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量하다.
사량하다. 사랑하다.
생각의 량이 많은 것이고 그것이 행동이나 마음가짐이 그렇다는 느낌의 표시이다.
이것을 사랑하다라고 할런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필자의 유추입니다.
사랑하다를 사량하다에서 왔다고 분석하는 학자들이 있고
필자 또한 그렇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未안하다.
여기에서 미는 <아니다> 라는 뜻
<안>이란 말은 부정어이다. ~하지 않다의 어근입니다.
이것은 한자어 <安>과는 관계가 있다고도 여깁니다.
즉, 편안하지 못하게 해서 죄송스럽다는 의미가 될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安>과는 달리 이 <안>이란 말이 순수 우리말이이서
인도쪽의 말과 비교해보면
안아트만 할때 아트만은 <자아> 안아트만은 <비자아非自我> 입니다.
즉 여기서 <안>이란 말은 부정어 입니다.
<안>은 즉 부정을 뜻하는 순수 우리말로 볼 수 있습니다. ~ 하지 않다의 어근
즉 그렇게 본다면 부정하지 않는다의 의미가 됩니다.
부정의 부정은 긍정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적합한 의미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여기서 괜이란 <關> 입니다.
관계치 마십시요. 라는 의미
나의 상태가 그것에 관하여 내 마음이 부정한 쪽으로 관계하지 않고 있으며 ,
관대히 여기니 그리 아십시요 라는 의미~
물론 한자음이 고대 우리말의 고유음일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여깁니다.
의미부여에 있어서 말의 사용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문화적으로 말과 행동은 그 문화의 독특한 의식구조를 대변해줍니다.
우리들이 흔히 노부부 어르신들에게
서로를 사랑합니다 라고 말해보세요 하면 부끄러워 하신다. 나이가 지긋해도 부끄러우신 모양 입니다.
또한 그걸 말로 해야 되는건가? 그건 말을 하지 않아도 느끼는 거야라고도 하십니다.
그럼 말을 해야 돼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건 나의 마음상태를 상대에게 명확히 전달해야하는 이유입니다.
말을 해서 그 말의 기운이나 의미가 전달되어 생명과 같은 것을 만들어 낸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씁니다.
음~ 전체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럴법하다고는 느낍니다.
우리들이 서양의 문화와 영화를 접하다 보면 그들은 무수히 많은
<러브>를 외칩니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그걸 확인하고 또 확인합니다.
우리도 그와 같다는 건 아닙니다.
말의 사용은 그것이 습관화 되어도 그 의미가 분명 명확한데도 불구하고
재차 확인하고 싶은 사람의 심리가 담겨져 있씁니다.
우리의 의식구조 역시 그와 같아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말을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던 정감을 어느덧
말을 해야만 알 수 있는 상태의 의식구조가 될런지도 모를 일 입니다.
물론 그리되지 않을 것이라 여깁니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고 하는 것이 있씁니다.
위와 같은 걸 여기서 사유해 보고자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를 느낄 수 있는 상태의 의식구조를 지닌
훌륭한 문화의 소유자 였을 것으로 봅니다.
왜 그런 문화를 지녔나?
이것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좋은 말, 듣기 좋은 말, 즐겁게 해주는 말,
무수히 많은 좋은말을 평생을 하고 살아도 모자라는 인생입니다.
필자 또한 좋은말이
사람을 좋은 감정과 심적으로 심원한 편안함을 가져다 주고
더 나아가 그것이 깊은 마음의 정점에 다달아서 각자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는 것에
동감을 하는 편이지 100% 긍정하지는 않습니다.
언어의 벽을 넘어서서 바라볼 수 있는 세계도 있다고 여깁니다.
우리들은 기호로써 의식을 하고 언어구조의 의식을 지닙니다.
이것은 필자가 혼자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많은 언어학자와 기호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필자는 우리의 문화가 언어를 넘어서 말을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고 여깁니다.
왜 그런문화를 지니고 있었는가?
필자는 이것을
<배려>라고 여깁니다.
우리문화의 저변에 깔려 있는 기층의식 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개국도 그러한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고 여깁니다.
즉, 배려의 마음
그러니까 이미 사랑하는 즉, 많은 생각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 생각의 저변에는
바로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살기에 이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홍익인간) 나라를 열고 그러한 사유를 했다고 여깁니다.
배려합시다. 당신을 배려합니다. 라는 말을 하지않습니다.
이것은 마음의 상태 즉, 정감적인 말이 아닙니다.
정감의 말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입니다.
이것은 정감이 있는 말입니다.
즉 느낌의 말입니다.
그러나 배려는 정감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는 도리적 표현입니다.
능적인 것입니다.
능히 그래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천의 의미이고 행동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직접적인 것입니다.
필자는 배려 또한 한자어에서 왔다고 여깁니다.
배려는 <拜禮> 즉, 인사하는 것에서 왔습니다.
과거 동이족을 이민족들이 이상하게 여긴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저들은 늘상 인사를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의 표현이 바로 읍양지덕이 있는 민족이라고 칭했습니다.
