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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말 어휘자료 분석
-중세 및 현대국어에 이어지는 몇 가지 어휘
차 례
Ⅰ. 머릿글
Ⅱ. 자료 분석의 방법
Ⅲ. 고구려말 자료 분석
Ⅳ. 대응관계표
Ⅴ. 맷는 글
Ⅰ. 머릿글
고대국어에 있어서 고구려말이 가지는 의의는 자못 큰 것이어서 국내외 여러 학자들의 관심이 쏠려온 것은 다
아는 일이다. 이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본다면 삼국시대 우리말의 단일성 여부를 기준으로,
이 시대 우리 나라 말이 북방의 부여계 제어와 남방 한어의 두 갈래로 이루어져 있어서 각기 다른 언어였으며
‘고구려어’는 알타이 조어(proto-altaic)와 한국어 및 일본어를 연결시키는 고리 구실을 했다고 보는 입장과,
삼국 시대에도 우리말의 단일성은 확연한 것이었으며 단지 방언적인 차이만을 가진 단일언어로서 고구려말은
백제, 신라말과 마찬가지로 중세국어의 형성에 기여했다고 보는 입장으로 구분된다.
글쓴이는 여기서 후자의 입장에 따라, 고구려말이 중세 및 현대국어에 이르는 국어사 속에서 이어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몇 가지 어휘들을 대응되는 중세 및 현대국어 어휘들과 비교하는 방법으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고구려말의 어휘분석 및 재구에 있어서는 선학의 연구업적이 이미 상당한 성과를 내왔으며 이를 토대로 지금
까지 논의되지 않았던 어휘들 중 새로이 그 가능성이 있는 것들을 찾아내고, 그와 관련된 고대국어의 특징을
밝혀내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Ⅱ. 자료 분석의 방법
우리가 고대국어의 모습을 알아낼 수 있는 중대한 단서 중의 하나는 옛 문헌에 기록된 우리말의 한자표기들
에서 그 소리와 뜻의 두 가지로 나타낸 다른 표기를 대조하여 볼 수 있는 점이다.
특히 여러 기록들에서 나타나는 삼국시대 사람 이름, 고장 이름, 벼슬 이름 등에서 두 가지 이상으로 표기된
것들은 죄다 우리의 관심거리가 된다.
예컨대 삼국사기 지리지에
永同郡 本吉同郡 景德王改名 今因之.
(영동군은 본디 길동군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쳐서 지금은 그렇게 불린다.)
라 한 것에서 우리는 ‘永’의 뜻을 나타내던 당시 우리말의 발음이 ‘吉’의 당시 한자음과 유사하였으리라고 짐작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신라 경덕왕이 당시 순 우리말로 된 벼슬, 고장 이름 등을 모두 한자식으로 고친
사실과 연관지어 볼 때 더욱 개연성을 가지게 된다.
이와 같이 두 가지 이상의 표기를 보여주는 사람 이름, 벼슬 이름, 고장 이름 등에서 소리와 뜻의 대응이 비교적
명확하게 나타나는 고구려말 어휘들 중에서 지금까지 논의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하여, 중세국어 및 지금말에
대응될 가능성이 있는 다른 몇 가지 자료를 중세국어 자료들과 비교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괄호하지 않은 것은 삼국사기 지리지의 자료이다.
여기서 음운의 재구에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최남희(1997ㄱ)님의 방법론을 바탕으로, 가능한 여러 학자의 추정
음을 종합하여 대조하고, 그로부터 귀납해 낸 결과로 당시 한자음을 추정하도록 할 것이다.
또한 이에 앞서 다른 곳에서도 같은 표기용례가 발견되는 자료는 이를 찾아내어 방증자료로 삼을 것이다.
이 글은 고대국어의 단편적인 자료들에 대한 하나의 시도에 불과하며, 글쓴이의 자료수집의 한계 및 분석의
혼미로 인해 나타나는 잘못은 앞으로 얼마든지 고치고 깁보태어 좀더 명확하고 사실에 가까운 연구로 접근할
것이다.
중국 한자음의 옛모습에 대한 연구자료로는 칼그렌(1954), 동동화(1972), 주법고(1973)등을 중심으로 하였으며,
이들 자료의 인용에 쓰인 줄임부호는 칼.(B. karlgren), 동.(董同龢), 주.(周法高), 광.(「廣韻」의 성모, 운모,
반절음)으로 쓰기로 한다.
Ⅲ. 고구려말 자료 분석
1. 麗語謂復舊土爲多勿(史記 高句麗 1)
직접적으로 설명된 고구려말 자료이다. ‘多勿’의 당시 발음을 추정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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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
동. |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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多 |
상고 |
t |
t |
t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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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
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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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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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 |
端․歌․得何 | ||
또한 향찰표기 자료들에서도 이 글자의 쓰임을 찾아 볼 수 있다.
