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역사소설 태종 이방원 186
선위하는 태종 이방원
호랑이 등에서 이제 내리고 싶다
조선의 왕도는 한양이다. 임금은 개성에 있고 한양을 지키던 세자는 축출되었다.
한양이 비어 있는 셈이다. 힘의 공백이 생길 수 있다.
양녕을 내치기 위하여 머물렀던 개성. 이제 더 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양녕을 폐위하여 경기도 광주로 유배 보낸 태종은 세자 충녕과 대소신료들을 불렀다.
“세자는 중전을 모시고 한양으로 먼저 돌아가라. 3전이 함께 움직이면 길이 좁아 곡식을 다칠까 염려된다.
과인은 후일에 돌아갈 것이니 정부, 육조, 대간도 한양으로 돌아가라 ”
자신이 환궁하기 위한 정지 작업이다. 태종이 말한 3전은 대전, 중궁전, 세자전을 말한다.
개성을 출발한 세자 충녕이 한양에 입성했다.
유도한 대소신료들이 대대적인 환영을 펼쳤다. 조용히 환궁하려고한 세자는 언짢았다.
개선장군이라도 되는 것처럼 요란을 떠는 그들이 부담스러웠다.
정비는 경복궁에서 하련하고 세자와 경빈은 창덕궁에 들었다.
열흘 후, 태종이 한양에 돌아왔다.
경복궁에 환궁한 태종은 지신사(知申事) 이명덕, 좌부대언(左副代言) 원숙, 우부대언(右副代言) 성엄을
경회루로 불렀다.
“내가 나를 잘 안다. 나의 상(像)은 임금의 상이 아니다. 위엄과 행동거지가 모두 임금에 적합하지 않다.
내가 재위한 지 이미 18년이다.
이에 세자에게 전위(傳位)하려고 한다. 아비가 아들에게 전위하는 것은 천하고금의 떳떳한 일이요,
신하들이 간쟁할 일이 아니다.”
폭탄선언이다. 그간의 전위 파동이 몇 번 있었지만 이번 전위는 작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양녕이 충녕과 친하여 변(變)을 일으킬 의심은 없으나 어제까지 명분의 지위에 있다가 이제 폐출되어
외방에 있으니 어찌 틈을 엿보는 사람이 없겠는가?
그러므로 조현(朝見)을 정지하고 내선(內禪)을 행하고자 한다. 전위한 뒤에도 내가 마땅히 노상(老相)들과
임금을 보익(輔翼)하고 일을 살필 것이다.”
“거두어 주소서.”
“18년 동안 호랑이(虎)를 탔으니 이제 내려올 만하다.”
전위 소식을 전해들은 영의정 한상경, 좌의정 박은, 우의정 이원과 육조 판서·육조 참판이 몰려와 머리를
조아렸다.
“성상의 춘추가 노모(老耄)함에 이르지 않고 병환도 정사를 폐지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원민생을 보내어 세자를 세우도록 청하고 세자가 조현한다고 아뢰게 한 지 몇 달도 못 되어서 전위하심은
절대로 옳지 않습니다.
더구나 내선(內禪)은 나라의 큰일이니 마땅히 인심을 순하게 하여야 하며 억지로 간쟁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아비가 아들에게 전(傳)하는 것이니 신하들이 간쟁(諫諍)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신하의 간쟁하는 법이 어느 경전(經典)에 실려 있는가? 나의 뜻이 이미 결정된 지 오래니 고칠 수가 없다.
다시 이를 말하지 말라.”
태종의 의지는 단호했다. 말을 마친 태종은 지팡이를 짚고 보평전(報平殿)으로 이어(移御)했다.
지팡이에 의지한 태종의 모습은 처음이다.
보평전에 도착한 태종은 승전환자(承傳宦者) 최한을 불렀다.
“개인(開印)할 일이 있으니 승정원은 속히 대보(大寶)를 가지고 들라 이르라.”
임금의 도장을 대보, 어보 또는 옥새라고 한다.
임금이 외교문서와 교지, 홍패, 백패 등에 도장 찍을 일이 있으면 인궤(印櫃)를 열고 도장(印)을 꺼냈다.
이것을 개인(開印)이라 한다.
