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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3장 1-9절. 신령한 자와 육신에 속한 자. 요약설교
앞부분에서 바울 사도는 ‘육에 속한 사람’과 ‘신령한 사람’을 대조하여 말하면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마땅히 신령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이 마땅히 ‘신령한 사람’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여전히 육신의 정욕에 따라 사는 ‘육신에 속한 자’임을 지적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육신에 속한 자’인 증거로서, 바울 사도는 그들이 서로 시기하고 분쟁함으로써 바울파, 아볼로파 등 파당을 형성한 것을 들고 있습니다(3-4절).
그러면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임을 밝히고, 바울이나 아볼로와 같은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밭과 집에서 섬기는 일군일 뿐이라고 말합니다(5-9절).
1절.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형제들아’는 중요한 권면을 하기 위한 애칭입니다.
‘신령한 자들’(πνευματικοῖς: spiritual)이란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즉 ‘신령한 성도’란 성령 충만하고, 생활 속에서 성령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말씀(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해가는 성도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고린도교인들은 지금 사람을 중심으로 파당을 형성해서 싸우고 있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그들을 ‘신령한 자들을’ 대함 같이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를 대함 같이 말한다고 했습니다.
2.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육신에 속한 자’(σαρκίνοις:fleshly)는 원래 육체를 가진 사람을 의미하는데, 본절에서는 예수 믿고 구원받았지만, 생활 속에서는 예수님 안 믿는 사람(2:14. 육에 속한 사람)과 하등에 다를 것이 없이 영적으로 미숙한 상태에 있는 성도 즉 ‘그리스도 안의 어린아이’(νηπίοις ἐν Χριστῷ:infants in Christ)를 가리킵니다.
즉 ‘육신에 속한 자’란 고린도 교인들의 상태가 여전히 성숙 되지 못하고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살고, 육적인 편견과 기준을 따라, 사람을 중심으로 파당을 만들고 정치적으로 움직이는 교회의 모습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2절.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 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1.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 하였노니,
<밥>에 해당하는 헬라어(βρῶμα)'는 원래 '고기'(meat)와 같이 성인이 먹는 ‘단단한 음식’(solid food)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히브리서 5장 12-14절에는 ‘젖’과 ‘단단한 식물’의 대조가 나옵니다.
히브리서 5:12.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예수 믿은 지가 오래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믿음이 어린 형제를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텐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στερεᾶς τροφῆς: solid food)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기는 초대교회 성도들은 모두가 은혜 속에서 능력이 충만한 줄 아는데, 아닙니다.
오늘 이 말씀을 볼 때, 초대교회에도 어린아이와 같은 신자가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5:13.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젖을 먹는 신자란 혼자 힘으로는 말씀을 깨닫아 신앙생활 하지 못하고, 목사의 설교나 장로님이나 권사님들이나 구역장의 도움을 받아야만 겨우 주일 성수하고, 신앙생활의 명목을 유지해나가는 성도를 말합니다.
설교를 들으면서도, 성경 말씀의 내용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체험 이야기나 예화나 이해하는 성도를 가리킵니다.
성경 말씀을 하면, 무슨 말인지 통 모르겠더라고 하면서 졸고, 예화 할 때면 다시 잠을 깨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장성한 성도는 설교 때 예화나 체험 이야기보다는 성경 말씀을 액면 그대로 풀이해주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히브리서 5:1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장성한 신자는 두 가지를 할 수 있는 성도인데, 첫째는 단단한 식물을 먹는 것이고, 둘째는 연단을 받아 분별력(prudence)이 있는 성도라는 것입니다.
밥만 먹고 가만히 누워있는 사람은 아직도 어린아이이지, 가족에게 도움이 되는 제목이 못됩니다.
밥을 먹었으면, 가족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성인다운 사람입니다.
2.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방언도 잘하고 신비한 체험도 많이 한 성도들이었으나, 아직도 다른 사람을 돕고 지도할 만한 성도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방언을 해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게 무질서하게 행동했습니다
신령한 은사를 받았다고 하면서도, 예배의 질서도 안 지키고(고전 14장), 가정에서 남편도 무시하는 무례한 성도가 되었습니다(고전 11장).
뿐만 아니라, 신령한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불신자보다도 더 악한 죄를 범하기도 했습니다( 고전 5:1).
