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오전예배
[2021년 2월 14일, 주현 후 마지막 주]
[*. 성경, 찬송가를 준비합니다.]
*.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2021년 2월 14일, 주현 후 마지막 주 (변화주일)입니다. 함께 인사 나누고 예배 시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
예수님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 ~
성령님 안녕하세요, 평안합니다. ~
*. 다 함께 조용한 기도를 함으로 주현 후 마지막 주 (변화주일), 주일예배를 시작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지난 한 주간 주님의 은혜 가운데 지켜 주시고, 오늘 거룩한 주일 맞이하여 예배 가운데 불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시간 우리의 온 몸과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주님 기뻐 받으실 신령과 진정의 예배시간 되기를 소원합니다. 예배 가운데 임재하셔서 영광 받아 주시고, 예배에 참여한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죄와 허물이 사함을 얻게 하시고,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힘과 능력과 위로와 소망을 얻게 하옵소서. 예배의 처음부터 나중까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홀로 영광 받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하였습니다. 아멘.
*. 찬송가 15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 성시 교독 시편 시편 50:1~6절까지입니다. 한 절씩 교독합니다. (성경)
1 전능하신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2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비추셨도다
3 우리 하나님이 오사 잠잠하지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삼키는 불이 있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4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을 판결하시려고 위 하늘과 아래 땅에 선포하여
5 이르시되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 하시도다
6 하늘이 그의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
*. 함께 기도합니다. [도널드 힐톤, Donald Hilton, 각색함]
(실시간 예배에 참여하지 못하신 분을 위한 기도문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부유함을 기대했을 때
당신은 가난하게 태어나셨습니다.
당신은 온 세상의 왕이시나
한 나라를 방문하는 것으로 만족하셨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님은 우리 인간의 가치들을 뒤집으시고
우리를 애타게 하셨습니다.
주 예수여, ‘
우리에게 오시옵소서.
우리가 주님을 당연시하거나
주님을 온전히 이해하는 척하지 않게 하소서.
계속 우리를 놀라게 하셔서 우리가 늘 깨어 있게 하시고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고
주님의 뜻을 행할 준비가 되어 있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오늘 나눌 하나님의 말씀은 마가복음 9:2~9절입니다. (성경)
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 특별 찬양 -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 말씀 선포: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1. 들어가는 말
오늘은 주현 후 마지막 주이면서, 변화주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아주 하얀 광채로 변화(변형)하셨는데, 이를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그리고 이번 수요일은 성회 수요일, 재의 수요일로 사순절의 절기로 넘어갑니다. 오늘의 주제는 변화(변형)입니다.
2. 변화(변형)
예수님의 산상 변화(혹은 변형, 변화가 심하게 되어 형체가 변하면 ‘변형’이라고 합니다)는 ‘부활’의 예시입니다. 앞서 8장 27~9:1절까지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8장 31절 말씀입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그리고 십자가 죽음 이후의 부활에 대한 예시(豫示) 혹은 전조(前兆)로서 산 위에 오르셔서 변화(변형)하신 것입니다.
사실, 우리 인간은 모두 변화(변형)합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말이죠. 고린도전서 15:51-52절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다만, 큰 깨달음에 이르른 사람은 이 죽음 이후에 만나게 되는 변화(변형)를 죽기 이전에 삶에서 경험하며 산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변화(변형)되는 것은, 동화로 이야기 하면, 심청이가 연꽃을 타고 살아나 왕비가 되고 아버지의 눈을 뜨는 장면일 터이고, 야수(beast)나 개구리가 마법에서 풀려 아름다운 왕자로 회복된 후 미녀(혹은 공주)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게 되는 장면이 됩니다. 동화의 끝 자락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장면인데, 그러나 예수님의 변화(변형)이야기의 핵심은, 끝 자락이 아닌, 삶의 자리에서 이미 끝 자락의 삶을 경험하며 살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다시 동화이야기로 하면, 고난 가운데, 즉 임당수 물 앞에서, 야수와 개구리의 상태에서, 동화의 ‘해피 엔딩(happy ending)’의 마지막 장면을 이미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임당수 물에 심청이 자신을 던질 때, 그리고 야수와 개구리에게 미녀 (혹은 공주)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을 하며 키스를 할 때 이미 동화의 끝 자락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회의 가르침으로 하면, ‘부활을 산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인도의 수행자인 쿤달리니 신비가들은, 예수님의 변화산에서의 변화(변형)을 6번째 챠크라에 있는 ‘송과체(松果體)’의 기(氣)가 터져서 7번째 챠크라의 영역으로, 즉 몸 밖으로 나온 것으로 이해합니다. 동양에서는 ‘깨달음[각(覺)]을 얻었다’ 라는 표현을 합니다.