내관이 승정원으로 달려가는 것과 동시에 대소신료들이 보평전(報平殿)으로 몰려왔다.
문을 걸어 잠그고 열어주지 말라 명한 태종은 세자를 급히 들라 명했다.
또 다른 내관이 세자전으로 뛰었다.
대궐 밖에서 이 소식을 접한 영돈녕(領敦寧) 유정현과 정부·육조·공신·삼군총제·육대언 등이 황급히 달려와
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보평전 합문 밖에 이르러 통곡하면서 내선(內禪)의 거조(擧措)를 정지(停寢)하기를 청했다.
이때 임금의 호출을 받고 보평전으로 향하던 상서원 승지들과 대소신료들 사이에 대보(大寶)를 바치지 못하게
실랑이가 벌어졌다.
문 밖에서 소란이 일자 태종 임금이 지신사를 힐책했다.
“임금의 명(命)을 신하가 이리 가로막아도 되는 것이냐?”
이명덕이 마지못하여 대보(大寶)를 바쳤다.
부왕의 급한 부름을 받고 허둥지둥 달려온 세자 충녕이 도착하여 임금 앞에 부복했다.
태종이 세자의 소매를 잡아 일으켜서 대보를 주고 곧 안으로 들어갔다.
세자가 몸 둘 바를 몰라 하다가 대보를 놓고 안으로 따라 들어가 지성으로 사양했다.
“세자는 대보를 받도록 하라.”
세자로 하여금 대보를 받도록 명한 태종은 홍양산(紅陽傘)을 내려 주며 궁 안에 머물도록 했다.
홍양산은 임금만이 쓸 수 있는 붉은 양산이다.
이어 상서관(尙瑞官)과 대언(代言)한 사람에게 명하여 대보를 지키면서 자게 하였다.
대보를 세자에게 물려준 태종은 가종(駕從) 10여 기(騎)에게 명하여 서문으로 나가서 연화방의 옛 세자전에
거둥했다. 백관들이 따라서 전정(殿庭)에 이르러 통곡하면서 복위하기를 청하였다.
세자 충녕이 대보를 받들고 전(殿)에 나아가 대보를 바치며 굳이 사양하였다.
“나의 뜻을 유시한 것이 이미 두세 번이나 되는데 어찌 나에게 효도할 것을 생각하지 않고 이같이 어지럽게
구느냐? 내가 만일 신료들의 청을 들어 복위한다면 나는 장차 편안한 죽음을 얻지도 못할 것이다.”
태종은 두 손을 맞잡아 북두성을 가리키며 맹세했다. 이는 다시 복위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내가 이러한 거조(擧措)를 천지와 종묘에 맹세하여 고(告)하였으니 어찌 감히 변하겠느냐?”
부왕의 단호한 모습을 지켜보던 세자 충녕이 황공하고 두려운 얼굴로 이명덕에게 물었다.
“어찌할까?”
“성상의 뜻이 이미 정하여졌으니 효도를 다하심이 마땅합니다.”
“경은 대보를 받들고 경복궁으로 돌아가라.”
부왕의 결심을 돌이킬 수 없다고 판단한 세자 충녕은 지신사 이명덕에게 명했다.
군왕스러운 명령 일성이다.
함께 경복궁으로 돌아온 세자 충녕은 대언(代言) 김효손으로 하여금 대보를 지키면서 자게 하였다.
날이 밝자 대간에서 상소가 올라왔다. 피봉(皮封)에는 ‘상전개탁(上典開拆)’이라 쓰여 있었다.
“나는 이미 사위(辭位)하였는데, ‘상전개탁(上典開拆)’이라 함은 무엇인가? 만일 ‘상왕전개탁(上王前開拆)’이라
한다면 내가 마땅히 읽어볼 것이다.”
태종은 소(疏)를 물리쳤다. 선위에 대한 의지는 확고부동했다.
상소를 일축한 태종은 임금이 타던 승여(乘與)와 의장을 세자전으로 보냈다.
또한 궐내에 시위(侍衛)하던 사금(司禁)·운검(雲劍)·비신(備身)·홀배(笏陪)를 보내어 내관 최한으로 하여금
왕세자를 맞아오게 했다.
단순히 임금에 준하는 예우가 아니라 즉위식을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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