읍양(揖讓)은 인사와 양보 입니다.
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인사하고 길를 비켜섰다가 지나가기를 청했다가 지나갔고,
이것을 본 이민족들이 사양지덕이 있는 민족이라고도 말하곤 했습니다.(한서, 후한서,위지동이전을 보면 나옴)
이러한 문화의 저변에 있는 의식구조는 바로 <배려>라는
직접적인 삶의 실천이었다고 여깁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감성, 정감상의 관계가 아닌 직접적인 관계로 보고
그것으로 <배려>를 실천했던 훌륭한 문화민족이었다고 여깁니다.
필자는 우리의 고유문화가
사랑하고 고맙게 여기고 미안해 하고 괜찮아 하는 정감이 들기 이전에
배려함으로써 이미 그러함을 몸소 느끼고 행하고 지켜왔다고 여깁니다.
참고로 <여깁니다.>는
어떠한 상태에 대하여 그것을 매듭지어 그렇게 엮어져 있다고 사유(살펴서 알고 인식하다)한다라는 말 입니다.
<마음>은
내면의 어떤일이나 외물을 대하고 그것을 느끼고 알아차려주는 기준을 가지고 있는 자리 즉 <마름>이란 것에서 왔다고 봅니다. <마름>이란 관직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어떠한 직책이 주워지고 그것을 지휘하는 것을 의미 합니다
우리말이 차츰 쇠약해져 가고 속된말로 전락해져 가서 지금은 <마름>이란 의미가 <집사>를 뜻하기도 합니다.
집안일을 돌봐주는 사람들의 우두머리 즉, 마당쇠와 부억떼기를 통솔하는 하인을 마름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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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언)
글이란 그 글을 읽고 느낌을 전달받고 또한 의사를 서로 교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글은 오해의 소지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연하자면 누구를 비평하거나 비판하고자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필자의 의견을 말하고자 하는 것 입니다.
그러니 이 의견에 대하여 비판하고자 하면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설 명절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사랑 한다 든가 미워 한다든가는 동물이든 인간이든 원시적 본능 입니다
반면에 생각한다든가 미루어 헤아린다든가 하는건 조금 발달된 지능 적인 행동이죠
당연히 사랑 한다는 말이 먼저 만들어졌을 겁니다,
헌데 우리의 순수한 사랑 이라는 말을 한문에서 나왔다는 거가 얼마다 억지 인지는 -------
거기다가 우리 민족은 한문이 있기전에는 사랑 이라는 말도 없었다는 거지근성은 한문숭배의 작자 들을 보면
구역질이 나옵니다,
과거 현재 미래 의표현으로
우리말에 그제 어제 오늘 내일 모래 글피, 가 있어요 이중에서 내일도 來日 에서 만들어진 말이라고 우기는 작자도 있어요
그러니까 우미민족은 내일 이라는 개념이 없었다가 한문이 생기면서 내일 이라는 의미 말을 비로소 사용하게 되었다
합니다, --------이런 식의 한문지식 자랑은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우리말 <괴다>,<어르다>가 지금 널리 사용하고 있는 사랑하다라는 말이라는 거로 보면 사랑하다의 의미를 가진 오래전 우리말이 있었다는 것에 전혀 의심이 없습니다. 단지 문명을 지닌 이후에 언어생활에 있어서 그 말씨들이 변천하였다는 것 입니다. 다시말하면 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우리가 우리말에 대하여 그 가치를 모르면 자꾸 한자어나 외래어로 대체되어 간다는 것 입니다. 님의 고견으로 인하여 님과 같은 분이 있으니 우리말의 앞날이 밝다고 여깁니다. 그리고 저는 될 수 있으면 한글전용을 옹호합니다. 한자어가 순수 우리말로 대체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하여 님과 같은분의 덧글을 보니 오히려 반가운 일 입니다.
별로인 저의 주제넘은 댓글에 대한 님의 말슴에 제가 부끄럽습니다
넓은 이해에 깊은 감사 드립니다,
고임(굄) 어여삐 불쌍히, 등 우리말에도 감정을 나타내는 많은 말이 있지요, 굳이 연민 이라는 한자어 아니래도
충분한 표현이 있었습니다, 님의말슴과 같이 우리말이 있슴에도 쓰이지 않고 많은 말들이 한자어로 변형 되었슴은 저도 인정 합니다
문자 생활을 상류층에서 만 하다보니 그리 되었지요, 그러나 고유의 우리말 까지 발음이 비스한 한자로어로 부회 하는
분들에 대하여는,-------
고맙다 아숨챠다,미안하다는 말은 한문으로는 감사하다는 한마디로 통 합니다
그러나 그 각각의 말은 모두 깊은 곳에서의 마음의 느낌이 다릅니다, 마음의 흐름을 나타내는 말에 있어서 우리말은
매우 발달 되어 있어요, 색감을 나타내는 말(붉은색; 볼그래하다 등등등) 이 풍부하다고 는 말 합니다, 그러나 이는
색을 구분하는 말이 아니고 그 색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감정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