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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댄 동산과 같은 성도가 모인 교회
이사야 58:11
새해에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성도가 되어 형통한 자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 때문에 우리의 가정과 직장이 복을 받았으면 한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그곳이 잘되었으면 한다.
불신자들이 우리의 가정을 보면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의 가정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우리의 삶이 요셉처럼 풍성한 복을 받는 삶이 되기를 소원한다.
▶ 구약성경에서 가장 풍성한 삶을 살았던 사람을 꼽으라면 고민할 것 없이 요셉을 꼽곤 한다. 물론 요셉의 생애에도 고난과 시련이 있었지만 누구보다도 풍성한 삶과 복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비참한 노예의 삶을 살기도 했지만 그는 그 속에서도 풍성한 복을 누렸다.
아버지의 사랑을 조금 더 받았다고 형들의 미움을 받고 결국은 애굽으로 팔려간 불쌍한 요셉이다. 창세기 39:2을 보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라고 하였다. 그는 애굽에 끌려가서 바로의 경호실장인 보디발의 집에 노예가 되었다.
그런데 노예로서 그 집을 섬기는데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고 그가 형통한 사람이 되었다. 무엇이든지 요셉이 하면 잘되고 번영했다는 말이다. 보디발이 요셉을 보니 참 성실하고 그가 하니 모든 일이 잘 되는 것이다. 그로 하여금 가정의 총무로 삼아서 그 집의 모든 재물을 관리하게 다 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더 큰 복을 주시는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다’는 말씀처럼 요셉 때문에 그 집에 복을 내리신 것이다. 그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것에 임했다고 하였다. 그것만이 아니다. 주인 보디발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을 보았다고 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요셉이었다.
▶ 요셉과 같은 복을 받은 사람 중에는 아브라함이 있다. 창세기 21:22에 보니 블레셋의 왕인 아비멜렉이 군대장관인 비골이란 사람을 대동하고 아브라함을 찾아 왔다고 했다. ‘아브라함아!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말한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눈 여겨 보니 너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해도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셔서 잘되고 번성하는군’이라는 얘기이다. 그리고는 한 나라의 왕이 아브라함 개인을 찾아와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자고 요청한다. 그만큼 아브라함은 거기서도 복된 삶, 번영하는 삶을 살고 유력한 사람이 되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그의 손이 닿는 것마다 복을 부어 주셨기 때문이었다.
아브라함이나 요셉을 떠올리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물댄 동산같이 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 물댄 동산은 무엇을 말하는가? 풍요로움이다. 풍성함의 상징이다.
임종을 앞둔 아버지 야곱은 아들들에게 복을 빌었다. 요셉에게 축복을 빌 때 물댄 동산의 축복을 빌었다. 창세기 49:22절에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라고 했다. 요셉은 샘 곁에 심어진 무성한 나무, 무성한 가지가 되어서 담을 넘는 복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요셉과 같고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사실 성도는 나름대로 복을 받았다. 마태복음 5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복을 주셨다.
마 5:45 / … 그분은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비추어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않은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
그러나 나름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북한을 비롯한 공산권도 아니요, 이슬람권도 아닌 대한민국에 태어나 복음을 접하게 하신 것도 은혜요, 모일 수 있는 교회를 허락하신 것도 축복이다.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교우들과 함께 자유롭게 교제도 나누고, 교회에서 기도도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공산권과 이슬람권에 가보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더 복을 받을 수도 있고 반면 주신 것을 빼앗길 수도 있다.
그런데 큰 파고인 환란과 질고가 오기도 전에 어떤 분들은 아니 잘 믿는다고 콧대를 높였던 많은 분들은 작은 시련에도 못 이겨 바람과 파도를 보고 물에 빠져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거나 혹은 ‘틀렸다, 이제 나는 아무 것도 안된다. 이렇게 살다 죽는거지. 뭐!’ 하며 자포자기해 버리고 만다.
이런 생각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이건 성도의 삶이 아니다. 왜일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가 있어 필히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적인 아버지가 되시기를 그렇게 원하신다.
누가복음 15장에서 집을 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표현으로 하나님의 심중을 우리가 알아듣도록 표현을 하셨다.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다. 부모는 자녀들이 다 잘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모두가 다 풍성하고 잘되고 번영하기를 바라신다.
부모의 사랑이 높은 산이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어 헤아릴 수 없다.
