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을 운영하는 도반이 있다.
어느 때 소금 꽃을 보고 싶었다.
진짜 물 위에 피는 소금꽃
그것도 보름달이 물에 내려 앉은 모습과 달 위로 뜨는 소금꽃.
어 느 해 그 모습을 보기 위해 날을 잡았다.
5월 송화가루가 날리는 날 보름
날이 좋아야 했다.
그런데 꿈처럼 이루어졌다.
그것도
부산에 산다는 분과 대전에 살고 있는 분이 함께
우연치않게 이루어진 만남
셋이서 목포에서 만나 하의도행 배를 탔다.
두 시간이 되는 거리를 배로 이동을 해서 하의도에 도착을 했다.
트럭을 타고 염전에 도착을 했다.
소금밭 주인은 일하느라 무지하게 바쁘고
그 바쁜 틈에 우리 실러 나왔으니 우리도 도움이 되어 주어야 했다.
소금 실어 나르는 것을 좀 도와주고
함초도 한 줌 뜯고
소금꽃도 보았다.
바쁜 곳에 가면 손을 놀리면 안 된다.
저녁을 직접 해서 먹고 달이 뜨기를 기다렸다.
달이 좀 떠 올라야 소금밭에 빠질 것이 아닌가?
9시 쯤 우리 또 염전으로 나왔다.
소금 밭에 뜯 달
그 모습은 평생 잊지못할 광경이며 다시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렇게 1박 2일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어제는 그 소금밭 도반이 아픈 몸을 이끌고 소금 배달을 왔다.
여자의 몸으로 소금 50포대를배달한다고 하여 나 먹을 것도 몇 개 더 싣고 오라고 하였다.
점심을 집에서 먹겠다고 하여 점심 해 주고 양동 가고 싶다고 하여 데리고 다녀왔다
이 도반이 오면 좀 수선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좀 수선스러우면 수선스러운대로
차분하면 차분한대로 있는 그대로 대하면 된다.
나 먹을 소금 3포 내려서 항아리에 다 채워 담았다.
한포는 더 내려서 두었다.
줄 사람이 있다.
지난번에 동서가 소금을 마트에서 사다가 김치를 담았더니 쓰고 맛이 없더란다.
그러면서 좋은 소금 있냐고 해서 5키로 정도 퍼 준적이 있다.
나야 소금을 빈 항아리에 항상 가득가득 채워 놓는다.
그러는 이유가 있다.
꿈이었다.
둥그렇게 장독이 있었다.
크고 예쁜 항아리들이 있었다.
하나를 들여다보니 하늘이 내려와 있는 듯 맑은 하늘이 보이는 장독이었다.
또 하나를 열어보니 하얀 소금이 가득 들어 있었다.
큰 항아리 하나는 열어보니 물이 찰랑찰랑 담겨 있었다.
작은 항아리들에도 뭔가 가득가득 들어 있는데
장독을 둘러 친 담에서는 맑은 물이 흘러 내려와 장독을 휘돌아 흐르고 있었다.
그 곳에서 장을 한 종지 떠서 보는 순간 뒤에 산을 보니 산을 감고 용이 나와서 나를 향해서 확 달려들었다.
그래서 난 잘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모습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풍요롭게 잘 사는 일
그러나 절재된 풍요함
풍요롭다고 절재되지 않으면 안 된다.
장독이 품었던 그 절재
소금 항아리가 품었던 그 경계를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가득 담기되 아우를 줄 아는 풍요
나누되 헤프지 않은 나눔
소금꽃처럼 아름답게 빛 날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