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농구 팬들에게 하은주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신한은행을 4시즌 연속 우승으로 이끌면서 국내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로 올라섰지만, 정작 국제대회에서는 이렇다 할 활약이 없었다. 국가대표를 등한시하는 건 아니냐는 비난도 있었다 하은주 역시 그러한 오해에 마음 아파했다. 하지만 그녀는 말보다는 코트에서 보여주길 원했고,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자신의 의지를 증명했다.
대표팀에 소홀하다고요? 억울해요!
인천에서 열린 2007 FIBA 아시아선수권대회. 하은주가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뛴 대회였다. 2006년 일본무대에서 돌아온 후 대표팀에 전격발탁 된 하은주는 생애 첫 대회에서 우승을 맛봤다. 하은주는 한국여자농구의 숙원이었던 높이의 고민을 해결해주었다. 202cm의 신장은 아시아는 물론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족함이 없었다. 농구팬들이 하은주에게 거는 기대가 커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팬들은 하은주가 2008 베이징 올림픽을 비롯한 국제대회에서 한국의 골밑을 지켜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하은주는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 탓이었다. 올림픽에서는 단 한 경기도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2009년 FIBA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도 제 컨디션으로 임하지 못했다.
반면 WKBL 리그에서는 위기의 상황마다 투입돼 신한은행을 정상에 올려놨다. 1~2번 반복되자 주변에서 국가대표를 꺼린다는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누구보다 가슴 아팠던 것은 바로 하은주 본인이었다. 하소연 할 곳도 없었다. 대다수가 하은주를 다른 선수들과 같은 시각에서 바라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은주는 다른 선수들과 신체조건이 달랐다. 아니, 특별했다. 높이에서 압도적인 어드밴티지가 있었던 반면, 경기를 치를 때마다 신체에 누적되는 피로의 정도가 달랐다. 그렇다보니 부상이 미치는 영향도 다른 선수들에 비해 더 컸다. 긴 시즌을 치른 뒤에는 늘 몸이 만신창이였다. 매일 경기를 갖는 국제대회를 준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체코에서 열린 2010년 FIBA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그녀는 뛰지 않았다.
“억울했어요.” 하은주에게 ‘소문’에 대해 묻자 돌아온 첫마디였다. “선수들에게는 굉장히 서운한 말이에요. 저도 여러 선후배들과 함께 훈련했지만 대표팀을 등한시하는 선수는 한 명도 없었어요. 모든 선수들이 나라를 대표한다는 긍지를 가지고 열심히 훈련에 임했죠.” 하은주 역시 자신에 대한 소문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단호히 잘라 말했다. “저에게 태극마크는 굉장히 의미가 있어요. 세계선수권을 포기한 것도 순전히 아시안게임 때문이었죠. 아시안게임에서 최상의 몸 상태로 참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침대에서 삐끗? 내가 생각해도 황당!
하은주의 가세로 한국은 예선에서 승승장구했다. 그런데 중국과의 예선 경기를 앞두고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 터졌다. 하은주가 발목에 부상을 입어 남은 경기 출전이 불투명해진 것이다. 그런데 부상 이유가 석연찮았다. 방에서 쉬던 중 갑자기 발목에 이상이 와 진단을 받아보니 3주 진단이 나왔다는 것. 한국에서 기사로 이 사실을 접한 팬들은 허탈감에 빠졌다. 중국을 넘기 위해서는 하은주의 존재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어처구니없다’는 말도 있는가 하면, 임달식 감독의 연막작전이란 추측도 있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쉬다가 다칠 수 있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은주에 대한 여론은 점점 안 좋아져갔다. 하지만 하은주의 부상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첫 경기였던 11월 18일 태국전부터 하은주는 오른쪽 발목에 통증을 느꼈다. 근육 어딘가가 뭉치고 올라와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단순한 근육 피로라는 생각에 별 다른 처방도 하지 않았다. 인도전이 끝난 후 방에서 휴식을 취하던 하은주는 침대에 앉는 순간 발목이 뜨끔했다. 통증이 너무 심해 걸을 수도 없었다. 진단을 받아보니 발목근육이 부분 파열됐다. 그동안 쌓여왔던 피로가 한꺼번에 터진 것. 예상치 못한 부상에 하은주 본인도 어이가 없었고, 스트레스로 장염까지 걸렸다.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 밥도 먹지 못 하고, 김단비가 끓여준 죽을 먹으며 버텼다. 서럽기도 많이 서러웠다. MRI 결과 아킬레스건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경기 출전은 안 된다는 것이 의사의 진단이었다. 임달식 감독은 이에 더 이상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 하은주를 귀국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속상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 준비해온 아시안게임인가. 실망감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다음 날 치료를 받던 도중 발목이 갑작스레 좋아진 것이다. 발을 딛었을 때 느낌이 좋았고, 통증도 거의 없었다. 의사들 모두 하은주가 거짓말을 하는 줄 알았단다. 게다가 당장 좋아졌다고 해서 뛰다가 다치면 부상이 훨씬 심해진다며 말렸다. 하지만 하은주의 뜻은 확고했다. 코트 위에서는 선배들이 부상을 감수하고 몸을 불사르고 있었다. 이번만큼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뛰었던 거죠. 물론, 주변 분들이 보시기에는 오해를 할 소지가 많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어쨌든 코트에서 보여드려야 하잖아요. 저 나름대로 사정이 있는데, 코트에 나오지 못하니 다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던 것 같아요. (전)주원 언니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선수가 부상 때문에 6개월만에 돌아와도 사람들은 그 날 코트에서 한 것만 가지고 평가를 한다고요. 그런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코트에서 보여주는 것 밖에 없었죠.”
