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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할렐루야 오늘도 거룩한 주의 날 성전에 나와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과 가정과 일터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오늘도 앞뒤 좌우 계신 분들과 사랑의 고백, 축복의 인사 나눕니다.
주 안에서 사랑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앉은뱅이가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난 사건은 사람들로 하여금 솔로몬 행각에 모이게 할 만큼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워할 만큼 매우 파급력 있었던 놀라운 표적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솔로몬의 행각에 모인 수많은 무리를 보면서 복음 전해야 될 정말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해서 아주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죠.
그 복음의 핵심 부분이 이제 난 지지난주에 우리가 함께 나눴는데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예수의 주되심 이 어떤 것인지를 말했고요. 그에 대해 또한 앉은뱅이가 어떻게 치유받았는지 즉 믿음으로 치유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셨고, 더불어서 예수를 죽인 유대인들의 죄에 대해서 다루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기록했다면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죽으셔야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더불어서 유대인들을 향한 회개의 촉구가 이 말씀 가운데 담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17절 18절을 보시면 예수가 죽으셔야 했던 이유 두 가지가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예수가 죽으셨던 이유 첫 번째는요. 유대인들과 관리들이 무지했기 때문이다라고 성경은 기록해 줍니다. 17절 말씀 우리 같이 읽어보실까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유대인과 이 관리들이요. 예수를 볼 때 자신들이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던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죠. 즉 그들의 무지가 하나님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는 무서운 죄를 범하게 한 것입니다. 이들이 얼마나 무지했던지 예수님도 십자가상에서 그렇게 많은 말을 하지 않으셨잖아요. 몇 마디 하지 않은 그 말 가운데 그들의 무죄를 지적하죠.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저들이 지금 메시아를 못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하나님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는 거예요.
실제 사단은 시대를 불문하고 영적 무지를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죄악으로 이끌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오늘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사단은 무지라는 것을 가지고 저와 여러분들뿐만 아니라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이끌어간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도 우리는 하나님을 알잖아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지 알잖아요. 예수를 믿지 아니하면 지옥에 가고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걸 알잖아요.
그런데 세상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보십시오. 그 누구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예수 믿지 않으면 천국 가지 못한다 얘기해 보세요. 그냥 피식 웃고 말죠. 그걸 알지 못한다라는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시대에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심각한 죄를 범하고 있으면서도 죄인 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알지 못하고 범한 죄는 죄라고 볼 수 없는 것일까요? 모르고 지었는데요. 용서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말할 수 있잖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몰랐다는 것 이것이 절대 면책 사유가 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알든지 몰랐든지 이들이 메시아를 끔찍하게 죽이는 자리로 내몰았기 때문에 이것을 죄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죠. 코세아에 보면 그런 말이 있죠.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하는거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필요하다라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알되 힘써 여호와를 아는 자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해야 될 것은요. 기도예요. 어떤 기도를 해야 할까요?
하나님 나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할렐루야 지혜와 계시의 영,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보는 하나님을 아는 지혜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우리의 마음의 눈을 밝혀주셔서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옵소서 또한 성도들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 것인지를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뿐만 아니라 믿음이 믿는 우리 속에 강한 능력으로 역사하신 하나님의 그 능력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를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기도가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필요하다. 또한 한 가지 더 있어야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가 있어야 된다라는 거예요. 이를 위해서 우리는 힘쓰고 노력해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에 이 성경의 친밀함을 가지고 살아야 된다는 것이죠. 말씀을 펼쳐 묵상하고 배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가 있어 날마다 주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귀하고 복된 성도님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가 죽으셔야 했던 첫 번째 이유는 그들의 무지였어요. 두 번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것이죠. 18절 말씀 우리 한번 읽어보실까요?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고난받으실 것을 미리 알게 하셨다는 거예요. 어떻게 미리 알게 하셨어요? 선지자들을 통해서 계속해서 하나님은 알려주셨다. 유대인들 구약 성경을 늘 읽고 묵상했던 그들은 메시아가 와서 고난받으실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 알고 있었다는 것이죠. 그러니 십자가의 사건은 갑자기 또는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죠. 성경을 거슬러 올라가 보십시오. 창세기 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였을 때 그들이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렸죠. 그때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입히십니다. 이것은 앞으로 나타나게 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해주는 첫 번째 사건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이죠. 그들이 부끄러워서 두려워서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대면하지 못했던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입혀주심으로 말미암아 차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대면할 수 있는 길을 허락해 주셨다.