또한, 자칭 신령한 성도라고 하면서, 물질에 욕심이 붙어서 서로 소송하고 싸웠습니다(고전 6장).
그리고, 신령한 성도라고 하면서, 다른 성도를 배려할 줄도 모르고, 우상의 제물도 마구 먹었습니다( 고전 8-10장).
또, 자칭 신령한 성도라고 하면서, 가정생활을 착실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고전 7장)
신앙이 어린 성도는 그저 다른 성도가 이끌어주어야만 겨우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신앙이 장성한 성도는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도 다른 사람을 도와주려고 합니다.
3절.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1.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역시 ‘아직도’(ἔτι:still)가 강조되어 있습니다(헬라어 원문에서 앞에 나오는 단어는 강조임)
이 ‘아직도’는 ‘믿은 지 5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란 뜻입니다.
즉 바울이 고린도에서 전도한 때는 52-53년이었고, 지금 이 편지를 쓸 때는 57년입니다.
원래 1절의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는 육체 덩어리를 가리키고, 3절의 육신에 속한 자는 영적이지 못하고 세상적인 것을 가리키는데, 결국 신령하고 성숙한 성도와 반대 개념으로서 같은 내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시기>는 선의적 경쟁심리를 가리키기도 하나, 여기서는 악의적인 질투심을 가리킵니다.
<분쟁>은 마음속에 있는 시기심이 밖으로 표출되어 교인들끼리 파당을 짓고 싸우는 것을 가리킵니다.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한다>는 것은 ‘세속적인 마음을 가지고, 불신자처럼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4절.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1.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원래 고린도교회에는 네 파가 있었습니다 (1:12.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그런데 여기서는 바울파와 아볼로파만 거론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고린도교회의 주요 분쟁 세력이 바울파와 아볼로파였기 때문이고, 지금 바울과 아볼로는 에베소에서 같이 있으면서, 서로 아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전 16:12)
2.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여기서 <사람>은 이상적인 인간이 아닌 육정적인 사람, 변화되지 않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란 말은 ‘너희가 아직도 변화되지 않은 세속적인 사람이 아니리요?'라는 뜻입니다.
즉 일반 불신자와 다름이 없다는 뜻입니다.
5절.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1.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이 말은 분명히 경멸조로 한 말입니다.
즉 아볼로도 아무것도 아니고, 바울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지금 고린도교인들이 바울파니 아볼파니 하면서 바울이나 아볼로를 높이고 있는데,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고, 다만 하나님의 종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2.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사역자’(διάκονοι)란 말은 원래 ‘종, 사환’(waites, servants)이란 뜻입니다.
고린도전서 16장 12절을 보면, 바울 사도나 목회자 아볼로는 이 고린도전서를 쓸 당시에 에베소에 함께 있으면서, 전혀 싸움이 없이 아주 좋은 관계 속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신앙이 미숙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지도자(바울이나 아볼로)의 이름을 내세우면서 파당을 이루며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적인 파당 운동은 목회자에게 큰 피해를 끼치는 일인 것입니다.
이것은 어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컨대, 가정에서도 자녀들이 ‘나는 엄마 편이다, 나는 아빠 편이다’ 하면서 싸운다면, 그 부모님들이 얼마나 속상하겠습니까?
직장이나 교회의 어느 기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느 구역에 속해 있는 구역원들끼리 서로 싸운다면, 구역장님이나 예배인도자가 구역예배로 모일 때마다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누구 편을 들겠습니까?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하 직원들끼리 싸우면, 그 직장의 상사는 일하기가 참 불편할 것입니다.
어느 일본인(이케하라 마모루: 池原守)이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인 비판>이란 책(1999년, 중앙M&B)에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 같은 나라에 비해 쓸데없이 싸우기를 좋아하고, 협동 정신이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점을 주의하여, 서로 도와주며 사랑하는 일에 본을 보여야 하겠습니다.
6절.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1.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심은 것’과 ‘물 주는 것’은 종들이 하는 일입니다.
바울 사도가 심었다는 것은 그가 AD 52년-53년 1년 6개월 동안 고린도에서 전도하여 고린도 교회를 설립한 사실을 말하고(행 18:1-18), 아볼로가 물을 주었다는 것은 사도 바울이 3차 전도 여행 시 에베소에서 본서를 기록한 때(55년경)까지 아볼로가 약 3년간 고린도 교회에서 말씀을 강론하면서 목양한 사실을 가리킵니다(행 18:24-19:1).