사 49:14-15 / [어머니처럼 사랑하시는 하나님]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주민들을 포로로 잡아갔을 때에, 시온이 이렇게 탄식하였다.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완전히 버리고 떠나셨으며 불쌍히 남아 있는 우리들까지 완전히 잊어버리셨다!' 15) 그러나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과연 어머니가 젖 먹는 자식을 잊어버릴 수 있느냐? 자기 태에서 나온 자식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 어머니가 세상에 있느냐? 만일 세상의 어머니들이 자기 자식을 잊어버릴 수 있다고 하여도 나만은 너를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사람들의 죄와 저주를 짊어지셨기 때문에 누구를 막론하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오면 된다.
마 11:28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요 3:16-18 / 하나님이 이처럼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7)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시려고 아들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려고 보내셨다. 18) 그 아들을 믿는 사람은 영원히 어둠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그를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미 죄인으로 판단을 받은 것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3장이나 마가복음 5장 또는 누가복음 8장에서 천국에 대하여 여러 가지 설명을 더 하셨다.
마 13:31-32 / 하늘나라는 어떤 사람이 자기 밭에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 32) 겨자씨는 모든 씨앗 중에 가장 작은 것이지만 새들이 날아와 그 가지에 깃들일 만큼 큰 나무가 된다.
마 13:33 / 예수께서는 또 이런 비유를 드셨다. ‘어떤 여자가 밀가루 반죽 속에 누룩을 넣었더니 그 누룩이 온 덩이를 부풀어 오르게 하였다. 하늘나라는 이 누룩과 같다.’
그렇다고 천국이 우리에게 그냥 주어진다고는 하지 않으셨다. 축복 중의 축복이지만 천국에 들어가려면 세상 사람이 성공을 위해서 밤낮 뛰듯이 최선의 노력을 다하라고 하셨다. 자기의 시간과 때로는 보화까지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대가는 세상 그 어느 누구도 추측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 될 것이다.
눅 8:15 / 그러나 씨가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정직하고 선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기쁨으로 지켜 나갈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전함으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눅 18:28-30 /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저희는 가진 것을 다 버리고 주님만을 따라왔습니다.' 29)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리는 사람은 30) 이 세상에서 여러 갑절의 보상을 받을 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이미 많은 복을 받은 사람이고, 큰 은혜를 힘입기 위하여 주어진 약속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요셉처럼, 아브라함처럼 물댄 동산과 같은 풍성한 삶을 살아야하는데 먼저 이런 풍성한 삶을 살려면 성도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
이사야 58장에 근거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것 몇 가지만 살펴보려고 한다.
1.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물댄 동산의 성도가 되자
존 샌포드가 쓴 <내 안에 있는 천국>이라는 책에 보면 자기 집에 있던 오래된 우물 이야기를 적고 있다. 그의 집에 있는 우물물은 차갑고 깨끗했다. 결코 마르는 일이 없었다. 가뭄이 극심할 때도 차고 맑은 물이 끊임없이 솟아났다. 그러다가 생활이 풍족해지면서 기존의 우물은 그대로 덮어 놓고 한쪽에 현대식 펌프 장치를 설치하여 기계로 우물을 길어내도록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냥 덮어 놓은 우물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뚜껑을 열고 보니 차갑고 깊은 우물을 보리라고 생각했던 기대가 완전히 무너졌다. 우물이 완전히 말라 있었다. 샌포드는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려고 우물에 대해서 연구하기 시작했다.
연구한 결과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우물은 지속적으로 물이 흘러나오는 수백 개의 작은 지하 수맥으로부터 물을 공급받는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내면 더 많은 양의 물이 수맥으로부터 스며 나와 우물에 고여 들면서 이 작은 수맥들의 관들은 늘 깨끗하게 열려 있게 된다. 그러나 사용하지 않고 정기적으로 물을 길어내지 않으면 미세한 수맥들이 막히고 만다. 여러 해 동안 그침 없이 흐르던 우리의 옛 우물은 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존 샌포드가 경험한 것처럼, 우물은 사용하지 않으면 마르게 되어 있다. 반대로 우물은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더 많은 물로 채워지게 되어 있다.
마찬가지 원리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물 댄 동산’의 축복을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면 마르게 되어 있다. 반대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물 댄 동산’의 축복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쓰면 쓸수록, 더 많은 ‘물댄 동산’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잠 11:25).
