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동안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자전거 산책에 나선다.
한낮의 폭염을 피하기 위함인데, 그건 나름대로 효과가 상당하다는 걸 절감하고 있다.
열대야로 또 지쳐있던 몸에 아침 공기를 맞으며 동네 한바퀴를 돌고, 돌아와 땀에 젖은 몸을 샤워로 풀면 정신적으로도 좋은 것 같고, 그나마 이렇게라도 몸에 이상없이(특히 허리 등) 이 여름을 지낼 수 있는 체력을 유지할 수 있는 듯한, 나로써는 최소한의 신체를 돌보기 위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는 태풍 '프란치스코'의 영향으로 아침부터 비가 내려 나가지 못해서, 오늘은 맘 먹고 아침잠에서 깨어나자마자(6시 경)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사실, 주말을 끼고 또 어제는 비가 오는 등 날씨가 구질구질해서 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은 충무로에 스캔 맡겼던 '슬라이드 필름'을 찾으러 나가야만 했다.
디지틀 이미지는 이미 인터넷(웹하드)을 이용해서 받아두었지만, 그 필름은 찾아와야만 하는 것이라. 귀찮은 일이긴 하지만, 뭐든 시작이 있으면 마무리를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산책에서 돌아와 간단하게 아침을 챙겨 먹고,
시간이 좀 남는 것 같아 오늘은 '자화상 드로잉'도 하나 하고(이틀 동안 '열대야' 작업을 하느라 건너뛰었기 때문),
9시 반경에 아파트를 나섰다.
그런데 오늘의 일정은,
충무로에 가기 전에 여기 노원 사거리에 있는 극장부터 들르기로 했다.
어차피 나가는 길에 영화 한 편을 본 뒤(충무로에서 볼 수도 있지만, 어제 '영화 검색'을 해 보니, 노원 사거리에 있는 극장에서 '호크니'가 개봉된다기에), 영화부터 본 뒤 거기서 지하철을 타고 충무로에 가서 슬라이드 필름만을 찾아오면 되니까.
그러니까, 가급적 외출을 하지 않으려 하는 성향의 나는, 평소에도 외출할 일이 있으면 두세 가지 일을 모아서 한꺼번에 외출을 하며 해치우는 식이라 오늘도 그랬던 것이다. 더구나 그 다큐멘터리 영화가 오늘 개봉하는 데다, '조조'이기 때문에 싸고 또 쾌적한 분위기에서 감상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을 깔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요즘 '호크니'에 대한 얘기가 잦은데, 그 전시회는 미루다 미루다 끝나갈 무렵에 겨우 가서 본 것과 영화 개봉이 맞물리는 상황이라 그런 것이고, 공교롭게도 내가 좋아하는 화가(특히 현존하는)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런 것이지, 뭐 특별히 한 화가를 들며 유난을 떠는 건 아니라고 본다.)
약 15분 정도의 여유있게 도착해서, 한 컷 찍었다.
내 예상 대로 영화관은 쾌적했고(열 명 정도의 관객), 그래서 아주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었는데,
나에겐 그동안 알지 못했던 '호크니'의 생과 작품세계를 상당히 심도 깊게 접하게 해준 영화였다.
사실 나는 그동안 '호크니'에 대해선 화집이나 전시를 통한 작품으로만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지, 그의 사생활이거나 전체적인 작품에 대한 흐름 등은 일반적인 지식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 있었다고 볼 수 없었다.
다만 내가 좋아할 여러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던 화가였기에(작품에서 보이기 때문에) 관심이 갔던 것이지, 일부러 연구까지 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호크니가 이렇게나 유명한지를 최근의 전시회와 이 영화를 보고서야 새삼 알게 되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그 영화를 보니,
본인의 육성이 섞인 다큐멘터리 영화라 더욱 실감이 났고,
물론 호크니가 '동성애자'였다는 건 그의 화집에 나오는 작품을 통해서 이미 감을 잡고는 있었지만, 이 영화를 통해서야 그 정확한 실체를 알게 되었고(나는 그를 '화가'로 대해왔기 때문에 '작품'이 중요하지, '동성애'네 뭐네 하는 건 사실 굳이 강조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영화에 등장하는 그의 주요 작품들도 '동성애'와 관계가 있다는 걸(그 작품의 현존 모델들이 직접 나와 그 작품 제작 과정을 설명하는 등) 이 영화를 보고서야 알게 되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렇게나마 언급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화가인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그의 작품세계와 내 경우를 비교하게 되었는데(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림에 (문자, 글자를 넣어) 뭔가 자꾸 설명하려는 성향, 주변은 '추상'이거나 '상상을 불허하는 현대 미술'쪽으로 가는데도 여전히 (고리타분할 수도 있는)그림을 그려대는 점(물론, 그는 그의 시점에서, 나는 내 관점에서), 자신의 작품에 '사진'을 적극 활용하다 못해 생활이 사진과 뗄 수 없으면서도 사진 자체로의 작품까지 하는 점, 게다가 '단순화'와 '자기만의 독특한' 표현방식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 등에,
영화를 보는 내내,
누가 보면, 내가 호크니를 따라한 것처럼 볼 수도 있겠네! 할 정도로 유사점도 많았고(그래서 그 독일인 부인이 날더러 '호크니와 비슷하다'며 화집을 선물했던 건가?),
그 스스로 '나는 매우 특별한 눈을 가졌다' 고 강조했듯(지난번 전시에서 본 영상에서), 그의 '시점'과 또 독특하면서도 아름다운 '색감'에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나보다는 20살 정도 많은(그렇지만 '예술의 세계'에서 나이가 무슨 소용이랴?),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그래서 내가 그를 잘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화가로써 통할 수밖에 없는 교감을 한 느낌이다.
두 시간 가까이 상영되었는데, 그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나에겐 참 좋은 영화였고, 한 위대한 예술가의 삶을 본 뿌듯한 기분이었다.
많은 내용들이 내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에 공감을 했고 감동도 했던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푹푹 찌는 한낮이었고 점심 시간이었다. (12시 반 경)
그 길로 '노원역'으로 가 다시 냉방이 시원한 전철에 올라,
충무로 역을 나오니, 도심은 열기로 가득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슬라이드 필름을 찾아 다시 지하철을 타고,
약간 졸기도 하면서 아파트에 돌아오니, 3시가 돼가고 있었다.
내가 외출했던 몇 시간 동안의 열기를 담고 있던 좁은 아파트 문을 열어젖힌 뒤,
옷도 훌훌 벗어버리고는, 그제야 나는 점심을 해 먹었고,
누군가는 날더러 '호크니'와 많이 비슷하다지만,
그래도 또 다른 '이름도 없고 가난한' 화가로써의 내 그림에 정성을 쏟을 수밖에......
'열대야' 작업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