뿐만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할 때 누가 그들을 꼬셨어요? 뱀 이 뱀과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야기했습니까? 여자와 원수가 되고 후손들도 원수가 되겠다 그렇게 말씀하죠.
여자의 후손은 원수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지만 원수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고난받으실 것에 대해서 창세기 때부터 말씀하셨다는 것이죠.
구약의 여러 선지자들이 그러한 것들을 선언하고 선포했습니다. 특별히 이사야 53장 같은 경우는 고난의 종이라고 이야기하죠. 거기에 보시면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세상에서 그분이 어떤 대우를 받게 될 것인지 또한 어떻게 대속을 성취할 것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기록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예수님도 자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말씀을 인용해서 자신이 고통받아야 할 것을 예언하잖아요. 예수님이 그렇게 말하잖아. 광야의 눕뱀처럼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 내가 십자가에 그 고난의 자리에 서야 할 것이다. 신이 말씀했다는 거죠.
이처럼 메시아의 죽음과 부활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하신 말씀이고 그것은 성취될 일이었다라는 거예요. 그러니 예수님께서 죽으셨던 이유 두 가지는 첫 번째 백성들의 무지 두 번째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베드로는 어쩌면 성취될 하나님의 말씀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들의 무지를 회개해야 된다는 것을 선포했다는 거예요.
여러분 인간의 죄로 인해서 나타난 현상이 무엇입니까? 책임 전가잖아요. 아담이 왜 먹지 말아야 될 사나카를 먹었냐 하나님이 주신 저 여자 때문에 제가 먹었습니다. 책임 전가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했느냐 뱀이 저를 꼬셨습니다. 책임 전가 그러면 이러한 상황 가운데 하나님 이왕 하나님의 계획이셨는데 우리가 무지해서 그랬다고 꼭 형벌까지 하셔야 됩니까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인간들의 입장이죠.
하지만 여러분 하나님의 계획이라 할지라도 우리 시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 내어주었다면 마땅히 회개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죄에게 내어주는 불의의 무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의의 무기가 되어야 된다는 것이죠.
이 일을 위해서 우리가 기도해야 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께 따라다녔던 12 제자를 보십시오. 거기에 모두가 의의 무기였습니까? 아니죠. 예수님을 돈을 받고 판 사람도 있어요. 어떻게 그 사람에게 우리는 의의 무기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 우리가 교회 다닌다고 해서 모두가 의의 무기가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는 할 수 있죠.
하나님 내가 이왕 예수 믿는데 내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고 예수가 나를 구현해 주셨다는 그러한 믿음이 있는데 하나님 내 인생 살아가는 동안 불의의 물이 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죄에게 휘둘림받는 자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의의 무기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인생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이 기도는 할 수 있잖아요. 저와 여러분들이 하루를 시작할 때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 오늘 하루의 삶 속에 분명히 사단이 나를 건드릴 텐데 그때 넘어가지 말고 의의 무기로 쓰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 베드로는 무리에게 회개를 촉구합니다. 19절 말씀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십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라.
이 구절에 보면 회개가 무엇인지, 회개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가 무엇인지를 기록해 주고 있죠. 여러분 회개가 무엇입니까? 회개는 후회하고 같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베드로 같은 경우는 닭 우는 소리를 들고 어떻게 했습니까? 회개했죠. 회개하고 주님께로 그러나 가롯유다 같은 경우는 자신이 잘못한 것을 깨달았어요. 내가 이거 잘못했네. 후회했습니다. 그러나 회개의 자리까지 가지 않았어. 그래서 자신의 생명을 죽음으로 내모는 안타까운 선택을 하게 된 것이죠.
오늘 19절에 보니까 회개하고 돌이켜라고 기록하고 있죠. 즉 회개라는 것은 돌이키는 방향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회계는 생각이나 마음을 완전히 바꾸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바꿔진 마음의 상태를 어디로 집중하는 거에 하나님께로 집중하여서 하나님께로 향하기로 결심하여 나아가는 것을 회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죄의 짝이 되어서 하나님께로부터 등돌리고 살았던 사람이 회개하면 다시금 하나님을 바라보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선택하는 삶으로 변화된다라는 것이죠.
