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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양명 지행합일
--왕양명 지행합일과 현성양지의 선악 일념(善惡 一念)과 양지 자증분(自證分)--
2019년 12월 25일
* 왕양명의 지행합일에 관하여 많은 연구자들과 일반인들은 “올바르다고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올바른 도리를 실천하여 앎과 행동을 일치시킨다.”는 뜻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말과 행동이 일치되어야한다는 언행일치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오해입니다. 아마도 양명학을 모르는 사람들이 지행합일(知行合一)을 글자대로 번역하여 이해한 것인데 오해입니다. 또한 올바른 지식을 충분히 쌓은 뒤에 실천한다는 말은 당연한 말이고, 왕양명이 이것을 지행합일이라고 주장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송명시기에 많은 학자들은 아는 것(知)이 쉽고 실천하는 것(行)이 어렵다고 말하거나, 또는 올바르게 안다면 반드시 실천하겠는데, 올바르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실천하지 못하니까 오히려 실천(行)보다 아는 것(知)이 더욱 어렵다고도 말하였습니다. 이런 푸념들은 소위 심학의 내용과 수양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행합일은 순간에 일어나는 앎과 행동이 심리적 또는 정서적 장애 없이 바르게 진행되도록 하는 수양공부입니다. 다시 말해 지행합일은 짧은 순간에 일어난 올바른 일념(善念)을 선택하여 선념들이 지속하도록 유지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일념의 선택과 지속입니다. 왕양명은 지행합일을 설명하면서 자주 『大學』 “所謂誠其意者,毋自欺也。如惡惡臭,如好好色,此之謂自慊。故君子必慎其獨也。”의 “如惡惡臭,如好好色” 구절을 인용하여 지행이 아주 짧은 순간에 동시에(一念之間) 일어나는 것을 설명하였습니다.
“如惡惡臭,如好好色”의 뜻은 유식불교에서 말하듯이, 1초 순간에 10장씩 떠오르는 이미지(念念)들 가운데 올바른 이미지(一念)를 알고 골라내서 올바른 이미지들이 연결되어 지속되도록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올바른 이미지가 연결되어 지속됩니다. 이것이 소위 마음속에 있는 씨앗(種子)을 훈습(薰習)시키는 수양공부입니다. 또한 망심(妄心) 때문에 이미지들이 서로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것(念念相續)을 관찰하여 망심을 점점 끊어나가면 언젠가는 세밀하고 은미한 본체라는 진심(眞心)이 나타나고 진심의 이미지들이 서로 이어지겠지요. 사실상 왕양명이 해석한 “如惡惡臭,如好好色”의 뜻은 망심의 이미지들을 점점 누르고 없애서 언젠가는 미세한 진심이 나타나길 바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행합일은 짧은 순간 미세한 일념을 선택하고 지속시키는 수양공부이며 그래서 정좌부터 먼저 가르쳤던 것입니다.
왕양명이 젊었을 때 명나라 보태(普泰) 스님이 유식불교를 북경 대흥륭사(大興隆寺)에서 강학하였는데 아마도 강학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왕양명은 28살(1499)에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북경에서 관직생활을 하는 동안에 문학에 빠졌습니다. 이 시기에 북경에서는 보태 스님이 대흥륭사에서 유식학을 강학하였고 1511년에 『대승백법명문론해(大乘百法明門論解)』의 서문을 썼습니다. 보태 스님은 당나라시기 이후에 끊어진 유식학을 자득하여 강학하였습니다. 당시 많은 문인들 예를 들어 이몽양(李夢陽, 1473-1530)도 보태 스님의 강학을 들었고 현재 문집에는 시(詩)가 남아있습니다. 물론 왕양명은 이몽양과 가깝게 지냈기에 강학에 참여하였을 것이지만 현재 왕양명 쪽에는 자료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이후에도 왕양명은 40살에 담약수와 함께 북경 대흥륭사에서 강학하였는데 이 절과 무슨 연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왕양명은 다른 성리학자들처럼 심리적 장애(所知障)과 정서적 장애(煩惱障)를 개인적인 사욕이라고 보았습니다. 