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다녀오느냐고 아무도 묻지 않는다
변영희
파란시선 0189∣2026년 9월 15일 발간∣정가 12,000원∣B6(128×208㎜)∣115쪽
ISBN 979-11-94799-45-0 03810∣(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신간 소개]
점괘에 앉았다 날아가는 새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어디 다녀오느냐고 아무도 묻지 않는다]는 변영희 시인의 세 번째 신작 시집으로, 「철물점」 「여긴 어디죠?」 「2분」 등 55편이 실려 있다.
변영희 시인은 전라남도 장성에서 태어났고, 동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수료했다. 2010년 [시에]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y의 진술] [코르크 물고기] [어디 다녀오느냐고 아무도 묻지 않는다]를 썼다.
변영희 시인이 이번 시집 [어디 다녀오느냐고 아무도 묻지 않는다]를 통해 살핀 마음의 풍경은 존재가 지닌 외로움이라는 결핍의 정동으로부터 출발하여 자신의 삶을 품어 ‘나’ 이후의 삶에 안심을 건네는 쪽으로 나아간다. 아무리 채우려 해도 허기지기만 한 내적 불안의 시원을 톺아 “오랜 침묵 속에 갇힌 책처럼 단단”함으로 전유해 낸다(「언제부터 흑미입니까」). 여전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마냥 웃을 수 없는 지독한 비애로 점철되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시인은 “울며 기어이 목적지에 도착”하는 “바퀴의 힘”으로 나아간다(「리사이클」). 그렇게 시인은 현재진행형인 우리의 삶 안쪽에 따듯한 빛이 드는 언어의 집을 짓는다. (이상 이병국 시인・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추천사]
변영희의 사유는 “순간이 억겁이고 찰나인 나날들”에서 해묵은 씨앗을 발아하는 반추의 방식에서 진실에 맞서는 힘을 키운다(「못」). 그녀의 화법이 범상한 듯 비범한 이유는 정주하는 시간 안에서 시간이 숙성되는 탓이리라. 잠깐 타오르는 것일지라도 그 불씨에 의지하여 시인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살아갈 것이다. 변영희는 감각에 조응하여 투망을 걷어 올리듯 비선형적 의식의 흐름을 낚아내는 재주가 있다. 「여긴 어디죠?」에서 찰나의 파동이 극화되는 형식을 보라. 파밭을 스치면서 시인은 올리브그린 색채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그 감미로운 발흥은 곧장 밭 가장자리 호박들이 “검은 심장을 끌어안”고 “서로 기대어 무너”지는 역설과 부딪힌다. 삶의 고단함을 가리는 담장에 “물고기와 잠수부”를 그리자 삶의 거처는 “깊은 바다”가 된다. 여기서 시인은 현실과 상상이 긴장 속에 유지하는 어느 균형을 무의식적으로 성취한다. 파밭에 “열렬한 고요”가 쏟아진다. “귓전에 파고드는 벌레들의 노래”가 울린다. 고통은 직접 발화되지 않고 다만 그 흔적으로 정제되어 일렁인다. 바라면서 기다리는 것, 이것이 힘든 삶에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 수 있다. 결핍의 감정을 물결처럼 흘려보내는 무심한 어투에 귀를 기울여 보라. 감각과 의식의 춤이 직조하는 풍경은 저물녘 갈대밭처럼 구체적이면서 추상적이다. 변영희는 생의 굽이마다 시간의 흔적을 “염탐”하고(「개미」) 그 버거운 그림자를 헹궈 냄으로써 뭔가를 새롭게 발색하는 재치에서 뛰어나다. 견인주의적 자의식과 휘발성 상상을 거쳐 다시 마주하는 현실은 어느덧 참을 만하다, 때로 아름답기까지 하다. 이렇듯 발랄한 호흡 그리고 “부드러운 말맛”을 벗 삼아 변영희는 필생의 현주소를 시적 체온으로 육화하려 분투하고 있다(「부드럽게, 어서」).
―양균원 시인・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변영희
전라남도 장성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수료했다.
2010년 [시에]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y의 진술] [코르크 물고기] [어디 다녀오느냐고 아무도 묻지 않는다]를 썼다.
