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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에스라의 나무 강단이 제공하는 성경의 어휘 연구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이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맞이하시는지 궁금합니다만, 저로서는 매우 엄선되고 정선된 어휘들로 여러분들을 모시고 있습니다. 제가 혼자서 하는 일이어서 여러분들이 기대하시는 것만큼 자주, 많이 제작하지 못하는 점을 양해하시고 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단어 하나하나를 연구하는 목적에 대해서는 누누이 말씀드렸습니다. 단어의 성경적 의미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국어사전적 의미가 아닌 성경적 의미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국어사전의 의미와 성경의 의미가 상당히 중복되는 면이 있지만, 성경의 의미는 독특하며 성경이라고 하는 문맥 안에서 그 의미가 차지하는 뜻이 매우 특별합니다. 그것을 우리가 찾아내어 그 성경 단어가 포함된 본문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마침내는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건전한 신학을 수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겠습니다.
오늘은 188회 강의로서 '신정론'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여러분과 함께 공부하려고 합니다. 아마 대부분의 성도님들과 교회 어른들께서는 처음 듣는 단어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만큼 드물게 사용되는 단어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 단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정론(神正論)은 '하나님이 정의로우시다'라는 것을 변증하는 논리입니다. 하나님이 정의롭고 바르시며 선하신 분이라면, 이 세상에 왜 악과 고통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사람들의 질문에 응답하기 위한 신학입니다. 이것을 영어로는 '테오디시(Theodicy)'라고 합니다. 사전에 찾아보시면 '신정론' 또는 '변신론(辨神論)'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단어를 설명해 드리고, 신정론의 역사적 과정을 살펴보면서 성도 여러분이 가질 수 있는 의문들에 대하여 대답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해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신정론이란 단어가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신정론은 '하나님 신(神)' 자와 '바를 정(正)' 자, '논할 논(論)' 자를 씁니다. 즉, 하나님은 올바르시고 정의로우시며 선하시다는 논리입니다. 영어로는 'Theodicy'라고 하는데, 그리스어로 하나님을 뜻하는 '테오스(Theos)'와 정의를 뜻하는 '디케(Dike)'가 합쳐져서 만든 단어입니다.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는 이 세상에 왜 악과 고통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사람들은 많이 던집니다. 하나님이 선하시면 악을 빨리 제거하시면 되지 않는가, 악인을 빨리 처분하시면 되지 않는가, 인간의 마음을 선한 쪽으로 강제로 바꿔 버리시면 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가집니다. 신정론은 세상에 악과 고통, 환난이 존재할지라도 하나님은 의로우시며 선하시다는 사실을 증명하려는 신학적 노력입니다.
이 단어를 처음 만든 사람은 1710년 독일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입니다. 라이프니츠는 철학사에서 대단히 유명한 인물입니다. 그가 프랑스어로 쓴 책 이름이 바로 《테오디세(Essais de Théodicée)》였는데, 이를 독일어로 '테오디체(Theodizee)', 영어로 '테오디시(Theodicy)'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처음으로 신정론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라이프니츠가 그의 저서 《테오디세》에서 주장한 논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세계는 창조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서 최적(최선)의 세계이다."
그는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 세상이 가장 균형 잡히고 적절하게 만들어진 세계임이 틀림없다고 보았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이보다 더 나은 세계를 만들 수 있었거나 그런 세계가 존재할 수 있었다면, 불완전한 세계를 창조하지 않으셨을 것이라는 전제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명백한 결함들과 죄악, 전쟁, 고통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라이프니츠는 이러한 결함들이 어떤 피조물 세계에서도 존재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사정이라고 보았습니다. 만약 이 결함들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다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겠지만, 현재의 상태가 존재 가능한 최선의 조합이라는 것입니다. 라이프니츠는 피조물 세계의 한계를 들어 하나님을 옹호하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다소 옹색한 변론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변호하려는 그의 의도는 아주 분명했습니다.
이러한 신정론은 라이프니츠 이전과 이후에도 여러 철학자와 신학자들에 의해 다루어졌습니다. 신정론은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문제의 상충 관계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가? (Omnipotence)
하나님은 선하신가? (Goodness of God)
그렇다면 왜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가? (Existence of Evil)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완전히 선하시다면 악이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데, 실제로 악이 존재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처럼 보입니다. 신정론은 이 모순을 해소하여 하나님의 선하심과 전능하심을 변호하려는 학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이 신정론의 유형은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나뉩니다.