심리적 장애와 정서적 장애를 누르고 제거하여 마음의 본체를 깨닫는다면 지행이 저절로 합일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일반사람들은 올바른 이미지들이 순간적으로 연결되어 지속되는 과정에서 심리적 또는 정서적 장애가 있기 때문에 바르게 연결되지 않아 지속되지도 않고 심지어 제대로 앉아있지도 못합니다. 따라서 양명학도 불교처럼 심리적 장애와 정서적 장애를 알고 누르고 뿌리 뽑기 위하여 정좌를 가르쳤습니다. 당나라시기 종밀(宗密)선사도 『선원 제전집 도서(禪源諸詮集都序)』에서 선문(禪門)이 6개 바라밀 가운데 하나이지만 무루지혜를 여는 데 가장 신묘한 방법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萬行不出六波羅蜜,禪門但是六中之一,當其第五,豈可都目真性爲一禪行哉?然禪定一行,最爲神妙,能發起性上無漏智慧。一切妙用,萬德萬行,乃至神通光明,皆從定發。)
왕양명은 48-49살에 강서성 감주(贛州)에서 학생들과 『대학』의 명명덕(明明德)과 『중용』의 신독(愼獨)에 관하여 집중토론을 벌였습니다. 이때 양지를 처음으로 제시하였습니다. 지행합일을 위한 정좌공부의 선정(禪定)상태에서 순간에 일어난 일념(一念, 이미지)이 천리인지 아니면 인욕인지를 판별하는 주인공이 양지라고 보았고 학생들과 합의하였습니다. 그래서 양지는 사실상 성의(誠意)공부의 발전된 방법입니다. 중요한 것은 종전에는 정좌공부의 선정(禪定)을 강조하였지만 이제부터는 정좌공부에서 각조(覺照)하는 지혜를 강조하였다는 것입니다. 커다란 전환입니다. 그렇지만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지관(止觀)의 병행이 옳은 수양방법입니다. 대체로 이 시기에 진구천(陳九川)이 왕양명에게 지행합일을 여쭈었을 때 왕양명은 양지가 이미지마다의 선악을 알고 취사선택하라고 더욱 명확하게 일러주었습니다.(『속 전습록(續 傳習錄)』 뒤에 왕기와 나여방이 주장한 현성양지(現成良知 또는 現在良知)는 반드시 정좌를 요구하지 않지만, 순간적인 이미지(一念)를 알고 골라내는 것은 정좌할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현성양지 역시 지행합일처럼 일념(一念)의 선택과 지속을 강조하였습니다.
왕양명은 양지를 제시하였지만 상세한 내용과 심리적 과정을 설명하지 못하였습니다. 얼마 뒤에 다만 일념의 선악을 각찰(覺察)하는 양지가 옳은 이미지를 옳다고 판단하고 그른 이미지를 그르다고 판단하는 판단의 주체로서 “시시비비(是是非非)의 지(知)”라고 설명하였습니다. 물론 정좌하여 선정(禪定)상태에서 일어나는 “시시비비의 지(知)”를 말하기 때문에 양지의 전제조건은 선정상태입니다. 그래서 왕양명 48-49살 시기에 와서 배운 학생들은 간단히 말해 양지가 시비(是非)의 지(知)라고 이해하였고 따라서 많은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왕양명 일생동안 양지에 관하여 더 이상 설명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왕양명이 세상을 떠나고 한참 뒤에 명나라 말기에 유식불교가 부흥하였고 유식불교 관점에서 양지를 이해하는 학자들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양지를 자증분(自證分)이라고 이해하였던 것입니다. 당나라 현장법사의 제자 규기(窺基)에 따르면 제6식의 자증분이 견분(見分)을 증지(證知)하는 것은 성경(性境)과 현량(現量)이라고 보았기에 정리(正理)라고 합니다. 그래서 명나라 말기 학자들은 왕양명의 양지가 유식불교의 자증분이라고 이해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 관점에서 왕양명의 양지를 이해하였던 학술관점은 오히려 이단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유학자들은 아예 무시하고 말도 꺼내지 않아 잊혔다가 청나라 말기에 장병린(章炳麟)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이 다시 양지가 자증분이라고 인정하였답니다.
왕양명은 30대 초반부터 폐병을 고치려고 『황정경』의 존사관상(存思觀想) 치료방법을 배워 몸속의 오장육부를 내관하는 방법을 익혔고, 35살(1506) 11월 감옥에 갇힌 1달 동안에는 임부(林富)와 함께 수양공부를 위하여 『주역』을 공부하였고 정좌하여 ‘심옹(心翁, 마음 본체의 주인공)’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37살에는 용장역에서 『주역』을 공부하면서 정좌하여 ‘체용의 신화(體用神化)’를 깨닫는 신비체험도 하였다는데, 사실상 35살 신비체험의 연장입니다. 왕양명의 신비체험은 모두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순간의 이미지를 잘 알고 골라내는 수양공부도 포함합니다.