이러한 개념으로 볼 때 여러분 돌아온 탕자는 회개한 자녀라고 볼 수가 있죠. 여러분 만약에 탕자가 열심히 돈을 썼어요. 그리고 이제 내가 갈 데가 없는데 돈이 없는데 어떡하지 하다가 종이 되어서 돼지를 치고 쥐염 열매를 먹습니다. 이 먹는 가운데 내가 잘못했네 하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면 그의 삶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그의 삶에 그래 내가 이렇게 먹느니 우리 아버지께로 돌아가서 아버지의 종이 되면 이보다 훨씬 더 좋은 생활을 할 수 있겠다. 그 마음을 먹고 돌이켜서 집으로 돌아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축제의 자리가 그에게 준비되어 있었다. 아버지께서 금가락지를 껴주고 소를 잡고 잔치를 벌이면서 내 아들이 돌아왔다 하며 잔치를 벌였다는 것이죠. 돌아오자 그들 그에게는 큰 선물, 즉 새로운 삶이 열렸다는 것이죠.
성경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말씀하고 있죠. 진실한 뉘우침은 반드시 그 뉘우침에 따른 합당한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그 열매는요.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사는 자로 변화되어진다는 것이죠.
여러분 분명히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저 회개했습니다. 회개했습니다고 말하고 죄를 벗삼는 것에 즐거움을 가지고 사는 사람 그 사람 회개했다 말할 수 없는 것 그것은 그저 관념적인 회개일 것입니다. 가식적인 행위일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이러한 관념적인 회개, 가식적인 회개가 아니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진정한 회개가 우리의 심령 가운데로부터 일어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었어요. 그런데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격려하시고 심판하신 이유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예레미야 32장 33절인데 우리 뭐라고 기록되어 있는지 한번 보실까요? 예레미야 32장 33절 시작.
그들이 등을 내게로 돌리고 얼굴을 내게로 향하지 아니하며 내가 그들을 가르치되 끊임없이 가르쳤는데도 그들이 교훈을 듣지 아니하며 받지 아니하고
사실 하나님께 등돌려야 할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 선민이죠. 택함 받은 백성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보고 살아야 되죠. 그런데 이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등을 돌리고 외면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계속해서 가르쳤어요. 가르치고 또 가르치고 또 가르쳤지만 이들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거절했다고 성경은 아주 단호하게 말씀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쳐질 때에 그 교훈을 듣고 돌이키는 참 회개가 저와 여러분 가운데 일어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렇게 회개할 때 나타나는 결과가 무엇입니까? 19절에 두 가지를 이야기하는데 첫 번째 죄사함의 결과를 얻습니다. 즉 죄의 문제로부터 해결받는 거예요. 여러분 내가 예수를 믿고 있는데 아직까지도 죄 때문에 고민하는 분들은요. 해결되지 않은 거예요. 여러분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죠.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그것으로 죗값을 낼 수는 없는 것이죠. 아무리 착한 일, 선한 일 많이 해도요. 그것으로 죄사함을 받을 수 없어요.
세상에 우리보다 착한 일, 선한 일 많이 하는 사람 수두룩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죄사함이 있다고 말하죠. 우리가 그들보다 덜 선할지라도 우리는 죄사함의 은혜가 있는 것이죠. 아무리 돌을 잘 닦는다 하더라도 수영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죄를 사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죄사함을 얻습니까? 오늘 기록된 대로 자신의 잘못을 주님께 고백하고 회개하여서 돌이키면 죄사함을 받는다. 할렐루야 여러분 이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진리의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동의서에서 먼 것 이것은 만날 수 없는 자리입니다. 동의서에서 본 것처럼 죗가를 멀리 옮기시겠다.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가 멀어졌다라는 이 사실을 고백하며 사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 회개로 인한 나타난 결과는요. 새롭게 되는 날을 맞이하겠다는 거예요. 19절 뒷부분에 보니까 이같이 하면 이같이 하면 이게 무슨 이야기입니까? 회개하고 돌이켜 죄없다함을 받으면 새롭게 되는 날, 새롭게 되는 날 즉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다. 그렇게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되는 날은 개혁 성경에 보니까 유쾌하게 되는 날 즐거운 날인 것 같아 굉장히 즐거운 날 메시지 성경에 보니까 축복의 소나기가 쏟아부은 새로움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성령을 선물로 받고 하나님과 화목한 교재를 통해서 막 기쁨이 저 기쁨 속에서부터 샘솟듯 올라 충만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죠. 이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17절을 통해서 재창조된 인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회개하여 돌이켜 죄사함을 받고 재창조의 기쁨을 누리며 살고 계십니까? 왜 대답을 못하세요? 질문이 굉장히 어려웠나 보죠 여러분 죄사함으로 인해서 재창조의 기쁨을 누리며 살고 계십니까? 다시 말해 구원의 기쁨을 누리며 사시냐는 거예요.
