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의 다듬잇돌
이동규
할아버지 지게에 업혀 툇마루까지 들어선 옥 다듬잇돌
어머니와 함께 식구들 옷 반듯하게 폈었는데
나일론에 밀려나면서 찬밥 신세가 된
대전으로 이사 올 때 어머니가 굳이 싣고 오면서
방망이는 놔두고 너만 달랑 데려온 걸 보면
처음부터 두드릴 생각은 없었던 것
그동안 수천 번이고 “또드락 딱딱 또드락 딱딱”하며
기나긴 세월동안
어머니의 온갖 푸념과 넋두리 다 받아주고
부디 자식만 잘 되게 해달라는 염원까지 들어줬던 너와는
이미 한통속이 되어버린 것인데
지금은 풀 먹인 무명옷도 두드릴 방망이도 없어서
그냥 베란다에 화분 받침으로 놔두고 있지만
너만 보면 어머님이 떠오르고, 고향 소리 들리니
나 또한 어찌 너와 헤어질 수가 있으랴
이젠 어머니 대신 너와 마주하며
맘속에서나마
“또드락 딱딱 또드락 딱딱” 소리 내면서
어머니 생각도 하고
엉클어지고 구부러진 세상사도 쫙쫙 펴보련다.
손수레 좌판
이 동규
대전역 광장 끝나는 곳의 손수례 좌판에는
한낮 땡볕을 파라솔로 버티며
사탕 봉지마다 몽땅 천원이라 써서 꽂아놓은
가격표가 낚시찌처럼 나풀거리는
점멸하는 신호등이 발걸음을 재촉하건 말건
장대비가 쏟아지건 말건
손수레의 가격표만 주인 대신 손님에게 손을 흔들지만
지나 가던 택시가 멈추면서 “아줌마”하고 소리하면
대답 대신 후다닥 사탕 한 봉지와
잔돈을 내미는 곳
부득이 주인장이 자리를 비우는 날이면
파랑 비닐포대를 침낭처럼 뒤집어쓴 채
시끌벅적한 세상만사는 알 바 없다는 듯
깊은 잠에 빠져있는 손수레 좌판이여
이곳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그의 자리인 것
* 이동규(李東奎). 충남대 명예교수(경영학박사), (주)살림 대표, 시집 “몸이 말을 하네, 몸의 말을 듣네, 몸에 박힌 말, 몸과 말 사이” 및 산문집 “낭비야 가라, 더불어 참을 열다” 유머집 “유머 수업(2021, 선학사), “행복은 유머를 먹고 자란다.(2012.8 선학사)” “일주일 만에 유머 달인 되기(2008. 선학사)” 등 30여 권의 저술이 있음·
첫댓글 이동규선생님, 원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