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 / 히브리서 13:8
어떤 분이 아가씨와 아줌마 차이를 재미있게 묘사했습니다. - 파마할 때 예쁘게 해달라고 하면 아가씨, 오래 가게 해달라고 하면 아줌마. - 의자에 앉을 때 다리를 꼬면 아가씨, 한쪽 다리 접어 앉으면 아줌마. - 목욕탕에서 수건을 몸에 두르면 아가씨, 머리에 두르면 아줌마- 모임에서 서로 '언니, 언니'하면 아가씨, '형님, 형님'하면 아줌마 - 버스를 탔을 때 빈자리가 있을 경우 주위를 살피고 앉으면 아가씨, 앉고 나서 주위를 살피면 아줌마. - 운전할 때 선글라스 끼면 아가씨, 흰 장갑에 창 모자 쓰면 아줌마. 공감하십니까? 그렇게 예쁘고 단아한 아가씨가 아줌마로 변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게 없습니다. 아가씨도 아줌마로 변하고 아줌마는 나중에는 할머니로 변합니다. 십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세상은 모두가 변합니다. 변하는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우리도 변해야 합니다. 변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기에 세상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아침에 해가 떠서 저녁에 지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밤과 낮이 변하지 않고 반복되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도 변함이 없습니다. 변함이 없기에 지구는 존재할 수 있고 우리는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변한다고 하면 인간은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변함이 없는 것이 굳건하게 자리를 잡아주기 때문에 인간은 마음 놓고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13:8) 이 말씀은 말씀자체로 우리에게 큰 은혜를 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변함이 없습니다. 언제나 동일하십니다. 그러기에 믿을 수 있습니다. 얼마나 마음 든든한 말씀입니까?
말씀 자체로도 큰 은혜가 됩니다만 이 말씀이 왜 여기에 기록되었는가를 생각하면 더 큰 은혜가 될 줄 압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면에서 변함이 없이 동일하십니까? 물론 여러 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지만 본문에 의지하여 앞뒤를 살펴보면 몇 가지 점에서 동일하심을 잘 알 수 있습니다. 1. 우리의 구원주가 되신다는 점에서 변함이 없습니다.
히브리서는 누가 썼는지는 잘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떤 학자는 히브리서 기자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는 말로 설명합니다. 누가 썼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이 편지의 수신자가 유대 기독교인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당시 유대교에서 개종하여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는 성도들이 유대인들로부터 심한 핍박을 받게 됩니다. 심한 핍박을 견디지 못하여 많은 사람들이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기도 하였고 돌아가려는 마음을 가진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 단적인 예로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10:25)는 말씀입니다. 핍박이 심해지자 성도들이 모이지를 않습니다. 자신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숨기려고 합니다. 그런 성도들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성을 설명하는 것이 히브리서입니다. 예수는 천사보다 뛰어나고 하나님의 종으로 충성했던 모세보다 더욱 뛰어납니다. 왜냐하면 천사는 심부름꾼이고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서 종으로 충성했지만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어떤 대제사장보다 뛰어난 것이 그들은 얼마 있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주님은 영원히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구약의 어떤 사람이나 율법이나 제사가 이루지 못하였던 인간구원을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온전히 이루신 메시아라는 것이 히브리서의 핵심내용입니다. 그래서 12장 2절 말씀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지금 힘들다고 핍박이 있다고 예수를 떠나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끝까지 예수님을 믿고 의지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예수만이 하나님이 보내신 유일한 메시아라는 것이 히브리서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메시아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 구원자는 오직 예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분도 예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예전에도 예수를 믿어야 구원받았고 지금도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받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님을 놓치면 안 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주님을 굳게 붙잡고 주님을 섬기며 주님을 신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우리가 오해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구약의 하나님은 두려운 하나님, 무서운 하나님이고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동일하신 하나님이 언제는 무서운 분이시고 언제는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구약의 하나님도 신약의 하나님도 동일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이 사랑의 하나님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지 않으셔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런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천지를 인간에게 맡기신 이유는 인간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신 것도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도 인간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주신 것도 예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성품이 사랑이시기에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셨고 십자가의 고통과 수치를 다 참으시고 묵묵히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기에 세상에 수많은 사람가운데 우리를 자녀삼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고 먼 나라로 가서 허랑방탕하며 살아갈 때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립니다.
아들이 집에 있었을 때도 사랑하였고 먼 나라로 가서 방탕하게 생활할 때도 사랑하였습니다. 재산을 다 탕진하고 거지꼴로 집에 돌아왔을 때도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했습니다. 잘 할 때만 사랑하지 않고 불효자가 되어 말썽을 피울 때도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가? 사랑하신다면 나를 이렇게 만드실 수 있을까? 이렇게 대하실 수 있을까? 하나님의 사랑에 의심이 들어갈 때가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를 주시고 십자가에 못 박게 하기까지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지켜주신다는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말씀 자체로도 큰 은혜가 되지만 앞뒤를 연결해볼 때 더 깊은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5절, 6절 말씀을 보면, 주님은 주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결코 버리지 아니하시고 떠나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돕는 자시기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무서워하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그 주님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 떠나야 하고 우리의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모세도 떠났고 여호수아도 떠났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부모님도 떠나고 사랑하는 아내 남편도 다 떠납니다. 사람은 일시적인 도움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영원토록 우리의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굳게 붙잡고 승리하는 우리 사랑하는 샘물교회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