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송주의 좋은 글 나누기> 구와쑥(은쑥)
대동문화 1001 한송주의 산사에서 띄우는 엽서
관세음보살 복장터지는 소리
절간은 대개 조용합니다. 세간 같이 시끄러워서야 어디 공부가 되겠어요? 고시공부 하는 이들이 절간을 찾아 용맹정진하는 풍습이 지금도 남아 있지요.
더군다나 스님들이 안거에 들어가고 탐방객들의 발길이 잦아드는 겨울철에 들면 절간은 참으로 고즈넉해집니다.
송광사 같은 큰 절이 스산한 적막에 휩싸여 있는 경개에 부닥치면 웬만한 저자사람도 중치가 헉 하고 막히면서 잠시 시늉이나마 마음우물 속을 들여다보게 돼요.
백삼십명이 넘는 스님들은 어디에 꼭꼭 숨어서 뵈질 않는데 간간이 행자들만 머리 꼭두서니가 시퍼래가지고 너른 마당을 종종거리고, 종무소에 처사 보살 몇이 덜렁 남아 절 살림을 꾸리고 있지요.
이 철에 절에 들르면 저는 꼭 심심파적 삼아 종무원들에게 썰렁개그 한 대사를 날려요.
“워매 꼭 절간 같이 조용하구만, 잉”
그러면 개그에 약한 요즘 보살들, 생글생글 웃으며 화답을 하지요.
“칫, 또 신소리, 절간잉께 절간같재, 측간 같으까, 뭐.”
그 절간 같은 절간에 달포 전 아닌 대낮에 난리가 났어요. 그야말로 난리법석이 나 난장거리를 방불케 했습니다.
“관세음보살님 복장이 터졌다네!”
관세음보살 복장이 터져? 대자대비 관세음보살님이 요새 사바중생들 돌아가는 꼴을 보니 짠하고 애가 탄 나머지 그만 복장이 터져버리셨나?
그게 아니고, 관음전에 계신 관세음보살상을 개금(改金)하려고 살피다가 그 몸을 열어 보니 뱃구리에서 오만가지 성보(聖寶)가 쏟아져 나왔어요.
송광사는 이태째 전각에 계시는 불보살님들의 옷을 새로 갈아입히는 개금불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80년대에 대작 중창불사를 회향한 뒤 20년이 넘도록 개금을 못해 초라한 부처님 모습을 대하는 불자들이 늘 안타까이 여겨왔는데 주지 영조스님이 뚝심원력을 내 숙원사업을 들쳐메고 나선 것이지요.
영조스님은 그동안 발원한 불사마다 원만성취를 해 불사복(佛事福)많기로 소문난 분인데 그 공덕으로 한 번 하기도 어렵다는 총림 주지를 연달아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불사 중에 진귀한 문화재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으니 참으로 복덩이 스님이랄 밖에요.
그런데 관음보살 복장이 터져 복덩이가 덩굴째 들어온 사람이 또 한 사람 있어요. 바로 송광사 성보박물관장이 고경스님이지요.
고경스님은 사계에서도 알아주는 문화재통이신데 그 분이 박물관장으로 취임한 이래 송광사에서 많은 문화재가 발굴되어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바 있어서 사중에서는 스님을 ‘승보(僧寶)’로 받들고 있습니다.
고경스님은 건강이 좋지 않으면서도 성보가 비치는 곳이면 한겨울에도 원근을 가리지 않고 달려가서 조사를 하고 절집에서도 밤낮없이 연구실에서 처박혀서 자료를 정리하고 집필을 하는 학자입니다.
이번에 개금을 위해 불상을 하다가 진귀한 보물을 무더기로 발굴한 장본인도 바로 고경스님이시지요. 스님은 관음보살 복장이 터지자 절집이 떠나가게 환호작약하면서 그 해맑은 동안에 함박웃음을 흘리며 몇날 며칠을 어린아이 같이 기뻐했어요. 그리고는 번개처럼 문화재청에 보고해 문화재 전문위원들과 정밀 조사를 벌여 복장유물들이 국보급 문화재임을 확인했어요.
