내가 떠난 뒤에도 마찬가지이다. 여래의 가르침에 따라 이렇게 수행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곧 여래의 참된 제자요, 참다운 수행자이다.“
웨살리로 들어가 걸식하신 부처님은 아난다와 함께 짜빨라쩨띠야로 가셨다. 그곳의 그늘이 넓은 나무 아래로 가 말씀하셨다.
“아난다, 자리를 깔아다오. 등이 아프구나, 여기서 좀 쉬었다 가자.”
고요히 앉아 삼매에 드시는 부처님을 보고, 아난다 역시 자리를 물러나 가까운 곳에서 생각에 잠겼다. 그때였다. 하늘과 땅이 뒤집힐 것처럼 대지가 진동하였다. 놀란 아난다가 부처님께 다가가 여쭈었다.
“괴상한 일입이다. 어떤 인연으로 온 대지가 진동한 것입니까?”
“여래가 장차 교화를 끝내고 생명을 버리고자 마음먹을 때, 땅이 크게 진동한다. 아난다, 나는 오래지 않아 멸도할 것이다.”
놀란 아난다가 울먹이며 간청하였다.
“세존이시여, 부디 이 세상에 오래 머물러 주십시오.”
“아난다, 두 번 세 번 말하게 하지 말라, 아난다, 중각강당으로 가자.”
웨살리 인근에서 안거한 비구들이 모두 중각강당으로 모였다. 부처님께서는, 4념처(念處), 4신족(神足), 4선(禪), 5근(根). 5력(力). 7각의(覺意). 8정도(正道)를 자상하게 하나하나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덧붙여 당부하셨다.
“비구들이여, 여래의 가르침을 잘 기억하고, 잘 헤아리고, 잘 분별해 그에 맞게 부지런히 수행해야 한다. 세상은 덧없고 무상하다. 나도 이제 늙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대들 스스로 잘 닦아 나아가도록 하라.”
비구들이 땅에 쓰러져 가슴을 치며 울부짖었다. 부처님께서 그들을 위로 하셨다.
“눈물을 거두라. 걱정하지도 슬퍼하지도 말라. 사람이건 물건이건 한 번 생겨난 것은 끝이 있기 마련이다. 변하지 말고 바뀌지 말라고 아무리 애원해도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그대들에게 늘 말하지 않았는가? 은혜와 사랑은 덧없고, 한 번 모인 것은 흩어지지 마련이라고, 이 몸은 내 소유가 아니며, 이 목숨은 오래가지 않는다고.”
다음날 아침, 부처님께서는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거리를 돌며 탁발하셨다. 북쪽으로 길을 잡으셨다. 나지막한 언덕의 북쪽 성문에서 부처님은 잠시 걸음을 머췄다. 커다란 코끼리가 몸음 돌려 떠나온 숲을 돌아보듯, 천천히 몸을 돌려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나지막이 말씀 하셨다.
“아난다, 웨살리를 보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