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텍 문명은 문화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가장 잘 단련된 고대문명 중 하나였다. 하지만 최전성기의 아스텍 인구 2000여 만명 중 95%를 몰살시키는 데에는 단 600명의 스페인 군대면 충분했다. '이교도'를 전멸시킨 이 '신의 손'이 무엇이었는지를 밝힌 건 신학이나 군사학이 아니라 현대의 '병리학'이었다. 유럽인들의 신체에서 옮겨 간 천연두, 홍역, 인플루엔자(독감) 등 각종 유행성 바이러스들이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던 원주민들만을 '골라서' 몰살시킨 것이다. 현대의학은 암도 완치시키는 단계에 이르렀지만, 일상의 질병이라 할 감기나 독감, 호흡기를 통해 침투하는 각종 바이러스의 진화에는 여전히 무력한 경우가 많다. 백신을 개발한다고 하지만, 병원균은 환경에 맞게 다시 진화한다. '예방'이 최선책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마스크'는 인간이 아직도 '알 수 없는 것들'과의 생존 전쟁에 격렬하게 노출되어 있는 연약한 생물종이라는 사실을 환기하는 사물이다. 이 사물이 드러내는 문명론적 이미지는 간명하다. 당대의 아스텍이나 잉카가 그러했듯이, 현대문명의 찬란함에 도사리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허약성, 확인ㆍ정복되지 않는 '실체'들에 대한 불안감이다. 돼지독감이나 조류인플루엔자(AI), 원인불명의 바이러스나 가벼운 차원의 감기 바이러스가 유행할 때, 마스크는 일상의 인간들이 병원균에 대비해서 취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예방책이다.
마스크의 존재 핵심은 코와 입으로 들어오는 공기의 직접적인 차단을 '막는' 것이다. 그러나 '막는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최근의 '미세먼지' 논란에서 보듯이, 호흡기를 통해 유입되는 바이러스들은 마스크를 엮고 있는 섬유분자보다 작다. 마스크로 들어오는 공기 자체를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바이러스는 마스크의 '틈새'를 통해 호흡기로 유입된다. 인간은 병원균에 대항해 일제히 마스크라는 '방패'로 대항하지만, 이 '방패'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은 사실 병리학자들 간에 적지 않다.
분자생물학의 한 관점에서 보면,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숙주로 삼아 개체변이를 거듭하는 미세존재들인 '바이러스'다. 물리적인 차원에서, 철학적인 차원에서, 이 사물은 지구에 인간의 눈으로 포착되지 않는 거대하고 강력한 존재들의 세계가 상존함을 환기한다. 실체가 확인되지는 않으나 '존재'의 기습에 의해 촉발되는 기분을 어떤 철학자는 '불안'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