祈以支白屋尸置內乎多 (도천)⇒ 비히볼 두오다
倭理叱軍置來叱多 (혜성)⇒ 여리ᅙ 軍두 오ㅅ다
彗星也白反也人是有叱多 (혜성)⇒ 彗星야 년기 이시다
汝於多支行齊 (원가)⇒ 너다히 녀져
安支尙宅都乎隱以多 (우적)⇒ 알지 尙宅 모돈이다
吾焉頓部叱逐好友伊音叱多 (상수)⇒ 나 頓部ᅙ 조주ㅅ다
無明土深以埋多 (청전)⇒ 無明土 깁히 무다
일반적인 재구 신라한자음도 /다(ta)/이며, 고구려 한자음에서 이와 다르게 읽혔을 가능성은 매우 적다.
따라서 이는 고구려말 /ta/의 표기일 것이다. 또한 다른 땅이름표기 자료들에서도
多仁縣 本達已縣 或云 多已 ; 多斯只縣 一云 沓只 ; 大谷郡 一云 多知忽
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이 글자의 홀소리는 /ㅏ/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으리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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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
동. |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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勿 |
상고 |
mwət |
mwt |
mjwə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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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
muə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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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uət |
이 글자의 당시 우리한자음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좀더 깊이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글쓴이는 앞으로 이에 대한 별도의 논의를 준비하기로 하고, 우선은 기존의 설명에 따르려 한다.
「광운」에서 ‘物’ 운모를 가지는 한자 중에서 두입술소리를 첫소리로 가지는 글자는 고대국어의 한자음 체계
속에서 /-ər/운모를 가지는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또한 다른 표기자료들에서도 ‘勿’은 /믈/로
읽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泗水縣 本史勿縣
德水縣 本高句麗德勿縣
黑壤郡 本高句麗今勿奴郡
또한 향찰 표기 자료에서,
次弗□史內於都還於尸朗也 (총결)⇒블 즈시 나어도 도롤 郞야
와 같이 ‘弗’의 당시 한자음이 ‘블’이었으며, 「광운」에 ‘弗 : 非․物․分勿’로 설명되어 있으니, ‘弗’과 勿‘은 같은
운모를 가진 글자임을 알 수 있다.
이로부터 ‘勿’의 당시음을 /mər/로 재구해 낼 수 있다.
따라서 ‘多勿’은 고구려말 /ta-mər/를 표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多’는 중세국어 ‘ㅎ[地]’와 연관지을 수 있겠고, ‘復舊土’의 뜻을 생각해 보면 ‘多勿’은 중세국어 ‘ 므르-’의
고구려말에 해당하는 표기로 여겨진다.
地 大(관역어 지리문) ; 退 悶勒(관역어 인사문)
爲地(해례 합자) ; 하 히 장 振動니(월인상8) ; (석보6:34) 후에 각각 므르기를 돋디 마져
(번노하17) ; 흥졍 므르다 - 打倒一云悔交(역해상69)
이와 같이 볼 수 있게 되는 또 하나의 단서는 <계림유사>에서 나타난 우리말 표기들 중에서 이처럼
‘부림말+풀이말’의 형태를 보이는 것이 풀이말의 씨끝을 나타내지 않고 줄기만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雪下曰 嫩耻 눈디-
飮酒曰 酥孛麻蛇 수울 마시-
煖酒曰 蘇孛打理 수울 다리-
讀書曰 乞鋪 글보-
이것은 표기한 사람의 발달된 말본체계를 말해 준다기보다는, 이 시기 우리말 풀이씨의 줄기가 지금보다 더
독자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는 쪽이 타당할 것이다.
이러한 표기가 고려시대에 중국 사람에 의해 가능했다면 ‘復舊土爲多勿’의 표기 또한 같은 형태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多勿’은 위의 예처럼 ‘부림말+풀이말’의 형태로 표기된 것이며, 중세국어 ‘ 므르-’에 해당하는
고구려말의 표기로 본다.
2. 北史云 高句麗人皆頭着折風 形如弁 士人加揷二鳥羽 貴者其冠曰蘇骨 (史記 雜誌 2)
‘蘇骨’은 분명 고구려말의 차자표기인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는 「三國史記」가 「北史」를 인용한 중국측
기록인 점에서 「北史」가 쓰여진 시대의 북방계 중국음으로 이 낱말을 전사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시대는 당나라 시대로 중고한음이 쓰이던 시대다. 이에 따라 당시음을 재구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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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
동. |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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蘇 |
중고 |
suo |
suo |
s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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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 |
素姑 | ||
다른 땅이름 표기 자료들에서 이 글자와 연관되는 것을 찾아 본다면 다음과 같다.
蘇山縣 本率已山縣 ; 來蘇郡 本高句麗 買省縣 ; 松岳郡 本高句麗 扶蘇岬 ; 蘇泰縣 本百濟 省大兮縣
이상의 자료들에서 ‘蘇’, ‘率’, ‘省’ 등의 글자들이 적어도 같은 첫소리를 가짐을 유추해 낼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자는 /s/ 첫소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당시 발음은 중세국어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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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
동. |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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骨 |
중고 |
kuət |
kuət |
kuət |
만일 이 자료가 고구려식 한자음을 반영한 것이었다손 치더라도 앞서 기술했듯이 현대 조선 전승한자음에서
/ㄹ/끝소리를 가지는 한자들이 당시에 어떻게 발음되었는지는 상당히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이 ‘骨’자의 당시 발음에 대해서도 /t̚/을 가졌는지, 혹은 지금처럼 /ㄹ/끝소리를 가졌는지, 아니면 단지 하강
겹홀소리인 /koj/로 발음되었는지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같은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실마리를 찾아본다면
荒壤縣, 本高句麗 骨衣奴縣(지리2) ; 居柒夫 或云荒宗(열전)
이 자료들의 대비에서 ‘荒’의 뜻에 해당하는 고구려말 ‘骨衣’, 신라말 ‘居柒’이 대응하고 있다.