전덕홍의 『왕양명 연보』(전덕홍이 많은 부분을 윤색하였기에 더러 믿을 수 없음)에 따르면 왕양명은 38살에 제학부사 석서(席書, 1461-1527)의 초빙을 받아 귀주성 용장역에서 귀양의 귀양서원(貴陽書院)으로 가서 석서와 토론하면서 처음으로 마음의 본체에서 지(知)와 행(行)이 합치되어야한다고 설명하였답니다. 이렇게 검증을 받은 뒤에 왕양명은 귀양서원에서 학생들에게 지행합일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귀양서원의 강학은 왕양명이 처음으로 지행합일을 가르친 곳입니다. 39살에 돌아오는 길에 학생들이 찾아오니까 진주(辰州)의 용흥사(龍興寺)와 조음각(潮音閣)에서 정좌를 시키고 마음의 본체를 깨달으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사실상 정좌공부는 지행합일을 깨닫기 위하여 설정한 수양공부입니다.
현재 지행합일에 관한 가장 이른 시기의 설명은 매부 서애(徐愛, 1487-1518)가 기록한 『전습록』에 남아있습니다. 서애는 장인 왕화(王華)의 지시를 받고 왕양명이 귀양살이하고 있던 귀주성 용장역에 찾아가서 왕양명의 건강과 생활 사정을 직접 보고 돌아가서 장인에게 보고하였습니다. 이때 서애가 왕양명에게 지행합일을 여쭈었던 것 같고, 전덕홍의 『왕양명 연보』에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물론 전덕홍의 기록한 연도가 확실한지는 더 따져봐야 합니다. 그러나 왕양명의 제자로서 지행합일에 관하여 자세하게 물은 사람은 서애가 분명합니다. 서애는 왕양명의 지행합일을 비롯하여 정좌공부를 배웠고 또한 정좌공부에 관하여 왕양명이 43살(1514)에 제시한 입지설(立志說)도 배웠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왕양명 45살(1516)에 세상을 떠나서 왕양명이 48-49살에 강서성 감주(贛州)에서 처음 제시한 양지를 배우지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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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덕홍, 『왕양명 연보』, 正德四年己巳,先生三十八歲,在貴陽。
제학부사 석서(席書,1461-1527)가 귀주성 학정을 감독하려고 취임하였고 왕양명에게 주자학과 육상산의 학술이 같은지 다른지(朱陸異同)을 물었습니다. 왕양명은 주자학과 상산학을 말하지 않고 자신이 깨달은 것만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석서는 믿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고 이튿날 다시 찾아오자 왕양명은 지행의 본체에 관하여 『오경(五經)』과 『제자(諸子)』의 글귀를 들어 설명해주었더니 석서가 이해하고 동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석서는 왕양명을 네다섯 번이나 만나 토론한 뒤에야 속이 시원하게 이해하였습니다. 석서가 말하길 “성인이 되는 학술을 오늘 다시 알았습니다. 주자학과 상산학이 같고 다른 것은 각기 장단점이 있으니까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본성이 본래부터 밝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고 하였습니다. 결국에 석서는 모헌(毛憲, 1469-1535)을 시켜 서원을 수리하였고 몸소 귀양의 학생들을 데리고 와서 왕양명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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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서애(徐愛)가 왕양명 선생의 지행합일(知行合一) 뜻을 이해하지 못하여 왕양명 선생을 찾아가서 결론을 지어달라고 여쭈었습니다.
왕양명: “네가 이해한 지행합일에 관하여 사례를 들어보아라.”
서애:“사람들이 아버지께 효도하고 형에게 공손하여야(悌) 한다는 도리를 잘 알고(知) 있지만 실제상황에서는 효도하지도 공손하지도(行) 못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당연히 해야할 도리를 아는 지(知)와 실제상황에서 실행하지 못하는 행동(行)이 서로 둘로 나뉘었다는 좋은 사례입니다.”