예레미야 17장 7절 이하에 보니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하였다. 기근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 일까? 그는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있기 때문이다. 시편 1편에서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사철 푸르고 그 행사가 다 형통하다고 증언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인생의 뿌리를 내린 사람, 하나님을 의뢰하고 의지하는 사람은 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 인생의 뿌리를 두는 사람이요, 물댄 동산과 같은 풍성한 축복을 누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주요한 말씀이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동고동락하시면서 3년을 양육하셨다. 그러나 마지막 제자의 단계에서 뛰어넘어 사도로서의 길을 걷게 되어야 한다. 제자의 길에서는 서로 누가 크냐며 다투고 자기가 잘 낫다고 자랑도 하였으나 앞으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너=우리(I+You=We)’가 되는 형제임을 깨닫고 서로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더 풍성한 영적 경험과 더불어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게 될 것이며, 성령이 함께 하실 것이다. 이것은 요한복음 14장에서 시작된 새언약을 주시면서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말씀이요,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이 저들과 앞으로 저들이 인도해야 할 많은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신 내용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 못 박히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성찬을 하시기를 원하셨다(눅 22:15).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겨 주시기까지 하시며 섬김의 도리까지 말씀해 주셨고, 예수님을 팔 가룟 유다까지 사랑하시며 떡을 들어 축복하시고 떼어 다른 제자들에게와 같이 ‘받아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다.’ 떡 한 조각을 손수 주셨고, 그의 발까지 씻겨주셨다(막 14:22).
우리가 전해 주어야 할 것은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실 때 떡과 고기를 나눠주는 제자들에 머물러 있지 말고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복음과 은혜를 남들에게 전해주는 사도가 되어야 한다. 보리떡과 물고기로 수많은 사람들을 먹게 하는 제자들의 역할처럼 너와 나 그리고 우리들은 다른 복음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을 전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면 지켜야 할 말씀이요, 특히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려면 그리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말씀이다. 우리의 이웃 범위를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넓혀야 한다.
마 5:39-42 /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폭력으로 대항하지 말라. 네 한쪽 뺨을 때리는 사람이 있거든 다른 쪽 뺨도 돌려대라. 40) 너를 고소하여 속옷을 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거든 겉옷까지 벗어주라. 41) 비록 가고 싶지 않더라도 누가 너더러 오리를 같이 가자고 하거든 십리를 같이 가 주어라. 42)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꾸어 달라는 사람에게 등을 돌리지 말라.
마 5:43-48 / [원수를 사랑하라] 또 모세의 율법에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이 있다. 44)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라! 너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 45) 그래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답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분은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비추어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않은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 46) 만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을 사랑한다면 그것이 무슨 미덕이 되겠느냐? 세리들도 그 정도는 하지 않느냐? 47) 만일 너희가 너희 이웃들과만 가까이 지낸다면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 무엇이겠느냐? 이방인들도 그렇게는 하고 있다. 48) 그러니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라.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 자신을 땅에 던지는 한 알의 밀알 즉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가 되도록 힘쓰자.
2. 물댄 동산과 같은 교회가 되도록 함께 노력하자.
우리가 이웃을 위해 도와주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사도행전 3장에 나오는 베드로와 요한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
행 3:6-20 / 다시 베드로가 말하였다. `우리는 돈이 한 푼도 없소. 그러나 다른 것을 주겠소. 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 7-8) 그러면서 베드로는 앉은뱅이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러자 그 앉은뱅이는 당장에 다리와 발목에 힘이 생겨 벌떡 일어나 걷기 시작하였다. 그는 걸어 보기도 하고 껑충껑충 뛰어보기도 하더니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다. 9) 성전 안에 있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걸어 들어오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바라보다가 10) 그가 바로 그 `아름다운 문' 앞에 앉아서 날마다 구걸하던 앉은뱅이인 것을 알자 너무도 놀라 말을 잃었다.
베드로와 요한이 전하여 준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와 능력을 전달에 준 것에 불과했다. 사실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줄 금과 은은 없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앉은뱅이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앉은뱅이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를 전해주는 물댄 동산이 되는 것이다.
창세기 12:2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복의 근원’은 아브라함 자체가 복을 주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온세상에 전해주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에 개정개정에서는 ‘너는 복이 될지라’, 개역과 새번역에서는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현대인성경과 공동번역에서는 ‘너는 다른 사람에게 복을 끼치는 자가 될 것이다’ 현대어성경에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을 전해 주는 사람’으로 각각 표현되어 있다.