두 표기가 같은 말의 방언적 차이를 반영한 것이라면 아무래도 ‘骨衣’는 /거디-/로 재구하는 것이 음운적으로
합당할 것이고, 그렇게 본다면 ‘骨’의 고구려한자음은 /ㄷ/끝소리를 가지고 있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일단 이 세 가지 가능성을 모두 인정하고 중세국어 자료에서 그와 대응될 만한 말들을 찾아 본다.
笠曰 蓋(音渴)(계림)
갇爲笠 (해례 용자26) ; 금으로 민 갇 우희 - 粧金大帽上(번박상29)
調達인 곳갈 밧고(월인상 47) ; 곳가 - 白幘(초두해7:21) ; 곳갈 밧고 - 脫帽(초두해15:41)
그 볼 사오나오니(신어5:23)
3. 安市城一名安丁忽 在遼水之北 遼水一名鴨淥 今云安民江 (遺事 三 興法第三) ;
安市城 舊安十忽(或云丸都城) (史記 地理 四)
‘安市, 安丁, 安十’이 한 어휘의 다른 표기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같은 어휘를 표기한 비슷한 소리를 갖는 다른
표기들이 나열되어 있으면 우리는 그것이 한자의 소리를 빌린 표기라는 증거로 볼 수 있다.
또한 ‘--在遼水之北 遼水一名鴨淥 今云安民江’이라는 기록에서 미루어 볼 때 이는 ‘鴨淥’이라는 강이름과 관계
깊은 땅이름일 것이다.
여러 자료들에서 확인되고 있는 ‘忽’과 ‘都’의 대응을 전제하여 볼 때 ‘安市, 安丁, 安十’이 ‘丸都’의 ‘丸’과 대응
하고 있으며 ‘丸’이 뜻을 빌린 글자라고 본다면 이는 중세국어 ‘알ㅎ[卵]’, 및 지금말 ‘알[丸: 彈丸=탄알 등]’에
해당된다.
알 뵈야로 갓 먹노라 - 秋卵方漫喫(두시17:12) ; 그 알히 석니(귀감상13) ; 알 나니라(석보13:10)
이와 같이 대응시킬 수 있는 까닭은 여러 향찰표기 자료들에서 ‘安’은 /알/로 읽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安支尙宅都乎隱以多(우적)⇒ 알지 尙宅 모돈이다
白雲音逐于浮去隱安支下(찬기)⇒ 구룸 주 간 지하
또한 <지리지>의 땅이름 표기에서도 이를 방증해 주는 자료들이 있다.
① 安賢縣 本阿尸兮縣(一云阿乙兮) 景德王改名 今安定縣
② 道安縣 本刀良縣
③ 咸安郡 法興王以大兵滅阿尸良國(一云阿那加耶)
위의 예 ①로부터 安=阿尸=阿乙…安定의 대응을 확인 할 수 있고,
②에서는 安 ; 良 의 대응으로부터 ‘安’이 /r/ 음소를 보유한 소리의 표기로 쓰인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더욱이 ③에서 安=阿尸=阿那 의 대응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어서 ‘安’을 /ar/로 해독하는 데 무리가 없음을
알 수 있다.
‘市, 丁, 十’이 忽과 어떤 문법적 관계를 가지는 토씨로 연결된 형태를 보여주는 표기일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것은 다른 표기 자료들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단지 /ㄹ/ 끝소리를 표기하기 위함이라면, 일반적으로 나타
나는 ‘尸’나 ‘乙’을 쓸 법도 한데 각기 다른 글자로 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4. 豐夫城 本肖巴忽
이 자료에서 ‘夫’와 ‘巴’를 연결시켜 볼 때 ‘豐’의 뜻을 지닌 당시의 낱말이 ‘夫’ 혹은 ‘巴’의 발음에 가까운 끝소리
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여러 다른 표기들에서 흔히 발생하는 끝소리 덧적음으로 설명되는 것
이다. 따라서 ‘豐’의 뜻을 가진 당시의 낱말이 ‘肖巴’의 당시 한자음에 가깝게 발음되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肖巴’의 당시음에 대하여 살펴보자. 우선 ‘肖’의 당시한자음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자료를 실마리로 얻을 수
있다.
屑夫婁城 本肖利巴利忽 ; 肖古王 一云素古(백제본기)
‘肖’자의 「동국정운」식 한자음은 ‘’이며, 상고․중고 한자음을 연구한 여러 학자들도 거의 대부분 이 글자는 /s/
첫소리를 가진 글자로 재구하고 있다.