왕양명:“당연한 것을 알면서도 행동하지 못하는 까닭은 개인적인 사욕이 본래 마음의 본체에서 흘러나오는 앎과 행동을 막고 끊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음의 본체가 알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성현들은 사람들에게 지행을 가르치면서 반드시 먼저 마음의 본체를 회복시키라고 요구하였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래서『大學』에서도 참된 지행은 “예쁜 사물을 순간적으로 좋아하고 고약한 냄새를 순간적으로 싫어하듯이 하라.(如好好色,如惡惡臭)”고 설명하였다. (지행합일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예쁜 사물을 보는 것이 앎(知)이고 예쁜 사물을 좋아하는 것이 행동(行)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인식과정을 보면, 사물을 보는(知) 순간에 좋아하는지(行)를 결정되었지, 색깔을 본(知) 뒤에 어떻게 할까를 판단한 뒤에 좋아하겠다고 행동(行)을 결정한 것이 아니다. (지행합일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고약한 냄새를 맡는 것이 앎(知)이고 고약한 냄새를 싫어하는 것이 행동(行)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인식과정을 보면, 고약한 냄새를 맡는(知) 순간에 싫어하는 행동(行)이 결정되었지, 냄새를 맡은(知) 뒤에 어떻게 할까를 판단한 뒤에 싫어하겠다고 행동(行)을 결정한 것이 아니다.(보고 맡고 아는 지(知)와 좋고 싫어하는 행동(行)이 순간에 동시에 결정되는 것이다. 이것이 지와 행이 합일된 것이다. 결코 어떻게 할까를 이리저리 판단한 뒤에 좋아하고 싫어하는 행동을 결정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어느 사람이 효(孝)를 알고 제(悌)를 안다고 사람들이 칭찬할 때에 그 사람은 이미 효를 실행했고 제를 실행했기 때문에 그가 효와 제를 안다고 칭찬한 것이다.(그 사람이 효제를 행동한 것을 본(知) 뒤에 우리들은 그가 효제를 안다고 칭찬한 것(行)이다. 다시 말해 효제를 행동한 것을 아는(知) 순간에 우리의 마음은 그의 행동이 효제라고 판단하고 칭찬한 것(行)이다.)
이렇게 설명하여야만 지행의 본체에서 효제를 설명한 것이다.”
서애:“그렇지만 주자 같은 학자들이 앎과 행동을 둘로 나눈 까닭은 아마도 공부를 둘로 나누어야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왕양명:“너처럼 이해하는 것은 옛날 성현의 학술종지를 오해한 것이다. 내가 일찍이 설명하였듯이 앎(知)이 행동의 주인공이고 행동은 앎을 실천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앎(知)은 행동의 출발점이고 행동은 앎을 완성한 결과이다.(주인공과 실천 또는 출발저모가 결과 모두 앎과 행동이 순간에 동시에 일어난다는 뜻) 이제는 잘 이해하였겠지!
그런데 옛날 성현들이 앎(知)와 행동(行)을 둘로 나누어 설명한 까닭은, 세상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행동하는데, 이런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반성하는 방법을 아주 모르기 때문이다. 마치 깜깜한 밤에 눈을 감고 걸어가듯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행동한다.(冥行妄作) 그래서 이런 사람들에게는 먼저 무엇을 생각하거나 행동하고 있는지를 반성하면서 생각하고 행동하면 잘못이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또한 어떤 사람은 끝없는 하늘을 바라보듯이 헛된 것만을 생각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착실하게 실천하려고 들지 않는다. 마치 그림자를 더듬거나 메아리를 듣고 추측하는 것에 만족하며 실체를 찾지 않는 것이다.(揣摸影響) 그래서 이런 사람들에게는 먼저 행동한 체험에 근거하여야만 앎이 진실하다고 설명하였다.
옛날 성현들이 이렇게 둘로 나누어 설명한 것은 위와 같은 사람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누어 설명한 것이다. 만약에 앎과 행동이 순간에 일어난다는 것을 이해하였다면 간단히 설명하여도 충분히 이해한다. 지금 사람들은 오히려 먼저 알고 나서야 행동할 수 있다고 선입견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강습과 토론을 하면서 많은 지식을 찾아 쌓고 있으며, 또한 지식이 진실이라고 믿은 뒤에야 행동하려고 한다. 결국에는 평생 동안 실천하지도 못하고 평생 동안 믿어지는 진실한 지식을 알지도 못하고 죽는다. 내가 지금 지행합일을 주장하여, 학생들이 마음의 본체를 깨달아서 앎과 행동을 둘로 나누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가르치고 있다.”
