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 선사가 임자 있는 여자와 간통한 이유
봉우 권태훈 선생님(우학도인)이 경허 선사를 처음 만나 뵌것은 다섯 살때의 일로 서울 재동 집에서 였다. 봉우 선생님은 경허 선사와 한문 시구들을 지어 부르는 자모듬 놀이를 했는데 어린 아이가 대답을 척척 잘 해내자, 경허 스님이 "아이구. 여래님 어디 갔다 이제 오십니까?"라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한다.
나(장일주)는 봉우 선생님께 경허 선사의 파격적인 기행에 대해 여쭈었다. 여러가지 기행들이 많았지만 특히 궁금했던 것은 다음의 일이었다. 경허 선사는 어릴 적 같은 동네에 살던 여자가 다른 동네로 시집을 가자 나중에 그 집 머슴으로 들어가 그 여자와 비밀리에 간통을 했다. 그것도 1년 가까이나 계속 했다. 결국 남편에게 발각되어 멍석말이에 처해졌고 집단 구타 끝에 바닷속으로 버려지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경허 선사의 일대기에는 꼭 등장하는 유명한 일화다. 그러나 세인들이 이해기엔 참 곤란하고도 어려운 수수께끼이자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다 수도인인 나로서도 처음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불교계의 큰 도인이, 그렇게 도가 높은 양반이 왜 그리 색정을 못 참아 여자와 밀통까지 해가며 자신을 타락시켜야만 했을까? 도인이 되면, 도가 높아지면 이렇듯 윤리의식없어지는 것인가? 도와 윤리는 상관이 없는 걸까?' 아무튼 별별 의문과 상상이 다 일어났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의문에 대한 선생님의 답변은 의외로 간단했다.
경허 선사의 그 행위는 그분의 도의 본질과는 무관하다는 것이었다. 자기 인연법의 실타래를 풀어가는 과정일 뿐 본질이 아니라는 말씀었다. 이러한 경우는 역사적인 선례가 남아 있다.
중국 선종의 2대조인 혜가는 120세가 넘어 세상을 떠났는데, 80세가 넘었을 때 의발을 미리 제자 승찬에게 전수하고 다시 세속으로 돌아가 머리를 기르고 저잣거리에서 살았다. 제자가 "스승님. 왜 그러십니까?"하고 물으니 , "나는 환속해서 전생의 업연을 정리하고 가야 한다. 그런데 나의 전생의 업보는 내가 남의 손에 비참하게 죽어야 풀리게 되어 있다. 승려의 신분으로 있다가는 교단에 누가 되고 해서 방편법으로 이리하는 것이다."라고 답하였다. 실제 그는 예언대로 훗날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반역죄로 저잣거리에서 목이 잘리는 형벌을 받아 세상을 하직하였다.
봉우 선생님은 위의 예화와 경허 스님의 일화가 같은 선상에 있다고 하셨다. 즉 우리가 모르는 경허 스님 전생의 어떤 피치못할 인과가 있고, 그것을 풀기 위한 경허 스님 나름대로의 방편이 있다는 것이었다. 경허 스님은 당시 윤리도덕을 어지럽힌 대가로 사람들에 충분한 형벌을 받았다. 거의 죽음에 이르도록. 경허 스님은 자신의 인과를 풀기 위해 지옥에도 서슴없이 발을 들여놨던 분이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수월하게 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세상 속으로 뛰어든 신선 中에서/정신세계사
첫댓글 참선해서 한 소식 하면 곧 해탈하는 걸로 한국불교는 얘기하고 있지만,
그것은 머리로 이치를 이해하게 된 것일 뿐,
카르마(업보)를 녹이고 정화하여 진실로 해탈하기 위해선,
업장소멸의 공덕행을 함께 닦아야...
석가부처님도 수많은 삶의 공덕 끝에, 때가 되어 이치를 깨우치면서 해탈성불하셨으니,
이치를 깨닫는 것과, 업보로부터 벗어나는 건 별개의 문제로,
이 둘이 일치하는 시점이 곧 성불하는 시점이라,
봉우선생님의 경허선사 해설에 100% 공감합니다.
경허선사는 말년에 환속한 걸로 아는데, 업보가 덕지덕지 붙은 자들이 참선한다고 현실공덕의 가치는 모른채 허송세월하고 있는 데 비하면 정말 대단하신 분이지요. 그걸 단박에 이해하는 봉우선사 또한 대도인이시고...
보조국사의 돈오점수..^^가 생각 납니다
자칭 선승들이(한국불교의 맹점) 흔히 돈오돈수 하는데, 돈오돈수 역시 많은 수행공덕 끝에 일어나는 현상이어서, 결국 돈오점수가 맞는 말인 것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