첫째는 앞서 설명해 드린 라이프니츠의 '최적 세계 신정론'입니다.
둘째는 4~5세기에 활동했던 위대한 교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의 '자유의지 신정론'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가장 고귀한 선물인 선택의 자유, 즉 '자유의지'를 주셨다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자유의지를 선하게 사용하기를 바라셨으나, 아담과 하와는 그 선택권을 오용하여 불순종함으로 타락에 이르렀고 그 결과 세상에 악이 들어왔습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으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강제로 손을 막으시거나 선악과를 떨어뜨리셨다면 죄는 지을 수 없었겠지만, 그것은 인간을 꼭두각시로 만들고 자유를 박탈하는 일이 됩니다.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 중 매우 중요한 것이 바로 '자유'입니다. 인간이 이 고귀한 자유를 오용하여 발생한 고통과 죄악은 인간의 책임이며, 하나님의 선하심과는 무관하다는 것이 그의 논리입니다. 이는 우리가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매우 타당한 성경적 논리입니다.
셋째는 20세기 영국의 철학적 신학자 존 히크(John Hick, 1922~2012)가 주장한 '영적 성숙 신정론(혹은 영혼 형성 신정론)'입니다. 존 히크는 세상에 존재하는 악과 고통이 인간의 도덕적, 영적 성숙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훈련의 과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고난과 악을 겪음으로써 인간이 보다 성숙한 단계로 올라갈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영적 성장을 위해 굳이 고통스러운 악을 허락하셔야 했는가에 대한 비판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해 합리화를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비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악의 존재와 하나님의 깊으신 섭리를 인간의 유한한 지혜로는 다 이해할 수 없다는 '신비주의적 신정론'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순이 인간에게는 신비에 속하는 영역이므로, 솔직하게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자는 태도입니다. 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인간의 무력함을 실토하는 것이어서 지적인 갈증을 완전히 해소해 주지는 못합니다.
이제 성경에 나타난 신정론적 관점과 구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욥기 42장 5절을 보면 욥이 당한 고난과 그의 고백이 나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의인 욥은 영문도 모른 채 자녀를 잃고 재산을 잃고 온몸에 헌데가 나는 극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오랜 원망과 질문에 침묵하시며 고난의 원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고난의 과정을 통과한 후 욥은 하나님의 현현을 마주하며, 고난의 이유를 지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하나님을 더 깊이 신뢰하는 체험적 신앙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욥기의 신정론은 고난의 비밀은 다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의로우시며 전능하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참된 신정론의 해답은 인간의 지성적 이해를 넘어 하나님을 묵묵히 신뢰하는 데 있습니다.
둘째로, 창세기 50장 20절에 나오는 요셉의 신앙 고백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날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의 종으로 팔려 가고 억울한 감옥살이를 겪은 요셉은, 훗날 총리가 되어 형들을 만났을 때 원망 대신 하나님의 섭리를 고백합니다. 인간의 악한 의도와 악행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선한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악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안에서 제한을 받으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속에서 극복됩니다.
제 친구 중에 삼육대학교 총장을 지내시고 은퇴하신 서광수 목사가 있습니다. 그분이 은퇴하신 후에 평생 주 안에서 걸어온 발자취를 돌아보며 감동적인 회고록을 쓰셨는데, 책 제목이 《결과적으로 축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저는 이 제목이 서 목사님이 평생의 고난과 여정을 통해 정립한 그분만의 훌륭한 신정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아가면서 당장은 왜 이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고 원망이 생길 때가 많지만, 나중에 뒤돌아보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으로 이끄시고 결국 축복의 길로 인도하셨음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이 가졌던 믿음과 같은 신정론적 확신입니다.
셋째로, 이사야 45장 7절 말씀입니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구약의 선지자들은 환난과 고난을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한 징계이자 정화의 과정으로 해석했습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은 이스라엘에게 비극이었으나, 그 환난을 통과하며 그들은 불순종의 정신을 버리고 하나님을 향한 굳건한 신앙의 남은 자들로 정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침해하여 억지로 기계적인 선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의지 남용으로 초래된 결과에 대해서도 마침내 책임을 지시고 구속사 안에서 회복의 도구로 삼으십니다.
