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시월에 멀리서 혼자 사는 아들이 늙은 부모인 우리를 만나러 와서 두주동안 같이 지냈습니다. 바쁘게 일하면서 늘 피곤해 했고, 또 지구 저편에서 먼 길 오느라 지쳐 거의 잠만 자다 갔습니다. 그래도 잠자는 얼굴이라도 보니 좋았지요. 그런데 마침 그 때 JTbC에서 터뜨린 보도를 비롯해서 ‘순실-근혜 게이트’가 한창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뉴스 시간이 무슨 범죄 프로그램이냐”고 아들이 농담같이 말할 정도였지요.
그런데 우리 모두 느끼듯이 지난 5월 9일을 넘기면서 뉴스 시간과 연관된 보도는 그 동안 보고 듣던 것과는 아주 달라졌습니다. 그 전에도 TV 앞을 지키고 있었지만, 더 이상 기막혀 하지 않아도 되고, 훨씬 행복한 마음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TV 앞을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는 똑 같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읽기 시작한 책 여러 권이 진도를 내지 못하고, 오늘을 위한 이글을 포함한 여러 가지 글쓰기도 뒤로 밀리고 있어,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까지 미뤄둡니다. 지난번 총회 때 “이 나쁜 버릇이 언젠가는 고쳐지겠지요?” 했었는데 아직도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이쯤에서 웃어 달라”고 지난번에 부탁했었는데 오늘도 또 같은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자리’에 오른 사람을 보면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지난해 시월부터 이번 해 5월 사이에 우리는 ‘한 자리’를 두고 대조되는 두 사람을 보면서,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리를 만든다는 것을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자리 자체보다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곧잘 팔자타령을 합니다. “부모를 잘못 만나서”, “남편을 잘못 만나서”, “시대를 잘못 타서”, “이 땅에 태어났으니” 온갖 핑계를 다 끌어내서 자기 삶의 문제 풀이로 때우려 합니다. 그런데 가방끈 짧은 가난한 부모 품에서도 자기와 전혀 다른 사람이 자라온 것을 봅니다. 홍준표도, 이명박도, 문재인도 모두 아주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누가 누가 더 가난했나” 겨루듯이 말합니다. 그런데 얼마나 저마다 다른 사람으로 살고 있는가를 우리 눈앞에서 웅변으로 말해줍니다.
여기서 정치평론의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환경 탓만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 스스로 눈뜨자는 것입니다. 건강한 마음으로 자기 삶을 책임지자는 것입니다. “마음이 건강한 여성들이 만드는 착한 사회”를 목표로 삼는 알트루사는 제대로 길을 가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건강은 혼자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이웃이 되어 같이 건강한 삶을 이뤄내는 동지가 됩니다. 서로 성의 있는 거울이 되어 자신을 정확하게 비춰보고, 또 서로를 봐 줍니다. 그것도 단군의 자손끼리만 하려 하지 않습니다. 멀고 가까운 이웃들과 같이 하려 합니다. 오늘 행사는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행사만으로 참 이웃이 되기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라니 나머지 반을 우리 손잡고 온전히 해 낼 것입니다.
오늘 이 모임을 위해 여기 모인 모두가 다 힘을 보탰습니다. 재미있는 학교 어린이와 엄마들, 노래극을 지도해준 가현선생; 합창을 지도해준 수산나 선생; 즐겁게 그리고 눈물 글썽이며 부른 노래패; 핵없세를 위해 애쓴 은선님; 난민과 같이 살기를 위한 영선, 미리님; 사회하느라 마음 조리면서 꿋꿋이 해낸 희영님; 행사 총괄이사가 뭐 하는 것인지 귀엽고 어렵게 학습한 미형님; 온갖 잡동산이를 서로 나눠한 선희님, 문순님, 주영님, 지혜님, 지영님, 지현님, 윤미님, 포스터와 현수막을 디자인한 영선님, 모든 뒤치닥 꺼리를 다 잘 해낸 선영님; 모두 모두 수고했습니다. 아마도 이름이 불리지 않은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빼 놓을 수 없는 분, 유일무이한 박영희 회장님입니다. 혼자 하는 궁리가 많고, 젊은이들이 잔소리라 할까 걱정도 많고, 그래도 열심히 생각하고 전해주실 뿐 아니라 손수 나와서 같이 거드신 분입니다. 아마 평생 회장하셔야 하지 않을까 갸웃해 봅니다.
모람들의 가족으로 오신 분들 각별히 환영하는 마음으로 감사합니다. 이렇게 서른 네 번째 생일을 맞았고 서른 다섯 해를 향해 같이 갑니다. 모두 같이 갑시다.
첫댓글 인사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듣고 싶었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