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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원문 글과 사진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십시요.ㅠㅠ
https://blog.naver.com/ktusjye/221713047107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 만나는
모임이 있다.
같은 사무실에서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이상 근무하다 비슷한 시기 퇴직했다.
사는 곳이 일산, 화정 등 멀지않아
사무실 근무할때부터 자주 어울렸던 터라
퇴직 후 정기적인 모임을 갖게 되었다.
모두 같은 취미, 당구를 치는터라
화정역에서 만나 즐기곤 했다.
한 달에 한 번은 등산이나 트레킹을 하기로 하고
지난 달 처음으로 감악산 등산을 다녀왔었다.
돌아가면서 장소 등 주관하기로 하여
이번 달에는 트레킹을 하게 되었다.
가급적 대중교통 이동이 용이한,
인근 걷기길로 정하였다.
얼마 전 다녀왔다는 동료가 선택한 코스는
고양누리길 4코스, 행주누리길이다.
원당역 3번 출구를 나선다.
3번 출구 나선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면
고양누리길 이정표가 나온다.
좌측 전봇대 오른쪽 철주에 매인
조그마한 사각형 이정표는 직각으로 꺽어져 도로를 벗어나라, 안내한다.
원당역분기점을 표시한 기둥 이정표는
도로를 따라 '고양누리길 탐방객 지원센터'로 방향을 가르키고 있다.
앞장서며 도로를 벗어나려는데
동행은 도로를 따라 공원방향으로 가자한다.
아마도 저번 방문 때 방문한 코스로
오늘 방향을 안내하려는 모양이다.
조금 올라가니
주물럭, 갈비 등 육고기를 구워파는 식당 맞은편에
사찰이 들어서있다.
조금 더 올라가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접어드는데
잘 가꿔진 산소가 보인다.
고려 말에 태어나 조선 태종조에 사망한,
개국원종공신 권희의 묘라고 안내하고 있다.
봉분 바로 앞 작고 조악한 삼층석탑은
당시 분묘 유물로는 찾아볼 수 없는 형태라 한다.
'성라체육공원'으로 접어든다.
형형색색 단풍이
도심 외곽을 물들이고 있다.
공원 내 '고양누리길 탐방객 지원센터'다.
체육공원을 벗어나
곧 산길로 접어들며 계단을 따라 오른다.
오른쪽에 성라산 정상 국사봉(109.4미터)이 있지만
오늘 선택한 길로는 오를수 없다.
국사봉에는 아기장수 전설이 전해져온다.
'국사봉 아래 어느 마을에
한 아이가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기운이 세고 건강한 아이는
양쪽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려있어
높은 곳도 쉽게 오르곤 했다.
아이가 국사봉에 올라 바위에 오줌을 누자
오줌자국이 파일 정도였다.
이 아이가 장성해갈수록
마을사람들은 불길한 마음에 사로잡힌다.
결국 그 아이를 붙잡아
날개를 불에 지져 없애버리자 아이는 죽고만다.
이 때 일산쪽으로
말 다섯 마리가 날아와 크게 울고는 사라졌다.
다섯 마리 말이 나타났던 곳을
'오마리'라고 부른다.'
'국사봉약수터' 앞이다.
도심에 있는 약수,
역시나 검사결과는 '부적합', 음용불가다.
완만한 오르막을 조금 더 오르니
훤하게 시야가 트인다.
멀리 북한산 연봉이 보이고
앞으로 늘어선 야산이 잔뜩 웅크리고 있다.
능선 뒤로 아파트를 드리우고
앞으로는 비닐하우스와 밭을 품고 있다.
머지않은 미래 저 곳도
뽕나무밭이 바다로 변하듯 개벽하리라.
죽음을 예견한 소의 선한 눈빛이 다가온다.
희생해온 세월에 대한 원망도, 후회도 없는,
단지 함께했던 사람과의 헤어짐이 슬픈...
완만한 오르막을 지난다.