간절히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저와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서 예배드리는 저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 그 놀라운 은혜, 그 기쁨을 가지고 감격 속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 구원의 일하심이 우리의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을 승리자로 이끄는 그러한 표대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새롭게 되는 날은 두 가지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어요. 첫 번째는 내가 새롭게 되는 이러한 것이죠. 현 시점에서 내가 죄사함의 은혜를 받는 시간, 그리고 죄로부터 해방되는 시간이라고 본다면 미래로 볼 때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시 오실 재림의 날입니다. 주님 재림하시는 그날이 얼마나 기쁘겠어요? 새로운 날 완전히 회복되어지는 그날 그래서 20절에 보시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들을 위해서 예정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시겠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그때를 21절에서는 만물이 회복되는 때다라고 기록하고 있어요. 우리 20절 21절 그런 개념을 가지고 한번 읽어보십시다.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혼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두리라.
여기에서 우리는 회복이라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회복이라는 것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 하나로 통일되는 것 즉 지으신 대로 회복되는 것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이야기해요.
여러분 죄로 인해서 나타나는 현상이 뭐예요? 하나님과 함께 있다가 분리되어 버렸어요. 그렇죠 하나님과 함께하지 못했어요. 하나님과 사랑의 단절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더 순종하지 못하죠. 왜 순종하지 못해서 떠나갔으니 더 순종하지 못하는 인생이 되었어요.
그러면 회복이 무엇입니까? 우선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야 되는 거예요. 이게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종하지 못했던 인생에 순종하며 사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 앞에 거룩하게 순종하며 산 삶 그것이 회복이죠. 그래서 마침내 모든 죄의 뿌리가 사라지고 오직 의로움에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이 완성되는 아주 복스러운 상태를 회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회복은 여러분 메시아가 도래하면서 이미 시작이 되었고요. 현재 진행 중이며 앞으로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 완성이 됩니다. 여러분 이 구간을 아셔야 돼요. 2천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회복은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까지 앞으로도 진행되겠죠.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 완성되어진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 모든 회복의 역사를 보게 된다라는 그래서 조금 전에 읽었던 말씀의 끝부분에 뭐라고 돼 있습니까?
하늘이 마땅히 그들을 받아두리라. 즉 아직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신다는 거예요.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 우편에서 뭐 하십니까? 저와 여러분 우리가 거할 처소를 예비하시고 그 자리에서 이 믿음의 백성들이 끝까지 승리하기를 소망하면서 준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내가 사랑하는 우리 신은혜 성도들이 이 한 주간 살면서 불의에 내어주는 그러한 인생이 살지 않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우리 신은혜 성도들이 한 주 하루하루를 살면서 하나님께 들여져 의의 무기로 쓰임 받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주님이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신다니까. 그러니 우리는 그 주님을 기대하고 소망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죠.
여러분 이 사실을 기억하셔서 아직 이 땅에 살아가지만 이미 이루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힘입어 그날을 소망하며 기쁨으로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베드로는 솔로몬 행각에서 행해진 자신의 이제 설교를 마무리를 짓습니다. 마무리를 지으면서 구약의 중요한 인물 3명을 소환해 유대인들이 들을 때 유대인들이 생각할 때 존경받는 세 사람이죠. 모세, 사무엘 아브라함을 불러들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우리 본문을 통해서 볼 수가 있는데, 먼저 예수가 모세와 같은 예언자라고 이야기를 해 모세와 같은 예언자다.