도저히 넘어갈 수 없을 것만 같은 경계를 넘어가면(거듭남), 새로운 세계가 열리기 마련입니다. 이 말을 달리 이야기하면, 한 번도 경계를 넘어서지 못한 사람은 (변화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속한 세계와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니고데모처럼 말입니다. (요한복음 3: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헤르만 헤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새는 알 속에서 빠져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기를 원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감리교회의 교리로 표현하면, 변형(변화)는 “영화’에 속합니다. 감리교회의 가르침 중에 구원의 단계는 다섯 단계가 있습니다. 회개, 의인, 성화, 완전, 그리고 영화입니다. 여기서 영화는 이 땅의 삶이 아닌, 이 땅을 떠났을 때 마주하는 단계입니다. 부활입니다.
3. 변화(변형)의 세 지평과 그 훈련
그런데… 과연 이 땅에 삶을 살면서 부활, 영화의 경험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방법을 함께 나눠 봅니다.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동기를 아시고 계십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7).
과연, 거둘 것을 생각하고 심어 보시기 바랍니다. 영과 육 그리고 마음의 세 가지 지평에서 살펴봅니다.
3-1. 영(靈)의 지평에서 변화(변형)시키십시오!
영(靈)의 지평은 우리 내면을 살피라는 것입니다. 내면이 형통하면 다 형통하기 마련입니다. 내면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생기(生氣)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靈), 그 생기가 맑으면, 모든 것에 형통합니다. 그 생기가 탁해지면 모든 것에서 문제가 발생되기 마련입니다. 세상 삶의 모든 것이 겉으로 같아 보일지라도, 내면의 영의 변화(변형)를 이루고 사는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사실 영 자체를 변화(변형)시킬 수는 없습니다. 영에 쌓인 먼지를 제거하여 맑고 깨끗하게 하는 것, 활성화 하는 것입니다.
[*. 이해를 위한 이야기 한 토막: 이솝 우화인가요? 옛날 임금이(영) 타는 당나귀가(육신)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임금이 당나귀를 타고 나라를 한 바퀴 순찰하면 온 국민들이 나와서 왕에게 환호하고 박수갈채를 보냅니다. 임금을 등에 태운 나귀는 왕을 태운 역할에 걸맞게 온갖 아름다운 장식을 해서 멋지게 보입니다. 국민들은 왕과 함께 그 나귀를 향해서도 갈채와 찬사를 보냅니다. 이러한 갈채와 환호에 고무된 나귀는 어느 날 왕을 땅에다 내동댕이칩니다. 왜냐하면 국민들의 갈채와 환호를 혼자서 다 받기 위해서입니다. 나귀는 왕이 없으면 그 모든 환호와 갈채를 자신이 모두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 것이죠. 그러나 나귀가 왕을 땅에다 내동댕이치는 순간, 나귀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영, 곧 생기(生氣)는 우리 몸의 임금과 같습니다. 안 보인다고 내동댕이치는 순간, 어리석은 나귀 꼴이 되는 것입니다.