왼쪽에 작은 돌무지가 보인다.
오가는 사람들이 하나, 둘 쌓은 물무덤,
일부지역에서는 정월 대보름날 석전놀이에 이용하거나
전쟁 중에는 적을 향해 던져지기도 했단다.
성라공원 쉼터로 들어선다.
쉼터에 포토존이 있다.
부모와 함께 공원을 찾은 아이들이
사진을 찍을수 있도록
동화 주인공을 배치하였다.
왼쪽부터
잠자는 숲속의 공주, 걸리버, 피노키오,
미녀를 들고있는 야수 모형이다.
설명을 읽지 않는다면
도무지 구분 할 수 없는 인물들이다,
'성라산' 지명은
'산 위에 별들이 마치 비단과 같이 펼쳐져있다'하여
지어졌다는 조선시대 기록이 있다.
성사동을 지난 경계는
화정동으로 들어선다.
예전 '화정'은 고양군 지도면에 속한
화수촌(골머리), 냉정(찬우물), 백양동(뱅골),
3개의 자연촌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중 꽃과 우물 머릿글자를 따
'화정'으로 지명을 붙였다.
곧 산길을 벗어나
마을 뒤로 나온다.
길 가운데로 '토지지신' 비석이 서있다.
다시 한 번 도로 건너
맞은 편 숲길로 들어선다.
여늬 시골마을 길을 따라
밭둑길을 지나
다시 숲길로 들어선다.
높거나 깊지 않은 숲길,
인근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소리만 아니라면
제법 완연한 산속에 들어온 기분을 느낀다.
그만큼 나무가 무성한 때문이다.
우측으로 군부대가 있는지
가시철망을 머리에 두른 철책이 감시꾼처럼 잠시 동행한다.
지석묘(고인돌) 안내문 뒤로
일반인 눈에는 평범해 보이는 바위가 보인다.
'지렁산 지석묘(고인돌) 이야기' 안내문이다.
1990년대 초,
화정신도시 개발 관련 문화유적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청동기시대 유적으로 확인되었다.
대체적으로 의지하는 스마트폰 지도와
이정표가 엇갈린다.
장미란체육관 뒤쪽 방향,
직진하라고 지도는 표시하는데
이정표는 그 전에 좌측으로 꺽어지라 안내한다.
이정표를 따라 방향을 잡는다.
숲을 벗어나
마을길을 가로지른다.
'배닿는 마을', '배다골'이다.
한강에 이르는 샛강 성사천 유역,
강을 오르내리던 배를 대던 마을이다.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다.
30여년, 부모님과 조부모님께서 지어오신 화훼농사를
1986년 상속받아 잇다가 IMF에 정리하면서
민물고기를 키워보려고 1998년 양어장 허가를 받게되었습니다.
우연히 NHK 다큐멘터리를 보며
비단잉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비단잉어를 양식하며 수질관리를 하기 위해
수생식물과 절구 등 이전부터 관심이 많았던
전통 물품도 수집하게 되었습니다.
비단잉어를 양식하고
2001년 일본의 코이쇼에 초청을 받게 됩니다.
일본을 방문하여 양식 기술을 전수받는 한편
일본 현지 내수면 연구소(니가다, 오지아현)와 기술을 협약하고
본격적으로 비단잉어양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농수산물 유통공사를 통해
네덜란드 코이쇼에 초청받아 참가하여 입상을 하게 됩니다.
같은 시기 유럽 비단잉어관련산업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전문가를 만나 유렵 양식기술을 도입하면서
유럽쪽으로 수출, 수입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비단잉어 뿐 만 아니라
한국전통 문화, 비단잉어, 한국식 정원등, 가든센터를 만들고자 매진해온 결과
지금의 배다골테마파크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출처 : http://baedagol.com/배다골소개/배다골연혁>
일만 오천평 부지에
연인원 15만명이 방문하는 수도권 테마파크다.
2019년 5월,
정부에서는 3기 신도시를 지정, 발표하였다.