더욱이 위의 자료에서 ‘屑’과 ‘肖利’의 대응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당시 한자음에도 역시 /s/ 첫소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巴’자에 대해서는 최남희(1996 : 51~53) 및 박병채(1971), 이병선(1982) 등의 음운체계에 따라 고대 우리
말에 기에 의한 대립이나 후두근육의 켕김에 의한 닿소리의 대립이 없었다고 보기 때문에, 그 글자의 첫소리는
지금과 같은 유기음이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자료들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眞寶縣 本柒巴火縣 景德王改名 今甫城 ; 孔巖縣 本高句麗 濟次巴衣縣 ; 屑夫婁城 本肖利巴利忽 ;
平淮押縣 一云 別史波衣 ; 鵂鶹城 一云 租波衣 一云 鵂巖郡
위의 자료들에서 ‘寶’와 ‘巴’가 같은 첫소리를 가졌을 가능성이 확인되고, ‘夫婁’와 ‘巴利’가 같은 말의 다른 표기
로 대응되고 있으며, ‘平’과 別‘이 또한 같은 첫소리를 가졌음을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巖’에 해당하는 고구려말이 ‘巴衣’와 ‘波衣’의 두 가지로 표기되어서 두 글자가 같은 소리를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이 낱말이 지금말이나 중세국어에서도 첫소리가 유기음으로 나타나지는 않으며, 또한 향찰 표기 자료
에서도 유기음으로 읽을 수는 없다.
巴寶白乎隱 花良 (두솔)⇒ 바보본 고자
月置八切爾數於將來尸波衣 (혜성)⇒ 도 바즈리 혀어 디녀올 바
伊於衣波最勝供也 (광수)⇒ 이 어의바 最勝供야
吾衣身伊波人有叱下呂 (보개)⇒ 나 몸 이바 사 이시아리
覺月明斤秋察羅波處也 (청전)⇒ 覺月 바지야
普賢叱心音阿于波 (총결)⇒ 普賢ᅙ 아우바
따라서 ‘巴’의 당시 한자음은 /바/였을 것이며 ‘肖巴’는 /소바/에 가까운 소리를 표기한 것이라 생각된다.
‘豐’은 원래 제사에 쓰이는 굽 높은 그릇을 뜻했고, 따라서 ‘술[酒]’과 관계가 있는 낱말을 새긴 표기일 가능성이
있다. 북한 학계에서는 이를 ‘醴(단술 례)’의 약자로 보고 있다.
또한 「설문해자」의 다음과 같은 설명은 이 글자의 다른 뜻에 ‘술’과 연관되는 사연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豐 豆之豐滿也……一曰 鄕飮酒有豐侯者. (注) 此別一義……坐酒亡國崔駰酒箴曰 豐侯沈洒荷罌負缶自戮於世
圖形戒後 李尤豐侯銘曰 豐侯荒謬醉亂迷迭 乃象其形 爲禮戒式後世傳之…….
풍(豐)은 그릇이 가득참을 뜻한다……또는 술 마시길 즐기는 데 풍후라는 사람이 있다--(주석) 이는 또 한 가지
뜻이다.……술에 앉아 나라를 망친 최 인의 「주잠」에 이르기를, 풍후는 술에 빠져 술병을 들고 술사발을 지고
스스로 세상으로부터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로써) 도모하고 후세를 경계한다 하였다.
또, 이 우의 「풍후명」에 이르기를 풍후는 거칠고 잘못되며, 술취하여 어지럽고 혼미하게 돌아다니니,
이에 그 모양을 본따 후세를 경계하는 예법을 삼아 전한다.
이러한 설명에서 볼 때 분명히 ‘豐’자는 ‘술’과 관련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역시 「계림유사」와 「조선관역어」의 자료는 이 낱말과의 연관성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酒曰 酥孛 ; 飮酒曰 酥孛麻蛇 ; 煖酒曰 蘇孛打里(계림)
酒 數本(관역어 飮饌門)
樓 우희셔 수울 먹고 - 樓頭喫酒(초두해8:28) ; 양과 수울와 보내라 시니라(삼강 효6) ; 毒 슈울 - 毒酒
(삼강 충9) ; 수을 고기 먹디 마롬과(석보6:10)
이러한 대응을 믿음직하게 해 주는 것은 전기중세국어 시기의 자료인 <계림유사>에서 ‘酥孛’로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孛’는 「광운」에서 /ㄷ/ 끝소리와 /aj/의 두 가지 소리로 설명되어 있으며, 강신항(1980)은 그 발음을 /puət/로
재구했지만, 이는 /paj/로 재구해야 하며, 반홀소리 /j/가 점점 위치가 높아짐에 따라 혀옆소리 /ㄹ/에 가까워져
갔다고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내어 좀더 자세히 논의하기로 한다. 그것은 후기 중세국어에서 위와 같이 ‘수울’ 등
으로 나타나는 것과 분명한 음운적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오히려 고구려말 자료인 ‘肖巴’에 더 가까운 모습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곧 고구려말 ‘肖巴’의 끝 음절 /pa/는 흔히 일어나는 잘못분석으로 인해 반홀소리 /j/가 덧붙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고려말에서 /paj/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설명을 뒷받침해 주는 또 하나의 근거는 백제말의 다음과 같은 표기이다.