[시인의 말]
닿을 수 없는
사금처럼
번지는 얼룩을 늘어놓고
이름을 닦는다
잃은 것을 잊은
심장이 뛴다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점괘에 앉았다 날아가는 새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 11
개미 – 12
모리국수 – 14
건포도를 먹으며 – 16
남향집 – 17
철물점 – 18
핫 피플 – 20
트록슬러 – 21
리사이클 – 22
그 겨울 – 23
병실 아라리이 – 24
낫질 – 26
거울―보경사에서 – 28
제2부
못 – 31
독 – 32
풀의 한살이 – 33
도미노처럼 – 34
신신미용실 – 36
금릉 – 38
국수 먹고 – 40
302번 시내버스 – 42
1973 – 44
278a-1A – 45
당신은 그런 사람 – 46
1976, 안드로메다는 아니고 – 48
싱 어게인―스물셋 – 49
부드럽게, 어서 – 50
제3부
추희자두 – 55
공갈 젖꼭지 물고 잠든 아이처럼 – 56
네잎클로버 – 57
친구 – 58
박대와 미나리 – 60
기립 – 62
여긴 어디죠? – 64
아랫장, 웃장 – 66
할로윈―2022 – 68
쇠소깍 칠층석탑 – 70
아침 – 72
나의 꽃말은 게으름뱅이 – 73
목련실 – 74
신나무 이파리가 기침을 한다 – 75
제4부
자화상 – 79
다앤;뜰 – 80
오월 – 82
소주 부은 주전자에 오이채 썰어 넣고 – 83
안녕하십니까 – 84
틈 – 86
기도 – 87
싸움 – 88
추수 – 90
점, 점, 점, 점점 – 91
래퍼, 해파리 – 92
2분 – 94
당신의 서랍 – 96
언제부터 흑미입니까 – 98
해설 이병국 빛을 짓는 언어의 집 – 99
[시집 속의 시 세 편]
철물점
반발하는 건 쉽지
망치질을 하며 중얼거린다
텅 비어서 더 강하게 오는 반향
새가 분수처럼 솟구쳐 오른다
j가 바느질하던 창가
먼 호수의 메아리가 들려온다
날갯짓하며 울음질 노래질한다
불확실한 불이 있어 뜨거운 쇳물이 출렁거려 무덤이라도 두드리고 싶은 망치 우울한 떠돌이에겐 아득한 잠의 지평선 홑이불을 덮고 맛보는 불안 유년의 뱀이 천정에서 내려온다 편두통이 달라붙는다
시멘트, 몰탈, 방수페인트, 둘둘 말린 호스, 버릇없는 천사처럼 봉긋한 무덤을 만든 백리향까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은 없다 올리브 나무를 통과한 바람이 타일의 몽상을 깨웠다 깨진 타일 조각에 눌린 망치, 정말이지…… 까딱도 앉는다
손에 쥔 자루 만만찮다
반발을 연주하여 부숴 버릴 세계
너무 많은 내 안의 나
낯설고 낯선 세계, 거울 속 거울 ■
여긴 어디죠?
막, 파밭을 지나왔어요
파를 그리려면 올리브그린을 써야겠어요
밭가 호박들이 서로 기대어 무너져요
검은 심장을 끌어안으며
코발트빛 페인트를 칠했어요
낡은 담장에 은희가 물고기와 잠수부를 그리자
깊은 바다가 되었지요
파밭에 쏟아지는
열렬한 고요
귓전에 파고드는 벌레들의 노래
천천히 이동하는 방식
까치집이 많은 동네로 이사 가면 좋겠다
여섯 살 혁이가 말해요
무슨, 생각이, 있는 걸까요
응봉동 아득한 비탈에서
넌출거리는 개나리 때문에
어지럼증이 돋아요
강변북로는 갑자기 더 시끄럽구요 ■
2분
303번 온다 버스를 보며 석은 힘차게 뛴다
바퀴가 춤춘다
기사 깜박 잠들어 2분 늦었대
킥킥…… 석이 문자를 보낸다
키 작은 꽃들은 다정스럽다 말벌을 피해 달아나다 꾸지뽕나무 아래 선다 태양과 농부가 어깨동무하는 들판이 비어 간다 큰 손 지우개 나타나 슥슥…… 누구십니까?
향기로 커피를 완성하는 조이의 감각은 씨앗이다 은유의 층이 달라진다 결이 살아난다 꽃이 예쁘면 향기도 좋을까 청화 쑥부쟁이를 바라보며 하는 생각
밤이슬, 반딧불이, 달의 자장가 낮게 내려온 날 카시오페이아가 빛난다 석은 막차를 타고 돌아왔다 유홍초 하늘거리는 다리를 건너 날개를 접으며 아, 나무가 되고 싶어
오고 가는 꽃
쉼 없이 오르내리는 개미
2분 졸음에 올라탄 석
어디 다녀오느냐고 아무도 묻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