2.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심었다’(ἐφύτευσα)와 ‘물을 주었다’(ἐπότισεν)는 둘 다 부정과거형으로서, 과거에 심었고, 물을 주었던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에 반해서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신다’는 동사(ηὔξανεν)는 미완료과거로서(kept growing) 계속 자라게 하고 계시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7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1.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1) 여기에는 강한 대조가 나타나 있습니다.
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하나님의 일이 전부다는 뜻입니다.
(2) 아무리 고린도 교인들처럼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인이라도, 하나님께서는 훌륭한 신앙인으로 자라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나 목회자 아볼로 같은 주의 종들이 열심히 물주고, 돌볼 때,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사역을 통해서 어린 신앙인들을 어른처럼 성장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겨우 주일 예배나 참석하던 새신자들도, 목사님을 통해서 말씀 듣고, 구역장님이나 예배인도자나 권찰님들을 통해서, 권면을 받고 계속 지도를 받으면, 언젠가 모르게 훌륭한 성도로 성장한 것을 봅니다.
그래서, 남편이나 자녀들도 교회에 데리고 나오고, 교회 행사에도 열심히 참석하고, 봉사도 하는 어엿한 일군으로 성장하는 오진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성도들의 신앙을 자라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복음의 씨앗을 심는 성도들이나, 말씀으로 물주는 교사나 예배인도자 등은 희망을 갖고, 열심히 심고 물 주는 일을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8절.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1.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한가지라>는 말은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일하는 동일한 종이라’는 뜻입니다.
즉 오직 주인을 섬기는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둘 다 같은 종일 뿐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교인들이 하나님의 종일 뿐인 바울이나 아볼로을 높이면서 파당 경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뜻입니다.
2.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1) 여기서 <한가지라>는 말과 <각각>이라는 말이 대조를 이루면서 조화되고 있습니다.
소위 ‘일치성’(unity)과 ‘다양성’(diversity)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일꾼들은 주인을 섬기는 동일한 종들이지만, 그들이 일하는 분야는 각각 다르다는 뜻입니다.
즉, 교회의 어느 부서에서 일을 하든지, 다 주의 일군들로서 한 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각 부서들은 상부상조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주일학교도 유년부면 유년부만 중요하게 생각하지 말고, 초등부나 유치부와 잘 협조해야 교회학교 학생들의 지도가 더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각부 남녀 전도회도 마찬가지고, 각 구역과 지역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교회의 각 봉사자들은 한 팀이라는 정신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만 아니라, 다른 성도의 일도 돌아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2)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충성한 데 대한 상급은 각각 일한 대로 받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평생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해도 은혜를 갚을 길이 없지만, 좋으신 주님께서는 일하는 성도들에게 상급을 주시겠다고 누누이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2절에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빌립보 3장 14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고 했습니다.
9절.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1.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원문에는 ‘왜냐하면’(γάρ:for)이 있어서, 종들이 하는 심는 일이나 물 주는 일이 아무것도 아닌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들’(συνεργοί Θεοῦ: fellow workers of God)이란 바울이나 아볼로가 개인이 주인이나 스스로 일하는 사장이 아니고,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하나님의 종들이라는 뜻입니다.
즉, 본절에서는 ‘하나님’이란 단어가 세 번이나 나와서 극히 강조되어 있어서,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종들은 하나님의 종들이고, 교회는 하나님의 밭이요 집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바울과 아볼로가 하나님의 지도 아래서 일하는 동역자들이라는 것과, 바울과 아볼로 같은 사역자들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것입니다.
2.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원문상 <하나님의>(Θεοῦ: of God)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람의 밭이 아니고, 바로 ‘하나님의’ 밭이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곡식을 심는 바울은 하나님의 종이고, 식물에 물을 주는 아볼로도 하나님의 종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집이니라
농부의 비유에서 건축자의 비유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10절부터는 건축자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주인신 하나님의 집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교회를 단순히 사람의 모임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인 줄 알고 귀하게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은 연약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는 눈에 보이는 사람을 의지하여, 당을 짓고 싸우며 시기하기 쉬운 저희들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대로 주님만 의지하며 힘있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삶이 되게 하여 주시고, 저희들도 사명 잘 감당하여 복된 성도들이 되고, 몸 된 교회가 부흥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