比豐郡 本百濟 雨述郡
이 자료에서 ‘比’와 ‘雨’의 대응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豐’의 뜻을 가진 백제말의 표기로 ‘述’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고구려말 ‘肖巴’와 같은 어휘로, 방언적 차이를 보이는 표기이거나 줄인 표기일 것이다.
또 만일 지금처럼 ‘풍성하다’의 뜻으로 쓰였다면 중세국어 ‘수득이’ 등과도 비교할 수 있다.
팥밥 피식기예 수독이 담고(要路院) ; 수득이 되다 - 尖量(역해보18) ; 수북히 되다 - 尖量(한청10:21)
그것은 음운의 서로 통함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즉 ‘니장(泥匠)이~미장이, 더품~거품’ 등과 같이 남의
말을 잘못 듣거나 또는 기억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어떠한 소리를 그와 비슷한 다른 소리로 바꾸는 현상으로
/ㅂ/~/ㄷ/의 통함이 일어났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통함이 일어났을 가능성에 대한 근거를 든다면 다음의 자료들에서 찾을 수 있다.
豆尸伊縣 景德王改名 今富利縣 ; 豆尸伊縣 一云 富尸伊
5. 朽岳城 本骨尸押
‘岳’과 ‘押’은 여러 자료들에서 서로 통하여 쓰여지고 있어서 ‘朽’가 ‘骨尸’에 대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중세국어 ‘골-’, 혹은 ‘곪-’에 비교할 수 있는 표기로 생각된다. 지금말 ‘곯-’, ‘곪-’과도 이어지고 있는
어휘다.
앞서 ‘骨’의 고구려한자음이 /ㄷ/끝소리를 가진 소리였다고 설명하였는데, 역시 이 자료에서도 ‘尸’를 덧적음
으로써 /ㄹ/끝소리를 표기한 것으로 생각된다. 여러 향찰 표기자료들에서 ‘尸’는 /ㄹ/끝소리를 표기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哭屋尸以憂音 (모죽)⇒ 우롤 이 시름
祈以支白屋尸置內乎多 (도천)⇒ 비히볼 두오다
於冬矣用屋尸慈悲也根古 (도천)⇒ 어드릐 올 慈悲야 근고
秋察尸不冬爾屋支墮米 (원가)⇒ 안 너오히 디
向屋賜尸朋知良閪尸也 (청불)⇒ 아사오실 벋 아라설야
따라서 이는 중세국어의 다음과 같은 어휘에 연결지을 수 있을 것이다.
고 더러 내 나거늘(석보24:50) ; 곪디 아니 며 - 不潰(구간6:32) ; 골믈 - 膿(훈몽상30)
6. 曲城郡 本高句麗屈火郡
박병채(1968 : 70)에서는 ‘唐嶽縣 本高句麗加火押 憲德王置縣改名 今中和縣’의 기록으로부터 ‘唐(→中)’이 ‘加火’
에 대응함을 지적하고 ‘火’는 그 뜻을 빌린 표기로서 중세국어 ‘가온’에 해당된다고 설명하였다.
이러한 해석이 실증적이라면 응당 위와 같은 자료에서도 ‘屈火’의 ‘火’를 뜻으로 읽어 중세국어 ‘구븨, 굽-’과
대응시켜야 할 것이다. 향찰 표기 자료들에서도 이 ‘火’자를 새김으로 읽기 때문이다.
迷火隱乙根中沙音賜焉逸良 (항순)⇒ 이브늘 불휘 사시니라
火條執音馬 (광수)⇒ 블긴 쥠마
묏 시냇 구븨예서 녀름지고 - 爲農山澗曲(초두해21:41) ; 無憂樹ㅅ 가지 굽거늘(월인상7) ; 그 身心을 보차
믈러 구브믈 내에 말라 - 惱其身心令生退屈(원각하삼지이86) ; 구블 - 枉(훈몽하29)
7. 蘭山縣 本高句麗昔達縣
고구려말 자료들에서 가장 명확한 대응을 보이는 것 중의 하나가 ‘山, 高’ 등과 ‘達’의 대응관계이다.
따라서 이 자료에서는 ‘蘭’과 ‘昔’이 같은 낱말의 다른 표기임을 알 수 있는데, ‘蘭’은 그 소리를 빌려 쓴 글자이고
‘昔’이 의미를 나타낸다고 상정한다면 이는 중세국어 ‘-’에 대응하는 어휘로 설명할 수 있다.
老曰 力斤(계림)
옷 니버(월인상57) ; 오라 다 니시고 - 曰久故(법화2:105) ; 정자 가 도다 - 亭古帶蒹葭
(초두해21:28) ; 글 고 - 故(석천35) ; 근 홠시울 - 故弓絃(선사내훈2하51)
‘-’과 ‘늙-’이 동원어라고 본다면 「계림유사」의 ‘老曰力斤’이라는 기록은 이 고구려말 자료를 연결시켜 주는
중요한 구실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즉 「계림유사」의 기록은 후기 중세국어 ‘-’의 원형이 첫소리에 /ㄹ/을 가졌
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8. 黃武縣 本高句麗南川縣 ; 南川縣(一云南買)
‘南川’과 ‘南買’의 이중적 표기에서 ‘南’이 소리를 나타낸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武’는 ‘買’의 다른 음차표기이며, 결과적으로 ‘黃’의 뜻을 가진 고구려말 소리의 표기가 곧 ‘南’인 것을 알 수 있다.