그 이야기를 한 이유는 여러분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기 위해서는 누구의 말을 순종해야 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했지만 그 대리로 선지자 모세의 말을 잘 따라야 그들이 갈 수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너희들이 출애굽할 때 모세의 말을 들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말을 들어야 된다. 예수가 하신 말을 모두 들어야 된다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모세를 소환한 것이죠. 이것은 마치 아담에게 순종을 요구했던 것과 같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하면 죽음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처럼, 예수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불순종에 관한 처벌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22절 23절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우리 22절 23절 같이 읽어보실까요?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받으리라 하였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반드시 순종하고 따라야 할 것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진리이신 예수가 우리의 삶의 푯대가 되어서 그분을 따라갈 때 생명의 길을 간다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불순종의 삶을 살아가게 되면 멸망의 자리에 이를 수 있다라는 거 잘 들으십시오. 내가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해도 불순종의 삶을 살면 멸망의 자리에 이를 수 있다.
왠지 아십니까? 믿음이라는 것은 순종을 수반해요. 믿음이라는 것이 순종을 수반하는데 내가 믿는다고 하면서 불순종한다면 뭐가 문제가 있는 거죠? 그렇죠 뭐가 문제예요? 내 믿음이 없는 거죠. 그냥 내 스스로 고백하는 믿음일 뿐이죠. 그러니 우리에게는 진정한 믿음이 필요한 거예요.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는 그 믿음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두 번째는요. 사무엘 이후 모든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었다라고 이야기 사무엘이 첫 번째 선지자잖아요. 마지막 선지자까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신 그 예언이 이루어졌다는 것이죠. 즉 예언대로 메시아가 오셨다. 예수가 그분이라는 것을 강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24절 같이 읽어봅니다.
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고 무지하여서 예수를 죽음의 자리로 몰아넣었던 그들에게 그 예수가 메시아다. 사무엘 때부터 마지막 말라기 선지자까지 선포되어졌던 메시아에 대한 사상이 바로 예수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의 축복의 씨를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무엇이냐면 듣고 따르는 자는 결국 복을 받을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무슨 얘기를 하냐면 예수를 잘 선택해서 그분을 따르면 복받을 것이니 회개해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 25절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에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여러분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뭐예요?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할렐루야. 그리고 10장이 지난 22장에 가면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칠 때, 즉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기 위해서 손을 들어서 칼을 딱 내리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아브라함아 부르시죠.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은 뭐예요?
내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즉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서 복받겠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복이 임할 것이라는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를 듣고 순종하는 자가 참된 복을 누리며 살 것이라는 것이죠.
여러분 그렇다면 베드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존경하는 이 세 사람을 소환해서 예수에 대해서 자세히 소개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분 앞서서 회개하면 나타나는 결과 두 가지를 제가 말씀드렸어요. 첫 번째는 뭐였습니까? 죄사함 죄사함의 은혜가 우리에게 두 번째 새롭게 되어진다.내가 새로워지고 새롭게 오실 주님의 날이 있다. 이 두 가지가 우리에게 주신 복이죠. 은혜죠. 마지막 세 번째 회개할 때 나타난 결과가 바로 축복이라는 거예요. 행복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진짜 행복은 회개할 때 우리 가운데 임한다는 거예요. 26절 같이 읽어보십니다.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지금 유대인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지금 이 말씀을 통해서 너희로 말미암아 그 죄악에서 벗어나 돌이키게 하니까 빨리 돌아오라고 지금 선언하는 것이죠. 복 주시려고 지금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짜 행복이 뭔지 아십니까? 이렇게 질문을 할게요.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불행하게 사시는군요. 여러분 진짜 행복하십니까? 진짜 행복하기 위해서 여러분 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이렇게 사회 각층에 있는 사람들을 이렇게 쭉 보면 저하고 거리 먼 사람들이죠. 다 가깝지는 않아요. 돈이 많은 사람들 이렇게 쭉 보니까 돈 많아서 행복한 사람 그렇게 많지가 않은 것 같아요. 돈 많아서 행복한 사람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모두가 다 돈 많다고 행복하지 않은 것 같아요.
