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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대부분의 관광지가 도심에서 걸어서도 이동이 가까울 만큼 지근거리에 위치해 있는 반면 양동마을은 꽤 많이 떨어져 있다. 행정구역상으론 경주에 속해 있지만 포항과 가까울 정도니 말이다. 가을바람이 한창 불어 들 시점에 경주를 찾은 나는 게스트 하우스 바로 앞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 시간표를 확인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에 몸을 맡길 수 있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차창 너머로 가을이 한창 물든 이 시점에 이어폰 너머로 흐르는 잔잔한 노랫소리가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켜 주고 있었다.
버스정류장에 내리니 드넓은 주차장 너머로 양동마을로 들어가기 위한 사람들의 끊임없는 행렬이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그 양반 댁의 위용을 느껴볼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도 잠시 카메라와 그 주변을 정리 정돈하기 위해 휴게소에 들렀는데 깜빡하고 여분 배터리를 놓고 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남은 배터리의 수량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 다행히 카메라 가방에 충전기를 구비해 둬 매점에서 음료를 구매한 뒤 콘센트를 찾아 배터리가 충전될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충전을 마친 뒤 자리를 정리한 후 양동초등학교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초등학교 쪽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오니 양동마을 초입부터 탄성이 절로 나오는 풍경이 날 반기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담벼락 옆으로는 SNS에서 많이 보이던 그 은행나무가 고운 자태를 뽐내며 훌륭한 배경 역할을 자처했고 언덕마다 층층이 형성된 기와집과 초가집은 시대와 단절된 듯 한 그 자태가 정말 매력적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 다녀왔던 안동 하회마을이 방사형으로 드넓은 형태가 특징이었다면, 철저히 서열에 따라 형성된 듯 한 마을의 모습이 조선시대의 지배층을 반영한 듯 해 가을 정취와 함께 진한 인상을 남기며 시작부터 가슴 설레게 만들어 줬다.
1. 조선 시대의 질서가 반영된 공간
양동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4대 명당자리에 속하는 명당 중의 명당에 자리한 마을로 아주 유명하다. 산기슭에 '말 물(勿)'자 형태를 이루며 마을 뒤에 자리한 설창산에서 시작된 산등성이가 네 갈래로 갈라진 형태를 갖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때문일까 이곳에서 배출된 과거 급제자만 116명에 달했고 그들 중 이언적은 한양의 종묘와 성균관의 문묘에 동시에 배향되었으며, 퇴계 이황의 성리학적 사상에 영향을 미치며 희대의 학자를 배출 한 마을로도 유명하다.
카메라 배터리 충전으로 소요된 시간도 있어 양동마을을 돌아보기 위한 시간이 부족한가 싶었지만 지도 어플을 통해 대략적인 마을의 구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골짜기들 사이로 형성된 가옥들과 아름답게 물든 단풍이 안 그래도 자연과 치명적인 조화를 자랑하는 가옥들에 색을 칠한 듯 황홀한 조화를 뽐내고 있었다. 거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지는 노을빛이 주변을 더욱 따스하게 감싸주며 더욱 아름답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양동마을에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건 신라시대 부 터지만 이후 이 마을이 본격적으로 알려지며 명망 있는 양반가의 마을로 거듭나기 시작한 건 조선 시대로 접어들면서부터다. 각각 경주 손 씨와 여주 이 씨가 이곳에 터를 일궜고 과거를 통해 중앙 정계로의 진출 또한 활발 해지며 자연스레 양동 마을의 명성 또한 높아지게 된다. 양동마을에 기반을 굳건히 할 수 있었던 두 가문은 서로 혼인을 통해 관계를 돈독히 도모하기도 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로는 앞에서 언급한 이언적 선생의 가문이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겠다.
약 500년 동안 조선의 역사와 그 결을 함께 하며 당대의 지배층으로서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에 참여하며 각자의 생각과 신념에 따라 좀 더 나은 세상을 그려왔다. 양동마을 언덕에 오르면 어디서든 마을의 전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단지 위치에 따라 조금씩 같은 듯 다른 전경이 펼쳐진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바쁘게 논에서 일하는 하인들과 유교 경전을 읽거나 세상의 흐름에 대해 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더불어 그 사이를 비집고 바쁘게 뛰어놀던 아이들의 모습까지 불현듯 논밭에서 들리는 듯 한 노동요가 흥겹고 정겹게 느껴진다.
