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에 속한 자
요한복음 18:37-38 2023/8/13 성령강림 후 제11주
18: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18:38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평안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자녀들과 이웃들에게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나는 믿습니다’로 시작되는 사도신경에서 낙인찍힌 남자,
본디오 빌라도에 대해서 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디오 빌라도.
유다에 파견된 다섯 번째 로마의 총독으로 폰티우스(가문의) 필라투스라고 합니다.
빌라도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의외로 풍부합니다.
마태복음 27장, 마가복음 15장, 누가복음 23장, 요한복음 18장
그리고 사도행전 3,4,13장 디모데전서 6장 등 제법 많이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기록한 여러 저자들은 왜, 로마의 총독 빌라도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야만 했을까요?
그 첫 번째 이유는 유대인들의 무지(어리석음)를 고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림하나 볼까요?
안토니오 시세리의 작품 ‘에케 호모(1871)’입니다.
요한복음 19장 4-5절에 나오는 빌라도의 선언에서 따온 제목으로
‘보라 이 사람이로다’라는 뜻입니다.
요19:4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요19:5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에케 호모) 하매
‘너희들이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는 메시아(왕/그리스도)가 바로 이 사람이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에케 호모’ ‘이 사람을 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자신들이 기다리는 그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일 뿐 예언자들이 말했던 그리고 자신들이 기다리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요19:6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19:7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율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그렇게 해서 결국 하나님 아들이자 그리스도의 운명이 본디오 빌라도 손에 넘어가게 됩니다. 성경의 저자들 특히 요한이 전한 복음은 이것을 고발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요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또 하나,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이 빌라도를 언급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부활 때문이었습니다.
부활은 총독 빌라도 시대에 있었던 역사의 사실이었다는 것입니다.
먼저 사도행전 3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설교부터 보겠습니다.
(새)행3:13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이삭의 [하나님]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서 자기의 종 예수를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일찍이 그를 넘겨주었고, 빌라도가 놓아주기로 작정하였을 때에도, 여러분은 빌라도 앞에서 그것을 거부하였습니다.
3:14 여러분은 그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을 거절하고, 살인자를 놓아달라고 청하였습니다.
3:15 그래서 여러분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이러한 부활의 증거는 바울의 설교에서도 동일하게 이어집니다.
(새)행13:26 아브라함의 자손인 동포 여러분, 그리고 여러분 가운데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여, 하나님께서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13:27 그런데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이 이 예수를 알지 못하고, 안식일마다 읽는 예언자들의 말도 깨닫지 못해서, 그를 정죄함으로써, 예언자들의 말을 그대로 이루었습니다.
13:28 그들은 예수를 죽일 만한 아무런 까닭도 찾지 못하였지만, 빌라도에게 강요하여 예수를 죽이게 하였습니다.
13:29 이와 같이, 그를 가리켜 기록한 것을 다 행한 뒤에, 그들은 예수의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습니다.
13:30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빌라도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 4세기경부터 바뀌게 됩니다. 바로 4세기에 완성된 사도신경 때문이었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하지만 오늘 우리가 본디오 빌라도와 관련해서 놓치지 말아야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과 나눈 아주 짧은 대화입니다.
이 대화가 중요한 것은
그 대화 속에서 예수님이 누구신지가 아주 명확하게
본디오 빌라도의 입을 통하여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에케 호모’
‘보라 이 사람이로다’라는 빌라도의 선언을 통해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자 만왕의 왕이었다는 사실이 온 세상에 처음으로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상상력을 발휘한 ‘칼릴 지브란’은 그의 책 ‘사람의 아들’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예수는) 두 팔을 뒷짐 지워 노끈으로 꽁꽁 묶인 채 재판정으로 끌려왔었습니다. 나는(빌라도) 단 위에 앉아 있었는데, 그는 나를 향해 큰 걸음으로 뚜벅뚜벅 걸어왔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곧추 버티고 서서 고개를 높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내게 무엇이 일어났던지 나는 갈피를 잡을 수 없습니다. 갑자기 나는 일어나 단에서 내려가서 그 앞에 엎드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가이사라 곧 로마의 황제보다도 더 위대한 사람이 재판정 안에 들어온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중간생략)……
심문을 했지만 그는 대답을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만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눈 속에는 불쌍히 여기는 빛이 들어 있었습니다. 바로 자기가 내 통치자요 재판장이기나 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떨리는 마음으로 빌라도가 다짜고짜 물었던 질문이 이것이었습니다.
요18:33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새 번역 성경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빌라도가 다시 관저 안으로 들어가, 예수를 불러내서 물었다.
"당신이 유대 사람들의 왕이오?’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과 달리 어떠한 편견도 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누구냐? 고향이 어디냐? 나이가 어떻게 되나? 직업이 뭐냐?’라는 편견에 사로잡힌 질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받은 느낌 그대로 사실 확인 차에서 물었던 질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이렇게 반문합니다.
요1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자신의 생각 자신의 감정이 들키자
빌라도는 역정을 내면서 다른 질문으로 돌립니다.
18: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도대체 무슨 일을 해서 이런 사단이 났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본디오 빌라도’은 아주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나 듣게 됩니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나라 바로 예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가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요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약입니다.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이 지금 애써 충성하고 있는 나라
곧 제국 로마는 아무 의미가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충격에 빠진 빌라도가 숨도 고르지 않고 했던 그 유명한 선언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요18: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그러자 우리 주님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어갑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이 37절의 말씀이 놀라운 것은
로마제국을 상징하는 총독 빌라도의 입을 통하여
예수님이 만왕의 왕으로 선포되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후에 나오는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무슨 말입니까?
‘진리에 속한 자만이 내 음성 곧 내 말의 뜻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리에 속한 자만이 예수의 나라,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하나님나라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본디오 빌라도가 다시 꼭 집어 질문합니다.
요18:38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하지만 예수님은 이 질문에 대해 답을 주지 않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본디오 빌라도가 진리에 속한 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진리에 대한 호기심만 가지고 있었지,
그 진리와 마주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리가 무엇이냐’는 빌라도 질문에 예수님이 답을 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폐단 중에 꼭 해결해야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비겁함’입니다.
그래서 진리에 대해 호기심만 가지고 있지, 애써 싸워 진리와 마주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안타까운 것은,
이것이 빌라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문제,
오늘 우리 교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무엇인가?’라는 호기심만 품고 있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떳떳하게 마주하려 하지 않습니다.
또 ‘참된 교회란 무엇인가?’ 그 질문만 있지, 그 참된 교회가 되려하지 않습니다.
또 ‘참된 신앙이란 무엇인가?’ 질문만 늘어놓지 정작 신앙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믿음이 무기력해지고, 우리 교회가 형식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세 가지를 부탁하고자 합니다.
첫째 ‘진리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넘어,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떳떳하게 마주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참된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만 늘어놓지, 스스로 참된 교회가 되십시오.
셋째 ‘참된 신앙이 무엇인가?’라는 질문만 반복하지 말고,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