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인천 계양, 부천 대장,
그리고 이 인근 고양 창릉신도시다.
이 곳 배다골 일부지역도
창릉신도시로 지정되었다.
배다골 테마파크도 창릉신도시 지역에 포함되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어차피 근린공원을 확보해야하는 신도시 사업에
본 부지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개울처럼 흐르는 하천이 성사천이다.
한강을 오르내리던 나룻배를 대었다는,
옛 영화를 떠올릴수 없다.
인도를 확보할수 없었던지
도로위를 그대로 걸어간다.
행신로와 갈라진 도내로를 지나는,
가람교 옆 건널목을 건넌다.
천변길과 제방 위로 길이 나뉜다.
이정표는 제방 위로 길을 가르킨다.
신도시를 조성하며
성사천을 건너는 다리가 연이어진다.
차도를 만나면 건널목이 놓여있다.
계속 이어지는 차도 건널목,
신호등을 기다리는 것도 불편하고
천변 산책로로 내려선다.
그렇게 내려선 천변산책로는
하천보다 50센티미터 내외 높이다.
비가 조금만 내려도
통행이 금지될 것 같은 상황이라
행주누리길은 제방길로 이은것 아닐까, 짐작된다.
천변 양쪽 가을풍경이 사뭇 다르다.
오른쪽은 수종 때문인지, 그늘 때문인지
아직 파란색이 완연하다.
성사천을 건너는 다리가
앞으로 계속 이어진다.
천변에는 흙깍기와 준설, 콘크리트 포장, 조경 등
'걷고싶은 성사천 조성 사업'공사가 진행중이다.
천변길을 걷는데 공사관계자가
덤프차가 다녀 위험하니 위로 올라가라고 안내한다.
다음 계단으로 올라가겠다, 하여
중앙로를 지나는 '성라4교' 아래, 제방으로 올라선다.
강매역이 보인다.
방금 지나온 성사천을 내려다 본다.
공사중인 천변 왼쪽 포장보도가
흙빛을 띄고있다.
화장실도 들를 겸
강매역사로 들어선다.
일행이 준비해온 핸드드립커피를 한 잔씩 하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다시 길을 가려고 역사를 내려오니
지도에 표시된 돌아가는 길이 다소 헷갈린다.
행신역방향으로 백여미터 올라가다
'U'자로 꺽어져
강매교로 올라간다.
경의중앙선 서울방향 선로다.
강매교를 건너며
강매동으로 들어선다.
강매마을은 조선조 이시애의 난에서 공을 세운
무신 선형과 후손이 정착하여 집성촌을 이룬 마을이다.
강고산과 매화정, 은행정 마을이 있어
'강'과 '매화' 머릿글자를 따 강매마을로 불렀다.
강매교 지나면서 펜스가 끊어진 곳을
다시 'U'자로 돌아
산길로 들어선다.
야트막한 산길을 오르다보면
포장로가 나란히 어깨를 겯는다.
시야가 트인 '온굴안산'에 주둔한
군부대에서 사용하는 도로로 보인다.
얼마 전 도토리가 지천이었을텐데
도심에 연해있어
정작 주인인 산짐승에게는 얼마나 돌아갔을까?
고양누리길 이정표가
좌우로 길안내를 하고있다.
오른쪽으로 접어든다.
오른만큼 제법 급한 언덕을 내려간다.
이정표는 왼쪽을 가르키는데
직진방향 봉우리로 올라선다.
야트막한 봉우리에서
보이는 전망이다.
화정과 행신동 아파트 숲이다.
그 뒤 백석역 인근
'일산 요진와이시티' 고층 아파트가 우뚝하다.
봉우리 한쪽에
길짐승을 위한 급식시설이 보인다.
해발 91.9미터,
봉대산 정상에 올라선다.
정자가 낮은듯
'머리조심', 주의를 준다.
정상 바로 아래 전망이 시원한 곳에서
한강을 조망한다.
진행할 방향이다.