넷째로, 로마서 8장 28절에 나타난 바울의 신앙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기서 '모든 것'에는 성공과 번영뿐만 아니라 고난, 환난, 실패, 악까지도 포함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류 역사상 가장 무고한 분이 당한 최대의 악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이를 인류 구원이라는 최고의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신정론의 완전한 모형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고난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하나님의 구속적 섭리 안에 존재합니다. 악은 최종적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승리 안에서 완전히 극복됩니다.
다섯째로, 요한계시록 21장 4절의 약속입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지금은 세상에 악과 환난이 가득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국 미래의 하나님 나라에서 눈물과 고통이 없는 영원한 회복을 완성하시고 완전한 정의를 세우실 것입니다. 온 우주의 거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구 역사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이며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선하심은 완벽하게 입증될 것입니다. 현세에서는 신정론의 완전한 해답을 다 찾을 수 없을지라도, 미래의 하나님 나라에서 마침내 그 완성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배운 내용을 요약하며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신정론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을 인정하고 변호하는 신학적 노력입니다. 비록 인간의 제한적인 이성으로 전폭적인 만족을 주는 완전무결한 논리를 세우기는 어려울지라도, 성경은 우리에게 명확한 방향을 제시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올바른 신정론적 태도는, 비록 죄악과 고통은 인간의 선택으로 시작되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현 상태의 고난과 환난을 우리의 믿음의 성숙과 변화를 위해 활용하시며, 마침내 구속사의 위대한 승리로 이끄실 것을 굳게 신뢰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고난에서 건지시고 영원한 축복으로 인도하시는 의로운 분이십니다.
이 신정론의 학문적 명칭인 'Theodicy'를 한 번쯤 기억해 두시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성경 연구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신학적 개념들을 곁길로 가끔씩 다루어 성도 여러분의 영적 깊이를 더해 가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을 공부하시다가 궁금한 어휘나 주제가 있으시면 아래의 연락처로 제안해 주시기 바랍니다. 촬영이나 예배, 집회 중에는 전화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가급적 문자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메일 주소는 dnam@syu.ac.kr 입니다. 제가 조수 없이 파워포인트를 만들고 혼자 연구하며 준비하기 때문에 시간이 다소 걸릴 수 있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의 궁금증을 함께 연구하여 유익한 말씀을 전해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음 시간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핵심 요약 정리
신정론(Theodicy)의 의미
그리스어 '테오스(God, 신)'와 '디케(Justice, 정의)'의 합성어로, '하나님은 정의로우시다'라는 사실을 변증하는 신학적 이론입니다. 1710년 독일 철학자 라이프니츠가 그의 저서 《테오디세》에서 최초로 사용하였습니다.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상에 왜 악과 고통이 존재하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에 응답하고자 합니다.
철학·신학사 속 신정론의 주요 유형
라이프니츠의 최적 세계 신정론: 현재의 세계가 창조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서 최선의 균형을 갖춘 가장 적합한 세계라고 주장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유의지 신정론: 하나님이 부여하신 고귀한 선물인 '자유의지'를 인간이 오용하고 불순종하여 죄와 고통이 발생한 것이며, 이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무관하다고 변증합니다.
존 히크의 영적 성숙 신정론: 세상의 고난과 악은 인간의 도덕적, 영적 성장과 성숙을 이루기 위해 허락된 영혼 형성의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신비주의적 신정론: 유한한 인간의 이성으로는 악의 존재와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다 이해할 수 없으므로, 현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묵묵히 신뢰하자는 관점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신정론적 관점
욥기 (체험과 신뢰): 고난의 지성적 원인을 규명하기보다 고난 속에서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대면하는 체험을 통해 신앙의 차원을 승화시킵니다.
요셉 (합력하여 선을 이룸):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창 50:20). 인간의 악한 의도조차 구속사의 선한 도구로 활용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보여줍니다.
선지자 서사 (징계와 정화): 고난과 바벨론 포로기를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징계이자 신앙을 정화하고 남은 자를 만드는 거룩한 연단의 과정으로 이해합니다 (사 45:7).
바울 신학 (십자가와 구속적 섭리):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롬 8:28). 무고한 그리스도가 겪은 최대의 악인 십자가를 인류 구원이라는 최고의 선으로 바꾸신 섭리에서 신정론의 최종 답을 찾습니다.
요한계시록 (미래의 영원한 회복): 현세의 고통과 모순은 처음 것들과 함께 지나갈 것이며, 결국 눈물과 사망이 없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완전한 공의와 사랑이 입증될 것임을 선포합니다 (계 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