黃曰 那論 ; 金曰 那論歲(계림)
黃 努論必(관역어)
비치 노고 香氣저니라(월석1:44) ; 봇가 져기 노게코 - 炒微黃(구급상85) ; 노 비체 쳔화 문
욘 비단 - 柳黃穿花鳳(번노하24)
9. 穀壤縣 本高句麗仍伐奴縣
‘壤’과 ‘奴’는 같은 표기임은 여러 자료들로부터 이미 확인되어 왔으므로 ‘穀’의 뜻에 해당하는 고구려말이 ‘仍伐’
의 당시 한자음에 가까운 소리로 발음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의 자료들로부터 실마리를 얻어 그 소리를 추정해 보기로 한다.
仍利阿縣 一云 海濱 ; 進乃郡 一云 進仍乙 ; 進禮郡 本百濟 進仍乙郡 ; 汝湄縣 本百濟 仍利阿縣
여기서 ‘仍’의 지금 소리는 ‘잉’이지만, 당시 음을 추정한 학자들은 오른쪽에 든 예에서 ‘海’와 대응되는 ‘仍利’를
‘나리’로 재구하고 있으며, 최남희(1997ㄱ:15)에서는 ‘仍’자의 당시음을 ‘넝[näŋ]’으로 재구하였다.
따라서 향찰표기자료에서도 다음과 같이 해독할 수 있는 것이다.
彼仍反隱 法界 (청전)⇒ 뎌 너븐 法界
또한 ‘進乃郡 一云 進仍乙’의 기록에서 ‘乃’와 ‘仍乙’이 대응되어 당시 한자음에서는 ‘乃’와 ‘仍’이 같은 첫소리를
가진 글자로 읽혔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汝’의 뜻에 해당하는 백제말 표기 ‘仍’도 중세 및 지금말 ‘너’와 첫
소리가 크게 달랐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이 글자는 분명히 첫소리에 /n/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낟爲穀(해례) ; 倉 갈씨니 나 갈씨라(석보9:20) ; 나디라 혼 거슨 人命에 根本이니(두해7:34) ; 낟 곡 -
穀(훈몽하3)
Ⅳ. 대응관계표
지금까지 중세 및 현대말에 대응되는 것으로 생각되는 고구려말 어휘들의 문헌 표기를 몇 가지 찾아내고,
다시 그것을 전후기 중세국어 문헌에 나타난 자료와 맞대어 살펴보았다. 이제 앞서 살펴 본 자료들을 한눈에
견주어 볼 수 있게끔 표로 그리게 되면 다음과 같다.
|
고구려말 표기형태 |
계림유사 |
조선관역어 |
중세후기국어 |
현대국어 | |
|
소리 |
뜻 | ||||
|
多勿 |
復舊土 |
|
大 悶勒 |
므르- |
땅 물르- |
|
蘇骨 |
官 |
蓋(音渴) |
|
갇 ; 곳갈 ; |
갓 ; 고깔 ; 꼴 |
|
安市, 安丁, 安十 |
丸 |
|
|
알ㅎ |
알 |
|
肖巴 |
豐(→酒) |
酥孛, 蘇孛 |
數本 |
수울, 슈을, 수을 ; 수독이, 수득이 |
술 ; 수북- |
|
骨尸 |
朽 |
|
|
골- ; 곪- |
곯- ; 곪- |
|
屈火 |
曲 |
|
|
구븨, 굽- |
굽- |
|
蘭 |
昔 |
(力斤) |
|
-, (늙-) |
낡-, (늙-) |
|
南 |
黃 |
那論 |
努論 |
노- |
노랗- |
|
仍伐 |
穀 |
|
|
낟 |
낟 |
Ⅴ. 맺는 글
이상으로, 고구려말 자료들 중에서 중세 및 현대국어와 대응될 가능성이 있는 몇 가지 어휘들을 찾아서 관계
되는 문헌과 직접 대조하여 살펴보았다.
많은 부분 기존의 연구성과물에 기대어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 했으며, 몇몇 자료들에서 좀더 새로운 사실이
도출되어 나오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논의되지 않았던 몇 가지의 고구려말 자료들을 분석하고 그 대응의 가능성에 대해 시도해 본 것은,
물론 글쓴이의 얕은 언어학적 지식으로 인해 견강부회한 대조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초적인 시도마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고대국어 연구의 해결점은 영영 찾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제 당시의 한자음에 대한 보다 정확에 가까운 재구를 해 낸다면 이 가설들의 참거짓은 가려지고,
고대 우리말의 모습을 좀더 옹골찬 내용으로 밝혀 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연구에서 발견된 고구려말의 특징적인 모습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풀이씨의 줄기가 전기 중세국어 자료인 「계림유사」의 표기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처럼 지금말보다 더 독자적
으로 쓰일 수 있었다.