한데, 절집 불상의 복장이 터져 보물이 쏟아져 나와서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고경스님같은 박물관 소임자는 잠깐 환희의 순간이 지난 다음에는 그야말로 복장이 터지는 일거리가 기다리고 있지요. 더군다니 이번처럼 일급 문화재가 무더기로 쏟아지고 보면 그 연구 조사 관리 문제로 정신이 없게 됩니다.
발굴 며칠 후 만난 고경스님은 “관음보살님 복장이 터져갖고 기쁘기는 기쁜디, 막상 지금부터는 우리들 복장 터질 일만 남았당께” 하면서도 만면에는 싱글벙글 웃음꽃을 달았다.
이번에 발굴된 성보는 조선시대 중기(15~17세기) 유물들 450여점이 발견되었다. 발견된 유물들은 불상 조성의 내력을 기록해 넣어두는 복장물(腹藏物)과 부처님의 법보인 경전(經典)류들로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발견 예가 적은 것들이어서 그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 되었습니다.
저고리, 화엄경 교장, 다라니, 후렴통 등 그 종류와 양도 많아 무려 450여 점이나 됩니다.
불상의 뱃구리에서 이렇게 귀한 보물이 이렇게나 많이 쏟아진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하네요.
불상은 개금할 때 외에는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는 성물이기 때문에 그 안에 무엇을 감추고 있는 지 알 수가 없습니다. 역사가 있는 전각의 부처님은 대개 그 몸 안에 값진 보물을 품고 계신다는 걸 유념할 필요가 있지요.
불상의 복장이 한 번 터지면 짧게는 수백년, 길게는 1000여 년 전 옷이나 책들이 쏟아져 나오며, 바깥 공기와 접한 적이 없어 원형 그대로 보존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복장이 터졌다 하면 절집은 말할 것도 없고 문화재청, 관련학계, 언론사 등에 야단법석이 벌어지지요.
불복장이 열리면 그동안 숨겨져 있던 귀중한 역사가 되살아납니다. 최근의 예로 지난 2005년 해인사 쌍둥이 비로자나불의 복장이 터지고 진성여왕과 각간 위홍이 각각 조성한 불상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학계가 새로운 역사를 쓰느라 분주해진 적이 있어요.
그런데 불상의 복장이 좋은 불사로 인해 터지는 게 아니라 문화재절도범에 의해 터지는 일도 가끔 있습니다. 그래서 절집 스님들의 복장이 터지게 됩니다.
지난 1986년에 기림사 비로자나불의 복장은 절도범들에 의해 터졌는데 다행이 현장에서 붙잡혀 스님들이 배를 쓸어내렸지요.
송광사 관음상 복장유물 중에서 눈에 띄는 건 두 벌의 옷이었어요.
그 가운데 하나인 남자 저고리에는 이 보살상을 조성한 내력이 적혀 있었습니다. 글 내용은 조선조 인조의 아들인 소현세자의 며느리 허씨가 남편인 경안군의 병이 낫기를 발원하며 이 불상을 조성했다는 것이었어요.
이 불상은 법주사의 관세음보살과 아주 흡사해 17세기 중반에 조성했을 것이라고 추측했을 뿐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었는데 이번 불복장의 발견으로 1662년 경안군 부인 허씨가 조성했음이 밝혀진 것입니다.
소현세자는 인조의 장자로 일찍 죽지 않았더라면 왕위를 이어갔을 인물이지요. 병자호란 후 소현세자와 그 가족들은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 고역을 치르고 나중 조선으로 돌아왔지만 곧 독살로 보이는 죽음을 맞는 비극의 주인공입니다.
비극은 소현세자 한 분으로 끝나지 않고 일가족이 모두로 이어지는데 소현세자의 아들인 경안군도 스물두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송광사 관음보살이 조성된 것은 경안군이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인 1662년으로 허씨부인이 가족의 불행을 예견하고 내생의 극락왕생을 염원해 불상을 모셨던 것입니다.
관음전은 허씨부인의 신심 공덕인지 고종조에 성수전이라는 원당으로 위상이 높아졌으며 오늘날에도 영험높은 관음도량으로 이름나 불자들의 기도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글 한송주 월간송광사 편집장