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문화탐방>의 발걸음은 '예술의전당'으로 잡았다. 예술의전당은 시내 중심부에 위치해 있고 가끔 우리 중늙은이들도 볼 만한 걸 전시를 하고 있으나 유료라는 족세(?)가 발목을 잡아 왔었다 ^^. 낮의 길이도 길고 날씨도 무더울텐데 한시간 정도 관람하고 벌건 대낮에 하릴없이 음식점에 들어가야 하는 불상사를 미리 막고자, 만나는 시간을 1시간 늦춘 오후 4시로 잡았다. 그래도 관람이 끝나면 5시라 너무 이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마침 같은 서예관 3층에서 '한국목판특별전'이 바로 전날부터 열려 마치 우리를 위한 특별 전시회가 아닌가 싶었다. 더욱이 정약용전은 거금(5000원)의 입장료가 있는 반면 목판전은 파격적(?)인 무료라니....
정약용 탄생 250주년전
당일(6월 28일) 오후 4시, 예술의전당 음악분수대 앞, 우리 문화를 지키겠다고 분연히 나선 독수리 5翁. 그동안 내려 쬐던 햇빛도 잠시 구름속으로 숨고 주위에는 예술과는 거리가 먼 동내 아이들과 아줌마들만(이 야그는 필자의 말이 아니고 함께 간 고옹의 투덜거림이었음을 자복함)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정약용전은 서예관 2층에서 지난 6월 16일 부터 시작되였고 7월 23일 까지 전시될 예정이란다. 이번 전시회는 다산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여 전남 강진군의 협조로 다산의 서책과 시문, 글씨 등 150여점이 전시되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다산과 교유했던 초의선사, 추사 김정희의 작품도 함께 볼 수 있었다. 심옹은 작년에 가 본 양평에 있는 정약용 전시관만 못하다고 다소 실망을 표했고, 더욱 아쉬운 점은 해설자가 없어서 고딩때 부터 주입식 교육에 젖어 온 우리를 당황케 하였다. 다만 책에서만 보아온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 귀양살이 동안 집필한 진귀한 책들의 진본을 표지만이라 볼 수 있었던 건 큰 수확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다산 선생이 빛바랜 어부인의 비단치마에 시집가는 딸을 위해 한쌍의 새 그림을 그리고 특이한 4언체 한시를 써 준 진본을 보게 된 건 감격이었다
翩翩飛鳥(편편비조) 파르르 새가 날아
息我庭梅(식아정매) 뜰 앞 매화에 앉네.
有列其芳(유렬기방) 매화 향기 진하여
惠然其來(혜연기래) 홀연히 찾아 왔네.
爰止爰棲(원지원서) 여기에 둥지 틀어
樂爾家室(낙이가실) 너의 집을 삼으렴.
華之旣榮(화지기영) 만발한 꽃인지라
有賁其實(유분기실) 먹을 것도 많단다.
다산이 강진에서 귀양살이 한지 여러 해가 지났을 때, 부인 홍씨가 헌 치마 여섯 폭을 보내왔고 네 첩을 만들어 두 아들에게 주고(하피첩) 그 나머지로 족자를 만들어 딸에게 준 것 중 하나가 지금의 작품이다. 향기 만발하는 뜰에 앉은 한 쌍의 새에게 둥지를 틀어 집을 삼기를 권하는 것이 시집가는 딸의 행복을 비는 부심의 애틋함이 배어 있다. 그림은 훌륭한 작품이라 할 수 없지만 드물게 보는 다산의 채색화이다.
예상대로 딱 1시간의 관람으로 정약용전을 마치고(다산 선생님 죄송합니다. 엄청난 작품들을 대충대충 흘터만 봐서..), 3층 목판전시실로 향했다. 사실 이 전시회는 애초부터 계획된 것도 아니고 입장료도 없어 크게 기대하지 않았으나 꽤 볼만 했다. 마치 Full Course Dinner가 별로 였는데 골목 식당에서 별미를 맛보게 된 것처럼, 아니면 길잃고 잘못 들어선 샛길에서 기화요초를 만난 것처럼.... 이 전시회는 바로 전날(27일) 개장하여 7월 22일까지 전시되며 안동 도산면(퇴계의 도산서원이 있는)에 있는 '한국국학진흥원'이 주관한 것이다. 이날 해설을 맡아준 국학진흥원 관계자(통성명은 못했음)에 따르면 이곳에는 수천 점의 목판과 경향의 명문대가들의 집이나 서원 정자 등에 붙어있었던 현판과 편액을 기증받아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우선 이런 귀중한 자료를 보관관리하는 국학진흥원이라는 데가 있다는 것도 몰랐고 옛날에는 어떻게 책을 인쇄했는지도 잘 몰랐으니 무심한 건지 무식식한 건지...
특히 조선 4대명필 한석봉이 선조의 명을 받고 썼다는 도산서원(陶山書院), 세종대왕의 장인으로 영의정을 심온(沈溫)의 청송 심씨(우리 모임 심옹의 본관) 집안의 보배인 송백강릉 (松柏岡陵-詩經 천보편에 나오는 문구라 함), 민속화가 김홍도가 예안 이씨 채화정에 써준 현판 담락재(澹樂齎), 조선 후기 대학자이며 김옥균 등 개화파의 스승인 박규수가 반남 박씨(필자의 본관) 무섬 오현고택에 써준 오헌(吾軒), 그리고 왕으로는 점수가 별로지만 글씨는 일품이라는 선조의 멋진 작품도 눈에 띄었다.
선조의 명을 받고 명필 한석봉이 썼다는 도산서원 편액
심온(沈溫)의 청송 심씨 집안의 보배인 송백강릉 (松柏岡陵)-현장촬영
조선 말기의 정치가이며 개화사상가인 박규수가 쓴 편액
그림뿐만 아니라 글씨에도 조예가 깊었던 김홍도가 쓴 담락제 편액
선조대왕의 어필
*사족 : 관람이 끝난 후 예술의 전당 바로 앞에 위치한 정통 중국집을 만찬장소로 잡아 관람국후담 겸 시급한 민생고를 해결하였다. 평소같으면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을 고翁이 지나칠 정도로 과묵함에 모두들 의아해 하였는데, 알고 보니 서빙하는 여인의 자태가 너무 고아 거의 숨조차 쉬지 못해다고 실토하였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바로 美, 즉 아름다움인데 어찌 그게 곰팡이 나는 옛날 예술작품에만 한하랴. 살아 있는 여인의 아름다움이 진정 신의 예술작품 인것을...
첫댓글 여러모로 부러울 따름이요!
그런데 더 부러운 것은 Mr. Go의 열정이 아직........
예순하고도 아홉이 되니 매사에 관심이 전혀......
에이! 가서 쐬주나 한잔 때리자꾸나~~~
ㅋㅋㅋ말하는꽃 해語花 수입산 꾸냥의 아름다움! 입이 아주 작아요 수준높은 명품사족임다
점점 내공이 쌓여 꽉짜여져가는 후기.... 새로운 장르,,, 잘못하면 사고칠것같은 불길(?)한 예감
문제의 중국집 여인에 대해 궁굼해 하는 벗들이 많은듯 하여 부언하면, 원산지(?)는 中國인듯하고 미모의 등급은 물고기가 헤엄치는 걸 잊게했다는 沈魚, 서시(西施)나 날아가던 기러기가 떨어졌다는 落雁, 왕소군(王昭君)에는 못미치나 말을 잊게 할 정도인 言忘 급에 해당된다 사료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