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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상사 일주문
고려 현종 9년(1018년)에 40만의 거란군이 개성까지 쳐들어오자 현종은 민복(民服) 차림으로 이곳 월롱산에 피신했으나, 강감찬(姜邯讚) 장군이 귀주(龜州)에서 승리하여 국내가 평정되자 환궁하였다.
현종은 이곳을 기리기 위하여 절을 짓고 왕이 머물렀다는 뜻으로 용상사(임금이 앉은 자리에 절을 짓다)라 하였다고 한다.
▲ 2015년 대웅전 화재 후 새로 지어진 용상사 대적광전
그 뒤 조선 세종 27년(1445년) 덕은(德隱)스님이 중건하였으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에는 이 절에 승병들이 머물면서 왜군을 섬멸하였다고 한다. 그 뒤의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1945년 8·15 전에 중건하여 원래의 절터인 인근 벽장굴에 있던 석불을 옮겨와 봉안하였다.
▲화재 전 대웅전에 모셔진 석불좌상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80호)
그러나 2015년 대웅전 화재 후 대적광전을 중건하였고 명부전, 삼성각, 요사채가 있다.
▲ 화재 전 용상사 석불좌상 모습 (서울신문 자료)
유물로는 8.15 전에 벽장굴에서 옮겨와 대웅전에 봉안된 파주 용상사 석불좌상 (坡州 龍床寺 石佛坐像)이 있는데, 높이 56.5㎝, 무릎 폭 44.5㎝인 불상은 화강암으로 바닥에 ‘正統十年 乙丑 五月(정통10년 을축 5월)’, 즉 1445년 5월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 불상은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2015년 11월 15일 용상사 대웅보전 화재로 훼손되어 현재 보존 처리하여 보관 중이어서 일반에게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 2015년 11월 화재 당시 보도 사진 (서울신문 15.11.16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이제 천년 고찰 용상사가 새로운 용상사의 천년 이야기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 용상사 대적광전에는 비로자나불이 봉안되었다.
저는 지금 파주에 살고 있으며 파주의 사적과 역사를 하나하나 보고(瞻坡) 배우고 알아(知坡) 파주를 사랑(愛坡)하는 파주인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위 자료는 네이버 브로그 Story 77616 파주 용상사(23.08.13)와 서울신문 기사 자료 인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