②
고구려말의 닿소리에는 백제말이나 신라말과 마찬가지로 유기음 계열의 /kh, th, ph, tsh/ 등의 음소가 존재하지
않았다.
③
고구려말에는 지금 평안도 방언에서처럼 같은 시기 신라말에서 입천장소리 /ㅈ/으로 나타난 낱말이 /j/ 앞에서
/ㄷ, ㅌ/이 입천장소리로 되지 않는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④
고구려 한자음에는 당시 중국음에서의 /t/ 끝소리가 그대로 반영된 것도 일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는 좀더 깊은 논의가 있어야 하겠지만, 한자음 입성끝소리가 우리말 체계 안에 녹아들면서 변천되는 모습을
보여 주는 단서가 될 가능성이 있다.
⑤
중세국어 및 지금말에서 /ㄹ/ 끝소리를 가진 낱말들 중 일부가, 예컨대 ‘술, 물‘ 등이 그 원형이 /j/로 하강하는
겹홀소리로 끝나던 것이었을 가능성이 발견되었다.
즉, /-j/가 혀의 위치가 더 높아짐에 따라 혀옆소리 /l/로 변화해 간 것이다.
⑥
고대국어의 흐름소리에는 /r/, /l/의 대립이 있었는데, ‘尸’로 표기된 것은 튀김소리인 /r/, ‘乙’로 표기된 것은
혀옆소리인 /l/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는 비록 적은 수의 어휘 밖에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 없지만 고구려말은 우리말의 오랜 역사 속에서 백제,
신라말과 함께 단일어의 뿌리를 두고 중세국어 형성에 밑바탕이 되었으며, 우리말은 고대로부터 중세와 현대
에 이르기까지 한 가지로 힘차게 줄기뻗어 내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고대국어 연구에 대한 좀더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탐구를 계속해 나가야 할 것이며, 흩어져 있는 자료들
속에서 더 많은 어휘들을 찾아내고 또 새로이 대응되는 규칙이 얼마든지 발견될 수 있음을 상기해 두고,
계속적인 고대국어 연구의 미미한 시작을 이 글로써 열고자 한다.
--------------------
1).
글쓴이는 고구려말이 남방 한어와 다른 특수한 언어였다고 보는 견해에 따르지 않고 고대국어를 단일 언어로
보며, 이에 따라 ‘고구려어’라 하지 않고 ‘고구려 영토 안에서 쓰여진 우리말의 한 방언’이라는 뜻에서 ‘고구려
말’이라 일컫기로 한다.
5).
이기문(1968)에서는 고구려말 76개 어휘 중 31개 어휘를 중세국어와 대응시키고 있으며, 박병채(1968)에서는
63개 어휘 중 41개의 어휘를 중세국어와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다. 서로 중복되는 것을 빼고 두 분의 것을 모두
합하면 고구려말에 대해서는 모두 93개 어휘가 지금까지 논의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중세국어와 연관시킨 어휘 중에서 이기문님에게 없고 박병채님에게 있는 어휘는 18개이며, 두 분의 연구
를 종합해 볼 때 고구려말 어휘는 93개 중 50개가 중세국어와 대응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지금까지 논의된
셈이다.
6).
최남희(1996)의 해독을 따른다. 그것은 이 자료들과 관련한 여러 가지 이설에 대한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함이며,
앞으로 들게 되는 향찰 표기 자료의 해석은 특별한 지적이 없는 한 이 분의 해독을 따를 것이다.
또한 앞으로 인용되는 모든 자료들에 대하여, 진하게 표시된 것은 글쓴이가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다.
7).
현재 전승한자음에서 /-ㄹ/로 소리나고 있는 것들이 본래 그러했던 것이 아니라 한결같이 /-t/입성끝소리를
가졌던 것임은 다 아는 일이지만, 언제부터, 어떤 음성적 환경에서 /t/ > /l/ 의 변화가 일어났으며 왜 그리도
예외없이 변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음운적 해명이 아직까지는 명확하게 이루어지지 못한 형편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가장 분명한 것은 이 문제가 <동국정운>에서 심각하게 거론되고 있는 만큼 변화의 시기는
그보다 훨씬 이른 때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처음에 한자를 받아들일 당시부터 이미 /-t/끝소리는 /ㄹ/로
전사되었을 가능성도 희박하게나마 거론되고 있다.
이를테면 ‘勿’에 대한 당시음이 /mər/였을지 혹은 /məj/였을지 아니면 중국음처럼 /miət/에 가까웠을지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9).
물론 이 15세기 우리말 ‘ㅎ’는 [stɑʔ]로 발음되었던 것이지만 이러한 말머리소리떼는 원래부터 존재하였던
것이 홀소리줄어듬에 의해 생겨난 것도 있고, 수의적으로 중세국어시기에 생겨난 것도 있다.
「조선관역어」의 위와 같은 표기 자료는 후기 중세국어에 나타난 ‘ㅎ’가, 그 전 시기의 원형이 말머리에 /s/
를 가지지 않았을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 ---임병준(1996) 참조
10).