승천하시기 전에 하신 말씀을 보면 이들이 해야 할 일들 즉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매진할 것을 명하셨다.
막 16:15-20 /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침례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나 믿지 않고 거부하는 사람은 죄인으로 선고받을 것이다. 17) 믿는 사람들에게는 표적이 따를 것인데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만지거나 독을 마시더라도 해를 입지 않을 것이며 병자에게 손을 얹으면 그 병이 나을 것이다.' 19) … 20) 그리고 제자들은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데 주께서 늘 그들과 함께 하셔서 그들이 말씀을 전할 때마다 표적이 따르게 하셨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하심으로써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확실하게 증거해 주셨다.
행 1:8 /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이 될 것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시자 이들은 예수님께서 명하신 대로 마가의 다락방에 제자들을 비롯하여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 형제들까지 그리고 120명가량의 사람들이 모여 기도에 전념하였다(행 1:13-15).
이렇게 할 때에 물댄 동산교회처럼 은혜가 마르지 아니하는 반석 위에 세운 교회를 형성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이웃에게 풍족히 나누어주는 복의 근원되는 교회가 생겨나게 되었고. 이들이 성령으로 충만해지자 옹달샘처럼 소수의 무리가 먹고 마시는 샘이 아닌 풍성한 샘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샘이 되었다. 제자들로 있을 때 그렇게 원하였던 많은 기적이 사도가 되자 수없이 일어나게 되었다.
함께 모여 기도할 때에 성령의 권능이 임하고, 갇힌 베드로가 풀려나듯이 갇힌 자가 일어날 것이며, 기적이 일어나며 성령충만의 역사가 나타났다.
행 4:23-31 / [신도들의 기도] 풀려 나온 베드로와 요한은 곧바로 다른 제자들을 찾아가서 의회원들이 한말을 들려 주었다. 24) 그 말을 들은 신도들은 한마음으로 다 같이 기도를 드렸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주님, 25-26) 주께서는 아늑한 옛날 주님의 종이며 저희들의 조상인 다윗의 입을 빌려 성령의 힘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라들마다 어찌하여 시끄러운가? 민족들마다 어찌하여 군대를 모으고 있는가? 어찌하여 이 땅의 왕들이 전쟁을 일으키려 하는가? 어찌하여 이 땅의 권력 잡은 자들이 여호와를 거슬러 그분께 기름부음받은 이를 거스르는가?' 27) 바로 예언에 있는 그대로의 일이 오늘 여기 이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헤롯왕과 총독 빌라도, 그리고 온 로마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과 한패가 되어 하나님의 거룩하신 종이요,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으신 아들 예수를 대적하고 있습니다. 28) 그들이 이곳에 모여 저지르는 일은 모두 하나님께서 권능과 뜻으로 그냥 내버려 두신 것이라는 사실을 저희가 잘 압니다. 29) 오, 주님, 이제 그들의 위협 앞에 놓인 저희를 굽어 살피시고 주님의 종들이 조금도 굴하지 않고 담대하게 주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게 하여 주소서. 30) 그리고 하나님께서 병 고치는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기적과 놀라운 일들을 이룰 수 있게 하여 주소서.' 31) 기도가 끝나자 그들이 모여 있던 곳이 크게 흔들리며 그들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해졌다. 그리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성전 미문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 직후에 각각 3천명, 5천명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다. 그야말로 역사적인 이적과 기사가 일어난 직후였다. 성령이 충만해진 사도들은 방언으로 설교를 하였고, 앉은뱅이를 일으켜 뛰게 했다. 그리고 '전도 폭발'이 일어났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령에 충만한 일곱 집사를 세워 교회의 일들을 하게 하였고, 사도들로 하여금 오직 복음 전파에 전념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점차 널리 퍼지고 예루살렘에서는 제자들의 수효가 크게 늘어났다. 유대교 대제사장들도 많이 개종해 왔다(행 6:7).
하나님! 이러한 교회가 되도록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결 론
이러한 물댄 동산과 같은 성도 이들이 모인 물댄 동산과 같은 교회는 이사야 58:6-10과 같은 일들을 해야 한다.
