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약장사
태어나서 처음으로 옷을 샀다. 대단히 급진적인 디자인으로. 체크 무늬로. 묵호 시내 춤선생들이 좋아할만한 그런 색으로.
노인회관을 지나는 길가에 있던 옷가게에서 샀다.
어머니와 아내가 내 옷을 사주었다. 두 여자는 항상 보수적인 어두운 계열의 옷이었다.
아내가 죽고, 상의는 그런데로 입을 수 있었는데, 하의는 살이 빠져 허리가 줄어들어 입을 수 없어 새로 살 수 밖에 없었다. 청바지 두 개로 버티다가 너무 더워 사야만 했다.
이제 겨우 아내를 벗어난 느낌이다. 만약 아내였다면 체크 무늬는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 청바지에서 벗어나 시원한 여름을 맞이 할 거 같다.
요즘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처음으로 사본 옷과 함께, 밥 때문에 묵호노인회관에 등록 하고, 노인프로그램 노래교실을 다니면서.
모르고 살았던 삶은 나를 변화 시킬 것 같은 예감이다.
일주일에 두 번 노래교실에 가는데, 나는 매번 나가서 노래를 부른다. 처음에는 젊었을 때 들었던 노래를 부르다가, 더 이상 부를 노래가 없어 유투브를 돌아다녔다. 대부분 처음 부르는 노래여서 항상 엉망이었다.
그러나, 과거의 노래를 하나씩 발견하면서, 내 노래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어제는 최병걸의 ‘난 정말 몰랐었네’를 불렀는데 스스로 만족한다. 이제 30 대를 마지막으로 불렀던 과거의 노래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유투브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발견한 것이, 약장사였다. 다른 가수들의 노래와는 분명히 달랐다. 간절함과 애잔함. 노래 곳곳에 스며있는 그것들이 나를 감동시켰다. 대부분의 노래는 우리가 늘 들었던 트롯트 였고, 어려운 노래를 단순화 시키면서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었다.
약장사는 지방 축제를 따라 다니면서 싸구려 건강식품과 생필품을 팔면서, 가성비에 훨씬 못미치는 노력으로 돈을 번다.
난 지방축제에 유명 가수들을 불러 예산을 낭비하는 공무원들이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 돈을 안줘도 스스로 따라다니면서 봉사를 하는 약장사가 있는데도 말이다.
아마, 유명 가수를 불러야 사람들이 모인다는 강박관념 같다. 그런데 사실 축제 가보면 유명 가수 보다 약장사 주변에 사람들이 더 많다.
유명 가수들에게는 우리들의 세금이 전부 들어가 있어 돌려받을 수 없지만, 약장사의 노래는 꽁짜로 듣다가, 자발적으로 약간의 돈을 내면서 필요한 필요한 물건을 사면 그만이다.
그들의 노래는 덤으로 들으면서. 얼마나 가성비가 좋은가.
그들은 멋대로 노래를 부른다. 눈치 볼 필요도 없다. 어차피 약만 팔고 떠나면 그만이니까. 듣는 사람의 수준도 별거 아니니까.
그래서 그들의 노래는 진정 음악이 되었다. 가성비 처저의 그들의 노력에 비하면 관중들에게는 가성비 최고인 셈이다.
유명 가수들은 일일이 대중들의 눈치를 봐야하고 방송에서 늘 인기에 신경을 써야 하고, 상을 받아야 하고, 때로는 되지도 않은 경연 대회에 심사도 봐야 하고, 거액의 돈도 받아야 하고 그래서 광고에 나가 때돈을 벌어야 하고.
그러나, 그들은 자유롭다. 그날 약을 팔아 하루 하루 살아가면 그만이다. 대중들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 가끔 술 취한 인간들을 눌러주면 그만이다. 약이 안팔리면 안팔리는데로, 팔리면 팔리는데로.
과거, 동네 곳곳에 작은 가게와 수퍼가 있었다.
그것은 지역경제 활성화의 작은 플랫폼이었다.
지역 경제를 돌게 하는 동네 사람들의 복덕방이었다.
어느새 대기업 유통업체가 장악을 하고, 그제서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시킨다고 재래시장 활성화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붓는 정부는 모자란 인간들이다. 그냥 내버려 두었으면 지역 경제는 알아서 돌아갈 텐데, 대기업들의 장난에 놀아나서 멀쩡한 지역경제를 다 죽이고나서 죽은 아이 부랄 만지듯이.
그건 부족한 지방 예산을 들여 수천만원짜리 유명 가수를 부르는 것과 다를바 없다.
지역 경제 활성화는 큰 돈이 필요없다. 작은 돈들이 빠르게 움직이면 된다.
곳곳에 존재했던 소박한 플랫폼들을 죽이고 나서 이제야 지역경제 활성화 운운하는 짓거리는, 경제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작은 감동과 작은 웃음과 약간의 돈이면 된다. 마치 묵호항 오징어가 찍어낸 돈들이 하루만에 묵호시내에 퍼져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사하면서 돈들은 미처 날뛰었다. 그런 돈이야 말로 지역경제 활성화다. 그런 돈이야 말로 돈의 본래의 의미를 실천하는 것이다.
약장사의 노래는 우리를 기쁘게 하는 진정한 플랫폼이다.
유명 가수의 노래에서 우리가 찾는 것은, 그들의 노래에 잠시 감탄하고 돌아가야 하는 허상이다. 약장사의 노래는 배꼽 잡을 수 있는 즐거움이다. 약장사는 늘 우리 곁에 있고 약만 사준다면 언제라도 달려온다.
난, 이제 약장사의 유투브만 찾아서 구독을 꾹 눌러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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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