어떤 권력을 가졌다고 해서 지위와 권세를 가졌다고 해서 좀 안타까운 거지만 제가 요즘 우리나라 대통령들 보면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아요. 왜 나는 그걸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이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러면 많이 배워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행복합니까? 어느 정도 나이가 지나고 연세가 들면 그냥 다 지식이 다 동일해지는 것 같아요. 그런 거 보면 이걸 우리에게 평생의 행복이라고 말하기는 참 어렵다라는 거 잠시 잠깐 행복할 수 있죠. 돈이 있으면 그냥 웃어질 수 있어요. 지식이 있으면 그래 내가 어느 정도 지식이 있으니 하면서 자신감 있게 살 수 있어요. 지위가 있으면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시 행복할 수 있죠.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행복으로 이끌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참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시편 1편 1절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이라고 얘기했죠. 그런데 원문에 보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돼 있어요. 물론 그 단어가 블레스라는 단어라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복 있는 사람이 맞아요. 그런데 여러분 그 복이라는 그 블레스의 원어를 따라 올라가면 피 흘리다는 동사로 블리드라는 데에서 나왔다는 블루드가 피이면 피 흘린다는 블리드에서 이 블레스가 나왔다라는 것이죠. 즉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은 피 흘리는 과정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시편 기자는 1편을 통해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또 보세요. 시편 1편 1절 2점만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행복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1절에 보면 죄하고 멀리하는 사람이라고 그러죠. 2절에 보면 말씀과 가까워지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해요. 그렇죠. 그래서 행복한 사람은 그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악이라는 죄에서 멀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편 1절을 보면 행복한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이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 죄하고 멀어지는 거죠. 반면에 반대로 생각하십시오.
2절 보십시오. 행복한 사람은 어떻게 돼 있습니까?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이 행복하다. 성경은 우리에게 행복을 그렇게 가르쳐주고 있다는 거 즉 진짜 행복한 사람은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통제받는 사람이 진짜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 행복은 회개할 때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거예요.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아는 지혜가 있어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고 우리에게 주시는 참 행복이 말씀 안에 있고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임을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도행전 3장을 한번 전체적으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베드로와 요한은 낳으면서부터 앉은뱅이로 살았던 그 사람을 예수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로 인해서 몰려든 많은 무리들 그들 앞에서 설교를 합니다. 그리고 전반부의 설교에서는 기적보다는 기적의 주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집중시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렸고요. 그 예수는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아다. 그리고 유대인들 너희들이 고대하고 바라고 기다렸던 그분 예수다. 메시아라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통해서 그걸 알았다면 뭐 하라는 거예요? 회개해야 된다 회개해야 된다. 회개는 조건 회개하면 세 가지 나타나는 것이죠.
첫 번째 죄사함 두 번째 새롭게 되는 날 내가 새로워지는 거예요. 재창조입니다. 그리고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 어떻게 된다고요? 온전한 회복이 일어나 세 번째 행복을 누리는 사람 이제 묻습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어서 회개하여 죄사함의 은혜를 받으셨습니까? 이게 대답이 시원치 않으면 안 되는데 처음부터 다시 해야 되겠네. 오늘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회개하여서 죄사함의 은혜를 받으셨습니까? 크게 하셔야 이게 내 안에 확 들어오는 거예요.
그러면 두 번째 여러분 회개를 통해서 거듭날 세 사람이 되어 새로운 날을 맞이하셨습니까? 또한 새로운 날이 올 그 재림의 때를 기대하면서 소망하며 사십니까?
세 번째 여러분 회계에서 진짜 행복합니까? 이거는 좀 아닌 것 같은데 제가 이렇게 말씀을 준비하면서 생각해 봤어요. 성도들이 어떻게 대답할까? 그래 죄사함이라는 것은 그래 우리가 배운 게 있고 지식이 있고 또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니까 아멘 좋아 거듭난 삶 그래 거듭났지 우리가 뭐 사실 세례받을 때 다 거듭났다고 고백했잖아요. 그렇죠. 이건 뭐 너무 진리이기 때문에 그리고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우리가 기대하면서 사니까 이것도 아멘 그런데 진짜 행복하십니까? 아멘은 해도 속으로는 아닌데 이럴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이번 한두 살 동안 저는 죄사함의 은혜 거듭난 은혜 이것은 여러분들에게 다 있다고 보고 그러나 우리의 삶이 행복해야 되잖아요. 이번 주가 지나갔을 때 이번 주 진짜 행복했어. 할렐루야 내가 예수 믿고 구원받아 회개했더니 야 월요일부터 이렇게 행복한 일이 있고 하루를 사는데 이렇게 재미있나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 약 일주일이 너무 손살같이 지나가죠. 너무 손살같이 지나가는데 힘들고 지루한 게 아니라 행복했노라.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삶의 현장 가운데 고백되어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