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2757. pariyuṭṭhāna : 전박 纏縛에 대해서는 Vism 청정도론.5. / 1장. §13의 주석을 참조하라.
*[주석]2758. sakkāyadiṭṭhi : 개체가 있다는 견해 즉, 유신견 有身見을 이 문맥에서 역자가 달리 번역한 것이다. 상세한 설명은 이 책의 해제에서 『번역술어에 대한 해명』을 보라.
*[주석]373. 고정관념을 통해서: 원문의 pariyuṭṭhānābhibhavavasena는 주로 번뇌와 연결되어 사용되는 것으로써 여기서도 유신견과 연결된 것이다. 유신견은 항상 자아에 대한 강렬한 고정관념 때문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Pm.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pariyuṭṭhānasaṅkhato abhibhavo pariyuṭṭhānābhibhavo,
고정관념이란 불리는 힘이 강렬한 고정관념이다.
tassa vasena suddhasaṅkharapuñjamattadassanato sakkaayadiṭṭhipariyuṭṭhnaṃ nivatteti.
유신견은 그것을 통해 [일어난다]. 순전히 상카라들의 무더기일 뿐이라고 보기 때문에 유신견의 고정관념을 버린다. Pm.563.
*[주석]2759. nivatteti. Samudayañāṇaṃ ucchedadiṭṭhiṃ. Nirodhañāṇaṃ sassatadiṭṭhiṃ. : 허무주의는 한역의 단견 斷見으로 죽은 뒤에 지속하는 자아나 영혼이 없다고 하는 유물론적 견해를 말한다. 영원주의는 한역의 상견 常見으로 신체와는 상관없이 죽어서도 영원히 존재하는 자아나 영혼이 있다는 관념론적 견해를 말한다.
S. SN 쌍윳따니까야 상응부.II.20에서 그 양자에 대하여 부처님은 이와 같이 설한다. “깟싸빠여, ‘행위하는 자 작자 作者는 체험하는 자 수자 受者와 동일하다’는 것처럼 처음부터 존재했으므로 ‘괴로움은 자신이 만든 것 자작 自作’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영원주의 상견 常見에 빠지는 것이다. “깟싸빠여, ‘행위하는 자 작자 作者는 체험하는 자 수자 受者와 다르다’는 것처럼 괴로움에 압도되었으므로 ‘괴로움은 타자가 만든 것 타작 他作’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허무주의 단견 斷見에 빠지는 것이다.” 여기서 행위하는 자 작자 作者와 체험하는 자 수자 受者를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파악한다면 그 원인과 결과가 동일하다는 자기원인적 견해와 원인과 결과가 다르다는 타자원인적 견해는 앞서 지적한 인과의 선형성의 그 발생적 연관의 측면에서 두 극단에 해당한다.
①자기원인설 : 행위하는 자와 체험하는 자는 같다so karoti so paṭisaṁvediyatī’ti.
②타자원인설: 행위하는 자와 체험하는 자는 다르다añño karoti añño paṭisaṁvediyatī’ti. 자기원인설에 바탕을 두는 인과의 동일성은 곧 ‘모든 것은 소멸하지 않는다’는 영원주의에 바탕을 둔 것이다. 타자원인설에 바탕을 두는 인과의 차별성은 곧 ‘모든 것은 생성되지 않는다’는 허무주의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러한 두 극단은 결코 인과적 연속성을 설명할 수 없게 한다. 전자는 인과의 동일성을 주장하여 인과의 효력을 무력하게 하고, 후자는 인과의 차별성을 주장하여 인과관계를 근본적으로 부정한다.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