사 58:7-10 / 굶주린 사람에게는 네 음식을 나누어 주고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불쌍한 사람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고 입을 옷이 없는 사람에게는 옷을 입혀 주고 어려운 처지의 동족을 보고서 모른 체하지 않는 것이 바로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아니냐? 8) 너희가 그렇게 금식하면 너희의 앞날이 아침 햇살처럼 밝게 열릴 것이며 너희의 상처도 빨리 치료될 것이다. 너희의 의로운 행실은 항상 너희보다 앞서 가서 너희를 인도하고 너희의 뒤에서는 나 여호와의 영광이 항상 따라가면서 보호해 주겠다. 9) 너희가 먼저 불쌍한 동족을 보호해 주고서 나에게 부르짖으면 내가 즉각 너희에게 응답하고 도와주겠다. 너희가 살려 달라고 부르짖으면 내가 곧 `너와 함께 있다.'고 대답하겠다. 너희가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고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조롱하는 것과 나쁘게 말하는 버릇을 고치고 10) 배고픈 사람에게는 네 음식을 나누어 주고 고통당하는 사람의 마음을 만족시켜 주면 네 어둠이 밝아져서 네게서 사방으로 대낮같이 밝은 빛이 퍼져 나갈 것이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은 마지막 심판에 선 사람들을 향해서 양과 염소로 나누며 우편에 있는 양에게 ‘참으로 너희들은 복 받을 자들이다’고 말씀하셨다. 무엇을 하였기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일까? 예수님 자신이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마를 때 나를 마시게 하였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 너희가 나를 영접하였으며, 옥에 갇혔을 때 나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마 25:37-39 / 그때 그 의로운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이 배고프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렸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또 언제 주님이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도와 드렸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39) 언제 주님이 병드셨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마 25:40 / 그러면 왕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내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곧 내게 해준 것이다!’
▶ 우리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기에 첨부하며 말씀을 마친다. 예배하기 위하여 교회에 오는 우리 자신들이 때로는 남을 비난하고 욕하다가 예배자의 자리에 앉는다. 그런데 예배가 끝나고 나가기 무섭게 또 다시 남을 비난하는 쓴물과 단물을 내는 마음으로 바뀐다. 예배시간 동안엔 남을 비난할 수 없으니까 불평을 가득 안고 있다가 끝나자마자 나가서 붙들고 누구를 욕하고 비난하고 저주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복 받는 예배자 물댄 동산 성도의 태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오히려 은혜로운 말을 나누자.
엡 4:29 / 악담을 하지 말고 상대방에게 유익하고 도움이 되고 복이 되는 말만을 하십시오.
그렇다. 물댄 동산과 같은 내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시편 1편을 늘 묵상하면서 좋은 성도가 되자.
시 1:1-6 / 얼마나 복되랴! 못된 짓만 일삼는 자들이 남 짓누를 궁리나 하고 있는 자리에 가지 아니하는 이는. 얼마나 복되랴! 양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을 따라 살지 아니하는 이는. 얼마나 복되랴! 남 우습게나 여기고 제 잘난 체만 하는 자들과 자리를 함께 하지 아니하는 이는. 2) 얼마나 복되랴! 여호와의 가르침을 기뻐하고 그 가르침을 밤낮으로 읽으며 늘 명상하는 이는. 3) 이런 이는 시냇가에 옮겨 심은 나무 같아서 철따라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는 나날이 푸르리니 하는 일마다 끊임없이 번창하리라. 4) 못된 짓 일삼는 것들은 어림도 없어 차라리 힘없이 흩날리는 겨와도 같아 바람 불어 닥치면 바람결따라 별 수 없이 흩어져 버리네. 5) 못된 짓 일삼는 것들은 하나님 심판하시는 자리에 나와 설 수나 있을까? 바르게 사는 이들 모임에 나오기나 할 수 있을까? 6) 여호와께서 바르게 사는 이들은 하는 일마다 가는 길마다 보살피시나 못된 짓만 일삼는 것들은 그 흔적조차 남겨 놓지 않으시리라.
이제부터는 더러운 말은 입에도 내지 말고, 덕을 세우는 말을 하자. 선한 말을 하고, 격려의 말을 하고,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하자. 그리하면 ‘너희의 앞날이 아침 햇살처럼 밝게 열릴 것이며 너희의 상처도 빨리 치료될 것이다. 너희의 의로운 행실은 항상 너희보다 앞서 가서 너희를 인도하고 너희의 뒤에서는 나 여호와의 영광이 항상 따라가면서 보호해 주겠다.’(사 58:8)는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