전덕홍, 『왕양명 연보』, 正德四年己巳,先生三十八歲,在貴陽。
提學副使席書聘主貴陽書院。
是年先生始論知行合一。始席元山書(席書,1461-1527)提督學政,問朱陸同異之辨。先生不語朱陸之學,而告之以其所悟。書懷疑而去。明日復來,舉知行本體證之『五經』、『諸子』,漸有省。往復數四,豁然大悟,謂“聖人之學,復睹於今日。朱陸異同,各有得失,無事辯詰,求之吾性本自明也。”遂與毛憲(1469-1535)副修葺書院,身率貴陽諸生,以所事師禮事之。
後,徐愛因未會先生知行合一之訓,決於先生。
先生曰:“試舉看。”
愛曰:“如今人已知父當孝,兄當弟矣,乃不能孝弟,知與行分明是兩事。”
先生曰:“此被私欲隔斷耳,非本體也。聖賢教人知行,正是要人復本體,故『大學』指出真知行以示人曰:‘如好好色,如惡惡臭。’夫見好色屬知,好好色屬行。只見色時已是好矣,非見後而始立心去好也。聞惡臭屬知,惡惡臭屬行。只聞臭時,已是惡矣,非聞後而始立心去惡也。又如稱某人知孝,某人知弟,必其人已曾行孝行弟,方可稱他知孝知弟。此便是知行之本體。”
愛曰:“古人分知行爲二,恐是要人用工有分曉否?”
先生曰:“此正失卻古人宗旨。某嘗說知是行之主意,行是知之功夫。知是行之始,行是知之成。已可理會矣。古人立言所以分知行爲二者,緣世間有一種人,懵懵然任意去做,全不解思惟省察,是之爲冥行妄作,所以必說知而後行無繆。又有一種人,茫茫然懸空去思索,全不肯著實躬行,是之爲揣摸影響,所以必說行而後知始真。此是古人不得已之教,若見得時,一言足矣。今人卻以爲必先知然後能行,且講習討論以求知,俟知得真時方去行,故遂終身不行,亦遂終身不知。某今說知行合一,使學者自求本體,庶無支離決裂之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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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전습록(續傳習錄)』:
제14조:
“사람 마음은 하늘의 연못(天淵)이다. 마음의 본체는 모든 것을 관장하는데, 마음의 본체는 원래 하늘(天)이지만 사욕(私欲)이 하늘(天)을 덮어 막고 있기 때문에 하늘의 본체를 잃어버렸다. 마음의 이치(理)는 무한한데, 마음의 이치는 큰 연못이지만 사욕이 눌러 막고 있기 때문에 연못의 본체를 잃어버렸다. 지금이라도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순간순간의 이미지마다(念念) 양지를 들이대서 덮어 막거나 눌러 막고 있는 사욕들을 모두 하나씩 없애버린다면 본체가 회복될 것이며 회복된 본체가 하늘의 연못이다.”
『續傳習錄』:
第14條:“人心是天淵。心之本體無所不該,原是一個天,只為私欲障礙,則天之本體失了。心之理無窮盡,原是一個淵,只為私欲窒塞,則淵之本體失了。如今念念致良知,將此障礙窒塞一起去盡,則本體已復,便是天淵了。”
제17조:
(陳九川?)이 “지행합일”을 여쭈었습니다.
왕양명 선생이 설명하길 “지행합일은 내가 세운 학술종지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지금 학술은 지행(知行)을 둘로 나누었기 때문에, 마음속에서 순간에도 많은 이미지(一念)들이 자꾸 떠오르지만 좋은 이미지가 아니기 때문에 실천하지도 않고, 나아가 좋지 않은 이미지를 금지시키지도 않는다. 내가 주장하는 지행합일의 방법은 바로 사람들이 이미지가 떠오르는 근원(一念發動處)에서 바로 실천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미지가 떠오르는 근원(순간)에 좋지 않은 이미지라는 것을 알면 곧바로 좋지 않은 이미지를 이기고 쓰러뜨려 없애야한다. 이 좋지 않은 이미지는 뿌리를 뽑고 바닥까지 쳐버려서 이 좋지 않은 이미지가 마음속에 숨어있지 않도록 해야한다. 이것이 내가 세운 학술종지이다.
第17條:
(陳九川?)問︰“知行合一。”
先生曰︰“此須識我立言宗旨。今人學問,只因知行分作兩件,故有一念發動,雖是不善,然卻未曾行,便不去禁止他。我今說個知行合一,正要人曉得一念發動處,便是行了。發動處有不善,就將這不善的一念克倒了,他須要徹根徹底,不使那一念的不善潛伏在胸中。此是我立言宗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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