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0일 화요일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김미순
나는 최근 나온 책이 없거나 급히 앍어야 할 책이 눈에 띄지 않을 때 <이상문학상 작품집> 을 읽는다. 2009년도 오래된 이 책도 그래서 읽게 되었다. "산책" 이란 말에 끌려 읽게 되었다. 대상 수상작은 김연수의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이었고 우수작은 이혜경 <그리고 축제>, 정지아의 <봄날 오후 과부 셋> , 공선옥의 <보리밭의 부는 바람>, 전성태의 <두 번째 왈츠> , 조용호의 <신천웅> , 박민규의 <용> , 윤이형의 <완전한 항해> 였다.
작품마다 주제 의식이 뚜렷했고 주의깊게 읽어야 보내는 메시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공선옥의 작품과 정지아, 박민규의 작품이 비교적 쉬웠다.
대상 수상작은 작가의 수상소감을 읽으면서 작품의 주제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불면증으로 고통받는 나는 <암횐자를 위한 생존전략> 이라는 책 속에 "짧은 시간에 척척" 이라는 문장을 발견하고 산책을 시작한다. 처음 여동생과 산책을 한 후 "생각부다 오래 잠을 잘 수 있었던" 나는 다음 날부터 걱정하는 일들의 목록이 적힌 A4용지 뒷면에 친구들의 이름과 연락처를 적고 아홉 명의 친구들에게 연락한다. 마지막 건축사 친구와의 산책이 끝난 순간 '코끼리' (고통) 가 나타나 심장에 발을 얹고 힘을 주자 가슴은 '고통' 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산책할 친구가 없어지자 핸드폰에 저장된 번호로 무작정 전화를 걸어 산책을 계속한다. 이제껏 '코끼리' 와 함께 산책한 나와 이 세상의 모든 동물들을 이끌고 걸어왔을 책 속에 소개되었던 Y씨와의 산책이 끝나갈 무렵 둘은 거리에서 '있지만 없는 예측 불가능한 자기 안에서 생겨나는 고름 같은 이해의 껍질 같은 건 없는 그것' 과 마주치게 된다
인간 내면의 고통의 본원적인 의미에 대한 성찰이 돋보인다.
공선옥의 작품은 여름날의 작은 풍경이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작품이다.
아직 날이 새지 않은 시각, 들려오는 말소리에 잠에서 깬 초등학생인 나는 눈을 반쯤 감은 상태에서 인사를 하고 다시 잠에 빠진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아침, 모내기를 하면 학교를 가지 않고 도와야 한다. 천수답 농사를 짓는 부모님 아래 누나들은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도시의 공장으로 일하러 나갔다. 남의 소작만 부치다 천수답이나마 갖게 되고 송아지나마 사들이게 된 것도 누나들 덕분이다.
중학생이 된 형에게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을 들은 나는 그날따라 기분이 좋다. 비가 오지 않아 학교를 가기 위해 집을 나온 나는 도중에 정배네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보리밭에 들어선 순간 한가운데 바위너설에 앉아있는 여우와 마주한 나는 죽을힘을 다해 도망쳐서 정배네 집에 도착한다. 정배와 뒷산 계곡에서 놀고 있을 때 농구화를 신은 사내에게 길을 가르쳐 주고 뒤늦게 간첩이라는의심이 든다. 다음날 여우의 출몰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여우를 봤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주의를 받고 집에 온 나는 자신에게는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 아버지, 어머니, 형이 야속하다. 부모님이 나누는 이야기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든 나는 세찬 빗속에서 보리밭과 망초꽃과 여우와 함께 젖는 꿈을 꾼다.
지나간 시절의 우리네 모습과 유년기 초상의 한 단면을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박민규는 <지구영웅전설> 로 엄청 주목을 받았다. 나는 그의 작품을 거진 다 사 읽기도 했다. 요즘은 그의 작품을 찾기가 어렵다
조직폭력배들과의 맞장끝에 감옥에 간 대천권왕, 김일해의 출옥을 계기로 무림4대 천왕이 한자리에 모인다. 그러나 무림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서른 두 평 아파트' 와 종합격투기가 시대정신이 된 시절, 천하를 호령하고 대의를 섬기던 그들의 모습은 늙고 초라할 수 밖에 없다. 대천권왕, 청룡검계, 운무천마는 빙해천수가 운영하는 삼우농장에 모여 무림의 과거와 미래, 시작과 끝이 모두 적혀 있다는 금서 <무제록> 을 펼친다.책 속에는 이들의 마지막 순간도 예언되어 있다고 , 그날 새벽 4대 천왕은 오래 의견을 나눈 되 '죽을 땅을 피해 비로소 늘로 날아오' 를 것을 결심하고 책사인 이장록의 의사를 묻지만 장록은 개량한복을 입은 아빠를 "쪽팔려" 하는 딸에게 전화를 건다.
작품의 제목인 '말 많은 절 ' 은 '용 용 (龍) 자 네 개가 합쳐진 것으로 바로 4대 천왕을 상징한다. 무협소설의 형식을 차용해서 물질 만능주의가 만연한 현 세태를 비판한 풍자와 해학성이 돋보인다. "서른두평 아파트가 대의" 라는 천마의 말에서 작품이 갖는 현 세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정신이 엿보인다.
* 참으로 재미있고 좋은 작품들이다. 앞으로 다양한 작품들을 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