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No.12 책상 서랍 속의 동화 (一個都不能少, Not One Less, 1999)
이 영화의 제목은 오래 전부터 들었었지만, 막상 영화를 본 것은 한참 지난 뒤로
2008년 중국 북경어언대학교에서 중국어 수업을 받을 때다. 독해 시간에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강사는 당연하다는 듯이 ‘一個都不能少‘라는 영화를 봤느냐고 물었는데, 뜻밖에도 학생 중에서 이 영화를 알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도 스스로를 영화 매니아라고 자부했었는데, 베니스영화제에서 그랑프리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작품을 전혀 몰랐으니, 속으로 상당히 부끄러웠다. 더구나 그 유명한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작품인데…
수업이 끝나고 집에 와서 자료를 찾아 보니, ‘책상 서랍 속의 동화’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됐던 작품이었다. 훌륭한 작품이라는 얘기는 들었었지만, 그 전에 보지 못했던 터라 당장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왜 영화 제목이 ‘一個都不能少‘인지를 알았다. 한글 제목도 상당히 좋지만, 내용을 전달하는 과정에서는 좀 뜬금없는 제목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식의 이상한 번역으로 만들어진 제목은 수도 없이 많은데, 그런 얘기들은 나중에 한번 정리해 볼까 한다.
‘一個都不能少‘는 직역하면, ‘한 개라도 적으면 안돼’라는 뜻이다. 제목의 이해를 돕기 위해 줄거리를 먼저 소개하겠다.
(스포일러 주의)
시골 깡촌인 슈이츄앤(水泉)초등학교의 까오 선생이 노모 병환 시중을 위해 한달간 학교를 비우게 되자, 마을의 티앤(田)촌장은 13세인 웨이민지(魏敏芝)에게 임시 선생의 자리를 맡긴다. 원래 이 학교의 학생은 30~40명이었지만, 계속 줄어들어서 지금은 28명이다. 가난한 마을이어서 임시 선생에게 줄 급여는 없다. 그러나 촌장은 웨이민지에게 만약 한달 동안 학생이 한명도 줄어들지 않는다면 10원을 주기로 약속한다. 판서를 하고 노래를 가르치며 학생이 한명이라도 줄어들까 노심초사하며 매일 출석을 부르는 웨이민지. 그런데 항상 10세인 장회이커(张慧科)가 말썽이다. 말도 듣지 않고, 선생이 어리다며 막 대든다. 그러던 어느 날, 장회이커의 집안이 빚에 시달리게 되자 도시로 돈을 벌러 떠난다. 어린 장회이커가 도시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당연히 고생만 한다. 웨이민지는 없어진 한명의 학생을 찾아서 10원을 받기 위해 도시로 따라나서지만 돈이 없기는 마찬가지, 노숙을 하는 등 갖은 고생을 다 한다. 본인의 고생 속에 어린 장회이커에 대한 걱정이 점점 더 커져가지만, 장회이커를 찾을 길이 없다. 어느 날, 웨이민지에게서 딱한 사연을 들은 지역 방송국의 도움으로 마침내 장회이커를 찾는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도 ‘Not One Less’다. 원작의 뜻을 거의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책상 서랍 속의 동화’라는 제목은 아름답지만, 원래 제목의 느낌을 전혀 전달하지 못한다. ‘한 명이라도 줄어들면 안돼’가 적합한 제목이 아닐까? 수입 배급사가 영화 제목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버했다고 생각한다.
* 참고로 일본에서의 영화 제목은 ‘저 아이를 찾아서(あの子を探して)’였다. 원제와 똑같지는 않지만 줄거리를 반영한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장이머우 감독은 이 영화를 찍을 때 기존 배우들을 전혀 캐스팅하지 않고, 농촌에 살고 있는 현지인들을 그대로 캐스팅했다. 그래서 배우들의 실명 이름이 영화 속 이름과 같다. 물론 실화를 영화로 만든 것은 아니다. 다만, 중국의 농촌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일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 장이머우 감독이 까오촌장과 웨이민지에게 연기를 지도하는 모습.
이 영화 직후 장이머우 감독은 비슷한 컨셉의 '집으로 가는 길(我的父親母親, The Road Home, 1999)'을 만들어서 또 다시 큰 호응을 얻었다.
우리나라에도 ‘무작정 상경’이라는 말이 있듯이, 중국에는 ‘농민공(農民工)’이라는 단어가 있다. 가난한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일하는 빈곤층 노동자를 일컫는 단어다. 이미 20여년 전에 이런 현실을 영화에서 표현한 것인데, 지금은 농민공의 숫자가 이미 3억명에 달한다고 한다. 당연히 중국의 심각한 사회문제다.
이런 중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영상으로 옮긴 탓에, 중국의 관객들은 크게 호응했지만 중국 정부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도 불과 40여년 전에는 똑같은 사회 문제가 있었다. 따라서 완전히 남의 얘기처럼 보이지 않는다.
사회적인 이슈를 떠나서 영화 자체가 주는 재미도 크다. 다소 지루할 것 같은 줄거리지만, 106분이라는 러닝타임이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장이머우 감독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따뜻한 영상 속에 인간이 갖고 있는 휴머니즘이 그대로 살아 있어서, 보는 내내 잔잔한 감동을 준다. 그리고 당연히 마지막 장면에 아이를 찾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혹시 못 찾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같이 하게 되고, 찾았을 때는 뜨거운 눈물이 가슴 속부터 저절로 나온다.
인간의 본성 밑바탕에 숨겨져 있는 따뜻한 마음을 끌어내는 데에 성공한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뱀꼬리> 이 영화를 찍고 웨이민지와 장회이커는 대도시인 베이징에 처음 와봤다고 한다. 이때 놀이공원도 방문하고 대도시의 풍요로움을 처음으로 만끽해 본 웨이민지는 자신과 같이 시골에서 가난하게 사는 사람을 위해 많이 공부해야겠다고 말하는 등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이후 후원회사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을 다녀온 웨이민지는 청소년문학상을 타기도 하는 등 실제로 많이 성장한 모습을 보여서 그를 아끼는 중국 국민들을 기쁘게 했다. 이제 40세가 됐는데, 현재는 미국 유학에서 만난 중국계 미국인과 결혼했고 영화 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한편 장회이커는 현재 배우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