명망 있는 양반가로 이곳에 자리를 잡은 여주 이 씨와 경주 손 씨는 각각 가문 소유의 교육 기관을 설치해 당시 지배 계급으로서 지역 사회에 성리학의 이념을 퍼뜨리는데 앞장섰다. 여주 이 씨 문중의 '강학당'과 경주 손 씨 문중의 안락 정이 바로 그곳으로 규모는 넓지 않았지만 소소해 보이는 한 채의 가옥과 적막한 분위기를 뚫고 아이들과 훈장님 사이의 묘한 기싸움이 벌어지는 듯 한 모습을 잠시나마 여백에 그려 넣어 본다. 시끌벅적했던 분위기도 잠시 따스한 햇볕이 구름이 지나가자 고개를 내밀며 조심스럽게 내게 온기를 건네줬다.
잠시나마 계단에 앉아 햇빛이 건네주는 온기에 취해 유교, 성리학, 서당, 서원과 같은 생각을 되뇌며 양동마을 주변에 위치한 독락당과 옥산서원을 포함해 과거 급제자들과 자연스럽게 교육환경에 더해 '맹모삼천지교'라는 한자성어에 방점을 찍으며 나도 모르게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문득 낙향 후 이언적 선생이 머물렀던 독락당의 정취와 양동마을이 묘하게 겹치며 그가 이곳에 머물렀을 적에 어디서 무슨 공부를 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2. 문화유산의 보고
2010년 안동의 하회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그 가치를 세계에 인정받게 된다. 세계문화유산을 차치하고서라도 마을의 존재 그 자체의 가치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겠지만 거기에 더해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문장을 입증하며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단 격이 됐다. 더불어 마을 안에 남아 있는 각종 문화재들 또한 거대한 숲을 구성하는 매력적인 나뭇가지로서 그 소중함과 가치를 더 해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곳으로 유혹하고 있었다.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될 당시 그 이유들을 담은 문서를 간략히 살펴보면 감동은 배가 되어 돌아왔다. 우리나라의 문화와 당시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는 요소들을 고스란히 한 공간에 녹여낸 마을과 지금도 그 명맥을 잘 유지했다는 점 또한 유네스코가 정한 유산 등재 기준에 부합했다는 사실이 벅찬 감동과 함께 다시 한번 의의와 목적에 대해 곱씹으며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목적과 당위성에 대해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마을 자체가 문화유산인 이 마을은 국가지정문화재로 등록된 한옥이 가장 많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가장 높은 곳에서 양동마을 전체를 바라볼 때 느껴지는 특유의 조화로움과 더불어 가옥들 마다 당시의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어 건축 양식을 연구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전해진다. 그 사실을 전해 들은 후 주요 가옥들을 분류한 뒤 가옥별 특성을 알아보고 양동마을을 돌아보며 유심히 살펴봤지만 역시 전문가가 아니라 그런지 그 차이를 잘 알아볼 수는 없었다. 그저 시대와 완전히 단절된 듯 한 분위기를 한껏 즐기며 동네 주변을 유려하게 즐길 수 있다는 그 사실 자체에 절로 미소가 흐뭇하게 지어졌다.
더불어 양동마을과 관련해 예상치 못했던 소식이 인터넷을 타고 날아들었다. 2003년 경주 손 씨 종갓집 서재에서 고문서들을 정리하던 과정에서 한국학 중앙연구원에 대여 위탁 관리하는 과정에서 어느 연구원이 원나라 말기의 법전 '지정조격'을 발견하게 됐다. 중국에서도 실존하지 않던 문서로 그 가치는 상당하다고 전해졌다. 원나라는 당시 대륙을 다스릴 때에도 역대 황제들의 무덤을 비밀리에 붙여 지금까지 전해지는 게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이 베일에 쌓여 있는 나라인데 당시의 법전이 발견됐다는 소식은 깜짝 놀람은 물론이거니와 동시에 지정조격에 대한 호기심도 동반됐다.
원나라 말기 법전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이 문서는 당시 조선시대에도 미치던 영향이 적지 않다고 전하며 중국과 몽골은 물론이거니와 해당 문화재를 기반으로 좀 더 관련된 시대를 이해하는데 실마리의 역할을 하지 않을까 기대가 되는 대목이다. 지정조격은 보물 제2118호로 지정되었으며 기회가 된다면 관련 문화재도 함께 직접 볼 수 있었으며 좋을 듯싶다. 거기에 원나라의 후예인 몽골에서도 이 지정조격을 실제로 보기 위해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찾았다고 하니 이 사실만으로도 지정조격의 가치는 충분히 입증된 듯싶다. 갈수록 그 깊이를 더해가고 있는 양동마을이다.