극적인 등장에 언니들도 펄펄
11월 24일, 일본과의 숙명의 한 판 승부를 앞둔 4강전을 앞두고 그녀는 결국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귀국 대신 경기출전을 택한 것이다. 뜻하지 않은 그녀의 등장에 우리는 탄력을 받았고, 일본은 당황했다. 하은주와 친한 일본의 에이스, 오가는 “정말 경기에서 뛰는 게 맞냐”고 묻기도 했다고. 하은주가 있는 한국은 전혀 다른 팀이었다. 하은주는 일본의 골밑을 압도했고, 4쿼터 승부처에서 7점을 몰아넣으며 승리를 가져왔다. 그야말로 영웅의 귀환이었다. 덕분에 우리 대표팀은 93-78로 이기고 결승에 진출했다. “일본 선수들이 뛸 수 있냐고 물어보는데, 그 느낌이 정말 좋았어요. 못 뛴다고 했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의 짜릿한 느낌이 있었죠. 나중에 경기 끝나고 오가 언니 역시 꼭 이기고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다음엔 꼭 지지 않겠다고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음에도 절대 지지 않을 거에요.”결승에 진출한 한국은 최후까지 분투했다. 비록 심판의 결정적인 오심으로 다 쫓아간 경기를 놓쳐야 했지만, 팬들은 지난 몇 년간 우리 대표팀의 주적이었던 중국팀 센터, 천난을 괴롭히는 하은주의 모습에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시안게임을 마친 하은주는 다시 국내리그에 온 힘을 쏟고 있다. 그녀의 목표는 소속팀 신한은행을 다시 정상에 올려놓는 것이다. 지난 시즌까지 무려 4시즌 연속 챔피언에 오른 신한은행이다. 우승에 대한 열정이 식을 법도 하지만, 신한은행은 여전히 독기를 품은 듯 강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솔직히 매년 도전의식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해요. 저희끼리도 그래요.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다. 이번에 우승 못하면 끝이다’라고 말이죠. 우승을 여러 번 하다보니까 더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하지만 선수들 자존심이 지는 걸 허락 못 해요. 저희가 우승팀인데, 막상 지면 선수들 모두 너무 분해하죠. 다들 지는 걸 정말 싫어해요. 그러다 보니 시즌이 시작되면 어느새 승부욕에 발동이 걸려버리죠.”
승부욕하면 하은주 역시 못지 않다. “경기한 날은 잠을 못 자요. 침대에 누워도 계속해서 경기 생각만 하죠. ‘오늘은 이게 왜 안 됐을까. 다음엔 이런 실수하지 말아야지’하고 말이죠. 이게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4~5년 전에는 안 그랬는데, 갈수록 승패에 대한 부담이 커지는 것 같아요.” 하은주는 신한은행을 제외한 5개 구단에서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선수다. 높이가 워낙 차이가 나다보니 일대일로 막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더블팀을 가기도 여의치 않다. 그야말로 우승의 가장 큰 장애물인 셈. 하지만 하은주는 기자의 이러한 찬양(?)에 손사레를 친다. 오히려 자신이 들어가면 폐를 끼칠 때도 많단다. “제가 들어가도 마이너스가 많아요. 장신선수의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거든요. 팀에서 그 선수의 단점을 얼마나 메워주고 어떻게 장점을 부각시켜주느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저희 팀은 제가 못 하는 부분을 나머지 선수들이 너무나 잘 메워주거든요. 제가 항상 감사해하는 부분이죠.”
큰 키, 한 번도 원망해본 적 없어
하은주는 농구선수로서 축복 받은 신장을 지녔다. 202cm의 키는 농구하기에 더 없이 유리한 신장이다. 매 경기 상대는 그녀를 막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다. 하지만 큰 신장은 일상생활에서 불편한 점이 많다. 어딜 가든 문의 높낮이를 봐야 한다. 앉고 타는 것도 제약이 많다. 또 어딜 가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그래서 행동도 조심스러워진다. 하지만 하은주는 한번도 자신의 큰 키가 싫었던 적이 없었다고. “부모님께서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주눅 들지 않고 자라게 해주셨어요. 어딜 가든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지만, 항상 당당하라고 말씀하셨죠. 제 키는 하나의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가능성이 무궁무진하죠.” 큰 키가 이성교제에 방해가 되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남자들은 키가 큰 여자에 대한 부담감이 있다. “남자친구는 없어요. 아직 남자를 만나거나 할 여유가 없어요. 아직까지는 이루고 싶은 게 너무 많거든요. 농구도 더 잘 하고 싶고,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하지만 인연은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조급해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제 짝이 나타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은주는 공부 욕심도 많다. 현재 일본 세이토쿠 대학의 재학생으로 등록되어 있는 하은주는 곧 모든 교육과정을 다 이수한다. 일본에 있을 때부터 학교에 다녔지만 한국으로 온 후 시즌일정과 겹치면서 졸업이 늦어졌다. 때문에 시즌이 끝난 후 여름이면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대학공부를 했다. 하은주의 전공은 영어영문학이다. 대학을 졸업하면 대학원에서 스포츠 분야에 도전해볼 계획이다. “어렸을 때부터 영어랑 수학을 좋아했어요. 뭔가를 배우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인 것 같아요. 똑같이 하루 24시간을 사는데, 거기서 1~2시간 더 할애해서 뭔가를 할 수 있다면 좋잖아요. 제가 좀 욕심이 많죠?”
글 곽현 기자 사진 문복주, 한필상 기자
2011-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