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 (구약성경 인용)
마태복음 26장 27-29절『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성만찬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포도주가 든 잔을 돌리며, 죄를 대속하는 언약의 피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예수님은 실제로 언약에 따라 십자가에서 죽고 피를 흘리고 죽으셨다. 예수님이 대속을 위해 죽으신 것은 죄의 몸인 옛사람의 죽음이다. 모든 사람의 심령에는 옛사람이 있으며, 이 옛사람이 죽어야만 구원받는다. 옛사람 속에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라고 말씀하셨다. 포도나무는 율법 아래 있는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이사야 5장 1-5절『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죄 아래 있는 포도나무에서 난 것은 신 포도주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죽음이 임박했을 때, 마지막에 신 포도주를 마셔야만 했다. 마태복음 27장 48절 『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예수님은 마지막 쓴 잔을 마신 것이다.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마신다는 것에 대해서, 새것은 새사람, 즉 부활생명을 의미한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심령 속에 새성전이 서고, 그리스도가 성전으로 들어오시며, 옛사람 대신에 새사람이 그리스도와 마주하게 된다. 마치 부부가 하나가 되는 것처럼 그리스도는 성도의 남편이 되는 것이다.
새것은 부활의 열매가 된다. 예수님이 부활의 열매를 마시는 것이다. 부부가 함께 부활의 열매를 마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이시고, 그와 연합된 자는 현재적으로 부활에 참여하는 자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언약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땅과 자손을 약속하셨다. 땅은 바로 성도의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자손은 영적인 자손으로서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를 이룬 성도를 의미한다.
천국 혼인잔치와 관련된 열처녀의 비유에서, 미련한 다섯처녀는 다른 기름통을 준비하지 못하고, 슬기로운 다섯처녀는 다른 기름통을 준비했다고 한다. 둘 다 기름이 있어서 등불이 밝혀져 있는데, 시간이 지나자 기름이 떨어져 꺼져간 것이다. 그래서 다른 기름통이 없는 자는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야기가 된다.
원래 기름이 있는 등불은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드리지 못한 것이다. 언약 속에는 그리스도가 숨겨져 있는데,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미련한 다섯처녀는 바로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그러나 슬기로운 다섯처녀는 복음을 받아드린 이방인들이다. 그들은 율법이 아니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은 처음 등불이며, 이 언약을 실행하고 이루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요 성령의 능력으로 천국 혼인인잔치가 성립되는 것이다. 성령이 없는 약속은 율법 속에 있는 언약에 불과하며, 그리스도가 없는 언약인 것이다. 그래서 슬기로운 다섯처녀는 혼인 잔치 집으로 들어가고, 미련한 다섯처녀는 문이 닫혀서 혼인잔치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천국 문은 항상 열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반드시 문이 닫히는 어느 날이 오게 된다. 문이 닫히면 심판의 날이 시작되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4장 17-18절『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하나님의 집은 바로 하나님을 믿는 신도를 의미한다. 복음을 완전하게 받아드리지 않고, 율법과 복음을 함께 믿는 혼합형 신도를 의미한다. 현재적 부활을 믿지 않거나, 죄에 대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처리했다고 하지만 믿지 않는 자들, 그래서 날마다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아야 하는 자들, 율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든 자들이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다.
천국 문이 닫힐 때를 아는 자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성경은 항상 깨어있으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종말의 시점이 언제인지를 깨어서 살펴보라는 의미보다. 자신의 영적 상태가 어떤지를 살펴보라는 말씀이다. 천국 문이 닫힐 그날까지 부활생명을 전하고 열매맺게 해야만 하는 것이다. 추수꾼은 열매를 수확하는 자이다. 그러나 십자가에만 매몰되어 있으면, 부활의 열매를 거둘 수 없다. 십자가와 부활은 반드시 붙어있지만, 십자가만 바라보고 부활을 바라보지 못하면 쭉정이가 되는 것이다.
알곡과 쭉정이의 비유에서 신도들은 예수믿는 자를 알곡, 믿지 않는자를 쭉정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모두가 예수를 믿는 자들이다. 그러나 쭉정이는 부활생명이 없는 신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활생명이 있는 열매가 되어야만 하나님께서 하늘 곳간에 저장하시는 것이다.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에 대해서, 성도가 성령세례를 받고 부활생명을 얻는 때가 된다. 세례는 목사나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행하는 의식이다. 성도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와 함께 부활하였음을 고백하고, 그 고백에 따라서 세례를 행하는 의식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부활생명을 주시는 그때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하나님만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날이 된 것은 성도 자신이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알게 해 주신다. 그 날에 성도의 심령 속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옛성전이 여리고성이 무너지듯이 무너지고, 새 예루살렘 성전이 하늘로부터 내려오고, 그리스도가 성전에 들어오시고, 그리고 성도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가나안 일곱 족속과 싸우듯이 성도 역시 육적 자아와 계속 영적 전쟁을 벌여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도는 언약이 이루어졌음을 믿고 하나님 말씀을 의지하여 앞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