3.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우수 사례 선정
201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하회마을과 함께 선정되면서 세상에 그 모습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양동마을은 2012년에 다시 한번 그 존재의 가치를 세상에 증명하게 된다. 2012년 유네스코 40주년을 맞이해 전 세계 160여 국에 산재한 981점의 세계유산 전체를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한 결과 세계 유산의 핵심 가치인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가장 잘 구현한 26개의 모범 사례들 중 한 곳으로 뽑히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본디 세계문화유산으로의 등재가 결정만 되더라도 그 가치를 세상에 인정받게 됐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지만 한번 더 조사를 통해 손에 꼽힐 정도면 대단하다 라는 표현과 감탄사 말고는 뭐라 달리 설명할 표현이 떠오르질 않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그 핵심 가치를 충족시켜 줄 조건 중 하나로 정주형 문화유산이라는 특성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감히 추측해 본다.
무엇보다 양동마을이 조선 시대부터 이어져 온 집성촌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대가 되는 이유는 아직도 선조의 유지를 이어받은 후손들이 이곳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인터넷을 통해 양동마을 한옥스테이도 가능하며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을 위한 많은 체험 프로그램 또한 마련되어 있으니 마냥 명망 있고 지체 높은 양반가의 마을이 아닌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하고자 노력하는 모습들을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슬슬 퇴장시간이 다가오면서 마을 전반에 짙은 노을빛이 드리우는 장면을 양동마을 언덕 위에서 눈과 카메라로 해당 장면을 담을 수 있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양동마을을 찾은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활기 넘치는 모습들은 과거 반가운 이웃사촌들이 서로를 챙기며 깊은 정을 나누는 모습을 연출한 듯했다. 모든 순간이 각본과 연출 없는 드라마처럼 눈앞에 한 편의 작품이 펼쳐지는 듯했고 그 순간은 짙은 이곳의 분위기도 함께 배어 있었다.
4. 가을 그 끝자락에 즐기는 고즈넉함
폐장시간이 다가와 양동마을을 찾은 방문객들이 바쁘게 출구 쪽으로 걸었다. 들판은 황금빛으로 물든 뒤 단풍과 더불어 바람의 방향에 따라 일렁이는 갈대가 이곳을 떠나가는 사람들을 배웅이라도 하듯 황홀경을 함께 선사해 줬고, 양동초등학교 너머로 갈수록 짙어지는 하늘이 하루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해 줬다. 동시에 단풍과 은행나무와 잘 어우러져 마법과도 같은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한 사람들의 모습 또한 흥미롭게 다가왔다.
덩달아 이 순간을 고객님들께 선사하기 위한 스냅사진작가들의 움직임도 덩달아 분주해진다. 일몰이 시작되면서 이 순간을 담을 수 있는 시간은 기껏 해봐야 30분 남짓 그 이상은 자연이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짧은 만큼 아름답다 했던가. 화양연화라 일몰 직전의 이 순간만큼은 누구도 양동마을을 떠나고 싶지 않을 만큼 기분 탓일까 사람들의 버스 정류장과 주차장으로 향하는 발걸음도 괜스레 늦어지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사진작가와 손님들의 행동도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확인한 뒤 미소에 황금빛이 한가득 스며들어 있었다.
이곳에 깃든 400년의 세월은 조선시대와 근, 현대기 대한민국을 휩쓸었던 전란들 사이에서도 변치 않고 그 모습들을 온전히 유지해 줬다. 덩달아 그곳에 깃들어 있다가 발견된 고문서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그 가치를 만방에 드러낼 수 있었다. 아직도 세상에 나오지 않은 수많은 가치들과 더불어 이곳에 터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변화하는 미래의 모습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풍수지리적 관점을 시작으로 유교 성리학적 가치와 조선시대 신분사회 등 다방면에 걸쳐 팔색조의 매력을 갖춘 양동마을은 전국 그 어느 곳 보다 아름다웠고 경주에 올 때마다 이곳을 찾고 싶어질 것 같다. 문득 아직도 그 은행나무와 내가 눈으로 담았던 그 모습들이 여전히 잘 있는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