가깝게 보이는 산이 덕양산,
행주산성이다.
주위는 공동묘지다.
하얗게 잘 드러난 산길을 따라
내려가다보면
제2 자유로가 나타난다.
제2자유로 아래 토끼굴을 지나
다시 역방향으로 계단을 따라
강고산으로 올라간다
능선을 따라 걷다보면
곧 창릉천변에 다다른다.
창릉천은 본래
청담천, 덕수천으로 불리웠다.
조선 8대 임금 예종이 서오릉에 안장, 창릉을 조성하며
일부 구간을 창릉천으로 부르다가
지금은 공식적인 명칭으로 사용하고있다.
창릉천변에 닿는 곳에서
마주친 상황이다.
창릉세월교를 지나는 대형트럭이 위협적이다.
자전거길을 달리던 라이더가
다리 양쪽에 바짝 붙어 길을 내어준다.
창릉천변 제방과 문화재 보호,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통행차량 제한용 철주를 세워놓았다.
'강매동 석교'다.
한강 연안 서부지역 고양, 지도, 송포주민들이
각종 농산물, 땔감 등을 팔기위해
수색, 모래내를 거쳐 서울로 오가며 건너던 다리다.
1755년, 처음 등장한 자료는
'해포교'라는 목교로 기록되어있다
일제 강점기인 1920년,
현재의 모습으로 신축되어 전해지고 있다.
총길이 18미터, 폭 3.6미터다.
강매석교를 지나면
창릉천 본류에서 갈라진 개울이 만든 섬으로 올라선다.
본류를 지나는 다리는
현재 그 위치나 내용등에 대한 안내가 없다.
역사가 오래지 않았으나
조선시대 전통적인 축조 양식이 적용된
고양시 소재 가장 오래된 석교다.
갓이 수확을 기다리며
가을 들녘을 짙은 갈색으로 물들었다.
창릉천변 강고산마을을 지난다.
천변 강매배수펌프장 수문을 지나
이정표는 계속 도로를 따라가라 하는데
제방 아래로 내려선다.
지난 가을 코스모스가 지천이었다는 밭이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아마도 계절별로 다른 꽃을 심는것이 아닐까?
야외공연장처럼 계단을 만들어놓았다.
수십만송이 꽃들 중에
용케도 살아남은 모습이 처연하다.
하지만 그 영화를 증거한다.
이 너른 들판에
내년 봄에는 어떤 꽃이 만발할지 기대된다.
행주누리길을 걷기위해서는
이쯤에서 도로로 올라서야하지만
그대로 진행하여
교각 아래를 지난다.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가 시작되는 곳,
강변북로와 교차하는 북로JC 진출입로가 얽혀있다.
수변에서 자라는 갈대가
연약하지만 꺽이지않는 지혜, 바람따라 흔들리고 있다.
강변북로와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가 교차하는 교각 아래,
창릉천을 지나는 다리가 보인다.
다리를 건너지 않고
강변북로 교각 아래를 지난다.
이미 걷기길은 행주누리길을 지나
행주산성역사누리길로 들어섰다.
녹슨 철간판에 적혀있는 경고문구가
지난 세월의 삼엄함을 보여준다.
'이 지역은 군사적전을 수행하는 지역이므로
허가된 자 이외의 출입을 금함'
창릉천을 지나는 돌다리다.
한적한 모습과는 달리
지금도 이용하는 사람이 있는지 주의문이 보인다.
눈앞에서
창릉천에 한강으로 합수한다.
바람누리길이 시작되는 곳,
덕양산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이 시작된다.
계단을 올라선
산허리를 따라가는데
오른쪽 길,
행주산성으로 가는 문이 닫혀있다.
매주 월요일 휴무인데
오늘은 목요일이다.
닫힌 이유를 알수 없다
2019년, 삼일운동 백주년 기념으로
백 일 동안 한시 무료개방하였다가
'고양시 행주산성문화재관리 조례안 개정'으로
현재는 상시 무료개방하고있다.
