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는 나만 미워해 / 양선례
그는 발이 컸다. 290mm 신발을 신는다. 그가 학교를 방문하면 슬리퍼를 미리 주문했다가 가는 길에 비서에게 들려 보냈다. 남겨 두어도 신을 사람이 없을 게 뻔하니까. 고릴라처럼 덩치가 컸다. 중등 출신인 그의 이름을 발령자 명단에서 처음 보았다. 그가 근무하던 지역에서는 꽤 유명 인사라고 했다. 근무성적을 다툴 때 상대에게 소송을 걸어 이겼다는 전설이 따라왔다.
그는 우리와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에서 자신이 이룬 일을 말했다. 학교에 기숙사가 필요했다. 그 학교 졸업생 중 기획재정부에 근무하는 사람을 찾아갔다. 국회의원을 등에 업고, 교육감도 면담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두 푼도 아니고 무려 100억이 넘게 드는 공사였다. 최후의 수단으로 전남 출신의 건설회사 회장을 찾아갔다. 이미 다른 지역에서 기숙사를 몇 채 지어 준 전례가 있었다. 사정을 설명했으나 거절당했다. 포기하지 않았다. 하루, 이틀, 사흘... 점심 도시락까지 싸 가서 긍정의 답변을 받을 때까지 읍소했다. 결국 그 정성에 감복한 회장이 바로 얼마 전까지 자신이 교장으로 있었던 학교에 무려 108억을 들여 기숙사를 지어 주었단다.
교육부도, 도 교육청도 하지 못한 일을 했다면서 영웅담을 자랑했다. 오직 자신의 힘으로 당당하게 해냈다는 자부심이 얼굴 가득 묻어났지만 듣는 우리는 떨떠름했다. 과연 그게 교장의 역할일까? 순리대로, 물 흐르는 대로 열심히 일하고 열매를 따는 게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편법은 싫어하고, 특혜는 불편하고, 그리고 정치는 내가 가장 못하는 영역이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고릴라는 교육자가 아니라 장사꾼이라는 것을.
승진하는 데는 도서벽지 점수가 필요하다. 연구학교에도 일정 기간 근무해야 만점을 얻는다. 주제를 정해 실행 연구를 하고 그 결과를 보고서에 담아 등급 표창도 받아야 한다. 부장도 몇 년 하면서 학교 돌아가는 시스템을 익혀야 한다. 컴퓨터 자격증이나 외국어 등급이 있으면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청소년단체 지도자, 영재 교육원이나 외국어 체험 센터 전담 교사의 경력이 있어도 점수를 얻을 수 있다. 학교 폭력이나 교육력 향상 유공 교원 등도 마찬가지다. 소수 셋째 자리에서 당락이 갈리기도 한다.
무엇보다 근무 성적이 절대적이다. 도에서 추진하는 연구 대회에서 1등급을 받으면 1점이지만 근무 성적은 무려 5점이다. 그러니 다른 걸 아무리 잘해도 그걸 받지 못하면 승진 자체가 불가능하다. 내가 교장 승진을 꿈꿀 무렵에는 그 경쟁이 치열하여 한 번도 맞기 어려운 수를 두 번은 받아야 승진 대상자가 될 수 있었다.
교감까지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열심히 일하고,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았다. 자리는 하나요, 경쟁자는 둘이라서 근무 성적으로 다투다 서로 원수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그에 비하면 나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내가 잘해서라기보다 지금껏 좋은 사람을 만나서 그랬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세상이 1과 1을 더하면 꼭 2가 되는 건 아니지만 그 비슷한 언저리의 답이 나왔기에 방심했다.
심호흡을 크게 했다. 이게 필요할까? 꼭 이래야 하나? 또 부정적인 생각이 고개를 든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용기를 내어 노크했다. 그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인사를 해도 쳐다보기만 했다. 공간 한가운데 열 명이 넘게 앉을 수 있는 원탁 탁자가 있었지만 앉으라는 말은 없었다. 쭈뼛거리고 그가 앉아 있는 책상 앞에 섰다.
“〇〇초 교감입니다. 근무 성적이 필요해서 말씀드리려고 왔습니다.” 어렵게 입을 뗐다. 고개를 들고 한 번 쓱 쳐다봤다. “근무 성적이야 원칙대로 해요. 큰 학교에서 고생하는 교감이 우선적으로 받아야죠. 작은 학교에서 편하게 있는 교감하고는 달라야죠.” 졸였던 마음이 활짝 펴진다. 원칙대로. 바로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다. 구성원이 많아 이런저런 사건 사고가 많은 큰 학교 교감이 바로 나니까. 작년에 100대 교육 과정에서 상도 받았고, 올해는 지역의 유일한 연구 학교 운영도 성공리에 마쳤으니까. 실적은 좀 많은가? 우리 아이들이 도와 전국 대회에서 상을 받은 게 차고 넘쳤다. 학교 폭력이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경력이 가장 많았다.
차 한 잔도 얻어 마시지 못했지만 마음은 편했다. 필요하면 가서 의사를 확실하게 전달하라는 선배 말을 듣기 잘했다. 다만 한 가지를 챙겨 가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기다릴 일만 남은 거다.
나는 순진했고, 그는 노련했다. 시절도 내 편이 아니었다. 예년보다 인원이 반도 되지 않았다. 승진 대상자 명단에 내 이름은 없었다. 나보다 6개월, 1년, 1년 반이나 늦게 교감 발령을 받은 선배들이 어쩐 이유인지 나를 앞섰다. 정치도 능력이라면 할 말이 없다. 그래. 좀 늦으면 어때? 끝까지 소신을 잃지 않은 나를 칭찬하자고 겨우겨우, 마음을 다잡았다.
2주 후에 교감 회의가 있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어깨를 두드렸다. 안쓰러운 눈길로 쳐다봤다. 그 마음 다 안다는 듯이 내 손을 잡았다. 차라리 모른 척해 주지. 이제 겨우 아문 상처가 후벼 파는 것처럼 아팠다. 무엇보다 사람들 보기가 부끄러웠다. 스스로가 무능하게 여겨졌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나는 그저 내 자리를 묵묵하게 지킨 것뿐인데.
고릴라는 불명예스럽게 퇴직했다. 무리한 일 추진으로 교장 여러 명과 그가 일한 단체까지 경고를 맞게 했다. 장사꾼이 사라져서 나도 박수를 쳤다. 그런 자가 교단에 있다는 게, 지역을 다스리는 교육의 수장으로 임명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