*. 생기(生氣), 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 송과체(松果體)에 시선(마음)을 두고 사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그곳에 새기면 금상첨화(錦上添花)입니다.
3-2. 몸(肉)의 지평에서 변화(변형)시키십시오!
몸(肉)의 지평은 육신의 몸뿐 아니라, 외면적인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진 것으로도 온전할 수 있습니다. 그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변화(변형)를 위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까요?
재물을 예로 들어 봅니다. 필요한 것 이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부자이고, 필요한 것 이하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이라면 우리 신앙인이 되어야 할 사람은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아닌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잠언 30장 8절 뒷부분입니다. “…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이 말씀만 잘 새겨도 우리는 변화(변형)를 경험할 것입니다. [*. 1987년 당시 시가로 천 억이 간다는 요정 대원각 터(지금의 길상사)를 시주 받은 법정 스님은 부자일까요, 가난한 자일까요?]
예수님께서 재물이 많은 청년에게 하신 말씀도 이와 같은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19:21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러나 청년은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도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는 말씀을 주십니다. (ref. 마태복음 19:24) 예나 지금이나 재물에 대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 그 지평을 바꾸기는 정말 어려워 보입니다.
빅토르 위고는 <레 미제라블>에서 미리엘 신부에 대하여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그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핵심 중의 하나는 ‘자신의 삶을 위한 경비를 여러 쓰임의 하나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존 웨슬리가 그리했던 것처럼 말이죠.) <레 미제라블>에서 그리고 있는 그의(그의 신분은 주교입니다) 씀씀이를 살펴봅니다. 그가 작성한 연봉의 씀씀이 입니다. (1리브르는 오늘날 25달러에 해당합니다.)
[*. 우리 집 지출 예산서 (레 미제라블, 21)]
신학예비교를 위해 1,500 리브르
전교회 100 리브르
몽디디에의 성 라자로 회원을 위해 100 리브르
빠리 외국 선교회 신학교 100 리브르
성령수도회 150 리브르
성지 종교회관 100 리브르
성모자선회 300 리브르
아를르의 같은 회를 위해 50 리브르
감옥 개선사업 400 리브르
죄수위문 및 구제사업 500 리브르
빚으로 투옥된 가장의 석방을 위해 1,000 리브르
관할 교구 가난한 교사 급료 보조 2,000 리브르
오뜨 알쁘의 곡물저장고 100 리브르
빈민 자녀 무료교육을 위한 디뉴, 마노스끄 및 씨스트롱 각 지구의 부인 수도회 1,500 리브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6,000 리브르
나의 개인 비용 1,000 리브르 ($25,000)*1,200=3천만원
합계 15,000 리브르 ($375,000)*1,200=4억5천만원]
(연봉이 4억 5천만원인데 3천만원으로 삶을 꾸렸으니 대단하죠?)
그리고 그가 공적으로 받는 마차와 순회 비용의 씀씀이 입니다.
[*. 마차와 순회 비용
자선병원 환자에게 고깃국을 주기 위해 15,000 리브르
액스의 성모 자선회를 위해 250 리브르
드라기냥의 성모 자선회를 위해 250 리브르
버려진 아이를 위해 500 리브르
고아를 위해 500 리브르
합계 3,000리브르 ($75,000)*1200=9천만원]
(‘마차와 순회 비용,’ 공적으로 받는 금액은 모두 다른 곳에 썼네요. 역시 대단합니다.)
내게 주어진 것 중에서 내가 쓰는 것을 ‘여러 씀씀이의 하나’로 여길 수 있는가? 즉, 필요한 만큼 쓰는가? 하는 질문은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는 사실 생소한 일이 됩니다. 쓸 것 다 쓰고 나머지는 다 내 것으로 계산하는 세상이 자본주의의 속성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의미에서, 자신의 씀씀이에 대한 완전한 지평(paradigm)의 변화는 육(肉)을 변형(변화)시키는데 중요한 핵심이 됩니다.
3-3. 마음(心)의 지평에서 변화(변형)시키십시오!