산허리를 돌아가니
시원한 전망이 터진다.
바로 앞 보이는 다리가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가 한강을 건너는 '방화대교',
그 뒤로 공항철도가 한강을 건너는 '마곡대교'가 보인다.
산허리를 걷는 길이 좁다.
사는 곳이 일산이라
자유로를 오가며 늘 보던 행주산성,
그 뒷편을 걷는 기분이 새롭다.
한강변 경계를 위해
일반인은 접근하기 어려웠던 곳이다.
2013년 고양누리길 7코스,
'행주산성역사누리길'을 포함되어 개방되었다.
한강조망이 최고라는
팔각초소전망대로 내려서는 계단이다.
사전 정보가 없어
계속 산허리를 돈다.
마을 뒷산 오솔길처럼 좁지만 정겹다.
한강 저 편에서 보면
강으로 떨어지는 가파른 절벽처럼 보였다.
막상 그 안으로 들어서니
여늬 산길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평화누리길' 리본이 가지에 매달렸다.
평화누리길 4코스가
고양누리길 행주산성역사누리길과 겹쳐있다.
철책 너머 행주산성문화재 보호구역 내
권율장군을 모신 사당, 충장사가 있다.
현재 시간이 4시 47분,
겨울로 향하는 해가 많이 짧아졌다.
공동묘지다.
말끔히 단장은 되었지만
이 곳은 조금 특별한 무덤들도 섞여있다.
한강을 향해
남향으로 자리잡은 봉분이 작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임진왜란 당시 전사한 민, 관, 군 병사와 승려, 아낙들의 시신을
묻은 곳이라 한다.
그 후 일제강점기 때 공동묘지로 지정되면서
더 많은 무덤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어지는 산길은
밖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길게 이어진다.
마침내 그 끝에 다다른다.
한창 공놀이중인 운동장,
철책 뒤 울타리를 지나
수변 행주산성역사공원으로 드나드는
행주산성로에 닿는다
도로를 따라
고양시정연수원입구 버스 정류장에서
걷기를 마무리한다.
도심 인근 걷기길,
자주, 길게 접하는 도로와 도심 풍경에
몇 몇 길은 걷기를 포기했다.
그런 경험이 있어
이번 코스를 시작하며 큰 기대는 없었다.
도심 인근 이름이 있거나 없는 야산들,
때로 그 속에 들면
생각보다 깊은 산길을 걷는 기분이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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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여전하시군요... 부산에 오실일 있으시면 한번 들리시지요. 얼마전 몰운대 형님 제방에 오셔서 완전 퇴직하셨고 미국 캐나다 1달정도 다녀왔고 여권 다되어서 오셨다는데는 아프리카 한달 갈려고 준비중에 있으시답니다. 켐핑카도 한대 준문하셨다는데... ㅎㅎㅎ 아주 건강 하십니다.
소식감사합니다.
마음은 어디든 다니고 싶은데
현실이...^^
제가 걸어본 눈에 익은 길들이 군데군데 보이군요.
엄청 긴 코스인데 역시 대단 하세요.
직장 동료들과 함께 동행하는 것은 퇴직후
누리기 쉽지않은 일입니다
나도 잉어가 있는 테마파크에 가보고싶내요..
우리 시아버지가 첫애 가졌을때 잉어를 사오신 생각이나네요..ㅎ
단풍숲도 좋고 많은 역사의 흐름도 느끼면서 별천지를 살고 계시는 차장님 부럽습니다
그런데 너무 무리하지마소~~
아름다운 고양시입니다. ^^
제2의 인생을 농사가 아닌 걷기 선땍한 차장님이 다른 한 편 부럽기도해요.
물고기가 물을 만난 형국입니다.ㅎ
술을 적게 마셨나봅니다 강매역이 깡패역으로 보여서 당황해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은 술을 적당히 먹어야 쓰것습니다 너무 적게 먹어서 그릉가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