위에서 ‘蘇山縣 本率已山縣’과 ‘松岳郡 本高句麗 扶蘇岬’에서 蘇 : 率已, 松 : 扶蘇의 소리 대응과 뜻 대응을 알
수 있는데, ‘蓋蘇文或云蓋金(사기 열전)’의 자료에서도 역시 金 : 蘇文의 대응을 확인할 수 있다.
이로써 ‘蘇’의 당시 발음은 /soi/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11).
신라말에서의 ‘荒’과 ‘居柒’의 대응과 관련지어, 고대국어에서 유기음 계열의 닿소리들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추출해 내려는 움직임도 있어 왔다.(이기문(1972 : 65) 등) 그러나 이 부분에 있어서는 다분히 그 존재여부를
의심케 하는 상당수의 자료들이 산재해 있으며, 최남희(1996 : 51~53) 및 박병채(1971), 이병선(1982) 등의
음운체계에 따라, 고대국어의 닿소리 체계에 기의 있고 없음에 의한 대립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본다.
12).
지금도 북방계 방언에서는 /j/앞에서의 /ㄷ, ㅌ/의 입천장소리되기를 거부하여 원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는 방언 자체의 특성이자 고구려말이 가지는 특성에 합류시켜 보아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13).
‘곳갈’의 15세기 발음은 [kɔskɑl]로서, /s/ 의 갈이가 분명히 일어났다고 본다. --임병준(1996) 참조.
14).
‘句驪 地方可二千里, 中有遼山, 遼水所出. 其王都於丸都之下(양서 동이전)’ 및 ‘水有大遼․少遼: 大遼出靺鞨西南
山, 南歷安市城(신당서 동이전)’ 등의 기록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15).
‘良’의 당시발음은 /raŋ/이었으며, 향가에서는 주로 /ra/를 표기하는 약훈차자로 쓰였다.
法界毛叱所只至去良 (예경)⇒ 法界 못록 니르가라
一念惡中 涌出去良 (칭찬)⇒ 一念아 솟나가라
佛前灯乙直體良焉多衣 (광수)⇒ 佛前灯을 고디란
迷火隱乙根中沙音賜焉逸良 (항순)⇒ 이브늘 불휘 사시니라
法性叱宅阿叱寶良 (보개)⇒ 法性ᅙ 宅아ᅙ 보배라
17).
「광운」 孛 蒲隊切 ; 蒲沒切. 또한 「설문해자」에는 ‘孛 蒲妹切 十五部’로 설명되어 있다. 송나라 사람 손 목이
가지고 있던 한자음 체계가 어떠한 것이었으며, 또 이 ‘孛’자를 어떻게 읽고 기록한 것인지에 대해서 좀더 명확
한 규명이 있어야 할 것이지만, 어떤 발음으로 읽었든 설령, /t/ 끝소리로 읽었다손 치더라도 그는 당시 고려말
에 있던 /ㄹ/ 끝소리에 대해 그다지 확실하게 구별하여 듣고 기록하지는 않은 것 같다. 왜냐 하면 그가 가졌던
한자음 체계에는 입성 끝소리 /k, t, p/가 유지되었든 안 되었든 간에 /ㄹ/ 끝소리는 가지고 있지 않았음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15세기 우리말에 ‘슈울, 믈’처럼 /ㄹ/ 끝소리로 나타났다고 해서 고려말에도 같았
으리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18).
글쓴이는 <계림유사>의 ‘酥孛’ 와 <조선관역어>의 ‘數本’ 사이의 시기에 중세 후기국어의 ‘수울’ 등에 가까워진
음운변화가 일어났다고 본다.
19).
‘>파리, 낛>낙시, 굼>굼벙이’ 등과 같이 우리말에 /ㅣ/음이 이름씨에 붙어 길어지는 일이 흔히 있는데,
이는 임자꼴 ‘리’, 잡음씨 연결형 ‘리라’와 같은 통합이 자주 나타나는 결과, ‘+이라’로 분석하지 않고 ‘
리+라’로 잘못 분석한 탓이니 이러한 현상은 ‘잘못분석(metanalysis)'라 한다. 허다. 즉 여러 향찰표기에서
매김꼴의 씨끝 「-ㄹ」과 임자씨의 끝소리 「-ㄹ」 표기에는 전적으로 ‘尸’자를 썼으며, 토씨와 기타의 /ㄹ/ 표기
에는 주로 ‘乙’자를 썼다는 사실에서 고대국어의 흐름소리는 /r/과 /l/이 서로 대립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음에 열거한 땅이름의 표기들에서는 ‘尸’자가 분명 /r/을 가지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犁山城 本加尸達忽 ; 阿尸良國 一云阿那加耶 ; 有鄰郡 本高句麗 于尸郡 ; 武靈郡 本百濟 武尸伊郡
21).
물론 뒤에 이어진 ‘伐’이 문제가 되며, 이는 근 천 년에 이르는 시간차를 연결해 줄 아무런 단서가 없기 때문에
글쓴이의 견강부회한 억설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좀더 정확한 음운적 탐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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