마음을 통해 변화(변형)을 이루는 것은 영과 육의 지평 속에서 변화(변형)을 이루는 것과 결을 달리 합니다. 영과 육의 지평 속에 변화(변형)을 이루는 것은 ‘어렵지만 사실 쉽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통해 변화(변형)을 이루고자 하는 것은 ‘쉽지만 사실 어렵습니다.’ ‘어렵지만 쉽다’는 이야기는 처음에 그렇게 살기가(행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맘을 먹고 그렇게 하면 변화(변형)은 쉽게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쉽지만 어렵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첫 발을 그렇게 내딛기는 쉬우나 그 방법으로 변화(변형)을 가져 오기는 매우 어렵다는 뜻입니다. 마음은 (요상한 물건과 같아) 결코 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 결국은 천지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벌은 물을 마셔서 꿀을 만들고, 뱀은 물을 마셔서 독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벌과 뱀과는 달리, 그 마음이 이리 저리 휘둘리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찍이 지혜자는 마음을 지키라고 당부해주고 있습니다. (잠언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을 잘 지키고 계신가요?
[*. 이야기 한 토막: 숲 속에 사는 여우 한 마리가 길을 걸을 때마다 돌부리에 차여 발이 성한 날이 없었다. 그래서 어느 날 여우는 토끼를 잡아 그 가죽을 도로에 깔아야겠다고 생각하고 토끼 한 마리를 잡아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사정을 들은 토끼는 펄쩍 뛰면서 말했다. “여우님, 저희 토끼들을 잡아 언제 도로를 다 포장하려고 하십니까. 그냥 제 꼬리를 잘라 가죽신을 만들어 신고 다니면 될 텐데요.”]
마음 하나 잡으면 온 세상이 두렵지 않게 됩니다. 톨스토이가 당시 기독교의 무력함을 보면서 한탄한 말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세상의 변화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세상의 변화, 인류의 변화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변화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나 자신의 변화를 위한 기도가 진정한 변화의 출발점이며 원동력이 됩니다. 우리는 먼저 나 자신을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변하면 이웃이 변하고 세상이 변합니다. 여러분 발에 먼저 토끼 가죽신을 신으시기 바랍니다. 세상 모든 곳이 토끼 가죽으로 깔려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마음을 새롭게 하라고 들려줍니다. 로마서 12:2절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리고 에베소서 4:22-24절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4. 나가는 말
주님이 변화(변형)되셨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의 끝 자락에서는 변화(변형)될 것입니다. 다만, 이 땅에서의 삶의 자리에서도 변화(변형)의 자리를 경험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예수님처럼, 그리고 (감히 그 광채를 마주했던) 모세나 엘리야처럼, [모세는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났었고(ref. 출애굽기34:29,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엘리야는 불말이 끄는 불수레를 타고 회오리 바람처럼 승천했습니다(ref. 열왕기하 2:11,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변화(변형)를 체험하고 마주하는 삶을 누려가시기를 축원합니다.
*. 찬송가 287 (예수 앞에 나오면)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 찬송가 50장 3절 부르며 헌금합니다. (찬송가) /*. 헌금 기도합니다. (#. 헌금은 따로 잘 보관했다가 교회에서 예배할 때 함께 봉헌합니다)]
*. 헌금 기도합니다.
예배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간 우리의 예물을 정성껏 모아 주님 앞에 드립니다. 이 땅 위에 주의 나라 세워가는 거룩한 사역을 위해서 온전하고, 아름답게 쓰이는 예물 되게 하시고, 귀한 열매 맺어 주님의 기쁨이 되게 하옵소서. 예물에 담긴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헤아려 살펴 주셔서, 주님의 뜻 가운데 응답 받게 하옵소서. 힘들고 어려운 시간 속에서도, 주의 성령께서 우리를 돌보아 주시고, 저희 있는 곳곳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 주님 가르쳐 주신 기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